‘어느 날 갑자기 길 한복판에 파란 소파가 생겼다가 ‘드디어’ 사라졌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윤단의 「남은 여름」은 사실 열다섯 권의 책을 자신에게 남기고 죽은 친구를 애도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애도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사람이 죽었다’라는 문장을 ‘사람이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힘겹게 고쳐 쓰는 과정이기도 하다. 진정한 애도란 ‘없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있었음’을 잊지 않고자 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불현듯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 파란 소파, 멀리 차버리고 아무도 찾지 않은 축구공, 절대 전부 쓰일 일이 없는 커튼레일의 나사 묶음 등을 무심히 그려가는 이 소설은, 있지만 없는 듯한, 그래서 결국 없는 듯 존재하는 느낌의 삶에 대해 우울하게 말한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부재의 자리에서 결코 완벽히 소거될 수 없는 ‘있음’에 대해 생각하려는 안간힘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친구를 잃었고 일자리를 잃었고 갑자기 나타난 파란 소파마저 잃은 서현의 일상과 상념들을 천천히 쫓아가는 「남은 여름」에서 가장 슬프게 기억되는 문장은 이런 것이다. “이제 나를 어디에 앉히지.” 동시에 이런 문장도 아프다. “소파가 밤에 보았을 세상을 서현은 오래 보았고, 그러는 동안 서서히 깊고 눅진한 슬픔을 마주했다.”
여러 번 읽다 보면 알 수 있지만 「남은 여름」에는 이런 표현들이 반복된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떠올렸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서현은 생각했다” “서현은 곰곰 생각했다”라는 문장은 꽤 여러 번 반복된다. 그리고 마침내 다음의 문장들로 수렴된다.
또 어떤 것들이 있었나. 간혹 내비치던 어려운 마음들. 그래도 잘 살자, 어떻게든, 근데 난 잘 모르겠어, 그치, 있잖아, 아니야, 정말 괜찮아. 어느 늦은 밤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왔을 때, 서현은 수면 유도제를 먹고 잠들어 전화를 받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부재중 전화를 보고는 급한 일이면 또 연락하겠지 싶었다. 친구는 일주일 뒤 죽었고,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현은 끝내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친구를 생각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도 있었다고, 친구의 마음을 들여다봤어야 했다고, 그런 뒤늦은 후회도.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최소한의 구직 활동을 하며, 친구가 남긴 책들을 읽으며, 간혹 전 직장의 상사 ‘추 팀장’과 파란 소파에서 만나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나누는 서현의 일상이 잔잔하게 그려지는 이 소설에서 실상 그녀는 계속 죽은 친구를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은 친구의 마음이 온전히 드러나기는 힘들 것이고 친구를 향한 뒤늦은 후회도 말끔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친구 ‘생각’을 하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지 모른다고, 지금은 멈출 수 없는 그 생각을 앞으로도 계속 멈추지는 말아야 한다고 곰곰 생각해보는 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최소한의 애도인지도 모르겠다._조연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