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슐레겔 소설가

바이마르 고전주의와 함께 독일의 가장 찬란한 문화적 시기를 대표하는 낭만주의의 초석을 놓은 문인이자 역사가, 철학자. 독일 하노버에서 개신교 목사이자 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괴팅겐 대학교와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친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의 영향으로 학자, 문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노발리스, 티크, 셸링, 카롤리네, 도로테아, 슐라이어마허 등과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이끌었으며, 1798년 형과 함께 독일 초기 낭만주의 운동의 기관지 『아테네움』 창간을 주도했다. 1799년에는 슐레겔이 남긴 유일한 소설이자, 낭만주의 문학 이론을 구현한 장편소설 『루친데』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 실험적일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 기존의 관습, 특히 사랑과 결혼에 대해 파격적인 시각을 보여주어 비난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섰다. 1803년 파리에서 잡지 『오이로파』를 창간했으며, 이후 문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1808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에는 오스트리아의 보수파 정치가 메테르니히의 측근이 되어 정치, 외교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1829년 드레스덴에서 강연 원고 집필 도중 쓰러져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