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
삶의 무의미가 주는 위협, 생존의 어려움,
속말을 해줄 나 이외의 존재에 대한 갈망이 짓누를 때, 이 책을 들어라!
문학평론가 김현 번역으로 만나는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가 그리고 쓴 『어린 왕자』가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현(1942~1990)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계산적이지 않은 한 순수한 영혼과의 만남을 통해 사람들에게 삶의 본질적인 의미와 아름다움을 되새겨보게 하는 유명한 불후의 고전이다. 그만큼 모두가 이 책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던 ‘어른’들에게 반드시 지금 다시 한 번 이 책을 들춰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귀여운 삽화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어 이 책을 아이들 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어린 왕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말에 따르면 어른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급행열차에 몸을 싣고 있지만, “아이들만이 자기들이 무얼 찾고 있나 알”고 있다. 아이들은 “누더기 인형 때문에 여러 시간을 허비하고, 그래서 그 인형이 아주 중요하게 돼버리지”만 어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볼 줄 몰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어린 시절 읽었던 것과는 또 다른 책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우물을 찾아……
『어린 왕자』는 출간된 지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계산 없는 순수함이 주는 감동을 선사하며 전 세계적으로 1억 부가 넘게 팔려나가고 있다. 오랫동안 이 책이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울림을 주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이 여전히 메말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삶은 권위와 계산과 술주정과 반복의 연속이다. 그것은 사막과 같이 메마른 어떤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에 메마른 삶은 더욱 가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우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가 “길들인” 어떤 것으로, 삶의 건조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자기 삶의 반경 속에 끌어넣어 길들이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 행위를 통해 무의미한 사건, 대상들은 빛나는 의미체로 변모한다. 현실의 건조성은 이 ‘우물’을 통해 그 메마름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가 여행하며 만난 여러 사람들은 자신을 사물화해 타인들과 교통을 스스로 폐쇄한다. 왕은 권위로, 허영꾼은 숭배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술꾼은 망각에 대한 요구로, 사업가는 부(富)에 대한 갈구로 각각 타인과의 통로를 막는다. 그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타인들과의 통로를 폐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통로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목표가 정해진 순간에 이미 끝나버린 것이다. 왕의 삶은 왕좌(王座)에, 허영꾼의 삶은 무대에, 술꾼의 삶은 술병에, 사업가의 삶은 예금통장에 축소되어 있다. 그들은 이익과 목적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린 왕자』의 이 부분을 읽으며 자신의 모습이 조금도 오버랩되지 않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삶의 무게를 핑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산 것이, 때론 보고도 못 본 채 한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우물을 다시 찾아볼 때이다.
위대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증언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가 43세 때에 미국에서 발표한 동화이다. 이 당시 생텍쥐페리는 2차대전에 참전하여 조종사로 활동하다가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으로 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 작품은 “레옹 베르트에게” 바쳐져 있는데, 그는 점령하의 프랑스인을 대표한다. 남아메리카로 망명한 베르나노스가 그러했듯이, 미국에서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에서 배를 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그래서 위로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저항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해주어야 할 의무를 느낀 것이다. 번역자 김현에 따르면 생텍쥐페리는 이 책에서 프랑스를 억압하고 자유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를, 나치즘을 바오밥나무에 비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카뮈의 『페스트』나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증언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번역으로 만나는 『어린 왕자』
비평으로 우리 문학의 새로운 넓이와 깊이를 창출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김현은 문학평론가인 동시에 불문학자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번역가로서도 책을 출간했다. 이 책 『어린 왕자』는 1973년 문예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으나 오랫동안 절판되어 있었던 것을 이번에 낡은 말투와 명백한 실수 몇몇 부분만을 바로잡아 김현의 번역을 최대한 살려 재출간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치수(김현문학기념사업회장) 선생에 따르면 김현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예리하고 풍부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시적인 문체를 문학의 본령으로 생각했으며,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삽화들을 너무나 좋아했다. 그는 어린 두 아들이 『어린 왕자』를 읽고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아름다운 글을 쓰기를 바랐다. 또한 서정성이 풍부하고 문명 비판 및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이 책을 어른들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 책을 번역했다고 한다. 이 책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열망의 결과물이었다.
■ 본문 속으로
여러분은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 어른들이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봤는가?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모으지는 않니?” 따위의 말을 하는 법이란 결코 없다. 그 대신 “그 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고?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따위만 묻는다. 만일 어른들에게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을 봤어요. 창에는 제라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고요”라고 말해서는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봤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야 참 좋은 집이구나!”라고 소리를 지른다. _24쪽
“그런 거 알아요?……아주 서글퍼지면 해 지는 게 보고 싶거든요……”
“마흔네 번을 본 날 그럼 너는 그토록이나 슬펐단 말이냐?”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_35~36쪽
“넌 아직까지 나에게는 다른 수많은 꼬마들과 똑같은 꼬마에 불과해. 그러니 나에겐 네가 필요 없지. 물론 너에게도 내가 필요 없겠지. 네 입장에서는 내가 다른 수많은 여우와 똑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만일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하게 돼. 나에게는 네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거고, 너에게는 내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거야……” _99쪽
“누구든지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 알 수가 없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갖고 있지 못해. 그들은 상점에서 다 만들어놓은 걸 사니까. 하지만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지. 친구를 원하거든 날 길들여!” _101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난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되면 벌써 안절부절못하고 걱정을 할 거야. 난 행복의 가치를 알게 될 거야. ” _102쪽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한 거지.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안 보인다. [……]네가 네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에 네 장미가 그토록 중요하게 된 거야. [……]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_104~06쪽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갑자기 모래의 그 신비스러운 번쩍거림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어린애였을 때, 나는 고가(古家)에서 살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거기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그것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찾아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 집은 매력이 있었다. 내 집은 가슴 깊숙이에 한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그래.”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야.” _113~114
“사람들은, 특급열차를 집어타지만 무얼 찾아 가는지 모르고 있어. 그래서 초조해가지고 빙글빙글 도는 거야……”_115쪽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쳐다보면 내가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로서는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 같을 거야. 아저씬 웃을 줄 아는 별을 갖게 되는 거지.” _127
[매일경제] 김현 번역 어린왕자 40년만에 다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