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정
성해나의 「혼모노」는 30년간 모시던 신령을 어린 신애기에게 빼앗기고 이른바 신으로부터 홀로서기를 하는 ‘문수’라는 박수무당의 이야기이다. 무당의 세대교체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며, 소위 신이 내린 능력을 지닌 자에 대해 범인이 품을 수 있는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섬세히 그리는 익숙한 서사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쥐고 있던 ‘신’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박탈당한 자의 황망한 심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해도 맞다.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저주처럼” 여길 정도로 자신의 운명을 힘겹게 기꺼이 받아들인 자에게 그 운명이 30년 만에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면, 그는 또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혼모노」는 이런 질문을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예고 없이 들어온 신은 기미 없이 떠나기도 한다. 삶의 이치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운명, 신과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이 소설이 비장한 분위기로 전개되는 것만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신기를 잃은 문수가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된 것은 굿판에서 칼춤을 추다 피를 보게 된 일 때문이다. 그 망신스러운 일은 누가 감춰줄 새도 없이 유투브로 박제되어 널리 퍼지게 되고 줄줄이 들어오던 일감도 끊기게 된다. 병원에서는 문수에게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웃지 못할 진단을 내리기도 하고, 늘 곁에서 문수를 시기하던 ‘보현’은 문수의 바닥을 반드시 지켜보겠다는 심사인지 선심 쓰듯 그에게 ‘오늘의 운세’ 신문 연재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문수와 거래하던 ‘황보 의원’도 문수를 떠나 신애기한테 들러붙는다. 이런 모든 상황을 다소 풍자적으로 그리는 이 소설은, 결국 신령과 함께하는 삶이란 인간의 가장 밑바닥 욕망들을 지켜보는 삶이라는 점을, 즉 신성과 세속이 결국 맞닿아 있다는 점을, 흥미롭게 재확인시켜주기도 한다.
가짜가 된 문수가 선택한 길은 그 가짜의 삶을 진짜로 만드는 것이다. 이 소설의 장관은 접신의 상태로 작두춤을 추는 신애기와, “누구에게도 의탁하지 않”은 채로 작두 위에서 피범벅이 되어 비로소 “진짜 가짜”의 홀가분함을 느끼는 문수의 한판 대결 같은 굿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작두 위에 ‘홀로 서서’ 신과 이별한 인간의 삶을 철저히 마주하기로 한 문수는 바로 그 순간 진짜 신령에 가 닿은 듯 숭고한 감정을 느낀다. 혼모노는 무엇인가. 진짜 내 삶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진짜 삶은 머리 위 관념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뜨거운 피로 흥건한 발아래, 즉 진창 같은 실시간의 하루하루 속에 있다는 것을 성해나의 「혼모노」가 말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