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 작가들의 이례적 행보, 2013년 한국 문학 미리 보기
다채롭고 격렬한 도발로 문학적 난제에 맞선다
예비 대형 작가들의 힘찬 발아(發芽)
문학과지성사가 제정·운영해오고 있는 ‘웹진문지문학상’이 3회째를 맞이한다. 수상작과 후보작 등 총 11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린 『제3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과지성사, 2013)이 출간됐다.
수상자 김솔을 비롯해 김금희·김엄지·김이설·김희선·박솔뫼·손보미·이상우·이장욱·정용준·최진영은 작년과 올해에 걸쳐 〈웹진문지〉 ‘이달의 소설’에 작품을 올리며 한국 문학의 가능성으로 지목된 신예들이다. 등단 7년차가 채 안 된 이들은 문학의 가능성과 가치가 끊임없이 의심받는 이 와중에도 문학적 도전의 맨 앞에 서서 도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의 다채롭고도 격렬한 도발 앞에서 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슬며시 자리를 피하고 마는 듯하다. 봄의 시작과 함께 한국 문단의 예비 거목들이 보여주는 이 힘찬 발아에 2013년 한국 문학의 새 숲이 기대된다.
능수능란한 작법으로 “놀랍고 예외적인” 결과 이끈 신인
작품을 실은 11명 중에는 〈웹진문지〉의 ‘이달의 소설’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작가도 있고 갓 등단해 이름이 낯선 신인도 있다. 1회 수상자면서 다시 한 번 후보에 오른 이장욱의 경우가 전자라면 이번 수상자인 김솔은 후자에 속한다.
2012년 초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내기의 목적」)해 수상작 이전에 발표한 작품은 모두 세 편(「피그말리온 살인사건」 「은각사」 「주석본: 아주 오래된 여자」)이다. 등단 연차나 발표 작품 수만으로는 분명히 문단 안팎에 이름을 알리기엔 이른 감이 있다. 심사에 참가한 이광호(문학평론가)도 이번 결과를 “놀랍고 예외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신인이 등단하자마자 문단 미아가 되는 씁쓸한 상황을 생각해볼 때, 등단한 해에 내리 네 편의 소설을 발표한 김솔의 왕성한 활동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심사자들은 “「소설 작법」은 도무지 신인의 작품 같지 않”더라며 “대형급 신인 작가의 탄생을 예감”했다고 한다. 문단에는 때를 만나지 못했지만 꾸준히 내공을 길러온 은둔 고수가 나타나곤 한다. 소설이란 무엇이며 소설은 어떻게 쓰는가 하는 무척 난감한 질문 앞에서 분연히 펜을 뽑아든 이 신인의 한 초식 한 초식이 자못 묵직하다.
첨단 위에서 또 다른 첨단을 바라보는 도전들
김이설의 「흉몽」은 작가 특유의 ‘격렬한 자연주의’가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수위에까지 이른 작품이고, 김희선의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에 대해서라면 최근 우리 소설계에서 일종의 트렌드를 형성하기 시작한 소위 ‘데이터베이스 기반 글쓰기’의 첨단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적절해 보인다.
이상우의 「객잔」은 오로지 스타일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정용준의 「유령」과 김엄지의 「영철이」는 우리 소설에 흔치 않은 ‘성격 소설’의 형식을 차용해 순수악과 순수선의 경계를 묻고, 김금희의 「센티멘털도 하루이틀」은 도식적이거나 식상하지 않은 신세대 리얼리즘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카프카의 미로 같은 세계가 최진영의 「어디쯤」과 박솔뫼의 「너무의 극장」을 통해 한국 문학의 주무대에 성공적으로 진입했고,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인 그러나 동시에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비생산적 세계의 양면이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를 통해 선전되고 고발당한다. 그리고 소위 부르주아 소설의 전통이 부재한 한국 문학사를 돌아볼 때, 손보미가 「여자들의 세상」에서 보여준 행보는 이례적이면서도 반갑다.
미지의 문학적 ‘가능성’을 응원하며
〈웹진문지〉의 ‘이달의 소설’ 한 편 한 편은 아직 대중과 문학 시장 앞에 그 전모를 드러내지 않는 미지의 문학적 ‘가능성’이다. 이런 맥락에서 ‘웹진문지문학상’은 이미 그 문학적 성취와 대중적 인지도가 확인된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문학상들 정반대편에 위치하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문학의 오늘과 내일을 좀더 정밀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며, 척박한 토양일지언정 쉼 없이 보습을 대는 신인들을 응원하는 데 동참하게 될 것이다.
본문 속으로
내가 공들여 만든 가방이 명품은 아닐지라도 진품인 것만은 확실하오. 물론 진품이라고 모두 명품은 아닐 거요. 반대로 명품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진품이 아닌 것들도 많소. 진짜 현실에서도 가짜들은 필요한 법이오. 하지만 우리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할 때와, 진짜가 가짜 취급을 받을 때지. 김솔 「소설 작법」 중에서
인간과 세상의 도처에 늪이 널려 있음을 알리고 그 늪에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빠져 허우적대고 있음을 환기하는 서사적 탈주를 보인다._우찬제(문학평론가)
“이봐, 당신 같은 남자들이 이 세상을 망치고 있어. 알아? 당신 여자친구가, 저 멀쩡하고 예쁜 여자가 왜 남의 남자를 유혹하려 들겠어?”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노로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이를 딱딱거리고 있었다. “너 미쳤어? 누가 누굴 유혹해?” 손보미 「여자들의 세상」 중에서
내 욕망을 타인의 욕망으로 투사하고, 내 죄의식을 세계 전체의 죄로 투사하는 주인공의 심리에 대한 관찰, 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_김형중(문학평론가)
나는 아야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너 왜 그래 원래 안 그러잖아! 움직이던 손이 잠시 멈추었고 객석에서는 D열에 앉아 있던 다른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와 트로피 같아 보이는 물건으로 붉은 옷을 입은 배우의 머리를 내리쳤다. 붉은 옷의 배우는 방금 전 내가 지른 것보다 큰 소리를 그러나 엄청나게 큰 소리는 아닌 소리를 질렀다. 박솔뫼 「너무의 극장」 중에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특이하게 생긴 하나의 언어이다. 거의 모든 점에서 지나치다는 점이 이 언어의 개성이다._조효원(문학평론가)
우리는 유리막 저편의 세계를 구경하고 저편의 세계는 우리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수수료를 받는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 하루오가 슥 들어와 양쪽의 경계를 흩뜨려놓는다. 유리막 같은 것이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바깥의 공기가 밀려 들어온다. 그런 것이다. 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 중에서
작가가 무심히 적어놓은 어떤 한 문장이 나의 삶과 만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니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어떤 울림을 만들어낸다._조연정(문학평론가)
나를 괴롭히는 건 분노와 짜증이 아닌 체념과 두려움이었다. 남자의 걸음은 지나치게 빨랐고, 내 걸음이 그보다 빠르지 않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안에게서 자꾸 전화가 왔다. 어디쯤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을 더듬고 거짓말을 했다. 최진영 「어디쯤」 중에서
저 (이른바 카프카적) 공간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현실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현실 바깥에도 존재하지 않는 저 공간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실존적 내면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_양윤의(문학평론가)
우리가 본 개 중에 영철이가 있었을까? 아내가 똑바로 누워 영철에게 물었다. 글쎄, 영철은 벽을 보고 누워 대답했다. 우리가 본 개 중에 영철이가 있었으면 어쩌지? 아내가 다시 물었고, 영철은 정말 어쩌지, 속으로 말했다. 내가 우울증 걸리면 칠십 퍼센트는 당신 책임인 거 알지? 아내가 모로 누운 영철의 등을 노려보았다. 김엄지 「영철이」 중에서
김엄지의 아이러니컬한 인간 이해가 이어져갈 여러 갈래의 길을 기대하며 사뭇 설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철이」는 그 설렘이 기쁜 화답을 받은 가까운 사례가 되었다._백지은(문학평론가)
내가 부탁하자 김은 당분간 홍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물론 그냥 넘어가겠다는 건 아니었다. “다음주까지 기다리겠어.” 내가 우물쭈물 사과하자 김은 “나한테 미안할 건 없다”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제 나이 때마다 할 일이 있는데 감상적으로 굴지 마라. 센티멘털도 하루이틀이지.” 김금희 「센티멘털도 하루이틀」 중에서
‘나’는 절박한 선택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한눈파는 척을 한다. 그런다고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니겠으나 아무튼 그 한눈파는 척 또한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의 과정이다._이수형(문학평론가)
저는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지요. 저는 그것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누구보다 잘했습니다. 저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맡은 일을 실패한 적도 없지요. 제가 죽인 사람은 어떤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용준 「유령」 중에서
이 번뜩이는 언캐니의 순간, 우리는 우리를 영원히 포박할 수밖에 없는 법의 운명을 향한 잔인한 살의에 동참하게 된다._강동호(문학평론가)
객잔은 흑백이었다. 호롱의 불이 꺼지면 대나무 숲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아도 잠에 들 수 없었고, 자연히 꿈도 꾸지 못했다. 아주 멀다가도, 너무 가깝게도 휘파람은 내 근처에 머물렀다. 근처. 보이지 않으니 가끔 울었다. 울다가도 이해할 수 없으니 결국 웃었다. 그러다 보면 아침이 밝아왔다. 이상우 「객잔」 중에서
백일몽 그 자체라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는 이 단편에서 분열과 모순과 자가당착은 극단적으로 전경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_조형래(문학평론가)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한 전직 기자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도 그때였다. 톰 존스는 자신이 아직 젊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때 세상은 좀더 위대하고 숭고한 뭔가를 향해 나아가는 듯 보였고, 그 역시 거기에 온통 자신을 내맡겼다. 김희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중에서
문학은 일단 미학적으로 올바를 때라야 정치적으로도 올바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작품은 몸소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은 미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주목할 만하다._유준(문학평론가)
남편에게서는 뜨문뜨문 연락이 왔다. 잘 지내냐는 말에는 아직은 살아 있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곧 갈게. 통화를 마칠 때면 여지없이 그 말이었다. 그랬던 남편이, 근처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김이설 「흉몽」 중에서
김이설의 소설에서 파괴와 파국적 정황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파괴하고 남은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볼 시점에 도착한 듯하다._송종원(문학평론가)
제정 취지
심사 경위
심사평
수상 소감
제3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
2012년 11월 이달의 소설
김 솔 「소설 작법」
선정의 말(우찬제)
•• 이달의 소설
2012년
3월 손보미 「여자들의 세상」
선정의 말(김형중)
4월 박솔뫼 「너무의 극장」
선정의 말(조효원)
5월 이장욱 「절반 이상의 하루오」
선정의 말(조연정)
7월 최진영 「어디쯤」
선정의 말(양윤의)
8월 김엄지 「영철이」
선정의 말(백지은)
9월 김금희 「센티멘털도 하루이틀」
선정의 말(이수형)
10월 정용준 「유령」
선정의 말(강동호)
11월 이상우 「객잔」
선정의 말(조형래)
12월 김희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선정의 말(유 준)
2013년
1월 김이설 「흉몽」
선정의 말(송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