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톨츠

대산세계문학총서 124

원제 Stolz

파울 니종Paul Nizon 지음 | 황승환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7월 14일 | ISBN 9788932026336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67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난 정말 모르겠어.”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파울 니종,
태양의 화가, 열정의 화가 고흐를 만나다

파리에 거주하며 독일어로 글을 쓰는 스위스 국적의 작가 파울 니종Paul Nizon은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유럽권의 유수의 문학상들을 휩쓸고, “오늘날 독일어권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또는 “현재 가장 위대한 독일어의 마술사”라고 칭송받는 작가다. 독일과 프랑스를 기반으로 유럽 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는 파울 니종의 장편 『슈톨츠』(대산세계문학총서 124)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삶에 대한, 삶을 위한 동기가 없는 20대 초반의 청년 슈톨츠의 방황을 그린 이 소설은 현대 서구 염세주의에 대한 사이코그래프라고 할 수 있다. 김나지움을 졸업한 슈톨츠는 규격에 맞춘 삶이 싫어 대학 진학을 거부하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으며, 스스로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무언가가 일어나기만을 바란다. 그러던 중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생애 처음으로 열정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글쓰기는 자신을 찾아가는 개인주의적인 작업이라고 말하는 니종은 이 작품을 40대 중반 파리에 처음 건너가 혼자 생활하던 “고독의 시기, 깊은 혼란의 시기”에 썼다고 한다. 니종의 자전적 역사와 겹치는 슈톨츠의 인생 여정, 많은 부분 인용되는 고흐의 편지글은 이 작품이 주인공 슈톨츠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20대 중반의 그리고 40대 중반의 니종의 전기와 고흐의 전기가 함께 녹아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혼 속에 위대한 불꽃을 품고 있지만, 자신을 녹일 만큼 이 불꽃에 다가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_빈센트 반 고흐


슈톨츠적 병 — 현대인을 감싸고 있는 허무와 자아 찾기

그 무엇에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는 슈톨츠. 그는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에 안주하는 규격화된 삶을 거부하지만, 삶의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배회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대학 미술사학과에 진학하고, 처음으로 빈센트 반 고흐에게 사로잡힌다. 처가의 도움을 받아 고흐에 대한 논문 작업을 시작하지만 고흐의 편지글을 읽는 이상의 진척이 없다. 고흐의 불꽃을 자신이 것으로 만들기에 슈톨츠는 역부족이다. 슈톨츠는 그림의 원본을 직접 보고 영감을 얻고자 네덜란드 여행을 계획한다.

슈톨츠는 “자신의 생활환경 전체”를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만들어놓은 옷”처럼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은 주체성과 정체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또한 슈톨츠를 감싸고 있는 허약한 내적 충동이나 절실한 욕망이 없는 상태는 현대인의 기본 감성 중의 하나인 권태와 연결된다. 권태는 실존적 무관심이라고 할 만하다. 권태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세상과의 교유에 무관심하고 매사에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며 주관성도 없이 자기 자신에 얽매여 있다.
고흐의 창조적 열정이 슈톨츠에게 “아주 소박하게”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 인식과 실천, 앎과 행동은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슈톨츠는 스스로를 “열정이 없는 인간”이며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정당성”마저도 없는 인간이라고 간주한다.
하지만 슈톨츠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는 시달리고 있다. 어쩌면 슈톨츠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슈톨츠적인 병”에 걸렸으나 누구보다도 살고 싶은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로 떠나기 직전 사냥을 하러 겨울 숲으로 들어가면서 슈톨츠는 ‘난 숲 속으로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어, 언제나 숲의 경계까지만 왔었지’라고 생각한다. 슈톨츠는 고흐의 삶과 대면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세상과 삶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자아와 삶의 경계에서 부동했던 슈톨츠는 이제 불완전하게나마 경계를 넘어 숲 속으로, 현실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추적하는 작가 니종은 슈톨츠를 통해 작가 자신이 앓고 있던 의지결여증이나 자아의 상실 또는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슈톨츠적 병”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니종의 말을 빌리자면 “슈톨츠의 자기 해체적 경향은 죽음에 대한 동경일 뿐만 아니라 세상과 합일하려는 보다 높은 단계에 대한 동경”이다. 이 작품으로 니종은 항구적인 미몽 상태에 있던 염세주의자를 내면에서 죽이고 미지의 자아에 대한 새로운 탐색과 다음 단계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파울 니종과 자전적 허구

파울 니종이 자신의 작품을 “잠정적인 자전적 허구”라고 표현하듯, 『슈톨츠』 역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바탕이 된 작품이다. 니종은 생활비를 손수 벌어 고학으로 대학공부를 했다. 또한 슈페사르트 지역에 칩거하며 고흐에 관한 박사 논문을 썼으며, 논문 집필 당시 이미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다. 또한 슈톨츠와 같이 니종도 네덜란드로 가서 고흐의 그림을 보고자 했다. 그의 작품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인 만큼, 그리고 작가 스스로 빈센트 반 고흐에게 영향을 받았던 만큼 『슈톨츠』의 기본 줄거리는 니종의 자전적 이야기이고, 고흐의 서간집 인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니종의 모습을 반영하는데, 니종은 1977년 이래 30년 이상을 파리에서 생활하면서도 프랑스로 귀화하지도 않았고 프랑스어가 아닌 독일어로 글을 쓰면서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머물기를 자처한다. 그가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느끼는 그 낯선 감정, 그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 그의 글쓰기의 본질이다. 니종의 글쓰기는 자기 확인인 동시에 실존의 형식이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스토리 중심의 글쓰기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 찾기라는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개인주의적 작업’을 위해 소설과 에세이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을 지속적으로 실험하는 파울 니종은 세계 문학계의, 독자들의 문학 체험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 본문 속으로

자신의 생활환경 전체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놓은 옷 같았고, 그는 바로 그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생활환경 밖에서 마치 겉도는 듯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는 무한한 수치심을 느꼈다. _10~11쪽

이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내면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 틈에 섞여들었다. 도시의 활기찬 지역에서 이리저리 거닐 때면,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도시가 줄어드는 것을 막으려고 잠시 더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예전에 알던 사람들과 연락해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대화도, 우정도, 사교도, 사랑도 꾀하지 않았다. _30쪽

그는 새내기가 아닐뿐더러 대학생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김나지움을 졸업한 다음 학교도 학생도 더 이상 볼 수 없었으며, 그런 것들은 소름 끼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공사판에서 일했고, 그다음에는 남이탈리아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임시직으로 생계를 이어온 지가 벌써 2년이 되었으며,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노라고 말했다. 그는 목표도 없이 아무렇게나 살고 있다고 했다. _35쪽

그들은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부끄럼 없이 지니고 다녔으며, 심지어는 그것을 과시할 정도로 편협했다. 그들은 졸업 후의 경력, 공직, 취직자리 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추측했고 짬이 나면 상아탑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는 자신이 그들의 무리에 포함된다는 것이 부끄러웠으며, 그 때문에 그는 가능한 한 은밀하게 강의실로, 뿐만 아니라 반구형 지붕을 가진 정신의 건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그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강의 내용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강사들은 그가 살아오면서 거의 접해보지 못했던 다른 세상의 비밀 언어로 대상에 관해 말했고, 학생들은 그들의 독백에서 그는 전혀 모르는 어떤 사실들을 떼어내 공책에다 기록했다. _37~38쪽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그가 몰두한 것은, 아니 그가 사로잡힌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수업 과제에 속하지 않는 배경들이었다. [……]
당시 박물관에서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가 크게 열리고 있었다. 현대, 특히 동시대는 수업 시간에 피상적으로만 언급되었을 뿐인데도 전시된 작품들이 세미나 수업에서 다루어졌다. [……]
그것은 분노와는 구분되는, 작품에 몰두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모든 것에 대한 광기 서린 몰두, 풀, 나뭇가지, 의자, 신발, 마차 등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 그것은 독점욕이 강한, 자신을 갉아먹는 그런 힘이지만 삶을 일깨우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이 세포조직과 신경까지 밀고 들어와서, 사물들을 자극하고 확장시키고 늘이고 고동치게 만들고 빛을 발하게 하고 외치도록 만들었다. _55~57쪽

“[……]본의 아니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녀석 말이야. 행동하고픈 욕망이 이 놈팡이의 마음을 갉아 먹고 있는 거야. 그런데도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왜냐하면 그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지 못한 거야. 또한 그는 생산적인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 또한 불운한 처지가 그를 그 지경까지 내리누른 것이기도 하지. 그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결코 알지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능적으로 ‘나는 어디엔가는 쓸모가 있어. 나는 살 권리가 있는 거야.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 무엇으로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으며, 무엇에 기여할 수 있을까? 내 속에는 무언가가 있어. 그런데 그게 뭐지?’라고 느끼는 거야. 이런 사람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게으름뱅이야.” _72쪽

그가 학생이든, 결혼을 했든, 가장이든, 논문을 준비하고 있든 간에 실제로는 삶에 대해 어떤 책임이나 관심도 없다는 이 내면의 알림이 그에게 불현듯 나타났다.
그는, 슈톨츠는, 여태껏 사물에 대해서든 인간에 대해서든 딱히 관심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이제 딴사람이 되어 인간 사회를 위해 무언가 유용한 것, 무언가 이타적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헌신적인 일을 많이 할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정말 곤경에 처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는 다만 내면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각오를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것뿐이었다. _74~75쪽

한밤중에 방 안에서 슈톨츠는 열정을 느꼈다. 모든 다른 사람을 가득 채워주었음에 틀림없는 그런 열정을. 이러한 열정 때문에 빈센트가 또다시 아주 소박하게 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었다—불만 없이 고요하게. 그는 결코 공허함으로 고통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무슨 일이건 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아마도 열정 덕분에 불행의 나락에 완전히 떨어진 적도 없었을 것이라고 슈톨츠는 중얼거렸다. 자신은 열정이 없는 인간이며 아마도 그 때문에 존재의 정당성마저도 없다고 생각했다. _76~77쪽

‘차라리 바로 되돌아가는 편이 좋겠어. 모두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내가 더 잘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한데, 정작 나만 까맣게 모르고 있는 거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 _104쪽

‘난 숲 속으로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어. 언제나 숲의 경계까지만 왔었지’라고 슈톨츠는 생각했다. _138쪽

목차

슈톨츠

 

옮긴이 해설 · 파울 니종과 자전적 허구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파울 니종Paul Nizon 지음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나 베른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에서 예술사 · 고고학 · 독일 문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럽 각지로 여행을 많이 했는데, 이때의 체험들은 그의 작품에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다.
1955년에서 56년 사이에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독일 슈페사르트 삼림 지역에 칩거하며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박사 논문 작업을 했으며, 고흐의 작품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로 떠났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집필한 작품이 『슈톨츠』다. 1957년 고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1년에는 스위스의 저명한 일간지 『노이에 취리히 차이퉁』의 예술평론을 담당했으나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8개월 만에 그만두고 1962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칸토』를 발표했다. 1975년에는 『슈톨츠』를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독일 브레멘 시에서 수여하는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7년 스위스 문학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스위스의 협소함을 벗어나 세계에 기대야 한다며 떠난 이후 현재까지 줄곧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독일어로 글을 쓰고 있다.
독일의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상, 브레멘 문학상, 주어캄프 재단의 토르셀로상, 스위스 실러 재단상, 칸톤 베른 문학 대상과 유럽문학 오스트리아 국가상, 프랑스 문화예술공로상 기사상, 앙드레 지드상 등 20여 개의 상을 수상하며 독일과 프랑스에서 “오늘날 가장 위대한 독일어의 마술사”로 칭송받고 있다. 미술평론집, 산문집 등 다수의 책을 펴냈으며, 소설로는 『미끄러지는 자리들』 『칸토』 『이야기들은 집에서 끝난다』 『잠수』 『고래의 배 속에서』 『개-정오의 보고』 등이 있다.

황승환 옮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독일 명작의 이해』(공저), 『독일, 민족, 그리고 신화』(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슈톨츠』 『릴케의 베네치아 여행』 『매체이론의 지형도 I』(공역) 등이 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2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