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진 소설가

쓰촨 성 청두의 봉건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리페이간(李芾甘). 사랑과 평등을 강조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인도주의 사상을 갖게 되었으며, 봉건제도에 대한 저항 의식을 싹 틔웠다. 15세 때 일어난 5․4운동의 영향을 받은 바진은, 1920년 외국어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접하고, 무정부주의 단체가 발행하는 잡지 『반월』의 편집에 참여했으며, ‘균사(均社)’라는 조직을 만들어 반봉건 투쟁을 벌였다. 1927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세계의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에 더욱 심취하게 되고, 크로포트킨, 버크만 등의 저작을 번역 ․ 소개했다. 바진이라는 필명도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한자음에서 첫 음절과 마지막 음절을 따 만든 것이다.

1928년 파리에서 첫 소설 『멸망』을 완성하고 이듬해 귀국하여 발표해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때부터 약 20년간 『집(家)』 『봄(春)』 『가을(秋)』의 ‘격류삼부곡’과 『불(火)』 『휴식의 정원(憩園)』 『제4병실(第四病室)』 등을 발표하면서 중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1946년, 마지막 장편소설 『추운 밤(寒夜)』을 끝으로 소설보다는 번역과 편집, 출판에 힘을 쏟았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무정부주의 경향을 띤다는 이유로 사상적 박해를 받다가, 1976년 사인방의 몰락과 함께 복권되어 명예를 회복한다. 말년에는 문화대혁명이 초래한 참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며, 문화대혁명이 역사적인 대사기극이었음을 폭로하는 산문집『수상록(隨想錄)』을 발표했다.

바진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 ․ 출판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이탈리아 단테 국제명예상(1982년)과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1983년)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던 중 2005년 10월 17일에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