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봄, 김채원

김채원 「럭키 클로버」 (<웹진 비유> 2023년 11월)

선정의 말

강동호

김채원의 「럭키 클로버」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언어적 경제의 교란이다. 기호는 증식하고, 번성하며, 범람한다. 그렇다고 기호들이 아무런 목적 없이, 무질서한 패턴의 선들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럭키 클로버」의 기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장소, 목표로 하는 대상은 의외로 분명하다. 그것은 ‘자두 농장’이다. 「럭키 클로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 자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홀에서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드는 것이었다.” 텍스트가 시작되었을 때 텍스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드는 것”이라고 떠드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두 가지 사안이 있다.
첫째,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드는 것은 단지 자두 농장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두 농장과 관련된 것, 심지어는 전혀 무관한 것, 즉 ‘자두 농장’이라는 기호를 각인시키기 위해 그 주변의 기호들을 동시에 출현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병정들은 농장 주변에 수상한 상자나 식물들, 숯덩이, 나도는 소문들이 있는지 둘러보며 보초를 서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농장 주변을 정찰하며 돌아다니는 데에는 약 4, 5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 농장 주변은 아무 문제없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함.” 자두 농장의 주변을 정찰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거기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거나, 유의미한 비밀이 숨겨 있어서가 아니다. 자두 농장의 주변 역시 자두 농장과 마찬가지로 좋음과 나쁨, 안과 밖, 진짜와 가짜로 식별될 수 없는 어떤 무의미의 기호들이다. 관건은 이 무의미의 기호들이 증식하고, 번성하고, 범람하며 활동했을 때 비로소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드는 행위는 자두 농장 이외의 다른 것들에 관해 떠드는 행위를 포괄해야 한다.
둘째,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 자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홀에서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드는 것이었”지만 그러한 발화 행위가 어떤 시간적 질서의 맨 처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럭키 클로버」는 언어적 경제의 가장 기초가 될 수 있는 어떤 시공간적 분절이 불가능한 세계이다. 가령 “여덟 명의 클로버 친구들”이라는 기괴한 형상들, 무의미한 기호들에게 시간적 순서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첫째가 맨 앞에 서는 걸로 해볼까나 선두에 말이야 좋아, 첫째가 어디 있어? [……] 그들은 모두 첫째가 되고 싶어했는데, 당연하게도 누가 첫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럭키 클로버」의 움직이는 기호들에게는 당연히 대열이 있을 수 없다. “움직일 때마다 대열의 질서가 도리어 흐트러졌다.” 따라서 자영이 ‘가장 먼저 한 일’,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드는 발화 행위(사실상 이 텍스트가 수행하는 행위)는 처음과 끝이라는 시간적 질서나 인과의 법칙에 지배받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꿈(혹은 망상) 속에서 출현한 클로버 병정들처럼, 그 발화가 실천하는 것은 그냥, 돌연, 반복적으로 나타나기이다. “여덟 명의 병정들이 하는 일은 나타나기. 다시 나타나기. 나타나기를 해내기.”
그런 맥락에서 「럭키 클로버」라는 텍스트의 서사적 목적과 메시지를 표현하려면 (다소간의 단순화를 무릅쓰고) 이런 형식의 문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럭키 클로버」는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들기 위해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드는 텍스트이다.
「럭키 클로버」에서 운동하는 기호들은 바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순환, 원환, 귀환, 회귀의 궤도를 따르며, 다양한 방향으로의 서사적 탈주선들을 창출해낸다. 이 놀랍도록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텍스트에서 벌어지는 기호들의 다양한 탈주선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려면, 지금의 몇 배의 분량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이 텍스트에 대해 예상되는 비판과 관련하여 몇 마디 말을 덧붙이며 글을 마치도록 하자.
누군가는 이렇게 의문을 표할지도 모른다. 「럭키 클로버」는 그저 말장난이 아닌가? 꿈인지 망상인지 현실인지 불분명한 이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어떤 유의미한(가치 있는)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까? 이 작품이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럭키 클로버」는 기괴하지만 유머러스한 말장난의 텍스트이고, 꿈/망상/현실이 중첩된 세계이며,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재현을 시도하지 않는 텍스트이다. 도대체 자두 농장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자두 농장이란 그저 허허벌판”, 굳이 말하면 언어의 공터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거기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하지?/없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없는 것은 단순히 현실의 부재나 결핍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없는 것(the impossible)’이다. 언어의 경제 체제 속에서 지시될 수 없고, 재현될 수 없고, 대표될 수 없는 이 ‘없는 것’이 없다면, 언어의 경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과 허구라는 이분법으로 환원 불가능한 이 ‘없는 것’의 비밀을 가리키는 허구의 이름이, 그 밝혀질 수 없는 비밀에 대한 욕망의 운동을 지시하는 이름이 ‘문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영은 이 허구의 작은 마을에서 누군가 급류에 휩쓸렸다는 소문이 들리거나, 누군가 내던진 작은 불덩이가 원인이 되어 숲에서 큰 화재가 일어날 뻔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곳에 찾아가 정말인지 확인하고 다시 돌아오곤 했다. 그게 정말인지. 진짜인지 아닌지. 자영에게는 그것이 중요했고, 그 중요함은 선했다. 그리고 그 선함이 때때로 자영을 구해낼 수 있었다.”
(pp. 35~36)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들기 위해 자두 농장에 대해 떠드는 텍스트’ 「럭키 클로버」는 그러한 문학적 진실을 향한 운동, 그것에 대한 헌정의 텍스트이다. 자주 간과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그 진실이 중요하고, 그 중요함은 선할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그 선함이 누군가를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관련 작가

김채원 소설가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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