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사회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의 신작!
투명성에 대한 전복적 사유로
독일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책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 교수(베를린 예술대학)의 신작 『투명사회』가 출간되었다. 『투명사회』는 ‘투명성’에 대한 독일 사회의 주류 담론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비판적 입장을 제시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Transparenzgesellschaft(투명사회)』(2012)와 우리 삶에 새로운 위기를 불러온 디지털 문명에 대한 진단을 제시한 『Im Schwarm. Ansichten des Digitalen(무리 속에서—디지털의 풍경들)』(2013)을 번역하여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투명성의 전체주의적 본질에 대한 전복적인 성찰을 시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투명성은 “신자유주의의 요구”다. 그것은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밖으로 표출시키고 정보로 전환시킨다. 반면 낯선 것, 모호한 것, 이질적인 것들은 투명성의 이름으로 해체된다. 『투명사회』는 부패 근절과 정보의 자유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결코 깨달을 수 없을 투명성의 시스템적 폭력성을 한병철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날카롭게 파헤친다.
투명사회는 우리를 더 많은 자유, 더 나은 민주주의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감시 상태,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몰아넣는다
오늘날 ‘투명성’은 중요한 화두이다. 정치나 경제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이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투명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람들은 투명성이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정보의 자유,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특히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등의 발달로 정보가 모두에게 동등하게 공개되고 무제한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투명한 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투명사회』에서 한병철은 이렇게 긍정적인 가치로 간주되어온 투명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투명사회는 신뢰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통제사회라고 주장한다. 투명사회는 우리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감시 상태, ‘디지털 파놉티콘’으로 몰아넣는다. 이 사회의 거주민들은 권력에 의해 감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전시함으로써, 심지어 그것을 ‘자유’라고 오해한 채 스스로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한다. 이곳에서는 빅브라더와 파놉티콘 수감자의 구분이 사라진다. 서로 격리되고 고립되어 있는 벤담식 파놉티콘의 수감자들과는 반대로 현대 통제사회의 거주민들은 네트워크화되어 서로 맹렬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고립을 통한 고독이 아니라 과도한 커뮤니케이션이 투명성을 보장한다. 투명성은 모든 것을 ‘정보’로 바꿔버림으로써, 우리를 모든 것이 완전히 털리고 발가벗겨진 ‘유리 인간’의 상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 상태, 모두가 동일해지는 상태로 나아가게 만든다.
인간을 완전히 발가벗겨진 ‘유리 인간’의 상태로 만드는
투명성의 전체주의적 본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
한병철은 투명성이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장악하여 근원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 끌어들이는 시스템적 강제력,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오늘날 사회 시스템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조작 가능하고 신속하게 만들기 위해서 투명성을 강요한다. 가속화의 압력은 부정성의 해체와 궤를 같이한다. 투명성은 낯선 것과 이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서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한다. 투명사회에서는 점차 타자가 소멸되고 나르시시즘의 경향이 강화된다. 또한 투명성 속에는 기존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는 부정성이 들어 있지 않다. 투명성은 시스템의 외부를 보지 못하고,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고 최적화할 뿐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정치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관계를 건드리지 않은 채 그저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관리하는 역할로 축소되고 만다. 선거와 쇼핑은 비슷해지고, 통치도 마케팅에 가까워진다.
한병철은 투명성의 사유를 일상과 정치의 영역을 넘어 시각적, 인식적 차원으로까지 밀고 나간다. 모든 것을 손쉽게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으로 전환해주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시각적, 인식적 부정성의 영역, 즉 가려진 것들, 비밀의 영역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공개되는 포르노적 사회, 모든 의미가 사라지고 보이는 것에만 가치가 부여되는 전시사회가 성립한다.
한병철은 모든 것이 겉이 되어가는 사회, 진리는 없고 정보만이 있는 사회, 낯선 타자와 직접 맞닥뜨릴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사람들이 오직 자신에게 익숙하게 길들여진 것만 상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된 나르시시즘적 사회의 모습을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게 느끼게 해준다.
어떤 부정성도 허용하지 않는
투명화의 흐름에 맞서 불투명성을 옹호하다!
한병철 교수의 저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독일 철학계를 넘어서 광범위한 독자층의 관심을 끌어왔다. 그러나 독일의 주요 미디어들이 한병철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한 것은 『피로사회』(2010) 때부터였다. 독일 ZDF 방송에서는 한병철을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로 소개했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그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문화 비판의 개척자로 묘사했다. 그 후 출간된 『투명사회』는 독일 사회에 다시 한 번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이라는 측면에서만 생각한다면, 『투명사회』가 『피로사회』보다도 훨씬 떠들썩했다고 말할 수 있다. 투명성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온 독일 사회였기에, ‘불투명성’에 대한 한병철의 옹호는 그토록 큰 충격을 안겼던 것이다.
한병철이 그려내는 투명사회의 모습은 오늘의 한국 사회와도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진다. 물론 고위 공직자 임명 때마다 불거지는 자격 논란이나 경제 영역에서 벌어지는 비리 사건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투명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하기에는 여전히 불투명한 사회가 아니냐 하는 의심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병철이 말하는 투명성이 정치, 경제의 영역을 넘어선, 전 영역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적 강제력임을 생각한다면, 한국 사회만큼 빠른 속도로, 별다른 사회적 숙고 과정 없이 전면적인 투명화의 흐름에 내맡겨진 경우를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개인 정보 유출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왜 연말정산 기간이 되면 소비 기록을 국가에 제출해야 하는지, ‘다본다’라는 위협적인 구호가 어떻게 인기 상품의 이름이 될 수 있는지, 왜 그토록 성형에 집착하는지, 디지털 문명과 SNS 등이 왜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를 낳지 못하는지, 왜 무한한 소통의 자유가 연대로 이어지지 못하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숙고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것이다.
언론사 추천
『투명사회』는 투명성이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며, 더 신속하고 더 좋은 결정을 내리게 해준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보여준다. _「3Sat 방송」
한병철의 사유는 세계를 아주 특별한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것이 우리를 아프게 할지라도. _「독일제2방송ZDF」
모든 비밀을 무조건 수상쩍게 바라보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자유로운 삶을 열정적으로 옹호한다. _「서독일방송WDR」
계몽주의적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놀랍도록 눈 밝은 비판을 펼쳐나간다. _『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본문 속으로
오늘날 ‘투명성’이란 단어는 마치 유령처럼 모든 삶의 영역을 떠돌고 있다. 정치에서는 물론이고 경제에서도 투명성이 강조된다. 투명성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정보의 자유,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믿음이다. 이때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하필이면 신뢰가 급격하게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단히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_5쪽
투명성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유리 인간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투명성의 폭력이 있다. 무제한의 자유와 무제한의 커뮤니케이션은 전면적 통제와 감시로 돌변한다. 소셜미디어 또한 점점 더 사회적인 삶을 감시하고 이용해먹는 디지털 파놉티콘에 가까워진다.
규율사회의 파놉티콘은 더 효과적인 감시를 위해 수감자들을 격리시키고 서로 대화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디지털 파놉티콘의 주민들은 서로 열심히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노출한다. 그들은 이로써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_7쪽
투명성의 정당인 해적당Piratenpartei은 포스트정치Post-politik, 탈정치의 길을 더 밀고 나간다. 해적당은 반反정당이며 색깔이 없는 최초의 정당이다. 투명성은 색깔이 없다. 해적당에서 색깔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몰이데올로기적인 의견인 한에서만 허용된다. 의견은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의견은 이데올로기처럼 전체를 장악하고 전체를 꿰뚫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 정치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관계를 건드리지 않은 채 그 속에 틀어박혀서 그저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관리하는 역할로 위축된다. _24~25쪽
긍정사회에서 일반화된 판정의 형식은 ‘좋아요’이다. 페이스북이 ‘싫어요’ 버튼을 도입하는 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긍정사회는 모든 종류의 부정성을 피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부정성은 커뮤니케이션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는 오직 정보 교환의 양과 속도로만 측정된다. _26쪽
소셜미디어와 개인화된 검색엔진은 네트워크 내에 외부가 제거된 절대적인 인접 공간을 수립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을 닮은 사람들을 만난다. 여기에는 변화를 가능하게 할 어떤 부정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디지털 이웃 사촌의 공간은 참여자에게 마음에 드는 세계의 단면만을 제공하며, 그럼으로써 공론장, 공적 영역, 비판적 의식을 해체하고 세계를 사적인 장소로 만들어버린다. 인터넷은 친밀성의 영역, 혹은 아늑한 지대로 변모한다. _74쪽
“지붕과 벽, 창과 문이 있는 안전한 집”은 오늘날 “물질적인 혹은 비물질적인 온갖 케이블”로 온통 구멍이 뚫려버렸다. 집은 “틈새로 커뮤니케이션의 바람이 들이치는” 폐허가 되었다. 커뮤니케이션과 정보가 일으키는 디지털 바람은 모든 것을 뚫고 들어와 투명하게 만든다. 투명사회 전체에 디지털 바람이 불고 있다. _91~92쪽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다.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것, 진실성이나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도덕적 심급이 허물어지면서 그 자리를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명령이 대신한다. _98~99쪽
오늘날 우리는 분명 다시 위기에 처해 있다. 또 하나의 변혁, 즉 디지털 혁명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보이는 위태로운 이행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다수의 대오가 기존의 권력 및 지배 관계를 무너뜨리는 중이다. 이 새로운 다수의 이름은 디지털 무리der digitale Schwarm다. 디지털 무리는 고전적인 다수의 대오, 즉 군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나타낸다. (……) 디지털 무리는 군중과는 반대로 내적 일관성을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 무리는 하나의 목소리로 표출되지 않는다. _128~129쪽
쇼핑은 토론을 전제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것을 사면 된다. 그는 개인적 취향을 따른다. 좋아요는 소비자의 구호다. 그는 시민이 아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시민을 시민으로 만든다면, 소비자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투표소와 시장, 폴리스polis와 경제가 하나가 되어버린 디지털 광장에서 유권자는 소비자처럼 행동한다. 인터넷이 곧 투표소를 완전히 대체할 날도 멀지 않았다. _208쪽
감시와 통제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 요소에 속한다. 디지털 파놉티콘의 독특한 점은 빅브라더와 수감자 사이의 구별이 점점 더 불분명해진다는 데 있다. 여기서는 모두가 모두를 관찰하고 감시한다. 국가의 첩보 기관만 우리를 엿보는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기업도 마치 첩보 기관처럼 작동한다. 이들 기업은 우리의 삶을 훤히 비추어 거기서 캐낸 정보로 수익을 올린다. 회사는 직원들을 염탐한다. 은행은 잠재적인 대출 고객들을 들여다본다. _212~213쪽
한국어판 서문 5
투명사회
긍정사회 13 | 전시사회 28 | 명백사회 38 | 포르노사회 48 | 가속사회 63 | 친밀사회 72 | 정보사회 78 | 폭로사회 87 | 통제사회 93 | 미주 103
무리 속에서 ― 디지털의 풍경들
서론 113 | 존경 없이 115 | 격분사회 124 | 무리 속에서 127 | 탈매개화 136 | 영리한 한스 144 | 이미지로의 도피 152 | 손에서 손가락으로 158 | 농부에서 사냥꾼으로 166 | 주체에서 프로젝트로 176 | 대지의 노모스 183 | 디지털 유령 188 | 정보의 피로 195 |재현/대표의 위기 200 | 시민에서 소비자로 205 | 완전한 생의 프로토콜 210 | 심리정치 217 | 미주 223
역자 해제 227
한병철 선생님의 책중에 처음으로 구입한건데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은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읽을때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