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하루를 잘 사는 일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대로 내 삶이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탓일까. 이 질문에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라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려는 결단이 필요할까, 아니면 오히려 질문을 멈추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필요할까. 김나현의 「오늘 할 일」은 신혼부부의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통해 지금 우리가 당장 다이어리를 펼치고 써야 할 결심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 ‘나’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바닐라라떼 한 잔을 마신 일로도 ‘오늘 할 일’을 잘 마무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계획대로 되는 건 바닐라라테뿐”일지라도, “어제와 비슷한 오늘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빌라에서 아파트로 주거를 옮기며 “0이 여덞 개 붙은” 엄청난 가계부채가 생겨났지만 “둘이 벌”어 차곡차곡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선일’은, 관행대로 처리하던 직장 일에 문제가 되어 자신의 커리어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이 생기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남편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인해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경제적 부담”을 떠안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직장 상사인 ‘백 팀장’ 역시 자신이 모텔에서 달방을 사는 이혼남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어느 날 갑자기 크고 작은 불행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 결국 삶이라면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하루는 어쩌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 내일에 대한 당장의 심각한 공포가 없는 오늘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부부의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이는 ‘오늘 할 일’의 목록은 큰 불행 없이 하루를 살아냈다는 위안의 흔적일 수 있다. 별 탈 없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고 할 만큼 사실 우리의 매순간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불행을 막아낸 것만으로도, 뜻밖의 보상금이 생겨 맛있는 저녁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면 더더욱,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결코 체념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알 정도로, 우리는 삶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다. _조연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