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상의 「옮겨붙은 소망」은 남겨진 시간에 대한 소설이다. 그것은 한 사람 안에 고인 오랜 시간일 수 있고, 그 사람이 자신의 안으로 골몰하는 것을 지켜보는 이가 견디는 시간일 수도 있다. 또는 견디던 이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시간을 홀로 맞이한 이의 느릿한 시간일 수도, 그 또한 견딤의 방식으로 긁어모으는 손때 묻은 장신구의 오랜 시간일 수도 있다. ‘시간=돈’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주요한 자본 요소이다. 가령 “시세 차익”이라는 용어마저도 기다림, 즉 시간으로 이익을 취하겠다는 뜻이 아니던가. 독특하게도 n&n’s와 그의 남편은 일찍이 “시세 차익과 시간의 맞교환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 시간으로 돈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시간을 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 하방을 택”한 사람들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 역시 n&n’s의 그러한 기조 아래 그의 빈티지 주얼리 쇼핑을 돕기 위한 ‘클릭 도우미’로 고용된 인물이다. 경매 방식으로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로 새벽까지 n&n’s의 집에 머무르며 ‘나’는 그가 사들이는 시간을, 그리하여 그의 몸에 장신구로 매달린 시간을 헤아리는 것과 동시에 n&n’s가 남편의 죽음 이후 홀로 감내하고 있는 시간을 가늠해본다.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일삼던 남편이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공교롭게도 어떤 시위였고, 때문에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것이기보다 복잡다단한 이해관계 안에서 해석된다. 예컨대 그 시위에 함께했던 활동가가 남편의 죽음이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한 것이라며 n&n’s에게 추도사를 요구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n&n’s에게 그 문제는 지극히 “두 사람의 일이”었고, 남편의 죽음에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n&n’s의 남편을 추동하게 만드는 건 아내의 소망이었고, 언제나 그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곧 그의 역할이기도 했다. 그러나 n&n’s가 우울증에 걸리면서 소망과 같은 미래적 발화는 사라지고, 남편은 자신이 늘 해오던 일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어떠한 정치적 해석보다도, 과거의 시간을 좀먹는 일에 몰두하는 아내가 언젠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흘려보낸 이의 쓸쓸한 말로로 이해하는 편이 더 옳다. 죽음의 “자명한 이유”는 그것이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n&n’s에게만큼은 그 이유가 자신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자명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n&n’s가 자살을 하고 미리 진행된 재산 정리에 따라 ‘나’ 또한 그에게 무언가를 물려받는다. ‘나’에게 증여된 것은 n&n’s가 생전에 사들였던 빈티지 주얼리로 다시 말해 곧 시간이었다. 당장 돈으로 손에 쥘 수 없는 것에 ‘나’는 투덜대기도 하지만 장신구 판매 방송을 준비하며 그것이 왜 n&n’s가 남긴 “유산”인지에 대해 진정으로 깨닫는다. n&n’s가 남긴 건 그와 같이 우울증을 앓던 주인공이 자신의 시간에 매몰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게끔 하는 발판으로 유효했던 까닭이다. “n&n’s가 내게 남긴 선물을 세상에 열렬히 소개”하는 ‘나’의 라이브 방송은 단지 장신구의 판매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작은 주얼리들이 품고 있는 오랜 역사와 그것을 ‘나’의 손에 쥐여준 n&n’s 부부의 시간들을 기억하며 “목걸이 하나, 귀걸이 하나, 브로치 하나가 한 인간을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우리 안에 갇힌 또 다른 우리를 얼마나 손쉽게 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려” 하는 그의 시도는 남겨진 시간들에 대한 애도로 유의미하다.
이처럼 이미상은 빈티지 주얼리의 표면적인 쓰임(치장)보다 그 안에 스민 오랜 시간을 더듬어보며 그것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n&n’s에서 ‘나’에게로 이어진 증여는 유사하게 그의 지난 소설(「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의 대관식, 『문학과사회』 2022년 봄호)을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증여가 마음을 울리는 까닭은 그들이 혈연으로 엮인 관계여서도, 동일 성별 안에서의 유대와 연대 때문도 아니며 ‘기억’이라는 특별한 형식으로 가능해진 것이기 때문일 테다. _소유정(문학평론가)
2024년 가을, 이미상
이미상 「옮겨붙은 소망」 (『창작과비평』 2024년 여름호)
선정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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