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정원

바진 지음 | 차현경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10월 30일 | ISBN 9788932026657

사양 변형판 155x225 · 256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루쉰, 라오서와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손꼽히는

사랑과 평등의 작가, 바진의 대표작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세요.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들이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요”

루쉰(鲁迅), 라오서(老舍)와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손꼽히는 작가 바진의 대표작 『휴식의 정원(憩園)』(대산세계문학총서125)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작품의 최고 경지는 저작(著作)과 생활의 일치’라고 강조했던 실천하는 작가 바진은 작품에서 일반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통해 현실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사회의 혼란과 부패상을 투영했다.

『휴식의 정원』은 항일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작가인 ‘나’가 우연히 옛 친구 야오궈둥을 만나 그의 저택 ‘휴식의 정원’에 머물게 되면서 알게 된 대저택 ‘휴식의 정원’의 과거와 현재 주인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바진은 두 집안의 가정사를 통해 봉건 계급사회의 불합리성과 모순을 보여주고, 이것이 야기하는 인격적 타락과 인간성 왜곡 과정을 그렸다.

‘휴식의 정원’의 옛 주인인 양씨 일가가 대저택을 판 뒤 가족들이 흩어지는 장면은 당시 봉건 대가족 사회가 해체되어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바진은 이 집안의 셋째 양멍츠를 통해 당시 중국 지주 계층의 방탕한 삶을 고발하며, 그들이 봉건 문화에 의해 철저하게 생존 능력을 상실한 이후에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 경고한다.

하지만 바진은 이러한 고발에서 멈추지 않는다. 가족에게 폐만 끼친 아버지마저 감싸 안으려는 어린 아들과 이들을 도우려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데, 여기서 폭력과 증오 대신 사랑과 용서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인도주의적 이상과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바진의 소설로 보는 중국의 사회 변화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소설가 ‘나’는 우연히 친구 야오궈둥을 만나 그의 저택 ‘휴식의 정원’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 ‘휴식의 정원’에 가끔 나타나 동백꽃을 따 가는 소년이 있다. ‘나’는 궁색해 보이지도 않는데 남의 집에 들어와 집안사람들과 싸우며 꽃을 꺾어 가는 이 소년이 궁금해진다. 알고 보니 이 소년은 ‘휴식의 정원’ 전 주인의 아들이었던 것. 이 소년을 통해 한 봉건 대가족의 역사와, 불합리한 계급 사회에서 기생 인간으로서 살아가던 지주의 몰락에 대해 알게 된다. 친구 야오궈둥 부부와 함께 소년을 도우려던 중, 비록 많이 개화되었으나 근본적으로는 봉건 지주의 삶을 살고 있는 ‘휴식의 정원’의 현재 주인인 야오궈둥마저 비극적 사건을 겪게 된다.

1904년 봉건 관료의 집에서 태어난 바진은 어려서부터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불평등이 판치는 엄격한 신분제도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을 싹 틔웠다. 게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표면적으로는 평화롭고 우애가 넘쳐 보이지만 실상은 증오와 알력과 투쟁이 난무하는 봉건 대가정의 모순과 억압을 몸소 체험하면서 반봉건 사상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러한 사상은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휴식의 정원’의 옛 주인 양멍츠와 현재의 주인인 야오궈둥의 가정을 비교해보면 집의 구조나 계급관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 봉건 대가족의 특징인 대저택이라는 외형은 동일하지만, 아버지 아래 여러 형제가 가정을 이루어 함께 살던 옛 주인 양 씨네와 달리 야오궈둥의 가정은 많이 간소화되고 가족도 부부와 아들로 단출해진다. 또한 봉건 계급사회의 불평등을 상징하던 하인과의 관계도 뚜렷한 변화를 보이는데, 엄격한 신분제도의 주종 관계에서 벗어나 주인이 하인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인간적이고 우호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교수로 재직하고 관직에도 몸담았던 야오궈둥이 결국 노동에 의한 삶이 아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에 기생하는 안락한 삶을 선택한 것이나 가족 대소사를 가장인 야오궈둥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점, 봉건 세력과 타협하는 점,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는 금전만능주의 성향 등은 봉건제도의 잔재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과 용서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그러나 바진은 현실의 문제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휴식의 정원’의 전 주인인 양멍츠와 현재의 주인인 야오궈둥이 현실의 문제점을 보여준다면, 양멍츠의 아들 한얼과 야오궈둥의 부인 완자오화는 사랑과 용서의 인류애로서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다.

완자오화는 “소설가는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라며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완자오화의 말에는 작품을 통해 불공정한 현실에 희생되는 약자들을 위로해주고 상처받은 영혼을 구제하고 싶어 한 바진의 인도주의적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한얼은 자신의 아버지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걸 이유로 아버지를 포기하는 대신, 관용과 용서를 통해 아버지가 이전의 과오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어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가족 구성원 간의 상호 사랑을 강조하는 바진의 ‘집’은 더 이상 폭력과 증오의 대상이 아닌 화해와 용서의 공간이다. 이러한 ‘집’과 ‘가족’에 대한 인식은 사랑으로서 가정과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인도주의적 이상이 발현된 것이다.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 바진

『휴식의 정원』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청두를 비롯한 국민정부의 대후방(大後方) 지역은 1938년부터 43년에 이르는 5년여 동안 일본군의 대공습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많은 가옥과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바진은 『휴식의 정원』을 창작할 당시 일반 백성들이 직면한 참혹하고 혹독한 현실을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느낀 슬픔과 허무의 정서를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뿐만 아니라 『휴식의 정원』은 앞선 작품에서 보여주던 분노, 항쟁, 투쟁과 같은 청년기 시절의 격정에서 벗어나 인생 문제의 복잡한 경험과 모순된 감정들을 표현하면서 문학성에서도 한 차원 더 향상된 기량을 보여준다. 중국의 저명한 평론가 쓰마창펑(司馬長風)은 “중국 현대소설의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이다. 신중하고 엄숙함에 있어서는 루쉰과 기량을 겨루고, 우아하고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선총원(沈從文)과 다투고, 생동감에 있어서는 라오서에 뒤지지 않으며, 정감(情感)의 면에서는 위다푸(郁達夫)에 못지않다. 하지만 예술적 절제와 순수, 줄거리와 인물들의 역할, 취지와 기교 간의 균형 잡힌 조화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영롱함을 논하자면, 모든 것이 가장 적당하게 배치되어 있어 매우 독창적이고 어떤 작품보다 출중하다”며 『휴식의 정원』에 찬사를 보냈다.

바진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글로써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했던 실천하는 작가였으며, 문학적으로도 중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였다.


■ 본문 속으로

나는 무심코 꽃잎을 코끝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런 기이한 행동에 스스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꽃잎을 찢어버렸다. 그때 문득 아까 아이의 심정이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까 아이 뒤를 쫓아가 꽃을 꺾어 가는 이유를 물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_20~21쪽

라오원의 말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가 나를 “리 나리”라고 부르는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듣고 있자니 귀에 영 거슬렸다. [……] “부탁이니 다시는 ‘리 나리’라고 부르지 말게. 우리 ‘아랫사람들’끼리는 통상 선생이라 칭하지 않나. 그러니 앞으로는 나를 ‘리 선생’으로 불러주게.”_40~41쪽

“소설가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불행을 가슴속에 담아두었다가, 펜 하나에 의지해 그들의 슬픔을 풀어낼 수 있겠어요? [……] 소설가는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지만, 소설가는 내면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잖아요. 소설가의 삶도 고통스러울 거예요. 내면 깊은 곳에는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많을 테니까요……” _72~73쪽

“[……] 세상사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소설가는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잖아요.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요.” _75쪽

‘집안 망신시킬까 봐 두려워요? 집안 망신은 당신이 벌써 다 시켰잖아요. 당신이 그 유명한 양 씨 집안 셋째 나리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아요!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돈을 탕진해버렸는지 한번 계산해보세요! 당신이 물려받은 돈하며, 할아버지께서 우리 앞으로 남겨주신 돈하며, 거기다 엄마 돈까지 모조리 써버렸잖아요!’ [……] ‘참 대단하세요. 큰돈도 만져보고, 진탕 놀아도 보고, 계집질에, 도박까지 안 해본 게 없으시죠! 돈을 물 쓰듯 펑펑 쓰셨어요. 우리가 남들한테 손가락질 받고 무시당할 때, 언제 한 번이라도 우리를 걱정해준 적 있나요!’ _149쪽

“[……] 소설가는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라고 어떤 소설가가 한 말이 생각나요. 적어도 저는 그 처방을 받았어요. 소설가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고, 서로를 이해하게 해주죠.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사람들이에요.” _165~66쪽

“[……] ‘희생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다’였죠. 전에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에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사람을 돕는다는 건, 자기의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울고 있는 사람을 웃게 해주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배불리 먹여주고,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는 거예요. 그들의 웃음소리와 환희야말로 최고의 선물인 거죠! [……]”

“하지만 주위 사람을 생각하느라 자기 자신을 잊어서는 안 돼요!” 감동을 받은 나는 그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제 자신을 잊는 게 아니라, 자아를 확장하는 거예요.” _167~68쪽

돈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나를 더욱 가치 있게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상(理想)뿐이다. 돈이라는 것은 겨울철 내리는 눈과 같아서 서서히 쌓이지만 빨리 녹아버린다. 이 소설 속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궐 같은 저택과 아름다운 정원은 주인이 수시로 바뀐다. 개인 재산을 백 년 혹은 그 이상 지켜내는 것을 본 적이 있던가!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극히 막연하고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역시 이상(理想)과 신념뿐이다. _227쪽 「후기」

목차

휴식의 정원
후기

옮긴이 해설 · 사랑과 용서를 통한 인도주의 정신 발현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바진 지음

쓰촨 성 청두의 봉건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리페이간(李芾甘). 사랑과 평등을 강조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인도주의 사상을 갖게 되었으며, 봉건제도에 대한 저항 의식을 싹 틔웠다. 15세 때 일어난 5․4운동의 영향을 받은 바진은, 1920년 외국어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접하고, 무정부주의 단체가 발행하는 잡지 『반월』의 편집에 참여했으며, ‘균사(均社)’라는 조직을 만들어 반봉건 투쟁을 벌였다. 1927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세계의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에 더욱 심취하게 되고, 크로포트킨, 버크만 등의 저작을 번역 ․ 소개했다. 바진이라는 필명도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한자음에서 첫 음절과 마지막 음절을 따 만든 것이다.

1928년 파리에서 첫 소설 『멸망』을 완성하고 이듬해 귀국하여 발표해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때부터 약 20년간 『집(家)』 『봄(春)』 『가을(秋)』의 ‘격류삼부곡’과 『불(火)』 『휴식의 정원(憩園)』 『제4병실(第四病室)』 등을 발표하면서 중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1946년, 마지막 장편소설 『추운 밤(寒夜)』을 끝으로 소설보다는 번역과 편집, 출판에 힘을 쏟았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무정부주의 경향을 띤다는 이유로 사상적 박해를 받다가, 1976년 사인방의 몰락과 함께 복권되어 명예를 회복한다. 말년에는 문화대혁명이 초래한 참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며, 문화대혁명이 역사적인 대사기극이었음을 폭로하는 산문집『수상록(隨想錄)』을 발표했다.

바진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 ․ 출판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이탈리아 단테 국제명예상(1982년)과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1983년)을 받으며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던 중 2005년 10월 17일에 타계했다.

차현경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와 한국 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8년간 중국어 통역사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주목할 만한 중국 도서를 발굴 ․ 소개하는 기획집단 ‘차이나북트렌드’ 멤버로서 기획과 번역 작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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