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서설
‘푸코’의 ‘칸트’ 읽기!
거장이 읽는 거장의 사유는 어떠할까? 거장이 일궈낸 과업에 도전하고 그 작업을 통해 새로운 사유를 이루어내는 일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이 흥미로운 작업이 현대 프랑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미셸 푸코에 의해 행해졌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파라디그마 시리즈>로 출간된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김광철 옮김)가 그것.
이 책은 칸트의 유명한 저작인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에 대해 푸코가 쓴 128페이지의 긴 「서설」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푸코의 국가박사학위 부논문이자 그의 초기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 이 「서설」은, 그러나 푸코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 푸코 사후에 타이프로 친 수고본이 마이크로필름의 형태로 소르본 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오다가 2008년에야 비로소 푸코의 칸트 『인간학』 번역과 함께 묶여 브랭 출판사에서 빛을 보게 된 것. 이처럼 푸코의 이 책은 오랫동안 출판되지 못한 채 묻혀 있었으며, 때문에 이 문헌에 대한 독자들의 접근도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서설」이 공식적으로 출판되지 않았던 시기에도 이미 학자들은 이 텍스트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해왔다. 특히 푸코 철학 내에서 이 「서설」이 지니는 의의와 관련하여 주목하여야 할 것은 바로 푸코의 이후 저작인 『말과 사물』 간의 연관성이다. 푸코는 이미 이 「서설」에서부터 『말과 사물』의 ‘탐구 주제’ 및 ‘연구 방법’과 긴밀히 연관되는 사상적 맹아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 텍스트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알리다!
이 책에서 푸코의 연구 주제는 칸트 철학을 근본적으로 추동해온 “어떤 구체적인 인간상”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푸코는 칸트의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을 치밀하게 분석․분해해나간다. 푸코에 따르면 “칸트 철학의 인간상은 기존의 인간에 대한 개념들과는 완전히 상이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칸트 철학에서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푸코의 이러한 칸트 해석은 다름 아닌 “텍스트에 대한 고고학”이라는 연구 방법을 통해 수행되고 있다. 푸코는 훗날 그의 핵심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가 될 ‘고고학’이란 방법론을 이미 이 「서설」을 작성하던 시기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서설」을 발표하며 푸코는 자신은 “〔텍스트의〕 깊은 지질학적 층”에 대해 연구했고, “칸트 텍스트에 대한 고고학”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즉 고고학자가 고대 시대의 지층에 묻힌 문명의 흔적들을 탐사하여 그것의 근본적인 역사적 의미를 드러내듯, 푸코는 텍스트에 대한 고고학을 수행함으로써 칸트 저작들의 지층에 묻혀 있던 칸트 철학의 근본적인 인간상을 발굴해낸다.
그렇다면 왜 푸코는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택했을까?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은 칸트가 25년 동안 대학에서 행한 ‘인간학’ 강의의 강의록을 글로 옮긴 것이며, 칸트의 마지막 저작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단기간에 갑자기 씌어진 책이 아닌, 칸트가 25년 동안 강의하면서 끊임없이 쓰고 수정하기를 반복하여 완성한 저작이다. 이 25년의 시기는 칸트 고유의 비판철학이 확립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즉 『인간학』은 칸트의 비판철학이 형성되어온 25년이라는 세월의 지층들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텍스트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학』에 묻혀 있는 칸트 철학의 지층들을 탐사하는 것이 바로 “칸트 텍스트에 대한 고고학”이며, 푸코는 이러한 탐구의 결과로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라는 칸트 철학의 근본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의 탄생과 종말
이렇듯 푸코는 『인간학』에 담긴 칸트 철학의 지층들을 탐사하며 칸트가 수립한 새로운 인간 개념의 탄생을 알린다. 푸코에 따르면 “인간은 최근의 발명품이자 출현한 지 두 세기도 안 되는 형상”(『말과 사물』)이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신의 무한성에 의존하여 무한성의 제한이나 부정으로서 인간의 ‘유한성’을 인식했다면, 근대적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다름 아닌 ‘유한성’으로 “유한한 것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사유하기 때문에 인간을 사유할 수 있다”(『말과 사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대에는 인간의 유한성이 그 자체로 고려되지 못하고 무한한 존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만 사유될 수 있었다는 것. 푸코는 이러한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 바로 칸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푸코는 이 책에서 이러한 새로운 인간 개념을 제시하며 출현한 근대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칸트 철학을 해석한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인간 개념이 근대에 들어서야 ‘발명된’ 것이라는 사실은, 결국 이 개념이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인간학은 칸트로부터 우리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사유를 지배하고 이끌어왔던 기본적인 경향”이었지만, 이제 “우리 눈앞에서 해체되고 있는 중”(『말과 사물』)이라는 것. 따라서 푸코는 모든 사유의 지식을 출현시키는 주체로서의 인간 개념을 마치 영원불변한 근본 개념처럼 간주했던 근대적 사유들은 ‘인간적인 환상’에 빠져 있을 뿐이라고 지적하며, 근대적인 인간학적 사유에 기반을 둔 기존의 철학들이 주체성 개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인간 개념이 영속적이지 않다는 것,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진 얼굴처럼 근대적 인간이 사라져버릴 것임을 보여주었다. 인간 개념을 수립한 철학자는 바로 ‘칸트’로, 이 책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는 그의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을 문헌학적 견지에서 접근하면서 인간 개념이 얼마나 허약한 조형물인지 세세히 파고들며 분해해나간다. 이처럼 푸코의 초기 저술인 이 책은 이후 독자적인 이론으로 발전하는 푸코 철학에 단초를 제공하는 중요한 저작으로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만큼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독서를 제공할 것이다.
■ 책 속으로
전통적으로 국가박사학위 부논문은 출간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푸코의 부논문은 『인간학』에 대한 ‘번역과 해설 및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푸코는 국가박사학위 주 논문인 『광기의 역사』를 논문심사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해 우선 출판사를 찾아야만 했다. 1968년 이전까지는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논문의 출판 때문에 푸코가 겪은 어려움은 잘 알려져 있다. 더욱이 부논문의 심사위원을 맡은 장 이폴리트와 모리스 드 강디야크는 푸코에게 『인간학』 번역과 그 책에 대한 해설을 분리시킬 것을 권유했다. 이 해설에서 심사위원들은 이후 계속 연구되어야 할 독자적인 논문의 단초를 보았던 것이다. 푸코의 계속된 이 연구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것이 바로 『말과 사물』이다. (「프랑스어판 편집자 서문」, 14~15쪽)
이 책은 25년 동안 씌어졌고 발전되어왔으며, 칸트의 사유가 새롭게 표명됨에 따라 틀림없이 변형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이 책의〕 마지막 판본만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이미 〔세월의〕 퇴적작용으로 뒤덮인 채로, 그리고 자신을 형성한 과거에 묻힌 채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 25년 동안의 시기는 초기 연구가 종결되고, 비판철학이 시작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칸트 사유의 세 부분은 균형 있게 전개되었으며, 마침내 라이프니츠 철학의 복귀, 슐체의 회의주의, 피히테의 관념론 등에 맞설 수 있는 〔사유〕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러한 25년 동안의 세월이 『인간학』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세월의 깊은 여러 지층의 연대를 측정해주는 외적이고 확실한 단일 기준 없이, 세월의 흐름은 계속되었다.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1」, 23쪽)
그러므로 여기에 『인간학』과 동일한 높이에서 그에게 고유한 경사선을 제시하는 몇 가지 측량지표가 있다. 처음에는 『강의 초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인간학은 자연과 인간, 자유와 사용, 학교와 세계 간에 수용된 분할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제 인간학의 균형은 그것들의 승인된 통일에서 찾아지며, 이 통일은 적어도 인간학저거 층위에서는 결코 다시 의문시되지 않는다. 인간학은 이용의 상호성 안에서 자유와 사용이 이미 묶여 있는 영역, 할 수 있는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이 그것들을 서로 비교 평가하는 유희의 통일성 안에서 상호 종속되는 영역, 문화의 규정 안에서 세계가 학교가 되는 영역을 탐구한다. 〔이제〕 우리는 본질적인 사항을 건드린다. 『인간학』에서 인간은 자연적 인간도 자유의 순수 주체도 아니며, 인간은 그와 세계와의 관계에서부터 이미 이루어진 종합 안에서 파악된다.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4」, 66~67쪽)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내용 자체는 근원적인 자율성에 따라 전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선 인간은 세계의 거주자로, 즉 “세계 거주민”인 “세계에 속하는 인간”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고찰은 순환적으로 세계에 대한 고찰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여기서 관건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 자연에 대한 인식을 함축한다는 자연주의적 관점이 아니다. 질문되는 것은 현상의 층위에서 동물로서의 인간을 파악하고 정의하는 규정이 아니라, 자아와 ‘나는 존재한다’에 대한 의식의 전개이다. 요컨대 주체는 운동 속에서 스스로 촉발되며, 그 운동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대상이 된다. 즉 “나는 있다. —내 밖의 공간과 시간 안에는 세계가 있으며, 나 자신은 세계 존재이다. 나는 이러한 관계와 감각(지각)의 움직이는 힘을 의식하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나 자신에게 외부적인 감각 대상, 즉 세계의 일부이다.”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7」, 96쪽)
그러므로 『인간학』은 세월을 거친 『비판』에 준거하여 “체계적으로 계획된” 것이다. 다른 한편, 『인간학』은 대중적인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인간학』의 성찰은 주어진 〔대중적인 일상〕언어 안에 위치하는데, 이 언어는 『인간학』의 성찰이 그것에게 아무런 수정도 가하지 않으면서 투명하게 만든 것이고 또한 이 언어의 특성 자체는 보편적 의미가 탄생하기에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학적 관점에서 진리는 종합의 시간적 분석을 통해서, 그리고 언어와 교환의 운동 속에서 구체화된다. 여기서 진리는 자신의 원초적인 형태를 찾지 않으며, 자신의 구조에 대한 선험적인 계기나 주어진 것에 대한 순수한 충격도 발견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서, 이미 말해진 언어 속에서, 시간적 흐름 안에서, 그리고 결코 0도로 주어지지 않는 언어적 체계 안에서, 진리는 자신의 근원적 형태로서 어떤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진실로 시간적이면서 실제로 교환되는 운동 중에 있는 경험의 한가운데에서 출현한 보편성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내감의 형식인 마음에 대한 분석은 인간의 보편성의 형식인 세계 시민적인 규정이 된다.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9」, 125~26쪽)
이제 우리가 출발했던 문제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 문제는 인간학적 가르침에 의해서 『비판』에 덧붙여진 반주, 즉 그것을 통하여 칸트가 인간에 대한 경험적 인식의 끊임없는 축적으로 초월적 성찰의 노력을 배가시킨 단조로운 대위법에 대한 것이다. 칸트가 25년 동안 ‘인간학’을 강의했었던 것은 대학 교수의 삶이라는 그의 〔직업상의〕 책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칸트적 문제의 구조 자체와 연결된 다음과 같은 끈질긴 물음이다. 무한자의 존재론을 거치지 않고 절대자의 철학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 성찰 속에서 어떻게 유한성을 사유하고, 분석하고, 정당화하고, 정초할 것인가? 이 질문은 ‘인간학’ 저작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지만, 그러나 이 질문은 경험적 사유에서는 자신 스스로를 숙고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학’에서 자신의 진정한 차원을 얻지 못한다. 여기에 칸트적 기획에서 ‘인간학’이 가지는 다음과 같은 주변적인 특성이 있다. ‘인간학’은 본질적인 동시에 비본질적이다. 즉 중심에서 항상 벗어나는 변함없는 가장자리이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중심을 언급하면서 질문한다.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10」, 144쪽)
그러나 우리가 이 비판의 모델을 부여받은 지 반세기가 넘었다. 니체의 기획은 인간에 대한 물음의 확산이 마침내 끝나는 지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신의 죽음은 절대자〔의 존재〕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동시에 인간 그 자체를 살해하는 이중적인 살해 행위 안에서 나타나지 않는가. 왜냐하면 자신의 유한성 안에서 인간은 그가 부정하는 동시에 미리 알리는 무한자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신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인간과 관련해서도 무한자와 관련해서도 자유로울 것이며, 유한성은 종말이 아니라 끝이 곧 시작이 되는 시기의 굴곡과 결절점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유한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철학의 영역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도정은 그 질문을 거부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초인이라는 답변을 통해서 완성된다.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 10」, 148~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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