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겨울, 예소연

예소연 「우리는 계절마다」 (『문학동네』 2023년 가을호)

선정의 말

홍성희

때로 마음에 관한 이야기는 마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달려 나가는 서사 안에서 속절없이 휩쓸리는 이들을 보여주고, 복판을 살아내는 그들이 스스로를 오인하거나 놓쳐버리는 순간들을 그려내는 것. 그것으로 어떤 이야기는 철저히, 마음에 몰두한다.

예소연의 소설은 사람의 선연한 이미지로 터질 듯 부풀어 있다. 뺨을 때리거나, 뺨을 맞거나, 뺨을 때리라고 지시하는 자리에서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내내 살갗이 벌겋게 부어오른 채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독한 시간을 사느라 서로를 향해 가학적이고, 자신을 해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뺨을 내밀지 않을 수 없는 원 안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부푼 마음과 신체들이 빼곡한 곳에서 마음이 말해질 기회는 많지 않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기껏 휩쓸리는 중인 물살 속에서 스스로 발 딛고 있었다는 착각을 만드는 일, “그래서 그랬다”고 거듭 변명 같은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일 뿐이다.

「아주 사소한 시절」(『현대문학』 6월호)에서 「우리는 계절마다」(『문학동네』 가을호)로 이어지는 ‘희조’의 언어가 내내 냉소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은 그렇게 소외된 마음들 때문일 것이다. 부풀어 오르는 몸의 시간을 견디는 일은 멀리 떨어진 중학교, 아주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진학해 생의 단계가 달라지는 와중에도 줄곧 반복되고, 그 연속된 시간 속에서 어제의 마음에 언어를 부여하는 글쓰기의 시차는 이미 그때의 마음으로부터 미끄러진 상태로, 지금의 마음을 바라보는 일에까지 다시 시차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희조의 이야기가 거듭 근과거의 시간을 상대할 때 그때와 지금의 마음들은 자꾸 이야기의 뒤편으로 물러서고, 그래서 강조되는 것은 세계의 ‘결함’과 그 복판에서 학습한 체념을 역할처럼 수행하는 냉소의 깊은 굴레인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예소연의 소설은 희조의 냉소를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지나가는 희조의 시간을 만든다. 세계는 어딘가 근본적으로 뒤틀려 있고, 그렇게 모든 건 이미 항상 망가져버린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소연의 인물들은 그러한 세계를 충실히 살고, 그렇게 살기를 “계절마다” 반복한다. 또다시 하나의 계절이 지나고 보면 아주 다를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졌다는 것을 알게 될지라도, 다음 계절의 이야기는 다를 수 있을 거라 말하기 위하여 희조의 글쓰기는 ‘시절’의 단위를 만든다. 멀리 떨어진 중학교, 아주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서는 어제까지의 일이 반복되지 않을 거라 기대하는 것처럼, 하나의 계절을 ‘지나간’ 것으로 서술하는 글쓰기는 도래할 계절들 역시 ‘지나갈’ 수 있을 힘을 제 안에 키운다. 그 가운데 한 시절을 팽팽히 채운 냉소는 달라지지 않는 세계의 복판에서 수행하는 모종의 방관이 아니라 세계를 다르게 전망하기 위한 태도로서 힘을 가질 수 있고, 전반적이지 않고 부분적일 수 있으며, 세계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의지일 수 있다.

「우리는 계절마다」가 「아주 사소한 시절」을 환기함으로써 몰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지독한 시간에 결절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 똑같이 휩쓸리더라도 무언가 조금은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 ‘다짐’ 같은 마음을 오늘의 글쓰기에 겹쳐두며 예소연의 소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미 깊이 비틀린 이 세계의 잔혹함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가.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아주 먼 내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가.

관련 작가

예소연 소설가

2021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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