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당한 자의 시선

원주민의 관점에서 본 스페인의 아스테카 정복

미겔 레온-포르티야(1929~ ) 지음 | 고혜선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5년 4월 15일 | ISBN 9788932027401

사양 변형판 223x152 · 349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바다를 통해, 이상한 사람들이 왔다.
우리들의 세계는 무너져내렸다”

패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본 스페인의 아스테카 정복 전쟁
붉고 검은 물감으로 기록된 파멸의 순간들

 

스페인 정복자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되어온 아스테카 제국의 정복 과정을 원주민들의 관점에서 새롭게 구성해낸 『정복당한 자의 시선』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고대 멕시코의 ‘원주민’들은 거대한 배를 타고 자신들의 땅에 도착한 ‘정복자’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외지인들에 대해 처음으로 취한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나우아족의 역사, 문화, 언어에 관한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멕시코의 역사학자 미겔 레온-포르티야 교수는, 나우아족이 남긴 다양한 관점의 시와 그림, 구전된 이야기들을 비교, 분석하며 나우아족이 자신들의 수도인 멕시코-테노츠티틀란의 멸망의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본다.

 

팽창하던 두 세계의 충돌
-아스테카 제국은 왜 그렇게 쉽게 무너졌는가?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상륙하고 그해 11월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 멕시코-테노츠티틀란(현 멕시코시티)을 공격하여 1521년 아스테카 제국을 멸망시키기까지의 과정은 지금까지 승자들의 관점으로만 이야기되어왔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멕시코 분지의 호수 위에 자리 잡은 제국의 수도를 보고 그 웅장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원주민을 ‘미개한 종족’으로 간주하고 잔인한 정복 전쟁을 수행했다. 하지만 아스테카 제국은 멕시코-테노츠티틀란, 테츠코코(현 텍스코코), 틀라코판의 세 도시가 동맹을 맺고 주변의 민족을 정복하면서 이룬 인구 500만의 강력한 제국(아스테카 제국을 세운 멕시카족 및 기타 부족을 나우아족이라고 말하며, 이들은 공통적으로 나우아틀어를 사용했다. 권력의 핵심을 장악한 민족은 멕시카족이었다)으로, ‘미개한 종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팽창하던 두 세력 간의 충돌, 혹은 두 문화, 두 가지 실존 방식의 충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스페인은 왜 그렇게 쉽게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정복당한 자의 시선』은 그 답을 정복자의 시각이 아닌 정복당한 자들의 시각에서 제시해주고 있다.

 

“여기 그 이야기를, 역사를 적어둘 테니
그대들은 보게 될 것이다!”
스페인과 아스테카의 충돌에 대해 정복자들뿐만이 아니라 싸움에서 패한 원주민들도 아주 생생한 자료를 남겨놓았다. 이들에게는 문자와 달력이 있었으며, 나무 종이 등에 상형문자나 불완전한 음성학적 문자를 기초로 역사 연보를 기록해두었고, 교육 기관을 만들어 어린 학생들이 역사적 기록을 외우도록 하였다. 즉 원래부터 역사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남긴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 역시 망망대해 너머에서 온 미지의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왜 이러한 일이 닥쳤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미겔 레온-포르티야 교수는 이 책에서 비극적 전쟁에서 목숨을 건진 나우아족 시인들이 남긴 시들, 틀라텔롤코 출신의 작가들이 알파벳을 이용해 나우아틀어로 남긴 기록 『1528년 틀라텔롤코 역사』, 선교사 사아군의 진두 지위 아래 틀라텔롤코 원주민 학생들이 노인들의 구술을 토대로 나우아틀어로 기록한 자료 『플로렌스 고문서』, 『플로렌스 고문서』『틀락스칼라 화첩』 『아우빈 고문서』 『라미레스 고문서』 등에 담긴 그림들, 그리고 스페인 정복자와 동맹 관계에 있었던 틀락스칼라와 테츠코코 원주민들의 기록 등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정복 과정을 바라보는 원주민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어떠한 불길한 증조들이 있었는지, 모테쿠소마 왕은 왜 코르테스를 추방당했던 아스테카인의 수호신 케찰코아틀로 오해했는지, 틀락스칼라와 테츠코코 사람들은 어쩌다 코르테스 편에서 싸우게 되었는지, 이 과정에서 말린체라는 인디오 여자는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원주민들이 두려움에 떠는 왕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그리고 그 유명한 촐룰라 학살과 토시카틀 축제에서 벌어진 대신전 학살, 자신들의 수도 멕시코-테노츠티틀란의 멸망을 과연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았는지에 대해 원주민들은 놀랍도록 자세하고도 극적인 기록을 남겼다.

거리에는 부러진 투창이 누워 있고
머리칼은 여기저기 어지럽구나.
지붕이 날아간 집
담이 붉어졌다네.
[……]
여보게들, 우시게나.
이제 우리 멕시카 민족이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게나.
물맛이 시어졌네, 음식 맛도 시어졌네.
이게 바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틀라텔롤코에서 하신 일이라네.

 

트로이의 멸망을 노래한 『일리아드』에 비견되는
정복당한 자들의 서사시
한 세계가 사라져가는 비극적 과정을 고통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필치로 묘사한 아스테카인들의 기록은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레온-포르티야 교수가 원주민들의 기록을 재구성하여 엮은 이 책 『정복당한 자의 시선』은 1959년 출간되며 학계와 언론의 극찬을 받았고, 갓 서른이었던 그를 단숨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어 등 1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패자들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본문 속으로

원주민이 직접 남긴 기록과 그림, 스페인 사람들의 기록은 ‘정복’이라는 사실이 투영된 역사의 거울에 두 개의 다른 얼굴을 구성할 것이다. 중미인들과 스페인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해 지녔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양측이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저주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두 개의 이미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는 지점으로 귀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주제는 편견 없이 연구되어야 한다. 호불호를 떠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연구한다면, 현재의 멕시코 뿌리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뿌리는 두 세계의 급작스런 만남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_11~12쪽

이 기록들은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림이 없으면 글자로 기록했다. 이렇게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것을 기억하려고 원을 여러 개 그렸으며, 각각의 원은 1세기, 즉 52년에 해당했다. 원 옆에는 각 연도에 따라 그 해에 일어난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을 그림으로 그린다거나 앞에서 언급한 글자로 표현했다. 일례로 모자 하나를 쓴 남자도 있고, 사탕수수 표시에는 붉은 얼굴의 현인도 있었다. 그 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스페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에 들어왔다는 표시였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다._13~14쪽

앞에서 언급한 원주민의 텍스트와 그림을 비교 연구한다면, 정복에 대해 스페인 사람들이 기록한 연대기나 역사와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주민의 자료와 스페인 사람의 자료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상호 모순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체험한 원주민들이 제시하는 텍스트들은 심오한 인간적 증언을 담고 있으며, 문학적 가치도 높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증언이 자신들의 도시와 민족이 멸망하는 것을 목도했을 뿐만 아니라 유구한 문화의 뿌리마저 뽑히는 것을 몸소 체험한 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_28쪽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에 도착하기 10년 전에 하늘에서 불길한 징조가 보였다. 날카로운 불길, 불꽃, 혹은 여명 같은 것이 마치 하늘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하늘을 찌를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불길의 모양은 하단은 넓고 끝으로 갈수록 좁아졌으며, 하늘에 떠 있거나, 하늘 가운데를 지나가거나, 하늘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불길은 동쪽에서 보이다가 한밤중에도 보였다. 또한 새벽에도 나타났으며, 태양이 떠오르면 비로소 자취를 감췄다._39쪽

또한 사신들이 기절하게 된 이유와 귀가 얼얼할 정도의 굉음이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자 깜짝 놀랐다. 사신들은 그 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일단 쏘기만 하면 몸 안에서 돌로 만든 공 같은 것이 튀어나옵니다. 그러면 비 오듯 불꽃이 튀기면서, 여기저기 불꽃을 뿌리고, 연기가 나옵니다. 썩은 진흙과 같은 지독한 냄새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데 굉장히 역겹습니다.” “만일 산에 떨어진다면 산을 가르고, 부술 것입니다. 나무에 떨어진다면 아마 나무는 장작개비처럼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마치 사람 하나가 나무 속에서부터 바람을 일으켜 날려 보내는 듯한 겁니다.”_79쪽

일설에 따르면 사절단을 보낸 또 다른 목적은 외지인들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아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그들에게 어떤 저주나 주문을 걸 수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바람을 일으켜 날려보낼 수 있는지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 등 그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가를 보려고 한 것이다. 혹은 어떤 주문을 자꾸 반복함으로써 병들게 한다거나, 죽게 만든다거나, 아니면 되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절단은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해보았으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무런 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_84쪽

목차

서문
제1장 스페인 사람들의 도래를 예견한 징조
제2장 스페인 사람들의 도래에 대한 초기 소식들
제3장 사신들의 왕래
제4장 모테쿠소마 왕의 심리
제5장 스페인 사람들, 틀락스칼라・촐룰라 도착
제6장 새로운 선물과 포포카테페틀 인근에 등장한 테스카틀리포카
제7장 스페인 사람들을 환대한 익스틀릴소치틀 왕자
제8장 멕시코-테노츠티틀란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
제9장 토시카틀 축제에서 벌어진 ‘대신전’ 학살
제10장 코르테스의 귀환—‘라 노체 트리스테’
제11장 멕시코-테노츠티틀란 포위 개시
제12장 포위된 도시로 잠입한 스페인 사람들
제13장 멕시코-테노츠티틀란 함락
제14장 종합적 시각
제15장 정복의 비가
제16장 틀락스칼테카요틀
제17장 이어진 나날
부록
참고문헌

작가 소개

미겔 레온-포르티야(1929~ ) 지음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나 미국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멕시코 국립대학UNAM에서 앙헬 마리아 가리바이 킨타나의 지도 아래 역사학을 공부했다. 나우아족의 역사, 문화, 언어에 관한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그는, 나우아족이 남긴 시와 그림, 구전되어온 이야기 등을 고증하여 나우아족의 역사를 그들의 관점에서 재구축하고 언어 체계 분석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추출해내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현재 멕시코 국립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멕시코 국립역사학연구소에서 수여하는 엘 카바예로 아길라 상, 워싱턴 DC 의회도서관에서 수여하는 리빙 레전드 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연대기와 노래를 통해 본 고대 멕시코인들』 『정복의 이면—아스테카, 마야, 잉카』 『멕시카의 노래』 『멕시코 원주민 문학』 등이 있다. 특히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 과정을 원주민의 시각에서 보여준 이 책 『정복당한 자의 시선』은 1959년 출간되며학계와 언론의 극찬을 받았고, 갓 서른이었던 레온-포르티야를 단숨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학자의 지위에 올려놓았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어 등 1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고혜선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콜롬비아의 카로 이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호세 마리아 아르게다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단국대학교 스페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동서양 문학에 나타난 거울의 이미지』(스페인어 출판), 『메스티소의 나라들』 등이, 옮긴 책으로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멕시코의 어제와 오늘』 『마야인의 성서 포폴 부』 등이 있다. 또한 『서편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칼의 노래』『간추린 한국사』(엮고옮김) 등의 우리 책을 스페인어권에 번역․소개하는 작업을 해왔다. 2007년 한국문학번역상 대상, 2012년 대산문학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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