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언당한 문학, 살아 있는 시체들의 오늘,
구태의 틀을 깨고 문학을 문학답게 바라보고자 한 꾸준한 시선의 결정
조선대학교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며 소천비평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문학평론가 김형중의 네번째 비평집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문학과지성사, 2013)이 출간되었다. 2008년 『단 한 권의 책』 이후 5년 만에 펴낸 이번 비평집에는 총 3부, 31편의 글이 실렸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와 같은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단 이 평론집에 대해 저자는 “황당한 종언 선언을 당한 후의 한국문학처럼 죽은 채로 걸어 다니다 (다시) 죽(지 않)은 좀비”를 위해 씌어졌다고 밝힌다.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학의 죽음 사태 속에서 문학의 존재 양식에 대해 꾸준히 질문해온 평론가 김형중의 깊은 고민과 사색이 담겼다.
문학의 윤리와 민주주의_문학에 요구되는 진정한 의미의 윤리는 무엇인가?
문학의 정치란 문학인이 혹은 문학 작품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고유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정치 그 자체다. 문학은 우리가 나날이 수행하는 감성적인 활동에 있어 지배적인 시간적, 공간적 분배들(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 누릴 수 있는 시간과 누릴 수 없는 시간),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의 분배들(향유나 표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말로서 받아들여지는 소리와 소음으로 치부되는 소리의 분배들(소위 말과 단어를 둘러싼 투쟁들)에 개입한다. (「한국문학의 미래와 문학의 민주주의」, p. 80)
1부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한국 문학계에 불어닥친 ‘윤리’의 열풍을 이념이 사라진 시대에 문학이 택한 자기합리화의 일환 정도로 맥락화하는 일련의 논의들이 사태의 전모를 온전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함을 지적한다. 김형중은 한국문학에서 윤리 담론을 무매개적으로 작품과 주선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며 문학으로 하여금 “모국어를 그 한계에 이르기까지” 사고하게끔 하는 문학 그 자체의 힘에 주목한다. 또한 문학과 정치성 사이의 오래된 논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이 시대 진정한 의미의 ‘문학의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이에 대한 지향과 가능태는 어떤 것인지 끈질기게 탐색해나간다.
증례와 징후들_살아 있는 시체들의 증례, 문학 생존의 징후들
이들 소설이 표면적으로는 우리 현실에 만연한 권태와 재앙과 테러와 오염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19세기식 리얼리즘 소설, 혹은 파란만장한 대하소설이나, 전 시대의 혁명적 낙관주의 소설들과 완전히 다른 종으로 판명되는 지점이 여기다. 이제 한국 소설에서 도파민은 노르아드레날린보다 훨씬 적은 양만이 분비된다. 우세종이 바뀌고 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1」, p. 152)
그렇다면 오늘의 문학은 어떤 형태로 생존 가능한가. 김형중은 문학이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숨 쉬고 있는 증거로서 2000년대 후반 활발하게 활동하며 유의미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작가와 작품들을 이 책의 2부와 3부를 통해 구체적으로 짚어낸다. 경향적인 면에서 문제적 작가로 꼽을 만한 이장욱, 박민규, 편혜영, 한유주 등의 작품을 분석하고 그들이 한국문학에서 위치한 자리와 지형에 대해 논한다. 또한 작품들의 겉면을 따라 일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흐름의 심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쾌락원칙 너머 죽음충동’이라는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더불어 정용준, 김유진, 최제훈 등 신진작가들의 작품들도 조명하며 앞으로의 문학이 보여주는 가능성에 대해 전망하기도 한다.
■ 책머리에
‘참으로 특이한 다섯 해였다.’
‘남은 삶을 사는 동안 다시 겪을 수 없는 다섯 해였다.’
‘영원히 단수로만 존재하게 될 참으로 의미심장한 다섯 해였다.’
걸음은 여전히 내 의지와 무관하게 조금씩 조금씩 엇나갔다.
늦은 밤과 새벽에는 씻고 누워 졸다 깨다 하며 네번째 평론집 초교 원고를 읽었다. 제목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고 하겠다는 애초의 작정을 바꾸지 않은 채로, 나는 잠들었다. 잠들기 전까지, 평론집 서문으로 쓸 만한 문장 하나가 떠올라 가수면 상태에서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여러 번 되뇌다 잠들었다. 그 문장은 이랬다.
“이 책은 아무래도 조지 로메로에게,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에 (이 책은 내 네번째 평론집이니) 네번째로 등장해서, 마치 황당한 종언 선언을 당한 후의 한국문학처럼 죽은 채로 걸어다니다 (다시)죽(지 않)은 좀비에게 바쳐야겠다.”
서울과 광주를 오가는 길에서 얻는 여독은 매번 오래 가서, 한 주 내내 나는 대체로 피로했으므로, 잠은 달고 깊었던 것 같다.
2013년 12월
김형중
책머리에
1부 문학의 윤리와 민주주의
사건으로서의 이방인-‘윤리’에 관한 단상들 1
문학과 정치 2009-‘윤리’에 관한 단상들 2
범람하는 고통-‘윤리’에 관한 단상들 3
한국문학의 미래와 문학의 민주주의
문학, 사건, 혁명 : 4.19와 한국문학-백낙청과 김현의 초기 비평을 중심으로
2부 증례와 징후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1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2
장편 소설의 적-최근 장편소설에 관한 단상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소설 쓰기
병든 신, 윈도즈Windows 속의 영웅
돌아온 신경향파
백년의 꿈, 사랑기갈증의 서사
Che Vuoi, Jacques Žižek?- 현대 정신분석학과 한국 문학비평
3부 이 위험한 대리보충
민주투사 박민규-박민규론
소설무한육면각체-이장욱론
꿈- 배수아의 『북쪽 거실』에 대하여
푸네스의 고독, 셰에라자드의 뜨개질- 한유주의 『얼음의 책』에 대하여
동일성의 지옥에서-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에 대하여
기어서 넘는 벌레, 상처를 긍정하는 몸-조하형론
촛불의 기원-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 대하여
고대 동물들의 후일담-김유진의 『늑대의 문장』에 대하여
유토피아 모텔에서 뒤돌아서다- 김이설론
마주 보고 잠든 그들이 꿈꾸는 세계-김선재의 『그녀가 보인다』에 대하여
아팠지, 사랑해-정용준의 『가나』에 대하여
아버지, 제가 불타고 있는 것이 안 보이세요?-윤성희론
출노령기(出盧嶺記)-손홍규론
실수하는 사회, 실수하지 않는 인간-정소현의 『실수하는 인간』에 대하여
페스트를 앓고 난 후-최수철의 『갓길에서의 짧은 잠』에 대하여
불안과 무한텍스트-최제훈론
시간 밖에 있는 곳, 울란바토르-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
궁상과 실소-정영문의 『어떤 작위의 세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