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혜의 「여름 손님입니까」는 기억에 관해 기억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기억은 능동적이면서도 수동적인 독특한 현상이라서, 시간의 순서에 따라 입력될지는 몰라도 시간의 순서대로 출력되지는 않는다. 작년 이맘때의 일이 아득한 옛일처럼 흐려지고, 아주 오래전 기억이 불과 얼마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솟아오른다. 갑자기 발등 앞에 쏟아져 엉망으로 뒤섞인 사진첩처럼, ‘벌써’와 ‘아직’의 어디쯤 어지럽게 흩어진다. 정신없이 다음 장을 펼쳐보고, 그러다 무언가에 놀라 탁 소리를 내며 덮어버리고 마는 것. 추억은 그리움과 독이 알 수 없는 비율로 섞여 쓰다고도 달다고도 할 수 없는 묘한 맛으로 입안에 남는다.
「여름 손님입니까」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처럼 내 앞에 당도한 기억은 언니에 관한 것이다. 언니는 재일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죽은 외삼촌의 딸, 그러니까 엄마의 조카이자 ‘나’의 사촌 언니였다. 엄마의 첫딸처럼, ‘나’의 언니이자 또 다른 엄마처럼 함께 살았던 언니는 스무 살이 되자 훌쩍 일본으로 떠났고 이후 소식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러던 언니가 딸의 결혼식이라며 30년 만에 엄마를 초대하고, 엄마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이 될 수 없다며 대신 ‘나’를 일본으로 보낸다. 아마도 오래전 언니가 감행했던 절연과 일본행에는 어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길고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고작 여름 손님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은 엄마의 마음 역시 ‘나’가 온전히 짐작하긴 어려울 것이다. 소설은 그 사연을 밝혀내기보다, 불완전한 ‘나’의 기억이 피어오르고 변형되고 중단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가만히 호텔 방에 앉아 그 시절을 되새김질하던 ‘나’에게 기억이라는 손님은 어떻게든 찾아온다. 손님은 지금의 언니를 상상하게 만드는 기모노를 입은 중년 여성이기도 하고,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이기도 하다. 그들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언니와 엄마와 함께 갔던 목욕탕의 기억이, 어쩌면 언니를 잃었던 순간일지도 모를 수영장의 기억이 딸려 올라온다.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무서운 여름 손님처럼, 그러나 더는 살아 있지 않아 쫓아버릴 수도 없는 유령처럼, 기억은 ‘나’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관통하며 지나간다.
소설은 향으로 시작하여 종소리로 끝난다. 동심원으로 퍼지는 것들 속에서 맴돌고 헤매면서 ‘나’는 “장례식과 결혼식이 한날한시에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장소에 도착한다. 향과 종소리가 유령과 손님을 위한 준비물인 것처럼, 기억은 결코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기억은 무언가 사라진 자리에서 유령처럼 탄생하고, 누군가 떠난 후에 손님처럼 찾아온다.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의 눈에 그토록 아름다웠던 언니는 이미 오래전 사라졌고, 그렇기에 종종 유령이나 손님처럼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언니에게 엄마와 ‘나’ 역시 그러할 것이다. “손님입니다.” 나의 문을 두드리는 저 목소리가 “손님입니까?” 언제나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것, 소설은 기억에 대한 정확하고 아름다운 은유를 완성한다._이소(문학평론가)
2024년 겨울, 이주혜
이주혜 「여름 손님입니까」(<문장웹진> 8월호)
선정의 말
관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