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 김지연

김지연, 「반려빚」 (『문학과 사회』 2023년 여름호)

선정의 말

홍성희

김지연의 「반려빚」에는 두 가지 믿음이 있다. 한 사람이 처한 상황과 상태에 대한 수치화된 믿음과 그러한 ‘셈’으로는 움켜쥘 수 없는 마음에 대한 믿음. 소설은 후자의 힘이 훨씬 강했던 관계에 빚과 상환금, 이자, 신용 점수 같은 단어들이 깃들어버렸을 때 믿음이라는 말의 영역이 어떻게 협소해져 버릴 수 있는가를 저리게 보여준다. 믿음이라는 말의 맥락이 ‘뒤바뀌’고, ‘망하’고, ‘잘못되’어 버리는 곳에서는 다른 단어들 역시 그 의미를 재편하게 된다. 반려자와의 세계를 꿈꾸었던 ‘정현’에게 ‘짝이 되는 동무’ 라는 의미의 ‘반려伴侶’가 그 모습 그대로 배반(반려反戾)과 거절(반려返戾)을 내포하게 되는 것은 그런 때이다.
‘반려빚’이라는 말에는 그리하여 언제나 일종의 상실이나 가능하지 않음의 감각이 새겨져 있다. 「반려빚」이 오늘 이곳의 모습을 세심히 그려내고 있다면, 그것은 부동산 임대 환경과 전세 사기 피해, 그와 직결된 청년 세대의 부채라는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반려빚’이라는 조어는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돌, 반려사물 등 ‘인생을 함께하는’ 관계에 관한 청년 세대의 감각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단지 그 현상에 ‘반려빚’이라는 항목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반려’라는 말을 거듭 사용할 때 그 어휘에 담긴 관계의 양상을 우리가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대면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은 신용 점수의 세계에서 상실된 것으로 여겨지는 ‘믿음’을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회복하고자 하는가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반려빚’이라는 명징하고 직접적인 제목을 앞세워 이 소설이 묻게 하는 것은 어쩌면 ‘반려’를 바라고 꿈꾸는 마음에 이미 새겨져 있는 ‘빚’의 작동방식인지도 모른다. 진짜 아끼는 마음과 두고 죽을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 사이에서 소설 속 ‘반려’의 관계는 언제나 일방적이다. ‘목줄’을 쥔 쪽이 산책의 방향이나 관계의 끝을 결정하고, 목줄에 메인 쪽은 상대방과 자신 사이의 차이를 이해와 포기의 방식으로 감내한다. 정현의 꿈에서 반려빚이 쥐고 있는 목줄은 현실에서 그가 ‘부채감’이나 ‘호구’ 같은 언어를 덧대어 서일의 손에 거듭 쥐여 주고 싶어 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려빚」이 어떤 관계에서든 목줄에 메인 자의 위치에서 ‘반려’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믿고 싶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마음 그대로, 믿을 수 없는 대상을 온힘으로 믿어버리는 것이 자신을 믿는 유일한 방법처럼 여겨지는 마음의 배경을 더 오래 묻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이를테면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신용 점수가, 혹은 네가 나를 믿지 않아도 나는 너를 믿는다는 서일의 말이 정현에게 발휘하는 위력의 이유와 그 반복 자체에 관해서 말이다.
셈이 없는 위치로서의 ‘0’은 이미 항상 셈에 포함되어 있는 수이기도 하다. ‘반려’도 ‘0’도 ‘믿음’만큼이나 뒤바뀌고, 망하고, 잘못되어 버린 곳에서 사용되는 단어라면,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말들을 움켜쥐려는 마음이 우리를 재차 어느 곳으로 밀어 넣는가를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마침내 0이 된” 홀가분함과 “그저 0인 채로 오래” 있기를 바라는 무서움 사이에서 반려-빚의 세계는 내내 연어 먹을래? 물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반려빚」의 물음은 그렇게 다시, 연어처럼,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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