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6백만 독자를 사로잡은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작가 피어시그의
매혹적인 통찰과 도전적인 주장
‘다른’ 것이 ‘틀린’ 것이 되어버린
이분법적 세계관을 겨냥한 일침!
23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6백만 독자를 사로잡은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의 속편 『라일라-도덕에 대한 탐구』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피어시그는 이 작품에서 “정상적인 정신 상태란 진실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바에 순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일 뿐이다. 진실은 순응하는 편에 있을 수도 있지만, 때때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오늘날 세상과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경직된 세계관에 일침을 놓는다.
전작에서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거대한 질문을 던져 인생의 가치와 그 가치를 탐색할 사유의 힘을 독자에게 전하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객관성의 덫에 걸려 ‘가치’를 학문에서 제거해버린 인류학의 문제점을 통해 이 세상의 문제를 진단한다.
피어시그에 따르면 오늘날 인류학의 정도(正道)로 여겨지는 ‘객관성’에 의존하는 연구 방식은, 유동적인 인간과 사회를 19세기 고전적 과학 탐구의 방식으로 연구한 프란츠 보아스 이후로 인류학계가 견지해온 방식이자 동시에 한계다. 이는 현실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는 이분법적 관념으로 사람들의 관점과 사고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피어시그는 ‘객관성’만을 중시하고 인류학에는 어떤 가치도 존재하는 않는다는 관념을 공격하여 ‘오늘날 여기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가능케 한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적 질서를 탐구했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행동은 ‘가치 판단’에 따른 것이며, 생명과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일은 윤리적 활동이다. 과학 또한, 사회-가치-로부터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설명할 사고 틀로서, 기존의 학문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서 ‘질의 형이상학’을 제시하고 있다.
요컨대 『라일라』는 작가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에서 시도했던 ‘질(質)’―즉 ‘가치’―에 대한 탐구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다. 작가 피어시그는 전작에서 펼친 ‘질’ 또는 ‘가치’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를 넘어, 인간의 구체적 숨결이 느껴지는 삶의 현장 한가운데서 이에 대한 탐구를 이어간다.
라일라는 ‘질(質)’이 높은 인간인가?
동료 교수를 통해 인디언 문화를 접하게 된 파이드로스는 그동안의 문화인류학이 과학적 방법에 기대어 가치적인 것을 불분명한 것으로 치부하고 학문의 영역에서 배척한 것을 깨닫고, 이러한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제도권 학문에 반하는 연구를 한다. 파이드로스는 보트 여행을 하며 이러한 연구를 하는데, 잠시 정박한 킹스턴에서 라일라라는 여자를 만나 뜻하지 않게 하룻밤을 보낸다.
여행 도중 알게 된 변호사 라이절에 따르면 라일라는 “아주 질이 낮은,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다. 하지만 파이드로스는 그녀와 요트 여행을 함께하게 되고, 여행 동안 라일라를 통해 한때 자신을 혼란과 질곡으로 몰아넣었던 형이상학적 문제인 ‘질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다시 한 번 깊은 성찰에 빠져든다.
정신병을 겪으면서 어려운 시기를 보낸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첫 작품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로 유명 작가가 된 피어시그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첫째 아이와 같아서 언제나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이긴 하지만, 만약 백 년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이 두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라일라』를 더 중요한 책으로 여길 것이라고 예견하며 이 책에 대한 애정과 확신을 드러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적 변혁이다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은 인류학과 같이 폭력적인 이분법적 관념에 대응하기 위한 이론이 ‘질의 형이상학’이다. ‘질의 형이상학’에 따르면, 질에는 정적(靜的, static)인 것과 동적(動的, dynamic)인 것이 존재한다. 세상에는 기존의 어떤 가치 패턴(정적인 가치 패턴) 체계로도 포착할 수 없는 동시에 정의가 불가능한 요인이 있는데, 파이드로스는 그것을 동적인 질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생명의 창조와 진화 과정 및 가치 있거나 의미 있는 이 세상의 온갖 변화 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 동적인 질로, 이러한 동적인 질과 정적인 질의 관계와 작용 원리에 따라 우리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벗어나 세계의 많은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드로스는 ‘동적인 질’이라는 개념을 동원함으로써 이제까지 인류학이든 사회학이든 정치학이든 철학이든 이른바 기존의 확립된 학문 체계가 설명할 수 없었거나 설명하기를 아예 거부했던 문제들을 명쾌하게 파헤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시각―세계를 조망하기 위해 그동안 동원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칸트가 ‘선험(a priori)’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사건’을 ‘코페르니쿠스적 변혁’이라 하듯이, ‘질’ 또는 ‘가치’ 또는 ‘도덕’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파이드로스가 유도한 시각의 혁명적 변화는 실로 지성사에 기록할 만한 또 하나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혁’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과 함께 『라일라』가 갖는 지성사적 의미는 문학이나 철학의 차원을 뛰어넘어 근본적인 인식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두루 문제가 될 만한 획기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얽매이지 말고 즐겨라!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에 펼쳐놓은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논의에 부담을 느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라일라』가 도대체 소설인지 철학책인지를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이 작품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위상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소설 속 작중인물들의 반응이나 생각의 흐름에 대한 묘사들은 개연성과 박진감으로 충만하다. 두 인간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지탱하면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 과정 역시 긴장감이 가득한데, 독자라면 누구든 내성적이며 관념적인 성향의 남성과 외향적이며 즉물적인 성향의 여성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인간의 만남이 어떤 결론이 날지 흥미를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작가의 입장이나 이론이 무엇이든 얽매이지 않고, 독자는 자신의 방식대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통찰할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피어시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질의 형이상학’의 적용의 실례를 보여주며 미국의 정치 ‧ 사회 ‧ 지적 역사의 문제들을 폭넓게 살핀다.
유럽 문화와 이 문화에 대해 타자 역할을 해야만 했던 여타 문화들 사이의 근원적인 차이와 상호 관계에 대해, 미국적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해, 사회적 가치 패턴이 중시되던 과거에서 지적 가치 패턴이 중시되는 현대로의 변화가 인간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뉴욕과 같은 거대 도시가 사람들에게 삶의 주된 공간이 된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 그리고 광기의 본질과 사회적 인식 사이의 차이에 대해 사유와 통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
『라일라』에 등장하는 화자의 목소리에서는 어딘가 허물없이 말을 건네는 서민의 무게와 마크 트웨인의 노련한 지혜가 감지된다. _선데이타임스
피어시그는 자신의 이야기에 매혹적인 통찰과 도전적인 주장을 고루 흩뿌려 놓았다. _더 가디언
이는 언제든 되돌아와서 다시 읽을 그런 책, 감사해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을 그런 종류의 책이다. _더 스코츠먼
『라일라』는 아무리 봐도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을 법한 항해, 철학, 성, 광기라는 네 악기가 어우러져 연출해 낸 멋진 즉흥곡이다. _뉴욕타임스 북리뷰
씌어져야 했기에 씌어졌다는 사실을, 항해의 여정은 대단히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깨닫게 하는 이 이야기의 이면에는 여전히 이 같은 끔찍한 광기의 느낌과 현실감이 존재한다. _타임아웃
독자는 현대 철학이라는 우주를 가로지르는 끊임없이 자극적인 이번의 항해로 인해 깨달음을 얻지만, 그 와중에 또한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_뉴욕타임스
■ 본문 속으로
그의 괴팍한 성품 가운데 핵심을 이루는 것은 그가 “객관성”을 인류학 연구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는 점 같아 보였다. 그는 인류학 연구자가 지켜야 할 올바른 규범 어디에도 객관성이라는 것이 차지할 자리는 없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_65쪽
인류학에는 어떤 가치도 존재하는 않는다는 생각을 파이드로스는 “공격 지점”으로 자신의 마음에 기억해두었다. 바로 그곳이야말로 그가 장벽을 가장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지점이었다.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이곳이야말로 그가 공격을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_110쪽
어느 글에선가 클러콘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온전히 이치에 닿는 것이 되도록 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기반을 제공하는 것은 가치다. 왜냐하면 모든 문화의 실질적 조직화는 일차적으로 가치에 의거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치에 대한 언급을 배제한 채 한 문화의 모습을 제시하려 하자마자 곧바로 이 점은 확연한 사실임이 판명될 것이다.” _118쪽
이런 식으로 동부 쪽으로 올 때마다 항상 우울한 느낌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곤 했다. [……] 그는 모든 것이 한층 더 계층화되어 있는 이곳 삶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부유한 사람들은 더욱 부유해 보이기 시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 보이기 시작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들의 표정을 보면 그들은 이런 계층화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곳 뉴욕에서는 당신이 가난하면 자기 자신을 그냥 가난한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당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 만일 당신이 부유하면 당신은 정말로 소중한 존재가 된다. 바로 이 사실이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95퍼센트는 해명을 가능케 하는 것처럼 보였다. _165~66쪽
질은 곧 도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오해가 없기 바란다. 질과 도덕은 동일한 것이다. 질이 만일 세계의 근원적 현실이라면, 도덕 역시 세계의 근원적 현실이다. 말하자면, 세계는 근원적으로 도덕적 질서 체계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 위선적 태도의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꿈속에서조차, 정말로 멋진 꿈속에서조차 절대로 생각해볼 수도, 들어볼 수도 없는 도덕적 질서, 바로 그런 도덕적 질서다. _190쪽
어떤 경우에든 별나다는 것이 진위의 검증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상식적인 것―즉 별나지 않은 것―에 대한 신뢰감은 18세 이전의 나이에 습득한 한 무더기의 편견일 뿐이다. _192쪽
“부적격자는 무언가 상황을 설명해주는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는 말들 가운데 하나다. “부적격자”라는 말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있다면 이는 다만 무언가가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_217쪽
질의 형이상학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보다도 이것이다. 만일 도덕적 판단이란 본질적으로 가치의 표출이고 가치란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라면, 도덕적 판단은 곧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다. [……] 요컨대, 단지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윤리적 활동이다. _303쪽
현실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는 이 이분법적 과학에는 도덕이 들어설 자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 현실을 주체와 객체로 나누는 이분법적 과학의 시각에서 보면, 세계란 완전히 목적도 없고 가치도 없는 장소일 뿐이다. 세상 어느 것에도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옳지 않고, 아무것도 그르지 않다. [……] 바야흐로 역사상 처음으로 지성이 사회를 장악하게 되었는데, 지성이 사회를 운용할 수단으로 동원한 지적 패턴이 이것이었단 말인가. _527~28쪽
“과학이 실제로 사회로부터 정확히 얼마나 독립적인가.” “전혀 독립적이지 않다”가 질의 형이상학이 제시하는 답변이다. 사회적 패턴을 전혀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 과학은 생물적 패턴을 전혀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 사회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부조리한 것이다. 이는 아예 가능치 않은 것이다. _564쪽
미국의 사회적 타락화에 책임을 져야 할 주범은 바로 도덕과 관계없는 “객관성”을 내세우는 바로 이 지적 패턴이다. 이 지적 패턴이 타락을 막는 데 필요한 정적인 사회적 가치들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억압을 자유의 적으로 몰아 비난하는 가운데, 이 지적 패턴은 사회적 억압에 맞서 싸우던 갈릴레이와 사회적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일반 범죄자들을 구별케 하는 단 하나의 도덕 원리도 제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갈릴레이와 일반 범죄자들 양자 모두를 옹호하는 투사가 되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문제의 근원이다. _577쪽
“광기는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지만, 무엇이 광기를 구성하는가의 기준은 문화마다 다르다. [……] 인류학자들이 입증해 보인 또 하나의 사실은 광기에 대한 정의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정신 상태 그 자체에 대한 정의도 문화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 사람들이 관찰하여 “진실”이라 확인하는 사실들조차 그들이 살고 있는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_623~26쪽
라일라-도덕에 대한 탐구
역자 후기 · 여전히 하고 싶은 말,
사서 보든 빌려 보든 베껴 보든 빼앗아 보든 훔쳐 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