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을 웃다 죽게 만들어야 해!
불가능한 탐닉. 음악 이전 혹은 직전에 돌입한 소설
이것은 불가능한 유혹, 아니 단 한번만 가능한 유혹이다
“모든 생각이 웃음을 유발하게 만들어야 돼.
웃음에 인색한 자들까지 웃게 만들어야 돼.
앞에서 웃지 않아도 혼자 있을 때, 가령 벌거벗은 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새삼스럽다는 듯……”
한국일보문학상, 문지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올해로 등단 10년차를 맞는 소설가 김태용의 두번째 장편소설 『벌거숭이들』(문학과지성사, 2014)이 출간되었다. 2010년 런칭한 <웹진문지>의 첫 연재소설이었던 이 작품은 오랜 기간 다듬어져 올겨울 독자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2005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김태용은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포주 이야기』와 장편소설 『숨김없이 남김없이』 등을 선보이며 ‘독보적인 소설, 비교 불가한 소설’이란 평단의 주목 속에 독자들은 물론 소설가들에게마저 충격을 안겨왔다. 문학의 영토, 아니 게토에서 어떤 계보를 찾는 일이 무의미할 정도로 김태용의 말은 어떤 확신도 없는 말, 스스로 앞의 문장을 부정하고 지우는 말이라 할 만하다. “촉각을 의심하고 청각을 불신하며 혀끝으로 찔끔찔끔 핥듯이 읽을 수만 있는 언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작은 일부로 기적처럼 불행처럼 간신히 매달려 있는 존재. 그렇게 벌거벗은 채 김태용은 소설 앞에 불안하게 서 있거나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가장 모호한 미각과 가장 확실한 생(의 감)각이 부딪치는 한 모서리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언어. 간당간당한 가난한 언어. 『벌거숭이들』은 말하자면 문장이 끝난 뒤 잘못 혹은 억지로 찍힌 마침표 같은 언어-괴물”이라고 지적한 조효원의 말처럼 김태용은 소설 안에 존재하는 은유와 직유 환유와 같은 숱한 언어 질서에도 불구하고 “성에 같은 표정” “진흙 같은 세계” “쇳소리 같은 숨소리”처럼 그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고 어떤 관습에도 의존하지 않은 벌거벗은 언어를 구사한다. “무대 위의 관객, 객석의 등장인물”과 같은 바꿔치기나 “귓속의 몸 소리” 같은 전에 없던 말은 “혼돈과 질서가 뒤엉키는 순간만이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의 실현이다. 또한 이러한 믿음으로 밀고 나가는 이 소설은 무형의 “생(의 감)각”을 잡아채는 집중력으로, 그 집요한 추적의 방식이 획득한 리듬의 형태로 소설 이전의 말 곧 음악이 되는 말(소설)을 만들어내고 있다.
독서는 심연이다. 책장을 펼치는 것은 저 심연의 아가리를 스스로 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벌거숭이 산문가가 발휘하는 기지는 참으로 경탄스러운 것이다. 즉 그는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읽기 전’의 순간과 읽을 수 없었지만 읽어버린 ‘읽고 나면’의 순간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쯤’으로 바꿔치기한다. 아니, 틈을 쯤으로 메워버렸다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읽을 수 없겠지만, 한 번쯤은 읽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읽고 나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한 번쯤은 그래도 괜찮지 않겠는가. 이것은 불가능한 유혹, 아니 단 한 번만 가능한 유혹이다 _조효원(문학평론가)
연극 직전의 상황 ― “아직 나는 걷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발음 기호를 위반할 더 많은 철자를 다오. 아직 막이 오르려면 멀었다.” 이곳, 이 소설의 상황은 모든 준비된 상황, 모색의 상황이며 그러므로 어떤 무대 직전의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연극적 장치와 수수께끼 같은 언어들 때문에 베케트나 고도를 떠올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것은 그말로 ‘직전’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분명 이 글, 말들은 소설임이 분명하다. 다만 하릴없이 쓰거나 싸는 인물, 하얀 백지도 아닌, 커서가 깜박이는 한글창도 아닌 하얗게 김이 서린 유리창이라는 배경, 그리고 말하고 부정하고 지우는 사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벌거벗은 김태용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이 부질없는 방법, 이 뜬구름 잡는 소리는 한 편의 소설로서 충만한 타당성을 확보한다. 흔히 메타 소설로 ‘오해’받는 김태용의 말들은 사실 조금만 견디며 읽어 나가다 보면, 아주 질퍽한 질감의 냄새가 풍기는 물성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무의식의 의식화이고 유형화를 꿈꾸며 어떤 ‘직전의 상황’에 놓이기를 자처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무에 그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한 재미에 이끌리는 사람들이라면 “인간들을 웃다 죽게 만들”고자 하는 이 소설이 개그를 지향하는 것으로 오해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여기서 웃음과 죽음은 문제로서 전면에 나선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눈물 흘리는 대신 터져 나온 제 스스로의 웃음으로 인해 죽는 인간을 상상하며 작가는 말을 이어 나간다. 이러한 과제를 위해 반복하는 리듬으로 불가능에 탐닉한다. “절망적인 탐닉을 부르는 이 불가능 때문에 김태용의 글은 음악 이전 혹은 직전에 돌입한다. 그의 글쓰기가 리듬과 연상의 복잡계를 한계 영역으로까지 밀고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남아 있는 언어로 그는 그저 쓰는 대신 차라리 미친 광대처럼 노래한다. 노래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을 노래라고 우기며, 우기는 것까지 노래로 만들며, 그렇게 노래를 부른다.”(조효원)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가능한 것만 찾아 헤맸지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나서는 가능이 불가능하다고 믿으며 불가능한 것에 탐닉하게 되었다. 나의 탐닉. 나의 즐거움. 말은 불가능하고 노래를 부를수록 발가벗겨진다. 불가능의 으뜸은 말이다. (p. 129)
그러나 그의 노래는 들을 수 없고 다만 기적의 표식처럼 불행의 징조처럼 읽을 수만 있다. “읽기 전에는 ‘읽고 나면’의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읽고 나면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것이 김태용의 소설이다. 누구도 그를 어리석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본문 속으로
발가벗겨진 사실이 다리를 오므린 채 자신을 능욕할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로지 사실을 위반하며 사실을 재조립하는 순간만이 간헐적으로 숨을 내뱉고 있는 그를 증명할 뿐이었다. 누군가 그 공책을 발견한다면 지금의 그와는 다른 인간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추측하고 상상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공책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두었으니까.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면, 왜 이곳에서 나가려 하지 않을까, 먼저 공책을 감춰둔 곳으로 갈 것이다. p.23~24
번번이 일기를 쓰다가 어떤 알 수 없는 우울함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때마다,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울함에 정신을 온전히 빠뜨리고 싶은 생각에, 소금기 가득한 우울함에 정신을 축축하게 절여낼 수 있기를, 접시에 우유를 조금씩 따라 코를 박고 고양이처럼 핥아 먹었다. 그는. 고양이가 우유를 먹는 것을 본 적도 없으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 그가 혀를 내밀고 우유를 핥아먹는 모습을 보면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일어났구나. 너는 나의 말없는 유일함이야. p.33
남자의 책. 남자의 이름으로 더렵혀져 있는 책. 언어들이 닫힌 미로처럼 얽혀 있는, 의미를 파악하려고 할수록 의미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어놓은, 어설픈 지성과 치졸한 감성으로 꾸며놓은 허구의 책. 거짓이 얄팍한 속임수로 진실을 농락하고 결국 다리를 벌려놓는 것도 모자라 찢어놓고 마는. 철자가 턱턱 목에 걸리는. 읽을수록 벌거벗은 문장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망각한 채 다시 벌거벗으려 애쓰며. 노란 버섯으로 뒤덮인. 노란 버섯이 전부인. 오로지 노란 버섯처럼 증식하는 언어의 꼬리 물기. 남자는 한 권의 책이었다. p.40
영원히 무대의 바깥으로 사라진 사람. 그 사람이 나이기를 바란다. 무대의 바깥에서 길을 잃은 사람. 길을 잃어야만 하는 사람. 길을 잃게 되어 있는 사람. 길을 잃을 수만 있다면. 무대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면. 무대의 바깥이 또 다른 무대가 아닌 말 그대로 바깥이라 해도. 나는 무대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길을 잃었지 않은가. 길을 잃은 채로 무대의 바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길을 잃어야만 무대의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 누구도 나의 걸음걸이와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아직 나는 걷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p.114~15
모든 생각이 웃음을 유발하게 만들어야 돼. 웃음에 인색한 자들까지 웃게 만들어야 돼. 앞에서 웃지 않아도 혼자 있을 때, 가령 벌거벗은 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으면 서도 새삼스럽다는 듯 배꼽 밑에 달려 있는 그것, 달려 있거나 찢어진 것. 그게 뭐든지 간에. 신기해서 한 번쯤은 잡아당겨보거나 벌려보거나 했던 것. 안 그렇다고 말하지 마.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이마를 뚫고 나오는 단어. 작은 흠집과 커다란 울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지만 되찾은 이름. 나는 그것을 이제 마라롱이라 부르겠다. 부르면 지식이 되는 이름. 각자의 마라롱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우연히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들어야 돼. 인간들을 웃다 죽게 만들어야 해. p.127~28
왜 나마라롱은 말보다 말이 불러오는 노래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웃음의 의미보다 웃음 그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 했는가. 가짜 대본의 침묵과 암전을 응시하게 되었는가. 침묵과 암전의 무대. 오로지 나마라롱을 위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각오하고 있는가.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도망칠 구멍이 있다면 도망칠 것이다. 무대의 구멍을 발견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 해야 할 말이 남아 있다. p.138~39
왜 그래요. 저리 가요. 저리 가 있어도 저리 가요. 무엇으로도. 찢어지지 않아요. 베개를 위한 두 개의 머리는 없어요. 머리의 실체들은 있지만 머리의 주체들은 없어요.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찢어질 때, 달라붙을 때, 나는 실체인지, 주체인지 궁금해요. 궁금할 뿐 답을 원하지는 않아요. 너무 가까워요. 좀더 가봐요. p.160
구름판에서만 발을 굴러야 한다는 명령이 나를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높이 뛰고 멀리 뛰는 것은, 그러니까 이곳을 넘어 저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이곳이면 충분했는데도, 구름판이 절대적이었지. 어쩌면 저곳에 도달하는 것보다 구름판에서 발을 굴러야 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지. 아니, 그게 전부였어. 구름판이 없었다면 발을 좀더 잘 굴렀을 텐데. p.191
1부_ 등장
2부_ 암전
3부_ 퇴장
해설_한 번쯤_조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