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 이주혜

이주혜, 「이소 중입니다」 (『현대문학』 2023년 5월호)

선정의 말

강동호

이주혜의 「이소 중입니다」는 번역가, 소설가, 시인으로 지칭되는 세 친구가 “육지 끝에 살고 있는 철학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누는 근황에 대한 대화, 그리고 여행 중에 겪게 되는 몇몇 단편적인 일화를 무심하게 전하는 작품이다. 반려견(번역가), 딸(소설가), 전 남편의 아버지(시인)을 돌봐왔고, 이제는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전환기를 앞두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특별한 사건적 요소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독특한 소설적 장면도, 기억할 만한 갈등도 없는 이 소설이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끝맺는 과정에서 모종의 정체 모를 불안과 불길함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은 흥미롭다.
아마도 그것은 이 소설의 초점 화자가 취하고 있는 묘한 스탠스, 다시 말해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세 사람을 조망할 때 가시화 되는 실존적 정동과 관련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라면 염려(Sorge)라고 불렀을 법한 이러한 정조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인간이 근원적으로 감당해야 할 실존의 범주에 해당한다. 우리는 대개 삶이 어딘가를 향해 흘러간다고 믿지만, 실상 생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지는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수많은 계획과 목표 속에서 내일을 상상하며 그 사실을 극구 회피하지만, 불현 듯 그것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까지 피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표면상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번역가의 자동차 트렁크에 놓여 있는 ‘짐’, “베이지색 담요로 둘둘 싸인 커다란 뭔가”가 확산시키는 불안의 ‘냄새’는 주목할 만하다. “물컹할 것 같기도 하고 단단한 것 같기도 하며, 따뜻해 보이기도 하면서 어딘가 싸늘한 기운을 풍기는 그 짐”이란 무엇일까? 정황상 우리는 그것이 번역가의 반려견 ‘상훈’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 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거기 실려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그 짐은 시간적 존재로서 늘 죽음에 대한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 그것이 야기하는 무지와 염려를 환기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의 서두에서 서술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그 여름 그들에게 과연 내일은 있을까? 그건 우리도 그들도 알 수가 없다.” 죽음의 불안과 삶의 무의미성을 배태하는 토대도 바로 이러한 근원적 불가해성이다. 이 사실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이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시간은 내일을 향해 무심히 걸어갈 것이다.” 「이소 중입니다」는 시간적 존재로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근원적 염려를 블랙 코미디적 필치로 탁월하게 형상화 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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