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리종, 이건
오로지 내 몸에 관한 일기란다.
배설, 성장통, 성(性), 질병, 노화, 죽음
가식도 금기도 없는 한 남자의 내밀한 기록
『소설처럼』의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차린 ‘삶’의 성찬!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에게 남긴 선물. 그 선물은 바로 “평생 동안 몰래 써온 일기장”이다.
30년 가까이 중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 선생님, ‘말로센 시리즈’와 어린이 책 ‘까모 시리즈’ ‧ 『소설처럼』 『학교의 눈물』의 작가, 기발한 상상력과 소박하면서도 재치 있는 입담으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는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장편소설 『몸의 일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12년 출간 당시, 제목부터 독특한 이 소설은 프랑스 서점가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의 일기라니…… 도대체 몸에 관해 일기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투병기? 건강을 지키는 비법? 아니면 몸을 멋지게 가꾸는 비법? 페나크는 놀라운 발상과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성실성으로 문학에서는 낯설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에서는 익숙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한 남자가 1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 몸이 신호를 보낼 때마다 상태를 충실히 기록해온 것이다.(무려 한 남자의 70년이 넘는 삶을 일기로 풀어놓는 작업은 영감 못지않게 성실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일 것이다.)
주인공은 아주 진솔하게,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혹은 잃어버린 몸을 직시하고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이건 생리학 논문이 아니라 내 비밀 정원이다”라고 했듯이, 몸에 관해 쓰겠다고 작정하고 쓰기 시작한 일기엔 결과적으로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삶의 애환이 다 녹아 있다.
세상을 떠난 남자가 딸에게 남긴 선물
10대에서 80대까지 평생 동안 남몰래 쓴 ‘몸의 일기’
루소가 산책길에 식물채집을 했던 것처럼 나도 내 몸을 채집하고 싶다.
죽는 날까지. 그리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_17세 2개월 17일
이 일기의 주인공 ‘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산송장이 되어 돌아온 아버지와, 자식을 낳음으로써 그런 남편을 회생시켜보겠다는 희망을 품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뒤에도 원하던 효과를 보지 못한 어머니는 그를 “아무짝에도 써먹을 게 없는 존재”로 여기고 아버지에게 떠맡겨버린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 흉내를 내게 되고,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가 죽어가는 환자처럼 살려고 했으니, 그에게는 ‘몸’이라는 게 없어진 셈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죽기 전에 아들에게 살아갈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수준 높은 교양 교육을 시켰고, 그 결과 아이는 정신적으로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지만 몸은 거의 없다시피 한 불균형한 존재가 된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이는 몸이 없는 그림자처럼 집 안을 떠돈다. 거울을 보는 것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그런 아이는 열두 살 때 보이스카우트 활동 중 숲에 혼자 버려져 극한의 공포를 체험한 다음 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첫 일기의 첫 문장은 “이젠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나’가 몸의 일기를 쓰기로 한 건 바로 겁먹은 자기 자신에게 ‘몸’을 돌려주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난 이 일기장에다 강렬한 느낌들, 심각한 두려움들, 질병들, 사건들뿐 아니라 내 몸이 느끼는 것(혹은 내 정신이 내 몸에게 느끼게 하는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묘사할 것이다.”(36쪽)
몸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
보통 ‘일기’라 할 때 떠올리게 되는 ‘내면 일기’가 주로 정신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라면, ‘몸의 일기’는 몸이 신호를 보내올 때마다 몸의 상태를 충실히 기록해놓은 것이다.
내 정신을 구현하는 매체, 주체인 ‘내’(정신)가 관장하는 몸. 어려서는 인식조차 못하고, 나이 들어 인식했을 때는 고장 나 짐스러워진 몸. 우리의 이러한 일반적인 몸에 대한 인식과 무심함을 이 책은 뒤엎는다. 특수한 어린 시절 덕에 식물 채집하듯 자기 몸을 관찰하고 소중히 여기는 태도로 평생을 살아온 80대 노인은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죽음이 멀지 않은 시점에, 몸을 대하는 여유로운 관조의 자세를 보여준다.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_86세 2개월 28일
몸을 무시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몸을 길들이고 몸을 정복하고 몸의 주인이 되려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동거인으로 여기는 것. 이러한 태도 때문에 화자는 그토록 솔직한, 몸을 객관화한 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요동치는 마음의 변화에 신경 쓰지 않고, “오늘 내가 쓴 것이 50년 뒤에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길 바”라는 엄격함에 기반한 이 일기에는 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상황이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명, 건강염려증, 동성애, 구토, 티눈, 월경, 용종, 불안증, 성 불능, 불면증, 몽정, 자위, 섹스, 권투, 수영, 비출혈, 비듬, 코딱지, 현기증, 악몽, 위내시경 검사, 건망증, 노안, 몸을 긁는 쾌감, 오줌 누는 기술, 똥의 모양, 코피, 설태, 전립선비대증, 수혈, 치매…… 이러한 충실한 기록 행위는 정신과 몸 사이의 소통을 도와주고, 소외되었던 몸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또 충치라든가 과식, 이명, 현기증 같은 ‘몸’의 사소한 증상들이 얼마나 정신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지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평생에 걸쳐 꼼꼼하고 세심하게 ‘몸의 일기’를 써왔음에도, 여든이 넘은 일기의 주인공은 새로운 몸의 변화를 대하며 “우리 몸은 끝까지 어린아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내게 시간이 주어졌으면, 내 세포들이 느긋해졌으면……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일기이기에 이 일기엔 금기가 없다. 양치질의 귀찮음, 가려운 곳을 긁는 즐거움, 코딱지를 가지고 노는 재미, 나이에 따른 대변의 변화 등 차마 타인에게 털어놓기 힘든 아주 내밀한 경험들까지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기의 주인공은 자기 몸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독자는 읽으면서 우리 자신의 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성별도 상관없이. 너무나 개인적인 상태들의 기록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몸이라는 비밀 정원이야말로 공동의 영토이기도 하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는 충격은 ‘공감’이다. 독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 일기에서 보게 되면서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도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서운 엄마, 친구들에게 섞이지 못한 외로움과 공포, 2차 성징을 겪는 당황과 혼란, 어린 시절의 위험한 장난, 사춘기 아들의 뿌루퉁한 표정을 마주한 아버지의 심정, 노안으로 안경을 처음 맞추러 간 날, 무덤 꽃이라 불리는 검버섯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 손주가 태어난 순간의 환희, 퇴직 후에 대한 불안감, 노화로 인한 건망증, 치매 걱정, 동성애를 대하는 노인의 태도, 전립선 수술,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일 등, 나의 과거이자 내 아이의 현재, 나의 미래이자 내 부모의 현재를 보면서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삶의 부침(浮沈)을 독창적인 관점과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언어로 표현한 매혹적인 이야기꾼 다니엘 페나크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 본문 속으로
내가 매일 일기를 쓴 건 그와는 다른 몸, 그러니까 우리의 길동무,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서란다. 사실 매일 썼다곤 할 수 없지. 모든 걸 다 적었으리라고도 기대하지 말거라. 난 매일매일의 느낌을 적은 게 아니란다. 열두 살 때부터 여든여덟 살 마지막 해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일이 생길 때마다―우리 몸은 놀랄 거리를 제공하는 데 인색하지 않지―기록을 한 거란다. [……] 사랑하는 내 딸, 이게 바로 내 유산이다. 이건 생리학 논문이 아니라 내 비밀 정원이다. 여기야말로 여러 면에서 우리가 공동으로 가꾼 영토지. _13쪽
13세 1개월 10일 1936년 11월 20일 금요일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정확히 묘사하기만 한다면, 내 일기는 내 정신과 내 몸 사이의 대사(大使) 역할을 할 것이다. 또 내 감각들의 통역관이 될 것이다.
14세 9개월 25일 1938년 8월 4일 목요일
두려워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무슨 일이든 당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 해도 신중할 필요는 있지. 아빠가 말했었다. 신중함이란 지성을 갖춘 용기란다.
17세 2개월 17일 1940년 12월 27일 금요일
[……] 난 내 몸을 관찰해보고 싶다. 아직도 내겐 내 몸이 속속들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대놓고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다). 의학 연구가 아무리 진척되었다 해도, 이 낯선 느낌을 없애주진 못할 것이다. 루소가 산책길에 식물채집을 했던 것처럼 나도 내 몸을 채집하고 싶다. 죽는 날까지. 그리고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
26세 11개월 13일 1950년 9월 23일 토요일
모나의 사랑의 구두점. 이 쉼표를 내게 맡기면 느낌표로 만들어줄게.
35세 1개월 24일 1958년 12월 4일 목요일
[……] 우리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들, 즉 실루엣, 걸음걸이, 목소리, 미소, 필체, 몸짓, 표정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 곁에 있다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려볼 때,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들인 것이다. 전투기 안에서 가루가 되어버린 자기 오빠에 대해 팡슈는 이렇게 말했다. 입술이고 입이고, 그래, 다 산산조각 날 수 있어. 하지만 미소는 아냐.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그녀는 또 작은 글씨체를 통해 자기 엄마를 기억한다고 했다. 엄마가 쓴 r자나 v자의 완벽한 곡선을 떠올리며 울컥한다고. [……]
44세 10개월 3일 1968년 8월 13일 화요일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선, 우리의 모습보다도 우리의 습성이 더 많은 추억을 남길 거라는 생각을 하면 흐뭇해진다.
45세 1개월 2일 1968년 11월 12일
[……] 사춘기 소년은 어떻게든 말하는 고역을 피하게 해줄 수 있는 표정을 지으며 의미 있는 침묵에 빠져든다. 그럴 때 얼굴은 영혼의 X레이 사진이 된다. [……] 그 무표정에 아버지는 과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런 죽은 사람 얼굴 같은 표정을 마주해야 할 만큼 아들에게 잘못한 게 뭐지? 풀지 못할 수수께끼 때문에 유치해진 아버지는 자문한다. 그러고는 외칠 것이다. 이건 부당해!
49세 28일 1972년 11월 7일 화요일
내 이명, 내 신트림, 내 불안증, 내 비출혈, 내 불면증…… 결국 이것들이 내 자산인 셈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50세 3개월 1974년 1월 10일 목요일
만약 이 일기를 공개하야 한다면, 우선은 여자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 대신 나도 여자들이 자기 몸에 관해 쓴 일기를 읽어보고 싶다. 미스터리를 다소나마 벗겨보고 싶어서다. 무슨 미스터리냐고?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기 젖가슴의 모양과 무게에 관해 어떤 느낌을 갖는지 전혀 모른다. 또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기 성기의 발기에 관해 어떤 느낌을 갖는지 전혀 모른다.
52세 2개월 4일 1975년 12월 14일 일요일
어제저녁 R네 집에서 식사하던 중 열띤 논쟁이 벌어졌고, 난 명실상부하게 좌중을 휘어잡고 있었다. 이제 막 모두의 동의를 얻으려는 찰나…… 돌연 말문이 막혔다! 기억이 차단된 것이다. 발밑의 함정에 빠진 기분. 그런데도 난 다른 표현을―새로운 표현을―찾으려 하는 대신, 미련하게도 문제가 된 그 단어만 찾고 있었다. 도둑맞은 주인처럼 분노를 느끼며 기억을 추궁했다. 원래의 단어를 내놓으라고 떼를 썼다! 망할 놈의 그 단어를 찾는 데 얼마나 집착했던지, 끝내 포기하고 다른 표현을 선택한 순가, 이번엔 대화의 주제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이미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62세 9개월 16일 1986년 7월 26일 토요일
불안이 죄의식으로…… 모나는 내 얘기를 듣더니 ‘죄의식을 갖게 하다culpabiliser라는 단어가 프랑스어에 생겨난 건 1946년이었다고 설명해준다. 그리고 ’죄의식에서 벗게 하다déculpabiliser’라는 동사는 1968년에 생겼다고. 역사가 스스로에 관해 이야기하던 시절……
62세 9개월 17일 1986년 7월 27일 일요일
타인이 내 불안증을 치료해줄 수 있는 건, 날 속속들이 알지 못하거나 어느 정도 무관심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나도 일하는 동안엔 불안을 이길 수 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회적 인간이 불안에 떨고 있는 인간을 눌러버린다. 그리고 곧 남들이 내게 기대하는 바에 순응한다. 주의, 충고, 축하, 명령, 격려, 농담, 질책, 진정…… 난 대화 상대, 동료, 경쟁자, 부하 직원, 좋은 상사 혹은 꼰대가 된다. 한마디로 성숙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이 늘 내 안의 불안을 압도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 우리 식구들, 그들은 매번 피해를 입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확히 내 사람들이요, 나 자신의 구성 요소들이요, 평생 내가 벗어나지 못하는 유치한 어린애의 속성에 희생되는 제물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그레구아르가 희생을 치른 것처럼.
70세 5개월 3일 1994년 3월 13일 일요일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는 몸이 있기 때문에 죽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죽음은 한 문화의 소멸입니다.
73세 1개월 18일 1996년 11월 28일 목요일
소변 줄을 단 채 밖에 나갔다. [……]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내 기능,―오줌 누는 기능―당연히 내 것이라 믿고 있었던 그 기능이 문제다. 언제나 내 의식에 복종하고, 내 욕구에 따라 작동하고, 내 결정에 따라 충족되던 기능, 그 기능이 이제 내 의지를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 보이지 않아야 할 치부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 평생 감추고 입 다물고 지내왔던 것이 갑자기 눈과 손이 닿는 곳, 그것도 주머니 안에 들어 있다니.
75세 1개월 28일 1998년 12월 8일 화요일
티조가 죽기 며칠 전,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J. C에게 전화를 걸었다(티조의 친구들은 거의가 청소년기에 사귄 이들이다.) 가장 친하다는 그 친구는 티조를 보러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늘 활기 넘쳤던’ 티조의 이미지가 ‘깨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그래서 친구 홀로 임종을 맞게 하겠다, 이거지. 꽤나 섬세한 척하지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난 정신적인 친구들이 싫다. 그냥 살과 뼈만 있는 친구들이 좋다.
86세 9개월 16일 2010년 7월 26일 월요일
우리 몸은 끝까지 어린아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
출간에 부쳐
리종에게 보내는 편지
1. 첫날(1936년 9월)
2. 12~14세(1936~1938)
3. 15~19세(1939~1943)
4. 21~36세(1945~1960)
5. 37~49세(1960~1972)
6. 50~64세(1974~1988)
7. 65~72세(1989~1996)
8. 73~79세(1996~2003)
9. 마지막(2010)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