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둘러싼 잉여의 의미와 글쓰기의 무의식
1995년에 계간 『문학동네』에 「글쓰기의 우울: 신경숙론」을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한 문학평론가 김동식(인하대 한국어문학 전공 교수)이 첫 평론집 『냉소와 매혹』(문학과지성사, 2002) 이후 십 년 만에 두번째 평론집 『기억과 흔적―글쓰기의 무의식』(문학과지성사, 2012)을 펴냈다. 등단한 지 7년 만에 첫 평론집을 상자했던 저자의 이력만큼이나 올해로 등단 17년차인 저자의 비평의 궤적에서 두번째의 오롯한 문학평론집을 마주하는 일은 반가우면서도 이채롭기 그지없다.
저자가 본격적인 문학 비평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은 우리 사회가 전면적인 삶의 양태와 패러다임의 급격한 격랑 속에 놓였던 시기였다. 그가 첫 비평집(『냉소와 매혹』, 2002)의 서문에서 밝혔던바, (이제는) “이전 시기처럼 문학이 이념과의 근접성 속에서 계몽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문학이 내가 살고 있는 삶과 세계를 전체적으로 재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문학이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주변화되는 과정과 문학이 새로운 양상으로 기능 분화되는 과정은 둘이면서 하나였던” 그 시기에 문학평론가로서 그의 관심은 곧바로 ‘문학의 내적 근거들을 확인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소망’에 기인한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몹시 소박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붙박여 있었다. 더불어 “문학이 주변의 문화적·매체적 타자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굳은 믿음에서 “인접한 문화 영역이나 문학적 하위 양식들과 소통해나가는 과정에서, 달리 말하면 문학의 바깥에 놓인 타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문학의 경계에 대한 감각을 재조정해야” 하고 그렇기에 누구보다 더 부지런히 “하위문화에 눈길을 던져보거나 작품에 내재된 문화적 함의에 주목”하고자 했던 평론가 김동식이다. 그로부터 십 년이 흐르고 이번에 묶은 책 『기억과 흔적』(2012) 역시 저자의 문학의 내적 근거에 대한 물음과 문학 주변부의 문화적-매체적 타자들과 소통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수록한 14편의 길고 짧은 평론 가운데 특히 데리다(의 후기구조주의와 라캉의 정신분석학 담론들)를 바탕으로 “글쓰기가 자기 현전의 지워짐” 곧 음성적 글쓰기임을 치밀하게 읽어내는 ‘신경숙의 『바이올렛』론’과 작가의 형식 실험과 소설 문법의 파괴를 근간으로 문학 내부의 낯설고도 가장 본질적인 타자를 불러오는 ‘이인성론’ 등에서 유난히 번뜩이는 저자의 “작품과 이론과 (독자/필자/해석자의) 무의식 사이의 대화” 주선은 우리가 김동식 비평의 찰지고도 세밀한 맛을 염두에 두고자 할 때 필히 눈여겨봐야 할 글들이다.
“글쓰기는 종이의 흰색을 지우는 운동성이 만드는 여백에 의해서만, 그리고 목소리의 현전을 삭제 기호 아래에 두어야만 가능하다. 글쓰기가 부재나 지워짐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처럼, 어쩌면 오산이는 (/작가는) 흰색 바이올렛을 닮은 여백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백의 글쓰기, 또는 글쓰기 이전의 글쓰기로서 여백. 글쓰기의 운명 위에 자기의 운명을 쓰다가 발견하게 되는 글쓰기.” (p.65 「글쓰기-목소리-여백―신경숙의 『바이올렛』」에서)
“작품이 잘 읽히지 않는 것은 누구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무의식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욕망의 형식과 실존적인 조건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낯선 것은 이인성의 작품이 아니다. 어쩌면 그의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된, 우리의 억압된 무의식이야말로 진정으로 낯설면서 치명적인 유혹일지도 모른다.” (p.176 「몸-바꿈의 환상성과 탈/경계의 운동성―이인성론」에서)
무엇보다 목차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한국 근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문학 작품을 읽어내고 풍속-문화적 문학 연구에 한껏 기울어 있는 듯 보였던 그의 비평적 행보가 지난 20여 년간의 현대문학사의 주요한 작품의 현장성을 읽어 내는 일(이청준 최인훈 이제하 이인성 신경숙 김 훈 김영하 박민규 김연수 박현욱 천운영 이기호 정이현 김애란의 작품들)에서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음 또한 목도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서 여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작품의 현장성을 읽어내는 일에 비평가의 본령이 있으며, 비평이 시대와 세대의 내밀한 흐름들을 기록하고 있는 텍스트이고 그렇기에 해석의 장을 확대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축적해가는 운동성 자체라는 진심 어린 소신이다.
[머리말]
『논어』의 문장에는, 대중의 무관심에도 화내지 않는 현실의 주체와 그러한 사람을 군자라고 인정하는 초월적 시선이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人不知而不慍’이라는 완결된 문장이 군자를 승인하는 초월적 시선을 소거하거나 차단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말라. 그러면 군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예 아무것도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않는 바로 거기까지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냥 처음부터 ‘人不知而不慍’이면 충분했던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人不知而不慍’라는 짧은 문장을 둘러싸고 있는 잉여의 의미와 무의식을 잠시나마 훔쳐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에게 비평이란 ‘人不知而不慍’ 여섯 글자에 불과하거나 그 글자들을 둘러싼 의미론적 여행과 비슷한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시절 간간이 발표했던 글들 가운데 그나마 생각이 정돈된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묶었다. 글을 다듬으며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후기구조주의와 정신분석학 담론들을 바탕으로 한국문학의 현장을 읽어보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론을 작품에 적용한다는 생각을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하고자 했고, 작품과 이론과 나의 무의식 사이에 대화를 주선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리고 인연이 닿은 작품들을 충실하게 읽어가는 일이 내가 즐겁게 담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글쓰기 또는 비평이란 여러 번을 읽고 수없이 고쳐 쓰는 일, 바로 거기까지일 것이다. 이 책은 반복되지 않을 글쓰기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자 흔적들이 아닐까 한다. _「책을 펴내며」에서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며, 소설과 영화를 넘나드는 축제의 발생학 ― 이청준의 『축제』 읽기
생의 도약과 영원회귀의 잠재적 공존 ―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읽기
글쓰기 · 목소리 · 여백 ― 신경숙의 『바이올렛』
지금은 여기에 없는 것들을 찾아서 ― 김영하 박민규 김연수 정이현의 소설에 관하여
이야기를 꿈꾸는 소설에 관한 이야기 ― 이기호의 『최순덕 성령충만기』와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읽기
폭력의 언표들과 죽음의 위상학 ― 이제하의 『독충』과 김훈의 『칼의 노래』
고향을 잃어버린 고향에 관하여 ― 이청준의 『가면의 꿈』 읽기
「총독의 소리」와 「주석의 소리」에 관한 몇 개의 주석
몸-바꿈의 환상성과 탈/경계의 운동성 ― 이인성론
문학의 안팎에서 생성되는, 문학의 새로운 몸 ― 정과리 비평집 『문학이라는 것의 욕망』에 대하여
이미지에 대한 몰입, 사춘기의 오이디푸스적 위기를 돌파하다 ― 박현욱의 『새는』
숨쉬기의 무의식에 관하여 ― 천운영의 『명랑』
경제적 불황의 문화적 징후들
「무한도전」을 위하여 ― 엔터테인먼트의 문화적 자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