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겨울, 현호정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자음과모음』 2022년 가을호)

선정의 말

현호정은 첫 장편소설 『단명소녀 투쟁기』에서 신화적 요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비상한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연필 샌드위치」는 한층 돋보이는 참신성과 유머로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기대하게 한다. 꿈의 놀라운 감각적 디테일은 소설의 유머를 더 예리한 것으로 만든다. 꿈의 요소와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을 묘사하는 문장들은 해독되지 않는 엉뚱한 디테일로 가득한데, 아마 독자들은 그 해석 불가능한 것들에 웃음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연필 샌드위치」가 웃긴 장면과 요소의 연속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소설의 전경에 꿈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실어나르며 구르듯 전개되는 언어가 있다면, 후경에는 저주처럼 전승되는 거식의 사이클이 있다. 할머니, 엄마, 이모 그리고 ‘나’는 “영적인 탯줄”로 연결되어 모종의 영향을 주고받는다. 끊어낼 수 없는 상상의 모계적 탯줄로 염려와 사랑이 전달되는 만큼 피로와 거부감, 고통도 전이되는 듯 보인다. 서로 의존하면서도 밀어내고, 보듬어주는 만큼 상처 주기도 하는 엄마와 딸, 할머니와 손녀, 언니와 동생의 관계가 ‘먹는 일’을 둘러싸고 압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먹는 일의 거북함과 관계의 난해함, “글로 씌어진 좋은 이야기”와 생활의 괴리에 대한 성찰이 명랑한 언어와 만나 아이러니한 울림을 자아낸다.

먹는 일을 거북하게 느끼는 화자의 꿈과 기억을 통해 삶과 죽음, 건강과 병, 애도와 우울에 대해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들은 모두 먹(거나 먹지 않)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흔히 ‘먹고산다’는 말이 생활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처럼, 우리가 생명을 존속하기 위해서 먹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당연하게만 여겨지던 먹는 일이 문득 어려운 것, 지긋지긋한 것, 역겨운 것으로 느껴진다면 어떨까. 뼈가 드러난 엄마와 닭 뼈를 연관 지어 생각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먹고 먹히는 일로 얽힌 관계에 민감하다. 그 관계란 인간과 닭의 관계일 수도 있고, 귀신과 간장의 관계일 수도 있고, 보살핌받는 자와 보살피는 자의 관계일 수도 있으며, 신체와 영양분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런 관계를 매 순간 의식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평소처럼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말해 먹는 것을 거부하는 화자는 자신을 둘러싼 온갖 관계에 극히 민감하게 감응하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죽은 할머니와의 관계가 화자를 아프게 하는 듯하다. 화자는 할머니의 죽음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난 농담 같았던 “연필 샌드위치”는 현실에서 느낀 먹는 일의 거북함이 꿈에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일 테다. 그런데 독자는 이 사실을 소설이 얼마간 진행되고 나서야 소급적으로 알게 된다. 먼저 꿈속의 이미지(결과)를 맞닥뜨린 다음, 그것을 만들어낸 감정과 상념의 화학 작용(과정)이 서술되고, 감정과 상념을 촉발한 현실(원인)이 암시되는 식이다. 과정을 순서대로 묘사하는 리얼리즘 소설을 거꾸로 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참신한 구성이 무겁지 않은 웃음에서 둔중한 여운으로 독자를 부지불식간에 이끌어간다. 중간중간 달린 각주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유머와 고통, 꿈속의 신체와 꿈 밖의 신체, 본문과 각주를 누비는 능란함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_이희우(문학평론가)

관련 작가

현호정 소설가

2020년 박지리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단명소녀 투쟁기』가 있다.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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