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성공합시다

김종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3월 6일 | ISBN 9788932026084

사양 양장 · · 264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버틸 수 있겠어?”

가면을 쓴 자와 벗어 던진 자,
모두들 평범하게 불행한 시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정말로, 안녕들 하셨습니까?
김종은은 “어떤 물리적 입자들 같은 도시적 인간들의 삶에 형식과 리듬을 부여”하며 “그저 비릿한 삶의 구석과 층층을 사선으로 비추는”(김화영) 소설로 2003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났다. 세상은 더 각박해졌고 심지어 잔인해졌다. 김종은은 여전히 ‘지금’ 우리 사회에 밀착한 날렵한 문체로 너무 처량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현실의 질곡을 녹여낸 소설을 쓴다. 그의 소설 여덟 편을 묶은 세번째 소설집, 『부디 성공합시다』가 출간되었다.
『부디 성공합시다』는 자의적으로 피로를 선택한 후 열정을 배합하여 도무지 알 수 없게 된 감정으로 하루를 꾸역꾸역 밀어내는 이 시대, 소소한 불행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종은 소설 속 인물들은 붙들고 있는 것이 허상임을 짐작하면서도, 그 허상을 쥐기 위해(‘부디 성공’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종국에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모든 것을 떨어내며 소박한 각성에 도달하고, 일부는 나아가 그러한 삶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소설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거짓말투성이인 현실에 비소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의 지지부진한 삶에는 공감의 실소를 짓게 될 것이다.

외재하는 미(美)나 성공의 법칙, 그것은 일종의 거짓말이며 허상이다. 문제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그 무의미함을 어느 정도 간파하거나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기꺼이 구애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종국에 이러한 부질없는 고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각성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한결같이 지양되는 것은 ‘거짓말’로 대표되는 현실의 세속적 논리이며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는 것은 주관이라는 중심이다. 바로 이 내향에 의해 새로운 가치가 포착된다. 그것을 지칭하는 명시적 이름이 무엇이든 관계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순간을 전후하여 세계도, 개인도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에 있다._조형래(문학평론가)


‘아빠’들, 가면을 쓰다―“성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IMF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에는 ‘아버지’가 사라졌다. 상징적인 동시에 활자 그대로의 의미다. 좇아야 할 거대한 이념도 아버지의 권위도 상실되어, 이념이 아닌 돈으로, 아버지가 아닌 ‘아빠’로 대체되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세대는 ‘아버지만큼’도 못한 가장이 되어버렸다. 『부디 성공합시다』는 시종 이 ‘아빠’, 혹은 아빠들처럼 현실에 의해 (결국엔 자의적으로) 왜곡되어버린 희비극적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표제작인 「부디 성공합시다」에는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시들해 지방 공장 강연까지도 뛰어야 하는 신세인 자기계발 강사가 등장한다. ‘누군가 옮겨 놓은 치즈 이론’에 필적할 나름의 논리를 보유한 “변신의 귀재”인 그는, 단무지 공장에서 칼 세이건의 물리학까지 들먹거리며 열강하지만 고작 열댓 명 남짓한 청중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 월 백만 원도 못 벌어다 주는 처지라 줄곧 아내는 꽃집이나 함께 운영하자며 닦달하나, 성공 신화를 꿈꾸는 그에게 아내의 말은 탐탁지 않다. 진퇴양난에 빠져 상황을 방관하는 건 다른 작품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주식 투자로 가족을 먹여 살리며 점점 날카로워져만 가는 것을 과거 부모의 상황에 대입하며 지켜볼 뿐인 무직의 남편은 제 어릴 적과 꼭 닮은 아들 앞에서 부끄럽고 무력해진다(「줄넘기」). 치매 걸린 아버지, 골칫덩이로 전락한 미모의 누이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들 틈바구니에서 ‘미(美)’란 무엇인지, 거듭 허황되어 보이는 자문을 해야 하는 건축 회사 실장(「등」), 아파트의 문제적 카르텔에 맞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다 삶을 더 꼬이게 만드는 허리 다친 학원 원장(「버틸 수 있겠어?」), 아버지의 불합리한 운영과 마음에 둔 여자의 부조리함을 씁쓸하게 지켜보는 주유소 사장 아들(「지구본」)…… 정서든 육체든 어딘가 한 군데쯤 병든 이들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떠밀리듯 ‘뭔가’를 좇는다. 그 무엇의 자리에는 성공이나 아름다움, 윤리적 올바름 등 흔히 추앙받는 어떤 가치라도 들어갈 수 있으나, 곁을 달리는 사람들 틈에 우우 휩쓸렸을 뿐 진정 자신의 것이라 단언할 수 없다. “생각만으로 뭔가 바뀌고 있다는 기분”(「지구본」)으로 자기만족하지만 눈앞에 직면한 현실살이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 헛된 생각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비웃을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공감하기도 꺼림칙하다. 그 초상은 분명 조금쯤은 수치스럽기 때문이다. 가치를 좇는다는 자기만족은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붙인 얼굴 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스스로 지은 가면을 기쁘게 쓴다.


 

가면을 벗은 고독한 슈퍼 히어로―“소년의 기묘한 힘은 누가 뭐래도 저주였다”
신랄한 엽편소설 「상상과 거짓말」을 기점으로 소설집의 분위기는 판이하게 바뀐다. 이전까지 등장인물들은 무언가를 좇긴 하지만 ‘불도저’처럼 돌진하진 않는다. 한 발을 뺀 채 관찰하고, 의문을 가지며, 소소한 자각을 얻었을지언정 내내 살아가기에 매진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보통 사람들이다. 그러나 소설집 후반부의 인물들은 비범한 삶을 살기를 선택한다. 선택‘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구」의 ‘소년’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각별히 예민한 감각으로 생각을 읽고, 부도덕한 자들을 응징하고 처단한다. 「가면」의 ‘소년’은 다른 사람이 쓰고 있는 가면을 볼 수도, 벗길 수도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소년이 가면을 벗겨준 이들 또한 소년처럼 현실과 불화하거나 소외당하길 자처한다. 스스로 가면을 만들어 다시 쓴 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능력의 대가는 무겁고, 진실의 맛은 쓰다. 「살구」의 소년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던 죽음을 해결하러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 죽음 역시 비밀이 되는 현실을 비웃는다. 「가면」의 소년은 진실을 알아버린 것을,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을 후회하곤 한다. 진실을 알고 실천하는 두 인물의 호칭은 ‘소년’이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을 거라는 두 ‘소년’의 대책 없는 순수함과 미성숙을, 그들을 ‘낳은’ 김종은은 애정 섞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면을 쓴 자와 벗어던진 자, 진실을 외면하는 자와 바로 보는 자,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빽빽하게 메우는 보통 사람들이 있다. 김종은의 소설을 구성하는 것은 한 끝에서 또다른 끝으로 서서히 움직이려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 희망이 조금 촌스럽고 헛되어 보인다고 해도, 이미 수도 없이 실패를 맛보았어도, 김종은은 세상과 지리멸렬한 사람들을 유쾌하게 비웃고 힘껏 사랑하는 것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찾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약해빠져 보잘것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들의 힘도 실은 거기에서 나오니 문제될 것은 또 없다. 봐라. 지금도 집요하게 말 안 되는 그 경쟁에 용감히 뛰어들고 있다. 벼랑 끝 레밍 떼처럼. 그들이 불행해 보이는가. 묻지도 않고 섣불리 말하지 마라. 덕분에 세상은 평행을 유지한다”(「가면」).


작품 속으로
누가 뭐래도 나는 성공을 좇는 사람이다. 내게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여의치 않던 순간 에디슨도 번역 일을 했고 심지어 점원도 했다. 늘 전구만 붙잡고 살았던 것이 아니다. 에디슨을 위대한 발명가라 하지 말자. 실은 위대한 사업가 아닌가. 그는 그래프를 유연하게 탈 줄 아는 사내였다. 반짝이는 강당의 전구 알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할 만했다. 아니, 해야 했다. 아내의 말처럼 되어선 안 됐다.
―「부디 성공합시다」 부분

나는 나이 든 아버지가 그렇게 고개 숙여 지난 일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줄 알았다. 부쩍 자라버린 내가 여러모로 현명해지고 성숙해진 줄 알았다. 화실에 앉아 밤늦도록 아그리파를 그리면서 나는 그렇게 아버지를 떠올렸다. 결코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멋진 미대생이 되면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무엇보다 아들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미처 아버지가 견디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줄넘기」 부분

“아름답다…… 아름답다라…… 난요, 다리 다쳐서 우리 엄마가 나 중학교 때 업고 다녔거든요. 공부는 못해도 출석은 해야 된다는 스타일이시라. 생각해봐요. 그 나이에 얼마나 쪽팔렸겠어? 그런데 그때 있잖아요, 업혀 있으니까 그렇게 좋더라. 우리 엄마가 앞쪽은 별로인데 등이 진짜 예뻐요. 그냥 좌르르르 해. 뭔가 말은 없는데 엄마랑 나 사이에 뭔가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기분. 아니지, 요새는 돈이 아름답죠. 세종대왕님이 일렬 종대로다가 쫘악 몰려 있으면, 크…… 그게 생각만으로 아름답네. 나도 한번 실장님처럼 살아봐야 하는데. 뭘 나한테 그런 걸 물어요?”
―「등」 부분

소문만 낙엽처럼 쌓였다. 그리고 빠르게 번져갔다. 마누라 일 시키고 집에서 놀며 살림하는 남자다. 허리가 시원찮다. 아파트 단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세입자들만 골라 홀려 자치회장 선거에 나오려는 수작이다. 허리도 부실하다. 텃밭에 침을 뱉은 전력이 있고 그 집 딸애는 놀이터 뒤편 화단에 소변을 봤다. 명백한 증거가 있다. 허리를 못 쓴다. 열린 교육을 하는 학원 원장이라는데 정작 제 딸은 강남의 아방궁 같은 영어유치원에 다닌다. 허리 병신이라더라. 미모의 여자 물리치료사와 그렇고 그런 관계다. 허리 병신이면서. 정신이 아득해 일어설 수가 없었다. 무엇이 다시 나를 누르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버틸 수 있겠어?」 부분

이렇게 삼각형을 그리면 여기가 사장님, 그쪽은 여기쯤. 여기가 지윤 씨, 기덕 씨. 여기쯤에 제가 있고 맨 아래 거북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이쯤에 있는, 그러니까 당신 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말이죠, 이걸 다 거꾸로 뒤집을 수가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지구본」 부분

“제가 여러분께,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주고 싶었던 것이 그 희망과 용기였습니다. 당장 뭐든 하세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나서 소년은 자신도 하지 못하는 일을 남에게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뻔뻔한 일인지에 대해 새삼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면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뭐든 해야겠어, 그렇게 번쩍 의지가 생기는 줄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소년은 단 한 번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본 적 없었다. 연단에 선 남자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지만 연단 아래 소년들에게 웃음과 박수란 이를테면 하루 일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살구」 부분

새로운 어떤 것이 되고 싶은 욕망일까, 아니면 새로운 어떤 것이 실제로 되는 걸까. 나약한 이가 가면으로 용기를 얻었다면 그래도 가면을 거짓이고 악이라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기회이며 힘이니 때로는 쓸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가면」 부분


작가의 말
나이가 쌓였다.
폼 나게 살고 싶었다. 고교 시절에 체육 선생보다 몸도 좋고 운동도 잘했던 물리 선생이 있었다. 물론 물리 쪽에도 더할 나위 없이 훤했다. 그래서 그를 강인한 육체에 과학적 사고까지 겸비한 인간의 완전체쯤으로 여기고 반짝이는 눈으로 우러러봤던 시절, 잊고 있었던, 폼 나게 살자고 마음먹었던, 그 시절이 가을처럼 다가온 것이었다.

스포츠의 팔 할은 폼이야.
완전체의 교시를 철썩 같이 믿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폼 잡는 데 있는 힘 다하느라,
누가 뭐래도,
그렇게 살았고,
돌아봤더니,
속절없이 쌓인 나이만 보이는 그래서 조금 외로운 그런 가을과 눈이 맞은 것이었다.

안녕, 하고 인사하지 못했다. 뭘까, 싶어 고개를 숙였다.
바꿔보려 했었다. 바뀌는 쪽보다 바꾸는 쪽이 누가 뭐래도 폼 나니까.
바꾸는 것과 바뀌는 것 사이, 그 힘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정수리에 머리카락이 비고, 귀 옆으로 흰 머리칼이 생긴 줄도 몰랐다. 무성하게 푸른 나뭇잎을 단 한여름 나무 같던 시절이 이미 끝났는데 바꾸기는커녕 바뀌지도 못해 외로움이 남은 것이었다.
돌이켜 보니, 생각만 했고, 문득 아이 하나 낳은 것 말고 한 일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는데, 아뿔싸, 그것도 아내가 낳았지 내가 한 일은 없다.
이것 참.

돌다 보면 제자리인 시계가 이제는 완전체처럼 보인다. 돌고 돌아 거기서 거기, 시작하면 어느덧 끝이다. 뭐가 뭐인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 같지만, 수첩이 컴퓨터고, 편지가 스마트폰이고, 아버지는 아들이고. 뭐 그렇게. 내 고교 시절의 물리 선생보다 열 배는 더 공부했을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대자보를 쓰는 이 시절이 그래서 많이 아프지 않다. 그것도 꽤 멋진 폼이다. 박수 치고 싶다. 바뀌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은 기억뿐인 아버지와 대책 없이 아버지가 되어버린 나와 언젠가 아버지가 될 가여운 아들까지, 우린 다 가을이었고, 가을이고, 가을이 될 테니까. 돌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면 그것도 성공 아닌가. 가을이 뭐라고 외롭나, 그래, 바람은 더 불겠지, 더 추워지겠지, 그래도 견디다 보면 어디에선가 또 푸른 잎이 돋겠지.
글 쓰는 게 뭐라고, 철부지 소년처럼 어디든 겅중겅중 뛰어다니기만 한 시절을 나도 마무리해볼까 한다. 견디고 있는, 곧 푸른 잎이 될 이들에게 ‘포스가 함께하길’ 빌어줄 수는 있겠다.

돌고 돌아 거기서 거기인 글을 담아준 문학과지성사에 고맙다. 언제고 이 마음을 돌려줄 수 있길 바란다. 보답이야말로 진짜 폼 나는 거니까.

2014년
김종은

목차

부디 성공합시다
줄넘기

버틸 수 있겠어?
지구본
상상과 거짓말
살구
가면

작가 소개

김종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신선한 생선 사나이』 『첫사랑』, 장편소설 『서울특별시』를 출간했다. 오늘의 작가상(2003)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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