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부 오룔의 부유한 지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대학교를 거쳐 페테르부르크 대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 대학교에서 유학했으며, 바쿠닌 등 진보적인 러시아 지식인들과 친교를 맺었다. 1841년 러시아로 돌아온 뒤 서사시 「파라샤」(1843)를 발표하여 비평가 벨린스키의 호평을 받았고, 내무성의 관료로 일했으나 약 2년 만에 그만두고 창작에 열중했다.
1852년에 쓴 고골 추도문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었다가 연금 생활을 했으며, 1861년 이후 생애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다. 유럽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며 플로베르, 모파상, 헨리 제임스 등과 교유했고, 직접 번역하여 세계 문학을 러시아에, 러시아 문학을 세계에 소개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사회 문제들을 고발한 장편 『루딘』 『귀족의 보금자리』 『전날 밤』 『아버지와 아들』 『연기』 『처녀지』와 「첫사랑」 등의 아름다운 중단편으로 세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러시아의 아름다운 자연과 우수 어린 삶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시인의 마음’과 사회 · 정치적 현실을 기록하는 ‘사냥꾼의 눈’을 지닌 위대한 사실주의 작가로, 도스토옙스키 ‧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로 손꼽힌다. 1879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883년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친구이자 스승인 벨린스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페테르부르크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