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겨울, 성혜령

성혜령 「운석」(웹진 <비유> 2024년 7/8월호)

선정의 말

성혜령의 「운석」은 말해지지 않은 것이 많은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 「운석」은 백주의 ‘13층 오피스텔 꼭대기 층’ 같다. 인한의 말 없는 죽음 이후 백주가 닿은 그곳은 인한에 관한 기억이 상자 속에 감추어진 채 쌓여 있는, 시계도 없고 층간 소음도 없는 곳이다. 기억으로부터, 이웃과 바깥세상의 소리로부터, 그렇게 시간으로부터 얼마간 유리된 그곳에서 백주는 “기쁨과 슬픔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옥상에 내리쬐는 여름 볕의 열기로 그 고요는 동시에 맹렬한 와중이기도 하다. 하나씩 꺼내어지는 백주의 가족 이야기, 설경과 인한의 가족 이야기, 또 백주와 인한의 가족 이야기에는 오래된 신문 기사와 적히지 않은 기억, 상상, 말 없는 기척의 시간들이 설명되지 않은 채로 켜켜이 얽혀 있다. 그것들이 감추어진 채 유산처럼 상속되고 반복되고 연결되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구멍들로 소설의 표면을 이룰 때, 「운석」은 소설 속 운석처럼 “보기보다 무겁지 않”은 채로 견고히 단단하고, 백주의 원룸처럼 고요한 채로 위태롭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인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만도, 백주와 설경의 받아들임과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만도 아닌, 무수한 구멍들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안에서 “꺼내줘”라는 말이 들린다면 그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이기보다 구멍에 관계된 더 많은 이의 기척일 것이다. 운석이 파쇄되는 대신 흔들리고 갈라지는 발밑의 땅에서 어떤 이야기들은 보이지 않는 채로도, 이미 ‘다 타버린’ 채로도 여전히 가늠될 수 있을까. 갇혀 있다는 감각의 표면에 균열이 생길 때 그곳으로부터 무언가가 ‘꺼내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 어쩌면 마찬가지로 안일한 안도에 가까울 그러한 믿음 이후에, 백주와 설경을 비롯하여 소설의 모든 ‘구멍’은 꺼냄의 상쾌보다 갇힘의 견고히 불쾌한 구조를 한참 되묻게 될 것이다. 왜 “다 타고 남은” 것 앞에서 그들은 꺼내는 일에 매달려야만 하게 되었는가를.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오늘날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휘발되거나 유폐되는 장면 들에서 공유되는 마음의 방법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두려운 것, 아픈 것, 불합리한 것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할 때 우리의 13층 오피스텔 꼭대기 층은, 우리의 구멍들은, 우리의 맹렬한 소리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불타며, 남겨지고 또 상속되고 있을까. ‘꺼내달라’는 말을 적음으로써 듣는 성혜령 소설의 글자들은 그것을 읽으며 듣는 우리 안의 시간에 새삼 귀를 대게 한다. 층간 소음으로, 초침 소리로 가득한 매일의 세계에서, 두려운 채로. _홍성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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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혜령 소설가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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