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원제 Tous les matins du monde

파스칼 키냐르 지음 | 류재화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3년 8월 27일 | ISBN 9788932024417

사양 양장 · 변형판 132x197 · 156쪽 | 가격 14,000원

분야 외국소설

책소개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17세기,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
영광을 뒤로한 채 음악에 운명을 맡긴 예술가의 삶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준 명작들을 생각해보면, 보고 듣는 사람들의 감각을 일깨우고 새로운 감동과 영감을 재생산하는 것이 예술의 본질인가? 태양이 인간을 위해 빛나는 것이 아니고, 새들이 우리를 위해 노래하는 것이 아니듯, 예술의 효과와 기능을 그것의 본질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프랑스 공쿠르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프랑스 문인협회 춘계대상, 모나코의 피에르 국왕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국민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파스칼 키냐르가 1996년 투병 후 작품세계에 큰 변화를 겪기 이전인 1991년에 출간한 것으로, 키냐르 45년 문학인생의 한가운데에 위치한다. 프랑스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작품은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를 끌어내 세속적인 영광을 거부한 한 음악가의 예술혼을 그리며, 진정한 예술가의 길과 사랑, 삶과 죽음을 고찰한다.
키냐르는 대대로 언어학자와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자랐으며, 바이올리니스트 ․ 첼리스트 ․ 오페라 작곡자 ‧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의 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인생에서 음악을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에서 음악을 모티프로 활용해왔다. 『세상의 모든 아침』 역시 두 음악가의 상반된 인생을 그리며, 언어를 넘어선 곳에서 이루어지는 영혼과 영혼의 소통을, 진정한 삶의 기쁨을 보여준다. 또한 음악은 그 무언가를 ‘위한’ 것이 아니고 그저 음악이 간절할 때 지쳐 쓰러질 때까지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바로 그것이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 창작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91년 알랭 코르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키냐르가 직접시나리오를 각색했으며, 키냐르의 절친한 친구이자 현대 비올라 다 감바계의 명장인 조르디 사발이 음악을 맡았다.


생트 콜롱브
“난 내 손에 드리우는 황금빛 햇살이 더 좋소. 왕의 바이올린보다 내 암탉들이 더 좋고, 당신보다 내 돼지들이 더 좋소.” […] “당신 궁궐은 내 오두막보다 작고, 당신 대중은 단 한 사람보다 못하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두 딸을 키우며 음악에만 묻혀 지내는 생트 콜롱브. 명성은 드높았으나, 왕실의 부름도 거절하고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지켜나간 그에게 청년 마랭 마레가 찾아와 제자가 된다. 하지만 스승과 달리 야망을 지닌 그는 스승에게 내쳐지고, 두 음악가의 예술혼과 욕망은 상반된 궤적을 그린다.

생트 콜롱브는 실존했던 프랑스 음악가다. 그에 대해서는 수도승한테나 어울릴 것 같은 다섯 개의 일화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뽕나무 위에 오두막을 짓고 연습을 했다는 것과 비올라 다 감바의 저음을 보강하기 위해 제7현을 덧붙였다는 사실, 그리고 궁정 악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두 딸과 함께 연주를 했다는 사실. 그리고 역시 실존인물인 당대 최고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이자 후에 궁정 악사가 되며, 당시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 아래 있던 프랑스 음악을 독창적인 프랑스 음악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 마랭 마래가 오두막에서 흘러나오는 콜롱브의 음악을 몰래 훔쳐들었다는 것 정도이다. 영광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굳이 음지를 택했던 한 음악가는 주옥같은 음악들을 작곡했지만, 그것들을 출판하지 않고 은밀히 혼자서만 간직했다.
키냐르는 아주 적은 정보에 상상력을 덧입혀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관계, 두 딸의 서로 다른 개성, 아내의 죽음과 콜롱브의 변치 않는 사랑, 음악을 상실하면서 느끼는 공포, 비에브르 강가의 아침을 떠올릴 때면 느껴지는 따사로움, 그리고 특히 왕실의 부름을 거부하는 음악가의 자존심과 긍지 등을 그려냈다.


예술
“왜 연주하시는 작품을 출판하지 않습니까?”
“아,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난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어내는 것은 물, 물풀, 쑥,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 같은 헌물일세.”
“선생님의 물풀, 송충이 안에 음악이 어디 있는데요?”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마랭 마레는 생트 콜롱브의 제자가 되지만, 출세에 뜻을 품은 마레가 어느 날 왕 앞에서 연주를 했다는 이유로 생트 콜롱브에게 쫓겨난다. 생트 콜롱브에게 음악이란, 정원 한쪽에 있는 뽕나무 위의 작은 오두막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홀로 음악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신도 왕도, 그 어떤 타인이나 청중을 위한 음악(예술)이 아닌 음악 그 자체, 예술 그 자체 속에서 완전 연소, 소멸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풍부하고 진솔한 감정을 음악을 통해서만 표현할 줄 알고 세속적인 명예나 부를 경멸하며,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와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키냐르가 고집쟁이 사회 부적응자를 그린 것은 아니다. 키냐르는 이 작품 발표 이후 평론가들과의 좌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트 콜롱브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거지요. 가령, 글을 쓰든 음악을 하든, 아니면 그림을 그리든 연극을 하든, 그런 것들이 모두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행복에 도달하고자 하는 각각의 방편이라는 것이지요.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 아닙니까? 저는, 때때로 오직 돈만이 행복의 척도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듭니다. 사실 제가 작품 속에서 그려보고 싶었던 인물은, 예술을 사랑하면서 술도 즐기고, 또 끊임없이 공부하며 정진해나가는 가운데 진정한 생의 기쁨을 느끼는 그런 인물이지요. […]
흰 것과 검은 것이 따로 있을 수 없고, 행복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요. 완고하고 엄격해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더 열렬히 삶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겁니다. 또 세상에 대해 허무를 느끼는 사람이 오히려 더 정열적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는 거지요.”
『세상의 모든 아침』은 세속적 욕망과 예술혼 사이의 갈등이라는 시대를 뛰어넘는 주제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한다. 진정한 삶의 자세와 행복,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편안하고도 흥미롭게 펼쳐 보이고 있는 이 작품은 여러 독자들에게 폭넓게 공감과 감동을 줄 것이다.


 

사랑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소, 여보. 12년이 흘렀지만 우리 침대는 아직도 차갑지가 않소.”

 

이 작품은 예술을 넘어 우리의 삶을 그려낸 작품인 만큼 사랑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이 영화로서 사랑받을 때는 좀더 극적인 마랭 마레와 생트 콜롱브의 큰 딸, 마들렌의 사랑이 부각되었지만, 이 작품 전체를, 음악과 함께 생트 콜롱브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아내에 대한 생트 콜롱브의 지극한 사랑이다. 두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 그 후 세상을 등진 채 음악에 묻혀 지내는 생트 콜롱브는 “3년이 지났는데도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5년이 지났는데도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의 간절한 음악이 어느 날 부인의 영혼을 그에게 인도한다. 생트 콜롱브는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지만, “만일 이것이 광기라면 그녀가 그에게 행복을 선사해준 것”이고, “사실이라면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아내는 자기에게 왔지만, 자신은 아내에게 도달할 수 없기에 “아직도 아내의 사랑이 자신의 사랑보다 훨씬 더 큰 것 같”다고 하고, 심지어 자신의 노화가 “아내에게 혹은 아내의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기뻐하니, 젊었을 때는 애정 표현도 잘 못했을 만큼 무뚝뚝한 그러나 속정 깊은 한 남자의 사랑이 절절히 가슴을 때린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도 없는 생트 콜롱브와 부인의 사랑. 둘의 합일된 세계. 이것이 생트 콜롱브의 예술혼 못지않게 울림을 주는 것은 여성 독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 본문 속으로
콤 르 블랑은 그가 인간 목소리의 모든 굴곡을 모방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가령 젊은 여인의 탄식에서부터 중년 남성의 오열까지. 앙리 드 나바르의 전장에서의 외침부터 그림 그리는 데 열중하는 아이들의 부드러운 숨소리까지.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거친 헐떡임부터, 기도에 몰입한 한 남자의 장식음 거의 없는, 무음에 가까운 저음까지. _11쪽

“여보시오, 나는 내 인생을 뽕나무 회색 나무판자에 맡겼소. 비올라 다 감바 7현의 소리와 내 두 딸아이에게 맡겼소. 추억이 내 친구들이오. 버드나무가 있고, 강물이 흐르고, 잉어와 모샘치가 뛰어놀고, 딱총나무 꽃들이 피어 있는 곳이 내 궁이오.” […] “나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소.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소속되어 있소.” _25쪽

“자네는 춤추는 사람들이 춤추게 도와줄 수는 있네. 무대에서 노래하는 배우들의 반주는 할 수 있겠지. 자네 벌이는 할 걸세. 음악에 둘러싸여 있겠지만, 그러나 음악가는 아니네.
느끼는 심장이 있는가? 생각하는 뇌가 있는가? 춤을 추게 하기 위한 것도, 왕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도 아닐 때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아는가?
그런데 자네의 망가진 목소리가 나를 감동시켰네. 자네 고통 때문에 받아들였지, 자네 기교 때문이 아닐세.” _52~53쪽

“방이 백 개나 되는 거대한 돌 궁정에서 예술을 하든, 뽕나무 속 흔들리는 오두막에서 예술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네. 내게는 예술 그 이상의 무엇이 있지. 손가락 그 이상의 뭔가가 말이야, 귀 이상의 뭔가가, 창작 그 이상의 뭔가가 말일세. 나는 열정적인 삶을 보내고 있네.” _74쪽

생트 콜롱브 부인은 하얀 나룻배 안으로 올라갔고, 그는 배의 가장자리를 잡고 강가 옆에 대어놓았다. 아내는 드레스 밑자락을 걷어 올리고 나룻배의 축축한 널빤지 위에 발을 놓았다. 그가 다시 일어섰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나룻배가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정신을 가다듬었고, 눈물이 그의 뺨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소, 여보. 12년이 흘렀지만 우리 침대는 아직도 차갑지가 않소.”
_78~80쪽

마레 씨는 자신은 모르나 생트 콜롱브 씨는 아는 그 곡에 대한 기억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곡에 대한 기억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 생트 콜롱브 씨는 작곡한 곡을 출판하지도 않았고, 스승이었지만 그에게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스승이 돌아가시면 이 작품들이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레 씨는 괴로웠다. 마레는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미래 시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늦기 전에 그 곡들을 알고 싶었다. […] 3년 동안 거의 매일 밤 오두막에 와서 마레 씨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연주할까? 아니 밤이 나을까?’ _114쪽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음악이 왕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는가?”
“그건 신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자넨 틀렸네. 신은 말하지 않는가.”
[……]
“자네 자신을 태우게나.”
“언어가 버린 자들이 물 마시는 곳. 아이들의 그림자. 갖바치의 망치질. 유아기 이전의 상태. 호흡 없이 있었을 때. 빛이 없었을 때.”
얼마 후 음악가의 그 늙고 뻣뻣한 얼굴 위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자신의 야윈 손으로 마레의 포동포동한 손을 잡았다. _118~120쪽

작가 소개

파스칼 키냐르 지음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베르뇌유쉬르아브르(외르)에서 태어나 1969년에 첫 작품 『말 더듬는 존재』를 출간했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았던 두 차례의 자폐증과 68혁명의 열기, 실존주의 · 구조주의의 물결 속에서 에마뉘엘 레비나스 · 폴 리쾨르와 함께한 철학 공부, 뱅센 대학과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의 강의 활동, 그리고 20여 년 가까이 계속된 갈리마르 출판사와의 인연 등이 그의 작품 곳곳의 독특하고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귀환한 뒤 글쓰기 방식에 큰 변화를 겪고 쓴 첫 작품 『은밀한 생』으로 1998년 ‘문인 협회 춘계대상’을 받았으며, 『떠도는 그림자들』로 2002년 공쿠르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표작으로 『로마의 테라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섹스와 공포』 『옛날에 대하여』 『심연들』 『빌라 아말리아』 『세상의 모든 아침』 『신비한 결속』 『부테스』 『눈물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등이 있다.

류재화 옮김

고려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을 거쳐 현재 파리 소르본누벨대학에서 파스칼 키냐르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문, 예술, 문학 등에 걸쳐 다양한 책을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 레비-스트로스의 『보다 듣다 읽다』, 다니엘 아라스의 『서양미술사의 재발견』, 파스칼 키냐르의 『심연들』 『세상의 모든 아침』,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 등이 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5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