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내가 사랑한 시인들 · 두번째

정과리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10월 7일 | ISBN 9788932026558

사양 변형판 140x212 · 482쪽 | 가격 21,000원

책소개

한국 문학비평의 미학적 수준을 대표하는 평론가 정과리,
한국 현대시의 지형도를 완성하다!

– 『무덤 속의 마젤란』(1999), 『네안데르탈인의 귀향』(2008),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2014)로 이어지는 3부작 완성

불문학을 토대로 한 경계를 알 수 없는 해박한 지식, 정교한 논리, 강렬하고 유려한 매혹의 문장이 어우러진 비평으로 한국 문학비평의 미학적 수준을 한껏 끌어올린 평론가로 손꼽히는 문학평론가 정과리(연세대학교 국문과)가 새 평론집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내가 사랑한 시인들·두번째』(문학과지성사, 2014)를 출간했다.


해박한 지식, 정교한 논리, 강렬한 문장이 조화를 이룬,
1980년대 그립고 신비로운 이름시들에 대한 연정(戀情)의 일지

1979년 재학생 신분으로는 드물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조세희론」으로 입선하며 본격적인 비평 활동을 시작한 정과리는 이후 35년간 국내외 문학과 서양철학은 물론, 인문학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탁월한 컴퓨터 운용자로서 현대문명과 정보화 사회의 의미망을 탐문한 데서 기인하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폭넓고 세밀하게 한국문학을 읽고 비평해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문사이자 지성이다. 계간 『문학과지성』을 이은 계간 『문학과사회』의 편집동인으로 오랫동안(1988~2004) 한국문학 현장의 담론을 선도해온 장본인이자, 시의 기원을 묻는 이론적 검토와 철저한 논리, 복합적인 겹눈의 시선을 매개로 한 ‘공감의 비평’으로 정평이 난 그가 『글숨의 광합성―한국 소설의 내밀한 충동들』(2009) 이후 5년 만에 묶어낸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내가 사랑한 시인들·두번째』는 그 부제가 가리키듯, 2008년에 선보인 『네안데르탈인의 귀향―내가 사랑한 시인들·처음』에 이어 한국 현대시사를 수놓은 별들의 족적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귀향』이 김수영, 고은, 정현종, 황동규, 오규원 등 60~70년대를 풍미했던 시인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책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말 사이에 등단한 시인들, 이른바 격동의 80년대를 숨 막히는 격정과 자신만의 언어로 살았던 시인들─이성복, 황지우, 김혜순, 최승자, 고정희, 김정환, 최두석, 김영승, 김승희, 김정란, 송재학, 백무산, 황인숙 등의 작품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책의 발간으로 『네안데르탈인의 귀향』과 1990년대 시인들의 작품론만을 따로 묶었던 『무덤 속의 마젤란』(1999) 사이에 부재했던 다리가 비로소 완성된 셈이다.


욕망기법서사의 틀로 톺아보는 집요한 시() 읽기,
문학의 사회적 지평을 다시 열고픈 열망

1부는 최근 국내외 문학사회적 정황을 조망하면서 문학의 사회적 지형, 문학 창작과 문학 비평의 지위를 묻는 이론적 글과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사례들을 함께 거론한다. 모두 이 책의 존재 근거를 선명하게 밝히는 글들이다.

가장 최근에 씌어진 「문학의 사회적 지평을 열어야 할 때」(2014)에서 저자는 반세기 전, 문학은 언제나 사회의 거울이고 사회 변화의 시험장이었는데,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세계의 문학은 대부분 개인의 사적인 삶으로 선회했음을 지적한다. 한국문학 역시, 80년대 말 민주화의 개시와 더불어 가속화된 소비사회로의 진입이 사실상 ‘개인의 폭발’을 불러왔고 대신 현실참여의 민중문학과 언어탐구가 동반추락하는 현실을 속절없이 목도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개인 체험의 묘사나 내면에 대한 탐구 혹은 영성의 발견에 현실(사회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실존적 개인의 삶이 세계의 변화에 작용하지 않는 한, 그러한 문학이 사회적 지평을 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정과리의 논지이다. 사유를 담보한 예술과 문학은 표현의 세공을 부추긴다. 그는 “미래는 전적으로 우연의 영역에 속하며, 실로 우연이야말로 역사의 가장 큰 원동력의 하나”라는 한나 아렌트의 언급에 착안하여, 우리가/문학이 역사를 성찰하고 사회적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우선 우연적이고 이질적인 ‘나’들의 미묘한 관계를 따져 헤아리고 그 알고리즘을 파헤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문학작품이 담고 있는 복합적 시선들의 중첩, 변화와 갱신을 모색하는 생체험에 대한 복기임을 환기시킨다.

「서러움의 정치학―시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과/어떻게 싸우는가에 대한 사색」(2013)은 문학이 문화로, 문화가 한류로 이동하고, 인문학이 부가가치를 낳는 창의적 산업이론으로 전락하는가 하면, 잘 팔리는 대중문학이 문학적 가치까지 독식하는 오늘의 현실을 개탄하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이 가운데 가장 혹독한 운명을 겪은 것이 시라고 지적한다. 모든 현실적 구속들과의 투쟁 속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시가(보들레르), 시 외의 어떤 다른 것에도 집착하지 않았던(논어) 바로 그 시가 미디어에 포박된 주관성의 사회(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에 노예로 포박된 채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덧없음 속에서 우발적으로 선택하는 신종 자유들”이 판치는 현 사회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자기를 의식하는 자기, 자신을 세계의 구성적 기제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운동을 성찰하는 주관성의 존재론”이며, “그것만이 문제의 원인을 바깥으로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껴안는 성숙한 태도이며 동시에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자기도취로 빠져들게 하지 않고 세계와 이성적으로 대결하는 건강한 주관성”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쯤에서 도출되는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주체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다음 장에 이어지는 비평글들, 특히 황지우 시집 『나는 너다』(1987)와 시극 『오월의 신부』(2000) 반복적 읽기에서 밝혀지듯〕 1980년대 문학이 제기했던 문제, 바로 그것임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지면으로 처음 발표되는 「추상적 민중에서 일상적 타자로 넘어가는 고단함」(2013)은 황지우의 『나는 너다』가 씌어진 까닭과 씌어지는 과정이 당대(1987년 6월 항쟁과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의 문제 틀의 한계 혹은 가능성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분석하는 글이다.


우리를 감전시킨 그립고 신비로운 이름들
그들의 시를 풍요하게 읽는 법을 읽다!

2부와 3부는 1부에서 제기한 문제의식, 다시 말해 “현실사회주의의 철저한 몰락 이후 혹은 욕망 사회의 도래 이후 1980년대의 막바지에서 정지된 그들의 작업은 그 시효가 상실되었는가”를 반문하며 동시에 그렇지 않음을 역으로 증명해내는 저자의 고집스런 글쓰기라 할 만하다. 위 질문 속에서 80년대 시인들(이성복, 황지우, 김혜순, 최승자, 김정환, 최두석, 고정희, 김승희, 김정란, 김영승, 송재학, 황인숙, 백무산, 고형렬, 정일근, 원구식)은 하나하나 여기로 불려와 분석되고 해석된다. 정과리는 이들이 존재의 질료인 언어로 호흡하고, 그를 통해 삶을 주어진 관념의 틀 안에 가두지 않고 더욱 생생하고 풍요롭게 되살아보게 만든 장본인들이라고 말한다. 단어와 시구를 집요하게 틀어쥐고 분석하면서 그 속에서 변증적 ‘원환’의 관계를 짚어가는 저자의 필력은 이번 책에서도 여전하다. 이 작품론들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삶을 신생(新生)으로 되돌린다는 문학의 진실, 언어적 감각과 예술적 안목, 표현 충동을 기반으로 사회 변화의 열망을 품었던 시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정과리는 서문에서 1980년대 문학을 “내 문학의 뿌리”라고 정의한다. 하여 수많은 일화와 풍문을 통해 마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나 숱한 ‘후일담’처럼 소비되는 이른바 흔적 즈려밟기 식의 1980년대 문학 접근을 경계한다. 앞서 발표한 책들에서 정과리는 자신의 비평적 입장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공감은 작품이란 거대한 세계와의 내밀한 대화이자 거친 씨름이다.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 작품 속에 진입하고, 작품을 더 깊이 느끼려 이론을 쓰다듬는 자세를 취한다는 점에서 육체적·성애(性愛)적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작품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톺아보는 정과리식 공감의 비평은, 지금껏 우리가 숱하게 봐온 이론의 피상적 답습이나 성근 분석, 그럴듯한 미문으로는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의식들을 하나둘 감아올린다. 멀게는 1988년에서 가깝게는 2014년 벽두에 씌어진 18편의 작품론들은 “수없이 많은 종류의 사랑이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으며 때로 어떤 것들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면서” 한데 모였다가 마음속에 파도치는 풍경을 선사한다.

4부에 단독으로 묶인 「그리움의 자리―이성복 형에 대한 기억」은 시인 이성복과의 오랜 문우지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고백록이면서 동시에 들끓었던 지난 동세대의 문학과 시인들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의 연서로도 읽힌다. 랭보의 시구에서 빌려온 제목의 한 귀퉁이, “북극꽃”들에 담긴 저자의 애틋함과 재기만큼이나 솔직한 글이다.

‘1980년대 문학’이란 1970년대 긴급조치를 남발하던 유신 체제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체제에 항거 혹은 항의하다가 유폐된 경험을 가졌으며, 급작스런 정권의 몰락으로 민주화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12·12 군사 쿠데타로 독재를 연장시킨 제5공화국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게 된 세대가, 새 정권의 초입에 일어난 학살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책을 원죄처럼 안고 독재의 종식과 민주화를 절대적인 지상명제로 내세우며 전개한 문학적 실천들을 뭉뚱그려 지칭한다. 〔……〕 사회적으로는 특별히 많은 수가 제도권의 지적 공간(가령 대학) 안에 정착하는 한편 문화적으로는 비공식의 경계 안에서 모든 이념과 언어가 허용되었던, 기이하게 금제된 해방구의 뚜껑 밑에서 들끓다가 그 문화 공간 내에서 혹은 그 문화 공간이 바깥으로 외재화되면서 발달한 행동 공간을 통해 점점 더 급진화되어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를 이끌어냈던 정치적 파도와 다양한 방식으로 길항한 세대가 산출한 문학이기도 하다. 〔……〕 앞의 내용은 수없이 되풀이된 1980년대 문학에 대한 공식적인 해석을 포함하고 있지만, 뒤의 내용은 흔히들 잊었거나 외면해온 이면의 복잡한 사실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을 동시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1980년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만큼 1980년대는 강렬했고 그 시대의 문화적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문학은 말할 나위도 없이 가장 야단스러웠다. 〔……〕 (이 진화) 운동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던 것은 근본주의적 정념이었다. 부당하게 연장된 독재 정권이라는 절대악과 싸우기 위해 그들은 옳아야 했고 옳은 것보다 더 옳아야 했다. 〔……〕 그것이 오늘날 세상의 허다한 사회적 요구 혹은 실천들과 실질적으로 다른 점이었다. 〔……〕

그들이 자신들의 근본주의적 정념을 자신의 이해와 무관한 것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삶의 지평을 공적 혹은 사회적 차원에서 제기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간단한 사실이 왜 중요한가? 바로 민주화 이후 모든 삶의 부면들은 개인적인 이해와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 놓였기 때문이다. 〔……〕

1980년대 문학의 지배적인 담론은 사회를 집단들의 충돌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때 개인적 이해로부터의 초월은 집단의 이익으로 귀결한다. 세계 곳곳에서 출몰하는 근본주의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 그러나 저 ‘이해의 초월’이라는 명제의 잠재성은 지금 썩 유효한 것이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미학의 핵심적인 원리가 아닌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읽으며, 문학의 ‘써먹을 수 없음’에 대한 김현의 성찰을 통해, 롤랑 바르트가 “노동 가치”를 발견했던 플로베르의 절차탁마에서, ‘숭고’에 관란 리오타르의 망설임을 보며, 우리가 깨친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1980년대 문학은, ‘잠재’라는 어휘가 그대로 가리키듯, 그들의 글쓰기의 무의식적 실천 속에서 미래를 향하여 작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1980년대 문학을 돌이켜본다면, 바로 그것을 발굴하기 위해서이다.

―「책머리에에서

목차

책머리에 / 문턱에 걸터앉아 수다를 떨다—서문은 언제 쓸 건고?

제1부
문학의 사회적 지평을 열어야 할 때
서러움의 정치학―시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과/어떻게 싸우는가에 대한 사색
추상적 민중에서 일상적 타자로 넘어가는 고단함—『나는 너다』를 되풀이해 읽어야 할 까닭

제2부
이별의 ‘가’와 ‘속’—『남해 금산』과 ‘연애시’ 사이
그의 시를 풍요하게 읽자—이성복의 「제대병」을 중심으로
망가진 이중 나선—김혜순의 『불쌍한 사랑 기계』
순환하는 사막의 책—김혜순의 『당신의 첫』
모독의 사랑 방정식—다시 쓰는 최승자
날개 깁는 여인의 노래—김정란의 여성주의적 내기
동혈(動血)함의 존재론—김영승의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
타인의 운명에 보태기—송재학의 『얼음시집』
엉뚱한 이야기로서의 시적 진술의 미학적 효과—원구식의 「물길」
패인, 매인, 시인—황인숙의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제3부
의지의 충만에서 무의미의 역동성으로—김정환론
신부(神父)에서 신부(新婦)로 가는 길—황지우의 『오월의 신부』
육체의 내부에 우주, 아득하여라—고형렬의 『유리체를 통과하다』를 통해 초대칭성 병렬의 문체와 ‘나’의 주어성의 의미
우렁이의 시학—최두석의 시
자신을 부르는 소리—고정희의 『여성 해방 출사표』
여성시의 진화—김승희와 김혜순
자기응시의 미덕—백무산의 『그 모든 가장자리』
시인됨의 뜻—정일근의 『그리운 고으로 돌아보라』

제4부
그리움의 자리—이성복 형에 대한 기억

후기/ 최후의 서문, 최선의 후기

작가 소개

정과리

1958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조세희론」으로 입선하며 평단에 나왔다. 저서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존재의 변증법 2』(1986),『스밈과 짜임』(1988),『문명의 배꼽』(1998), 『무덤 속의 마젤란』(1999),『문학이라는 것의 욕망─존재의 변증법 4 』(2005),『문신공방 하나』(2005),『네안데르탈인의 귀환─소설의 문법』(2008), 『네안데르탈인의 귀향─내가 사랑한 시인들·처음』(2008) ,『글숨의 광합성─한국 소설의 내밀한 충동들』(2009) 등이 있으며, 소천비평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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