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지음 | 송병선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4년 1월 17일 | ISBN 9788932024547

사양 변형판 143x213 · 512쪽 | 가격 16,000원

분야 외국소설

책소개

속고 속이며 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야
그러니 괴로워할 필요 없어

세르반테스의 땅에서 태어난 20세기의 셰익스피어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문학상 로물로 가예고스 상 수상작을 만난다!

독일의 유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서평가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비견되는 작가”라고 평했으며, 스페인 비평상(스페인), 로물로 가예고스 상(베네수엘라), 페미나 국제문학상(프랑스), 임팩 더블린 문학상(아일랜드), 넬리 작스 문학상(독일), 몬델로 문학상(이탈리아), 유럽문학상(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문학상을 싹쓸이한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스페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세계 유명 문인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특유의 성찰적이고 시적인 문체로 현대인의 존재론적 불안을 예리하게 그려내는 작가다. 이른바 ‘형이상학적 스릴러’라는 마리에스 소설 특유의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확실해 보이는 삶 너머에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삶을 주관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불확정적인 것들로 가득 찬 인간 존재에 대한 관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전한다.
이 작품이 여러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그중에서도 ‘로물로 가예고스 상’ 수상은 매우 중요하다. 로물로 가예고스 상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수여하는 상으로, 남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며 문학성과 실험성이 뛰어난 작품에게 주어지는데, 역대 수상작가들을 보면 이 상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카를로스 푸엔테스,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등이 이 상을 수상했으며, 국내에도 소개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과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 역시 이 상 수상작이다.
사실 사색과 성찰이 포함되어 느리게 진행되는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고역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끄는 기발함으로 내면적 성찰에 중심을 두는 소설의 단조로움을 파괴하고, 이로 인해 독자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우리의 삶과 존재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라는 성찰적인 내용을 스릴러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이 비범한 작품은 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할 현대의 명작으로 남을 것이다.


인생이란 언제나 예측불허!

드라마 작가이자 대필 작가인 빅토르는 이제 막 알게 된 여인 마르타와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러나 사랑을 나누기 직전 마르타는 원인 모를 고통을 호소하다 반쯤 벌거벗은 채로 숨을 거둔다. 빅토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그녀의 남편 데안은 영국 출장 중이고 옆방에는 그녀의 두 살배기 아들 에우헤니오가 잠들어 있다. 빅토르는 아이의 식사를 준비해놓고 자신의 흔적을 지운 뒤 그곳을 떠난다. 마르타의 가족은 그녀가 죽을 때 혼자가 아니었음을 눈치채고, 남편 데안은 그 밤에 마르타와 함께 있던 사람을 찾는다.
한 달 뒤 빅토르는 자신이 누구인지 숨긴 채 마르타의 가족에게 접근한다. 어느 날 빅토르는 죽은 마르타의 가족과 점심 식사를 하게 되고, 점심 식사 후 마르타의 여동생 루이사를 쫓아간 빅토르는 어둠에서 벗어나 더 이상 비밀이나 미스터리를 간직하기 않기 위해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한다.
루이사가 빅토르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마르타의 남편 데안도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데…… 데안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자기 아내의 죽음이 빅토르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에게 복수할 것인가?


매혹적인 이야기…… 형이상학적 스릴러
우리의 이야기, 그러나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가끔씩 우리는 범죄를 저지른 지 40년 뒤에 그 죄를 고백하거나, 점잖게 일생을 산 사람이 갑자기 경찰에 출두하여 자기 일생을 파멸로 몰아갈 비밀을 고백했다는 글을 읽는다. [……] 그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게 만들고, 그래서 숨겼던 것을 갑자기 드러내게 만드는 것은 바로 피로함이다. 도망자건 추적자건, 그런 게임을 끝내야만 저주받은 상태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_본문 중에서

주인공 빅토르는 ‘속고 속이며 산다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며, 그것은 우리의 자연적인 상태야’라고 거듭해서 생각한다. 빅토르는 “그 누구도 이런 것에서 자유롭지 않고,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속는다는 것이 바보라는 의미는 아니”며, “우리는 그런 것과 대항해서 열심히 투쟁할 필요도 없고, 그런 것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궁금증을 일으키는 제목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고 네 무딘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전쟁터에서 내가 살아 있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고, 네 녹슨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내가 네 영혼을 무겁게 짓누를 것이고, 네 가슴 속으로 들어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네 생을 마감시키리라.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그럼 절망에 빠져 죽을 것이다’라는 대사는 소설 곳곳에서 마치 저주와 같이 반복된다.
하지만 정작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저주가 아니라 나약한 인간 존재들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것 같다. 다만,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휘둘리는 운명을 온몸으로 부딪쳐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해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었던 빅토르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나, 그리고 모든 사실을 알고 빅토르와 대면한 마르타의 남편 데안의 행동은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본성적인 굴레를 드러낸다. 흔히 이 소설이 철학소설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이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드러내고 묘사하는 데 있다.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

소설을 떠도는 유령의 모습을 통해, 혹은 전적으로 작가나 화자에게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즉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목소리로 이루어진 생각을 통해, 우리는 때때로 세상이나 우리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어떤 것들은 아마도 우리가 만들 때에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확인합니다. _하비에르 마리아스, 로물로 가예고스 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란 무엇이며 허구의 이야기일 뿐인 소설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계속 쓰이는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마리아스의 이러한 통찰은 ‘로물로 가예고스 상’ 수상연설에 잘 드러나 있다.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일어나지도 않은 것들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느냐’고 했지만, 마리아스는 ‘실제로 일어난 일 말고 상상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확실한 것 말고도 가능한 것이나 추측, 혹은 가정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사실 말고도 좌절된 것이나 제외된 것, 또는 실제로 존재한 것 말고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이런 허구를 통해서만 세상과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런 허구의 가장 정교한 형식이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 책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가 보여주는 빅토르와 마르타의 남편 데안의 사건들 역시 이러한 허구의, 소설의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는 비교적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지만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설명되지 않으며 아마도 설명될 수 없는 일화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것, 우리가 이용하지 못한 기회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것이라고 무시해버린 요인들, 아직도 다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조금만 알고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런 깨달음을 제공하고, 우리를 구성하고 있으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 즉 일어나지 않은 일의 세계, 분명히 존재하나 내가 신경쓰지 않았던 시간의 등을 보여준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단지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역사 혹은 사건들, 또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며, 그렇게 참여하면서 우리의 이해의 폭은 넓어지는 것이다.


■ 이 책에 바쳐진 찬사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최고의 현대 작가다. _ J. M. 쿠체

그의 훌륭한 글과 집념, 그리고 정확성에 즐거운 충격을 받았다. _W. G. 제발트

꼭 읽어보아야 할 위대한 작가. _살만 루슈디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만 할 사람 중에 하비에르 마리아스가 으뜸이다. _오르한 파무크

지난 20년간 하비에르 마리아스처럼 나를 감동시킨 작가는 없었습니다. [……]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생존 작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입니다. 그와 버금가는 생존 작가를 언급하라면, 아마도 가르시아 마르케스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작가는 매우 보기 드문 방식으로 독자들을 자극합니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매우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마리아스는 훌륭한 소설가이면서 또한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_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성찰적 문제와 시적인 문체, 빛의 광채와 어둠의 미스터리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독자들에게 인간의 일상사가 전개되는 그런 세상, 즉 겉모습 너머로는 볼 수 없는 세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풍요로운 세계의 문을 연다. _『르 피가로 리테라튀르』

마리아스의 작품은 우아하고 독창적이며 멋진 서스펜스를 구사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핵심에는 심오한 존재론적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을 불안하면서도 진실되게 만든다. _『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매혹적인 이야기…… 형이상학적 스릴러. _『옵서버』


■ 본문 속으로
두려움을 나타내면 그런 두려움을 야기하거나 유발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예방책을 강구하면 그 일은 일어나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에 대해 미심쩍게 여기면 그 일을 결정하고 추진하게 되고, 어떤 것들에 불안과 기대를 가지면 그것들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깊어져서 반드시 그 틈을 채워야만 하는 일이 발생하고, 우리가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하면 두려운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것을 물 흘러가듯이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_25쪽

사랑을 나누는 첫날밤에는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소망을 숨겨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아무도 사랑을 구하지 않았으며 그런 것을 원치도 않았다고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러자고 한 것이 아니었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가 잠을 자지 않으려고 고집부리는 것뿐만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태도 때문이었다. 아이는 한 번도 내게 가까이 오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면서,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다는 표정이 뒤섞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_25~26쪽

“죽은 마르타는 자기가 내 옆에서 죽어가던 그날 밤 남편이 런던에서 무엇을 했는지 결단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돌아올 때면 그녀는 아마도 그가 하고자 하는 말, 아니 꾸며댈지도 모르는 말을 들을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소멸의 길을 향해 나아가며 사라진다. 흔적을 남기는 것은 거의 없다. 단 한 번만 일어날 뿐 반복되지 않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매일매일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_35쪽

‘우리의 등 뒤에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우리는 벽 너머에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볼 수가 없어. 귀엣말을 속삭이는 사람이나, 우리가 듣지 못하게 몇 발짝 떨어져 말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어. 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런 사소한 것에 달려 있을 수도 있어.’ _88쪽

우리의 행동과 인격은 부분적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무작정 흐르는 시간이 우리의 외부 상황과 우리의 의복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 우리는 가장 최근의 인생이 밝고 화사하면, 과거는 그런 인생을 누리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고 여겨. 그리고 과거가 멀어질수록 마치 그런 생각이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지. [……]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천천히 늙어가고 있고, 과거의 삶은 현재의 삶을 향한 단순한 상황증거에 불과하다고 믿으면서, 과거의 삶을 조작하고 왜곡하지. _202~03쪽
죽은 사람의 목숨은 살아 있는 변덕스런 사람의 목숨보다 훨씬 오래간다. [……] 죽은 사람들은 항상 그들이 죽었을 때의 나이로 기억된다. 그래서 산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들을 기억한다면, 죽은 사람들은 산 사람들보다 훨씬 젊어진다. _209~17쪽

사실 이야기의 기원이나 그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란 그것들을 지켜보았거나 고안해낸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일단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것은 모든 사람의 입에 회자되면서 왜곡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형태로 똑같이 반복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_236쪽

“[……] 마르타가 죽었지만 내가 살아 있다고 믿은 시간에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 그날 이후의 내 감정이 어떤지, 그리고 내 꿈속에 그녀가 나타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고 네 무딘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전쟁터에서 내가 살아 있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고, 네 녹슨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내가 네 영혼을 무겁게 짓누를 것이고, 네 가슴속으로 들어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네 생을 마감시키리라.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그럼 절망에 빠져 죽을 것이다’라고 말한 내용을 전할 것입니다.” _246쪽

남을 속이거나 남에게 속으며 살기란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아무도 속임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속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가 바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남을 속이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할 필요도 없고, 속았다고 너무 괴로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런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견딜 수 없습니다. 가장 힘들고 나쁜 것은 그렇지 않았다고 믿은 시간이 둥둥 떠다니는 허구적인 것이 되면서, [……] 우리는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 행동했을 수도 있고, 지옥의 변방과도 같은 그 시간을 다르게 사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_247~48쪽

‘그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건 천만다행이야. 그건 내가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따위 언행을 일삼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거든. 그런 나의 행동이나 말을 직접 보거나 듣고서는 그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관대하게도 나를 부정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가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던 과거의 나로 남을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나를 살려준 거야.’ _258쪽

가끔씩 우리는 범죄를 저지른 지 40년 뒤에 그 죄를 고백하거나, 점잖게 일생을 산 사람이 갑자기 경찰에 출두하여 자기 일생을 파멸로 몰아갈 비밀을 고백했다는 글을 읽는다. [……]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거나, 아니면 속죄하기를 바랐거나, 혹은 양심의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흠 없는 사람이 되려는 욕망과 피곤함 때문이다. [……] 그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게 만들고, 그래서 숨겼던 것을 갑자기 드러내게 만드는 것은 바로 피로함이다. 도망자건 추적자건, 그런 게임을 끝내야만 저주받은 상태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그날 오후 식당에서 나오자 그녀를 뒤쫓아 가서 그녀에게 내 마음을 드러냈다. _297쪽

우리는 남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면서 평생을 산다. [……] 즉 자신의 잘못이나 분노나 나쁜 습관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범하는 실수나 사소한 배신과 악의 없는 모욕을 숨기면서, 우리를 믿는 사람이 실망하지 않도록 한다. 잠시 동안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누가 우리의 실수를 용서할 것이며, 누가 이런 실수를 눈감아주거나 못 본 체할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_345쪽

작가 소개

하비에르 마리아스Javier Marías 지음

스페인의 저명한 철학자 훌리안 마리아스의 아들로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미국 웰즐리 대학교, 스페인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을 가르쳤다.

특유의 성찰적인 내용과 시적인 문체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1990년대에 들어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한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등 3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새하얀 마음』으로 스페인 비평상, 임팩 더블린 국제문학상을 받았으며,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로 남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 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프랑스 페미나 외국문학상, 독일 넬리 작스 문학상, 이탈리아 몬델로 문학상 외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8년에는 스페인 왕립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매해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장편소설 『늑대의 영토』 『시간의 군주』 『모든 영혼』 『새하얀 마음』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베르타 이슬라』 등과 다수의 단편집, 수필집을 출간했으며, 토머스 하디와 조지프 콘래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로렌스 스턴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송병선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했으며, 카로 이 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콜롬비아의 하베리아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베리아나 대학교와 콜롬비아 국립 대학교의 전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사람이 살았던 시대』 『천사의 음부』 『위대한 독재자는 죽었습니다』 『뜨거운 달』 『마법의 도시 야이누』 등이 있으며 『외국문학』 『문학정신』 『상상』 등에 라틴아메리카 현대 문학에 대한 많은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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