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 이희주

이희주 「최애의 아이」(『문학동네』 2024년 가을호)

선정의 말

이희주의 「최애의 아이」는 “우연히 본 음악 방송에서 빵! 하고 ‘유리’가 쏜 사랑의 총알에 맞은 뒤” 유리를 향한 맹목적이면서도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하는 ‘우미’의 이야기이다. “우주적 엔트로피의 측면에서 못할 짓을 한 거지”라는 자평처럼, 우미의 사랑에는 양자 사이의 상호 소통에 기반한 균형과 밸런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돌 유리를 향한 절대적인 애정이 비합리적이고 망상증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우미의 정의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원래 사랑이라는 것이 대상에 대한 조건 없는, 한없는, 흔들림 없는 정념이어야 하지 않은가? 거기에 어떤 불순물이 포함되고, 순수성을 잃게 되어 합리적 계산이 적용되기 시작한다면, 그리하여 사랑에 대한 내적 갈등과 의심이 섞이게 된다면 사랑은 언제든지 붕괴될 위험에 봉착한다. 우미가 말하는 사랑의 세계는 “사랑을 접는 게 죄가 되”는 세계, 상대방의 마음과 무관하게 (오히려) 내 마음과 정동이 온전해질 수 있는 순수 사랑의 세계이다.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의 실재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우미는 어떤 충동 없이, 삼십대 여자의 냉정한 판단력으로 유리의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라는 맹목적 자기 규정과 결론이 가능한 것이다. 사랑의 순수성을 실천하려는 우미에게는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미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자신이 믿는 순수 사랑이 실제로 현실화될 때 발생할 것이다. 태중의 아이가 유리의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케이팝 열풍을 이용한 범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될 수 있었으며, 각종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우미는 자신이 믿었던 실재의 세계가 철저히 붕괴되었음을 확인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도 우미가 절망이나 분노 등의 인간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그는 냉정한 판단력으로 유리의 아이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던 것과 마찬가지 논리로, 그는 냉정하게 자신의 원치 않은 아이를 ‘처리’한다. 그 어떤 도덕이나 윤리적 규범으로도 용인될 수 없는, 우미의 마지막 행동은 우리의 상식을 완벽히 해체·붕괴시키는 곳으로 이야기를 몰아가는 것이다. 실재의 사랑이 현실 세계에 침입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쩌면 이희주의 유미가 벌이는 이 논쟁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사랑의 테러 행위는, 실재와 현실의 경계가 붕괴되어버린 동시대적 세계를 증언하는 광기의 영웅주의일 것이다. _강동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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