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소년 구야, 국제 가출을 감행하다!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이르기까지,
하멜 일행과 떠난 열세 살 구야의 파란만장 세계 표류기!
조선 시대, 하멜 일행을 따라 ‘국제 가출’을 감행한 소년이 있었다?!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난파한 스페르베르호의 선원들은 13년이 지나서야 고향 길로 향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훗날 ‘하멜 표류기’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만약 이들 일행에 조선 소년이 섞여 이른바 ‘국제 가출’을 감행했다면?
두 권의 작품을 펴낸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 희곡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고유의 세계를 실현하고 있는 김나정의 첫번째 성장소설 『구야, 조선 소년 세계 표류기』는 바로 그런 유쾌한 상상에서 출발했다. 정든 고향을 떠나 하멜 일행과 함께 험난한 항해 길에 오른 열세 살 소년 구야가 그 주인공. ‘하멜 표류기’라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펼쳐지는 구야의 기나긴 여정은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때로는 주저하고 머뭇거리기도 때로는 가슴 먹먹해질 만큼 외롭기도 하지만, 꿈을 좇아 새로운 세상과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구야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신나는 모험의 세계로 이끈다. 이 책을 통해 『1653년 바타비아발 일본행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일지』(‘하멜 표류기’)에는 실려 있지 않은, 조선 소년 구야의 파란만장한 모험담 속으로 들어가 보자.
“1666년(현종 7년) 열세 살이 되던 겨울, 구야는 그렇게 조선을 떠났다. 1653년(효종 4년) 일본으로 향하다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서 난파했던 스페르베르호 선원들은 13년이 지나 고향 길로 향한 것이다. 구야는 네덜란드 선원들과 조선을 떠났다. 바람을 품은 돛은 팽팽하게 부풀었고 배는 검은 바다로 미끄러져 나갔다. 하지만 네덜란드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화가를 꿈꿔온 소년 구야의 대담무쌍한 세계 방랑 대모험
전염병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주막집 머슴살이를 하게 된 구야. 화원이었던 할아버지를 따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 선원들을 만나고, 구야는 네덜란드인과 조선인 사이에서 태어난 한나와 가까워진다. 우연히 구야는 억류되어 있던 네덜란드 선원들의 탈출계획을 듣게 되고, 그들을 도와 조선 땅을 떠난다. 나고 자란 땅을 떠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붓 한 번 못 잡아보고 빗자루질만 하다 머슴으로 죽을 순 없다는 생각이 구야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그러나 네덜란드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동인도회사 소속이었던 네덜란드 선원들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도착한 후에 극진한 대접을 받았지만, 조선인이었던 구야는 돼지치기로 지내야 했던 것. 목 빠지게 네덜란드로 떠나는 배에 오를 날만을 기다리던 중, 그곳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한 젊은 남자의 자화상은 구야의 눈을 사로잡는데……
그 그림은 구야에게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화가로서 자기 얼굴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한다. 과연 구야는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자신만의 자화상을 완성할 수 있을까?
구야, 구야를 그리다!
구야의 험난한 여정이 그러했듯, 4년이라는 긴 시간을 표류하며 마침내 세상에 나오게 된 이 소설은 ‘하멜 표류기’와 ‘렘브란트’라는 역사적 사실에 조선 소년의 ‘국제 가출’이라는 유쾌한 상상력을 버무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주인공 구야의 여정을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하멜 표류기’를 배경 삼아 주인공 구야가 드넓은 바깥세상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구야의 꿈을 구체화하고 완성해가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조선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구야의 여정은 본인의 자화상을 완성해가는 과정과도 맞물린다.
우여곡절 끝에 구야는 렘브란트를 만나 그의 마지막 자화상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고, 야심만만했던 젊은 시절의 그와, 시간의 흐름이 바꾸어 놓은 그의 얼굴을 보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자화상이라는 것은 곧 그가 대면한 자기 자신,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 그 자체라는 것을. 작가는 이로써 독자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그가 보고 듣고 느끼고 또 함께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마음의 풍경을 채워 나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자화상을 그리는 건, 자기와 마주 보는 일입니다. 자기 내면을 대면하는 것이죠. 한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는 일과 다를 바 없겠죠. 〔……〕 구야의 자화상은 남들 얼굴로 만들어집니다. 나도 남을 만드는 조각이 되지요. 그렇게 주고받으며 우리는 세상 풍경의 일부가 됩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또한 배 위에서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모험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울러 튤립이 피고 풍차가 돌아가는 네덜란드의 이국적인 풍경과, 당시 일본 나가사키 사람들의 생활상도 그려내어 새록새록 읽는 재미를 더한다.
■ 책 속으로
“우리, 곧 여기서 달아날 거야.”
탈출 계획을 일러준 이는 한나였다. 홍 판서댁 딸이 시집가는 날을 거사 일로 삼았다고 했다.
“구야, 너도 같이 갈래?”
구야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거기 가면 그림도 그리고, 배불리 먹을 수도 있어.”
나고 자란 땅을 떠날 결심을 하긴 어려웠다. 주막집 헛간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만약 네덜란드 선원들이 모두 떠나버리면, 구야는 또다시 혼자가 된다. 더 이상 홀로 남겨지는 건 싫었다. 한나가 떠난다. 단 하나뿐인 단짝 동무였다. 염라댁의 머슴으로 평생을 살 생각은 없었다. 붓 한 번 못 잡아보고 빗자루질만 하다가 야산 중턱에 묻히긴 더욱 싫었다. 구야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내쳐졌다. 입조심하고,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핌은 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못마땅해하는 네덜란드 선원들을 위해 배도 수소문했다.
그렇게 조선을 떠났는데, 낯선 일본 땅에서 붙잡히다니. 애초에 조선 땅을 떠나온 게 잘못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길도 없었다. 구야는 막막한 마음으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51쪽)
칠면조 노인은 궁둥이를 붙이고 한 풍경만 보는 건 질색이라고 했다. 화가는 구름처럼 흘러다니며 땅은 종이로 발은 붓 삼아야 한다는 거다. 그는 정해진 거처도 없이 민들레 홀씨처럼 떠돌아다니는데 기회만 된다면 세계 유람을 하고 싶다고 했다. 독토르가 보여준 세계지도가 떠올랐다. 지도를 보면 세상에는 정말 많은 나라가 있다. 조선은 지도에서 새끼손톱만 했다. 데지마는 벼룩이었다. 구야가 태어나고 자란 곳, 지금 있는 곳은 모두 세상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지도는 구야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종이 한 장이 구야 앞에 넓은 세계를 펼쳐주었다. (92쪽)
희망봉.
위도도의 ‘고래’와 티셰의 ‘진수성찬,’ 구야의 ‘그림’도 희망의 다른 말이었다. 티셰는 네덜란드에 도착해 갖가지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앉은 모습을 상상하며 허기를 달랬다. 위도도는 작살이 꽂힌 고래를 항구까지 끌고 가는 꿈을 꾸며 펌프질을 했다. 구야는 카피탄 집무실의 벽에 걸린 화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네덜란드로 가서 그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희망은 빌지의 쥐들이 살아갈 밑천이었다. (136쪽)
졸리 로저 기 덕분에 한시름 놓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이 날로 시들해졌다. 상상도 하지 않고, 공도 들이지 않고, 대충대충 그리는 해골바가지에 정이 붙질 않았다. 머리와 가슴, 손이 따로 놀았다. 전투 때마다 졸리 로저 기는 불타고 찢겼다. 코를 푸는 휴지 같았다. 허망했다. 남을 겁주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게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도 누가 해골 그림을 그리는지 관심이 없었다. 구야는 손만 놀려댔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싶었다.
그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167쪽)
팔짱을 끼고 흐뭇한 얼굴로 자기 그림을 내려다보는 렘브란트의 얼굴은 카피탄의 집무실에서 봤던 자화상과 닮았다. 구야가 카피탄의 집무실에서 그의 자화상을 봤다고 하니, 렘브란트는 돈만 아는 놈을 골려주려고 그린 그림이라며 껄껄 웃었다. 데지마에서 그림으로 봤던 사람을 여기서 직접 만나게 되다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렘브란트도 데지마까지 흘러간 자기 자화상을 본 사람을 만났다며 건배를 외치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구야는 렘브란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데지마에서 본 자화상 속의 남자는 야심만만한 젊은이였다. 팔짱을 끼고 구야를 노려봤던 그 젊은이가 저렇게 볼품없는 늙은이로 변했다니. (208쪽)
『1653년 바타비아발 일본행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일지』. 아래쪽에 ‘하멜’이란 저자 이름이 보였다. 구야는 주인에게 차 대신 책을 사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구야는 토탄통을 부엌에 두고 다락방에 올라갔다. 허겁지겁 촛불을 밝히고 서툰 네덜란드어 실력으로 읽어나갔다. 하멜은 괴상한 사람들이 사는 이상한 곳에서 자신들이 겪은 고초를 써 내려갔다. 마지막 장까지 읽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끝까지 읽었지만 구야는 나오지 않았다.
구야는 거기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간 걸까.’
분명히 그들과 함께 조선을 떠났다. 하멜은 임금을 받기 위해 쓴 보고서에서 구야를 빼버렸다. 무슨 까닭에서였을까? (232~33쪽)
프롤로그
제1장 망망대해의 구야
제2장 데지마의 돼지치기
제3장 황금 히아신스호, 빌지의 쥐
제4장 여왕의 복수자호, 해골 화가
제5장 암스테르담의 죄수, 교수대에 서다
제6장 구야, 구야를 그리다
작가의 말
웹소설 플랫폼 조아라에서 대체역사 웹소설을 연재하고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던중 이 책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주인공이 암스테르담에 있었던 시기와 저의 소설의 배경시기가 일치하여 주인공의 집을 저의 소설 인물들이 방문하였습니다. 김나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