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전집 14
춤추는 사제
이청준 장편소설
이청준 장편소설 『춤추는 사제』(<이청준 전집> 14권, 문학과지성사, 2012)는 1977년 1월부터 1978년 2월까지 1년여에 걸쳐 잡지 『한국문학』에 최초로 연재되었고, 1979년에 홍성사에서 첫 단행본으로 독자에게 선뵈었던 작품이다. 이 소설은 1천 3백여 년 동안 질곡의 역사를 품은 채 잠들어 있는 부여 능산리 고분군 서하총 내부에서 어느 날 의자왕의 비밀 능실의 발견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여기에 자신이 나고 자란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지닌 재야 사가로 백제사에 대한 폄훼와 배제, 왜곡에 맞서는 가운데 의자왕과 나라 읽은 백제 유민들의 아픔과 꿈을 온몸으로 앓고 꾸는 주인공 윤지섭과 신라인의 후예로 윤지섭의 아픔을 이해하고 돕지만 그 아픔에 운명적 거리를 두는 인물인 민영서 경위, 승자의 역사 앞에서 패자의 아픔 자체를 부인하고 심지어 왜곡하려는 군청 공보실 나병찬 실장 등이 반목과 화해를 거듭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말 그대로 천 년이 넘도록 망국의 한과 치욕을 안고 간 의자왕, 역시 나라 읽은 백성으로 함께 치를 수밖에 없었던 치욕과 설움 속에 애달았던 유민의 소망이 이 땅에 그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승화되며 이는 다시 ‘백제 문화제’라는 화려한 제의로 거듭난다.
유신정권 말기인 1970년대 끝자락에 씌어지고 출간된 장편 『춤추는 사제』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이 소설이 출간된 이듬해인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겪으면서 (박정희의 등장 이후 이 땅 현대사에) 다시금 엄청난 폭력적 간극이 발생한 점을 떠올릴 때, 이청준 소설의 예언자적 지성에 새삼 전율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윤지섭(호남인)과 민영서(영남인)로 운위되는 “피해자/가해자라는 정치적, 정서적 상징이 뻔한 대립 구도에 머물지 않고, 일정한 운명적 거리 너머로 서로 동정적인 이해를 나누는 관계이자 작품 말미에 운명적 합일 혹은 나눔이라는 상징적 제의”에 이르는 점을 지적하며, 이것이 곧 이청준 소설의 정치학이 이른 “원숙한 깊이”임을 우리에게 상기한다. “이청준 소설의 유토피아 정치학은 『당신들의 천국』(1976)에서 비롯되어 「비화밀교」(1985) 『인간인』(1991) 『신화를 삼킨 섬』(2003) 등을 거쳐 그의 마지막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2007)에 이르기까지 지배와 억압의 질서를 자유와 사랑의 그것으로 탈구축하기 위한 끊임없는 모색과 탐구를 보여주게 된다. 승자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기술되고 전유된 백제 패망사를 그 영욕의 본디 자리로 되돌려놓음으로써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동시에 구원하고자 한 작품이 바로 장편 『춤추는 사제』(1979)이다.”(정홍수/문학평론가)
“공시적 역사가 억누르고 삭제한 꿈의 자리로 돌아가 그 꿈의 상상적 되삶을 통해 인간 진실의 온전한 회복 가능성을 묻는 작품”이 바로 이 소설 『춤추는 사제』인 것이다.
■ 작품 해설
『춤추는 사제』는 이청준 소설의 정치학이 품고 있는 진실(진리)에의 의지와 윤리적 깊이를 보여주는 야심찬 작품이다. 여기에는 역사의 꿈과 아픔을 그 진실의 자리에서 되살고자 하는 불가능한 시도가 있다. 그 되삶은 윤지섭의 투신이 보여주듯 생사를 건 결단과 도약을 요구한다. 물론 윤지섭의 죽음은 소설 속의 그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죽음이 허구의 차원이나 상징적 차원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사건으로서의 진리의 차원에서 펼쳐질 때 우리는 가장 깊은 윤리적 결단 앞에 선 인간의 형상과 마주한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 혹은 역사는 그런 불사의 존재들을 통해 공허와 무의미를 넘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는 이 작품의 절절한 호소를 삼켜버린 역사의 폭력을 알고 있다. 이 소설이 씌어지고 출간된 것은 유신정권 말기인 1970년대의 끝자락이었다. 그 이듬해인 1980년에 소설 속 윤지섭이 온몸으로 메우고자 했던 공허의 시간은 또다시 역사의 폭력에 노출되며 회복되기 힘든 지경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참상 앞에서 왕의 유훈을 받아들었던 신라의 후예 민 경위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4·19세대 이청준 소설의 정치학은 여기서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패배를 예감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 아는 대로 이청준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80년대를 거쳐 다음 세기에까지 이어진 이청준 소설의 그 아프고 웅숭깊은 정치학의 심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춤추는 사제』는 거듭 다시 읽혀야 할 중요한 텍스트다. _정홍수, 해설 「역사의 공백과 공허를 가로지르는 진리의 정치학」에서
■ 표지 그림 및 글씨_ 김선두
대왕의 침묵
꿈을 앓는 사람들
음양의 역사
가칭 백제 문화제
증인의 손
천 년의 낙화
해설_ 역사의 공백과 공허를 가로지르는 진리의 정치학/정홍수
자료_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이윤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