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오한기

「사랑」(『문학들』 2015년 겨울호)

선정의 말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오한기의 「사랑」은 인간이, 소설의 종말 이후를 살아갈 때 지를 수 있는 비명(“오잉크 오잉크”)을 예언하는 소설이다. 마치 소설 속 큰아버지의 말(“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을 조롱하려는 것처럼 오한기는 인간을 한낱 돼지로 만들어버리면서,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게 한 최소한의 품위마저도 망설임 없이 짓밟아버린다. 물론 사람을 돼지로 만들어서 사육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 황당한 소설이 계보학적으로 낯선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저 옛날 오비디우스의 재기 어린 변신담에서부터 카프카의 영웅적인 변신, 그리고 최근에는 박민규의 애잔한 변신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동물로 변신하는 일은 그리 낯선 소재는 아니지만, 흥미로운 것은 오한기의 동물화가 한줌의 미련이나 위악도 개입할 여지가 없을 만큼 “지독한 자기혐오”로 단단히 감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휴머니즘도 거부하는 오한기의 글쓰기는 당연히 소설에 대한 급진적인 부정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소설가라면 소설을 소설답게 써야 한다는 주변의 훈수에 그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며, 지금처럼 소설의 종말을 앞당겨 실천할 것이다. 문제는 그 종말이 쉽게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화자를 일종의 편집증에 빠지게 만들었던 소설가 H는 근대소설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한기의 텍스트는 소설의 종말 이후 자기혐오에 빠진 소설가가 역으로 소설(H)에게 복수를 가하는, 그러나 결국 실패해버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치 프로메테우스처럼, 화자의 소설 속에서 생쥐에게 생식기를 갉아 먹혀도 H의 상처는 재생되고 오히려 고통은 지속된다. 아니, 고통이 지속되고 있으니 이것은 성공한 복수담일까. 하여간 증오와 복수에도 사랑은 섞여 있기 마련이니, 이 소설의 제목이 ‘사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오한기는 우리 시대의 가장 문제적인(그러나 재미있는), 소설의 무정부주의자이다. 강동호(문학평론가)

 

 

지난 연말 출간된 『의인법』이 ‘오한기 월드’의 첫번째 시즌이라면 「사랑」은 일종의 스핀오프(spin off)다. ‘월드’라는 제법 거창한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개개의 독립된 단편들이 쌓이며 중층적이라고 할까 입체적이라고 할까 아무튼 조밀한 것 같기도 하고 한가하기도 한 소설의 공간을 구성하기 때문인데, 그건 어느 정도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영향이기도 하다.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나와 나의 친구로 절반 이상의 작품에 등장하는 한상경은 모두 소설에 미친 미치광이들이다. 원한다면 바르트를 따라 글쓰기-의지(scripturire)의 화신이라고 말해도 좋다. 결국 같은 소리다. 따라서 어떤 이들에게 오한기의 인물들(과 작품)이 납작한 초상 혹은 과장된 캐리커처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지는 건 거의 필연적인데, 하스미 시게히코를 따라 말하자면 세계에 대해 과잉한 것으로 존재하는 작품은 종종 그 과잉을 결여로 오인 당하는 탓이다.

 

「사랑」은 얼핏 『의인법』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쓰는 내가 등장하고 나는 여전히 미치광이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나는 동료 소설가 H의 소설에 내가 등장한다고 선언하는데, H의 소설 속에서 나는 실직하고 이혼을 당하고 발기부전과 탈모가 오고 정신분열에 시달리다 분홍색 팬티를 입은 뚱뚱한 게이에게 강간을 당한 뒤 처참하게 살해된다. 자신의 인생이 소설처럼 흘러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나의 인생은 어느 순간 정말 소설처럼 풀리기 시작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나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유작을 쓰기로 결심한다. 제목을 「사랑」으로 정한 건 유리 올레샤의 동명의 작품 때문인데, 유리 올레샤가 죽고 20년이 흐른 뒤 태어난 나는 유리 올레샤와 텔레파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완성하기로 약속한다. 달리 미치광이가 아니다.

 

문제는 내가 미쳐도 단단하게 미쳤다는 사실이다. 홍학과 사랑에 빠져 전처와 사랑을 나눌 때도 홍학을 상상하며 끼룩, 끼룩 울던 나는 점점 더 심한 광증에 빠져 온갖 동물들을 흉내 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건 돼지 울음소리를 영어로 흉내 내는 것이다. 오잉크. 오잉크. 폰섹스 상대에게 그 소리를 내달라고 하다 변태 취급을 당한 나는 퇴직금을 털어 인터넷에서 만난 스무 살 여자아이(아이디 : 루돌프)를 애완 돼지로 고용한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돼지가 된 루돌프와 나의 가학과 피학과 매춘과 강간과 윤간과 수간이 뒤섞인 기괴하고 애틋한 사랑이 시작되는데…… 라고 마무리하면 좋겠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단어들을 잔뜩 늘어놓고 단순히 ‘기괴하고 애틋한 사랑’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려니 어쩐지 죄책감이 든다.

 

그렇다. 분명 이 작품에는 논란이 될 만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여성 혐오라고 말할지도 모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모른다고 쓴 이유는 정말 모르기 때문인데 어쩌면 내가 너무 소심해진 탓인지도 모른다. 21세기에 책을 읽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은 소심해지기 쉬운 법이다. 나는 「사랑」을 실제로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지만 아마도 그건 오한기의 두번째 작품집이 묶일 때쯤에야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언제 벌어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영영 벌어지지도 않을 논란에 대비해 이러쿵저러쿵 혼잣말을 늘어놓는 것도 열없는 일이므로 나는 「사랑」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요소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1. 나는 H가 쓴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다.
  2. 나는 정신분열에 시달리는 믿을 수 없는 화자-소설가다.
  3. 「사랑」은 내가 쓰는 유작의 제목이다[“그러나 여태까지 내가 쓴 소설들을 돌이켜 봤을 때 이 소설은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을 확률이 높다.”(『문학들』 2015년 겨울호, p.195)].
  4. 「사랑」은 오한기가 쓴 단편의 제목이다.
  5. 나와 루돌프의 고용-피고용 관계는 자본이 인간의 육체와 감정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다.
  6. 나의 정체는 『의인법』의 내가 아니라 한상경이다.

 

1에서 4까지는 소설에서 서술되는 일들이 어느 레벨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호하게 만들고 5는 어떤 사람에게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다른 이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핑계가 될 것이며 6은 ‘오한기 월드’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한상경의 위치를 감안할 때(그는 나의 외향적이고 폭력적이며 충동적인 반쪽이다) 「사랑」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맥락을―혹은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스핀오프로. 외전으로. 그 밖의 다른 많은 방식으로.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런 요소들이 아니다. 그것을 다루는 오한기의 방식이다. 그는 (적잖은 이들이 작가라면 으레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각각의 요소를 서로 다른 층위로 섬세하게 배치하며 작품에 깊이와 입체감을 부여하는 대신, 혹은 부러 흐트러뜨리며 독자들과 게임을 즐기는(독자들의 원성을 사는) 대신 그것들을 납작한 평면-종이 위에, 말 그대로, 때려 넣는다(이를테면-방식은 다르지만-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나와 소설의 나를 작은따옴표를 통해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그가 누구보다 난폭한 소설가라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는 늘 햄버거에 집착하는데 “햄버거를 만드는 것만큼 간단한 건 없다. 내용물을 층층이 쌓기만 하면 된다. 햄버거 속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내 소설을 읽은 사람만큼이나 드물었다.”(『의인법』 p.50)는 「더 웬즈데이」의 문장을 그 자신의 소설론으로 읽는다면 그의 소설은 내용물을 층층이 쌓은 후 납작하게 눌러 종잇장만 한 두께로 만든 햄버거다. 따라서 얼핏 비슷비슷해 보이는 그의 햄버거-종이-소설들은 그날그날의 재료와 기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양으로 우그러지고, 각각의 결에 따라 저마다의 모양으로 울어버린 그것들을 쌓아 올릴 때, 중층적이라고 할까 입체적이라고 할까 아무튼 조밀한 것 같기도 하고 한가하기도 한 소설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학이 세계의 인용이라면 오한기의 인용은 인용의 인용이고 인용부호가 없는 인용이며 너무 많은 인용이다. 그렇게 그의 소설(들)은 세계에 대해 과잉으로 존재한다. 금정연(서평가)

인터뷰
  1. 돼지 소리 오디션

김신식 실없는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당신에게 쫄지 않을 것 같다(이미 이 말을 함으로써 쫄았다는 게 티 나지만). 「사랑」을 읽고 작품에 나오는 “오잉크”라는 돼지 소리가 인상 깊었다. 김태용의 「풀밭 위의 돼지」에선 “퀠퀠”이란 돼지 소리가 기억난다. 어느 날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던졌다. 내일 당장 돼지로 변한다면 무슨 소릴 낼 것 같냐고. 중곡역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 B는 “꾸엑꾸엑”이라고 했다. 파주에서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 F는 “꽤에엑! 꽤에엑!”이라고 답을 보냈다. 서초동에서 학원 교재를 만드는 친구 J는 “꿀꿀[야호]”이라고 했다. 어느 소리가 마음에 드는가. 선정된 소리와 간단한 심사평을 부탁한다.

오한기 문지 편집위원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연말에 악수를 나눴던 게 기억난다.

마음에 드는 소리 : 꿀꿀[야호]. 심사평 : 돼지는 울지 않는다. 눈물을 참고 있을 뿐이지.

 

  1. 소설은 번역일까

김신식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작품에서도 언급하지만 유리 올레샤의 단편 「사랑」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당신이 자주 언급하는 햄버거에 비유하자면, 유리 올레샤의 「사랑」이란 빵 속에 오한기의 「사랑」이란 패티가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유리 올레샤의 「사랑」을 당신의 언어로 번역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혹시 ‘소설은 번역이다’란 관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오한기 나는 유리 올레샤의 「사랑」을 내 언어로 번역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소설에 유리 올레샤의 「사랑」이 언급되고 제목이 같을 뿐, 둘은 별개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다. 홍상희 씨가 번역한 유리 올레샤의 「사랑」을 작년에 처음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 그 뒤로 그 소설이 떠오를 때마다 반복해 읽었다. 소설을 쓰고 있을 때도 읽었고,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읽었다. 유리 올레샤의 다른 소설도 읽었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유리 올레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영감도 많이 받았다. 이런 차원에서는 말씀대로 「사랑」을 통해 유리 올레샤를 번역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 한국문학의 김기덕?

김신식 어느 소설가가 당신을 두고 한국문학의 김기덕이라고 평한 글을 본 적이 있다(개인적으론 난 당신이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초·중반기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근데 「사랑」을 읽으니 정말 김기덕스러운 장면이 많더라. 특히 <섬>과 <나쁜 남자>가 떠올랐다. 선정 과정에서도 김기덕이 받아온 반응과 유사한 그것으로 인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주 들어온 질문이겠지만 묻고 싶다. 본인은 발표한 작품들에 대해 ‘여성 혐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한기 우선 김기덕과 크로넨버그 영화의 팬이라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 혐오. 그동안 내 소설이 ‘여성 혐오’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슬펐고 충격도 받았다. 때문에 이 소설을 쓸 때도 루돌프를 남자로 할까 생각했다. 소설을 통해 내 생각을 전하는 데 ‘사람’이라는 게 중요하지 ‘성별’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썼다. 그래도 내 소설이 ‘여성 혐오’로 읽힌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1. 피부과 병원

김신식 「의인법」에도 나오고 「사랑」에도 언급되지만 피부(병)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의인법」에서 주인공이 “사람 얼굴에도 곰팡이가 피나요?” 물으니, 의사가 “그럼요. 사람도 좋은 숙주지요”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에서도 병원으로 진료 받으러 가는 중 괴물로 묘사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주인공은 성인 여드름 진단을 받는다. 묘사 속에서 언급되는 표현들을 보면 바이러스 등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만남을 ‘접촉’ 혹은 ‘전염’으로 보는 듯했다. 특별히 피부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만남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한기 직장을 다닌 지 3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피부가 너무 안 좋아졌다. 거울을 보며 괴물처럼 끔찍하다고 느낄 때가 간혹 있었다. 무서워서 거울을 피해 다닌 적도 있었다. 이런 내 경험이 소설에 투영된 것 같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접촉과 전염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인간과 인간의) 감정과 생각의 만남을 접촉과 전염이라고 생각한 적은 있다. 광기와 우울이 퍼지는 게 그 증거이다.

만남. 나는 외로울 때 텔레파시를 보낸다. 텔레파시를 받은 적은 없다.

 

  1. 암기의 섬

김신식 너무 진지한 질문만 한 것 같아서 엉뚱한 질문 하나 하겠다(물론 엉뚱하다는 말이 내 입에서 먼저 나왔기에 실패한 개그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화씨 451」엔 책을 읽으면 소방차가 출동해 책을 불태워버리는 사회가 등장한다. 이 사회를 도망쳐 나온 주민들은 자신들의 섬을 만든다. 그리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각자 외우며 돌아다닌다. 혹시 본인이 암기의 섬에 들어간다면, 달달 외우고 싶은 소설이 있는지 궁금하다(자신의 작품도 좋다). 꼽은 이유도 듣고 싶다. 불태우고 싶은 작품은 안 되냐며 무안 줄 것 같지만.

오한기 정말 뛰어난 유머 감각을 지니신 것 같다.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려봤지만, 달달 외우고 싶은 소설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암기의 섬에 노트나 노트북을 갖고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었다.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내 이야기와 생각을 적고 읽는다. 다른 책이 읽고 싶으면 다른 사람이 암송하는 걸 들으면 된다.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 같다. 인간 도서관. 무섭다.

 

  1. 페이퍼 시네마

김신식 정지돈 작가와 함께 쓴 「신형철의 칭찬합시다」라는 각본을 재미있게 읽었다. 골 때린다는 표현은 식상한 듯하고, 괴기스러운데 귀여웠다. 본인이 「사랑」을 영화 각본으로 바꾼다면,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는 누구일지 궁금하다. 주인공, 루돌프, 공장장, 친구 H 이렇게 네 명에 한 해.

오한기 한상경 : 마쯔다 류헤이, 루돌프 : 유아인, 공장장 : 나탈리 포트만, H : 우디 알렌.

 

  1. 왜 손가락을 살려두었을까

김신식 「사랑」의 후반부. 주인공이 들어간 공장에서 공장장의 손가락을 실수로 날려먹는 장면. 나는 ① (주인공의) 손가락을 자를 것인지, ② (공장장에게) 월급을 양도할 것인지 두 항목 중 실은 ① 을 택할 줄 알았다. 당신의 작품 속 인물들은 손가락이 잘리면 왠지 소설을 더 잘 쓸 것만 같아서. 손가락을 살려둔 이유는 당신이 그토록 피로해하는 소설 쓰기 속에서도 결국 지켜내고 싶은 쓰기의 어떤 이유가 있어서일까.

오한기 화자가 손가락을 자르지 않은 이유는 「사랑」에서 인간의 신체는 자본/소유물(월급/루돌프)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 즉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들은 「사랑」의 세계에서 하찮게 여겨진다. 따라서 공장장 역시 그 세상에서 더 값진 걸 택한다. 소설 쓰기에 대해서 특별한 사명감은 없다.

작가의 말

오한기 소감

관련 작가

오한기 소설가

1985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동국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했다. 2012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파라솔이 접힌 오후」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의인법』, 장편소설 『홍학이 된 사나이』가 있다. 201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자세히 보기

금정연 일반저자

서평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지은 책으로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등이 있다. 후장사실주의자,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자세히 보기

김신식 일반저자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성공회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이론을 전공했다. 2008년 <당비의 생각>(舊 당대비평)을 통해 비평, 출판활동을 시작했다. 1인 사회과학출판연구소 '김샥샥 연구소'를 차려 학문제도권 바깥에서의 감정사회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세히 보기

7 + 3 =

  1. 정은미
    2016.01.14 오후 6:28

    문학들’잡지에요? 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1. 문학과지성사
      2016.01.15 오전 10:26

      네 문학잡지 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437088

  2. 한상경
    2016.01.14 오후 12:58

    지금 현재 생존해있는 한국 최고의 소설가가 아닐까 싶네요.

    1. 09
      2016.01.15 오전 10:47

      한 작품 나올 때마다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3. viva
    2016.01.14 오후 12:44

    선정의 말도 인터뷰도 모두 너무나 좋네요.

  4. 중대
    2016.01.13 오후 4:03

    이제서야

  5. 09
    2016.01.13 오후 3:27

    오랜 시간 이달의 소설에서 보길 기다렸던 오한기 작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