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봄, 강보라

강보라 「바우어의 정원」 (『악스트Axt』 2024년 11/12월호)

선정의 말

「바우어의 정원」은 강보라의 소설이 종종 그렇듯이 예술과 삶의 관계 속에서 여러 딜레마를 날카롭게 건드리고 있다.
예술가의 위상이 삶에 드리우는 그림자, 누군가 명성을 얻고 조명을 받을 때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야기하는 은근하거나 날카로운 비참……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많겠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이 그리는 중요한 딜레마는, 상처를 드러내는 예술이 오히려 삶에서 겪는 상처를 소외시키곤 한다는 데 있다. 은화는 연극 오디션에 참여하며 “살면서 여성으로서 겪은 상처를” 들려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당사자의 상처는 보일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환되어야 하는데, 이 변환의 과정에서 모종의 소외가 일어난다. 상처는 편집되고 변형되며, 평가되거나 감상될 수 있는 소재가 된다.
여성의 상처는 유행이나 장르적 요구, 관객의 흥미에 맞는 ‘코드’로 변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은화 역시 배우로서 “상처에도 약간의 메이크업은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내밀한 상처를 가공할 수 있는 소재로 전시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배우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을 말하고 드러낼 기회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감추고 왜곡하고 소외시키기를 요구한다. 남의 불행을 훔치는 것 같은 조작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코드화와 대조적인 것은 은화와 정림이 나누는 사적인 대화다. 이 대화는 오디션장과 극장 사이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소설의 표면에서 생략된 오디션이나 연극의 세부 사항과 달리, 둘의 대화는 자세하게 기술되고 있다. 공적으로 발화될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는 이 대화에서, 둘은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선후배 배우로서, 유산을 겪은 여성으로서 공감한다. 이 대화는 연극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 자체로 연극적인 형식을 차용하면서 연극에 대한 리뷰이자 토로, 성찰의 성격을 띤다.
어쩌면 이 소설은 독자를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으로까지 데려가는 것 같다. 과연 예술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일까? 소설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단서를 내놓는 것 같지 않지만, 그래서 초원을 만나보겠다는 은화의 다짐은 더욱 역설적이다. 은화는 배우 지망생인 초원에게 ‘롤모델’과 같은 인물이지만, 동시에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는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은화는 초원을 배우로서 만나는 것이면서, 배우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연극에서 커튼콜은 배우와 관객이 연극에서 빠져나가는 출구의 역할을 한다. 배우들은 마지막 인사를 통해 역할을 다한 배우로서 박수를 받는다. 「박수는 조금 있다가」의 특이한 마무리 인사 방식은, 연극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모호한 상태에 관객을 붙잡아둔다. 이 방식의 고집스러움처럼, 이 소설 역시 연극과 삶이 서로를 가리면서도 끝내 분리되지 않는 미묘한 지점에 독자를 오래 붙잡아둔다._이희우(문학평론가)

관련 작가

강보라 소설가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자세히 보기

6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