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을 울리는 소리 없는 연주
통증의 세계에 틈입하는 ‘물 피아노’
물방울이 흔들린다 물로 어떤 것은 가능하고 어떤 것은 가능하지 않다 불안과 부끄러움이 손 끝에 매달려 있다_「물방울 알레그로」 부분
2001년 계간 『포에지』로 시단에 등장하여 강렬한 여성적 글쓰기의 징후를 보여준 시인 신영배의 세번째 시집 『물속의 피아노』(문학과지성사, 2013)가 출간되었다. 여성성의 내밀한 미감에 몰두하며 한국 현대 시에서 ‘여성적 시 쓰기’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해온 신영배는 2000년대 전위시의 지형도에서 진은영, 김이듬, 이기성 등과 함께 ‘마녀적 무의식의 시’(오형엽) 영역에 자리한 시인이기도 하다. 첫 시집 『기억이동장치』에서 ‘여성 혹은 소녀의 몸의 상상력’(이광호)으로 ‘물의 담화’와 ‘물의 드라마’를 생성한다는 평을 들었던 시인은 두번째 시집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에서는 그림자를 변주하여 상상적 모험을 감행하고 자기 감각과 형태의 한계를 넘어가는 예술적 자유의 도정을 펼쳐 보였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간 시인이 꾸준하게 천착해온 ‘물’에 대한 상상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무정형의 존재들이 자유자재로 변형되고 왜곡되어가는 기이한 세계를 그려낸다. 깜깜한 물속에 녹아 있는 것은 불안과 부끄러움, 아픔, 슬픔 등의 다양한 감정. 물인지 피아노인지 알 수 없는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불완전한 음향, 무음의 연주가 책장을 넘기는 당신의 손끝을 아리게 할지도 모른다.
형체 없는 ‘물-몸’의 무한 변주곡
신영배의 시에 등장하는 무정형의 존재들은 눈에 보이는 실체의 허위를 드러내는 근원적인 존재로서 기능해왔다. 특히 ‘물’은 자유롭고 유연한 존재로서 남성성으로 상징되는 견고하고 구조화된 언어 세계에 틈입하여 파열과 침묵, 부재를 불러와 ‘여성-몸으로 시 쓰기’의 날카로운 징후를 보여주었다. 시집 『물속의 피아노』에서도 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여러 형태적 전이를 시도한다.
바닥에 물자국이 놓여 있다 그녀가 가만히 디뎌본다 물로 걸어가본다 물로 뛰어가본다 동시에 물로 돌아온다
– 「물구두」 부분
돌아서는 여자와 아이 사이에 물 한 방울 돌아서는 골목길과 벚나무 사이에 물 한 방울 돌아서는 언덕과 돌멩이 사이에 물 한 방울 돌아서는 당신과 나 사이에 물 한 방울
– 「물울」 부분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일찍이 ‘여성적 몸’과 ‘물’의 상상적 모험만으로 신영배의 시를 읽는 것은 편협한 오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신영배 시에서의 ‘물’은 결코 단수의 상징체계로 수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물은 상처 난 발과 구분되지 않는 물구두, 대기와 구분되지 않는 물속, 인간과 물과 자연과 사물의 사이사이를 채우며 끝없이 흘러 다닌다. 그런데 여기서 ‘물’의 세계가 내포하고 있는 ‘통증’과 ‘불안’의 정서가 삶의 패배와 허무의 온상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란 것이 아니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최현식은 “나가는 문”을 계속 두드리고 “물방울을 안고 몸을 둥글게”(「물방울 알레그로」) 마는 “자기 전환의 씨앗”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이를 물의 새로운 형체와 가치를 적극 생산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표현하였다.
이형동질의 아름다운 상자, ‘물 피아노’
그렇다면 “물속의 피아노”는 어떤 소리가 날까. 물과 피아노라는 뜻밖의 조합은 시집 속에서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은, 물이기도 하고 피아노이기도 한 무언가로서 존재한다. 물이라는 무정형의 육체 속에 내재된 음계는 이 세계에는 없는 ‘물 피아노’의 음향으로 울려퍼진다.
여기서 울고 저 멀리 가서 듣다
[……]
물이 무릎에 닿았을 때 의자에 앉았지
물이 팔꿈치에 닿았을 때 건반에 두 손을 올려놓았지
물이 가슴에 닿았을 때 첫 음을 누르고
물이 두 눈에 닿았을 때
떨다, 흐르다
-「물 피아노」 부분
“여기서 울고 저 멀리 가서 듣다”가 의미하듯이, ‘물 피아노’는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원리와는 다른 원리로 작동한다. 세계의 상처마다 스며든 물속 공간을 가득 채우는 무음의 연주. 시집 전반에 출몰하는 물과는 달리 피아노는 표면적으로 자주 드러나지는 않지만, 내부를 관류하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가시적 일상 공간이 아닌 물속 세계에서의 새로운 리듬으로 읽을 수도 있다. 때로는 격정적이며 때로는 부드러운 “물 피아노”의 선율과 음향을 따라 서로의 이질성과 타자성이 함께 묶이고 또 풀리는 근원적 통합의 모듈이 조화롭게 작동하는 느낌으로.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 속의 오필리아가 제 몸을 떨어뜨려 사후의 충만함을 불러들였듯 신영배는 ‘물 피아노’를 통해 이 세상에는 없는 소리로, 무음의 음향으로 다양한 연주를 시작한다.
■■ 시집 속으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꿈
피아노
그리고 나
손가락을 하나 잃고
피아노 위에
떠 있는 나
발목의 끈을 풀고
피아노 앞에
나
두 귀가 없이
피아노와 나
-「피아노와 나」 전문
식탁 다리에 줄을 매본다 당겨본다
햇살이 늘어나지 않고 정오
책장에 줄을 매본다 당겨본다
시가 빠져나오지 않고
반듯한
창문에 줄을 매본다
얼굴 없이 새가 지나간다
욕조에 줄을 매본다
물이 마르고 하얀 목이 드러난다
피아노에 줄을 매본다
손가락이 끊어지고 검은 스타카토
무너져 내린 몸의 마디들
투명하게 당겨지는 줄의 한낮
너 얼마나 아프니!
햇살이 조금 늘어나는 말
– 「무음의 마리오네트」 전문
■■ 시집 소개 글
『물속의 피아노』는 한국 현대 시사에서 그 선례가 드문 ‘물의 시학’이나 ‘물의 몽상’으로 회자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집 전체가 물에 대한 사유와 몽상, 인간과 물과 자연과 사물의 관계망 구축에 바쳐진 집요하며 희유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물속의 피아노”에 서로 반대편으로 달리는 양손을 올려둠으로써 물색 다양한 무곡을 연주한다. 때로는 격정적이며 때로는 부드러운 물과 피아노의 선율과 음향을 따라 우리들 경험 이전의 충만한 사후(死後)로 오필리아가 뚜벅뚜벅 도래하는 것이다. “물속의 피아노” 연주가 비로소 시작됐다.
■■ 뒤표지 글
다시 넘어진다 가슴이 축축하다 물로 쏟아진 새 한 마리, 바닥에서 심장이 뛴다 생은 날기 좋은 바닥, 물을 끌어안는다 물로 새가 스며든다 나는 어깻죽지를 파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