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부터 2011년까지 총 14년 동안 약 3,300여 편 연재
울리고 웃기는 일상의 에피소드 속 시대 흐름과 가치의 변화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수작, 우리들을 위한 만화 『비빔툰』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대표 가족만화 비빔툰의 아홉번째 이야기 『비빔툰 9: 끝은 또 다른 시작』(문학과지성사, 2012)이 출간되었다. 8권이 나온 지 2년 만이다. 재미난 에피소드와 풍자·우화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내는 철학적 질문(깨달음)이 여전하다. 그 오랜 시간동안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일상을 포기하지 않는 만화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일 것이다. 이번 출간은 『비빔툰』의 14년 연재 종료까지의 분량을 담고 있어 더 의미가 깊다. 이제는 친근한 이웃이 되어버린 정보통·생활미 가족 이야기의 일단락과 새로운 출발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읽어볼 시간이다. 한편 이번 9권 출간으로 ‘완간’이 된 『비빔툰』을 기념하여 『비빔툰』 리뉴얼 박스 세트가 출시된다. 그간 서로 다른 크기였던 『비빔툰』을 정리하는 동시에, 새 표지를 입히고, 오류를 정정했다. 소장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하여 특별 제작된 ‘비빔툰 박스’ 속 비빔툰과 애독자들을 위한 노트도 함께 받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〇보도자료
“정말로 독자와 함께 늙어가고 싶었는데……”
─『한겨레』, 2011년 12월 27일자, 문화면
일간지 연재는 1년도 힘들다고 한다. 마감·소재 고갈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이에 따르는 직업병, 조금만 긴장을 늦추어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독자들 등등 보통의 연재보다 몇 갑절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연재를 14년간 이어온 만화가 있다.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 가족만화가 되어버린 『비빔툰』이다. 1998년 5월 『한겨레 리빙』에서 시작된 이 만화는 정보통·생활미 부부와 그들의 자녀 정다운·정겨운이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다룬다. 정보통은 그냥 샐러리맨에 유부남, 아빠고, 생활미는 가정주부, 아줌마, 엄마이며, 정다운은 말썽꾸러기 아들, 정겨운은 새침떼기 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게 전부다. 미래나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들 중 누구 하나가 영웅인 것도, 초능력자인 것도 아니다. 뭔가 특별한 기회를 얻는 것도, 특수한 상황에 놓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14년이다. 그냥 버티기만 한 시간이 아니다. 엄청난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다. 이번에 연재를 마감하는 까닭도, 더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작가 스스로, 결정한 일종의 휴식(休息) 기간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작가는 “독자들과 함께 늙어가며”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찰리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로 유명한 『피너츠The Peanuts』처럼 장수하는 만화를 꿈꾼 것이다(우연처럼 비빔툰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정비글은 스누피와 같은 ‘비글’이다). 비빔툰의 지난 아홉 권을 보면, 14년간의 대한민국이 보인다. 그것은 우리가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들이다. 공감할 수 있는 만화, 이것이 『비빔툰』이다. 어설픈 교훈을 주려거나 현실을 잊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삶의 긍정과 희망을 찾아내주는 것, 아픔과 통증은 피식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힘을 건네주는 만화가 바로 『비빔툰』이다. 그러므로 비빔툰 식구들은 절친한 이웃이다. 『비빔툰』을 1권부터 따라 읽어간 사람이라면, 그들을 벌써 14년째 알고 지낸 것이고, 그렇다면 아주 친한 친구라고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치관이 흔들리고, 생활 속 변화가 요동칠 때, 같이 따라 흔들려주는 그렇지만 괜찮다고 먼저 말해주는 친구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비빔툰의 주인공 정보통도 작가 홍승우도 386세대이다. 들끓듯 말해지다가 어느덧 마흔을 넘어선 ‘그들’. 이제는 새로운 세대에 밀려 잊힌 듯하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그들’. 이 사회의 가장 큰 혼돈기(혼돈기는 언제나 있었지만)를 살았고, 살면서, 현재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그들’. 기존의 가치관과 대립과 융화 그 최첨단에 서 있는 ‘그들’과 동고동락한 정보통과 그의 가족이 어찌 남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그러므로 『비빔툰』은 사회적 맥락으로나 의미로나 또 만화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재미로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또 오래 남아야 하는 대한민국 대표 가족만화인 것이다.
“천만에요. 제 마음속에 『비빔툰』을 계속 가지고 갈 겁니다.
지금 만화 속 다운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운이가 4학년이거든요.
곧 사춘기를 맞겠죠. 언제 어디서가 될 진 몰라도
사춘기 아이, 사추기 아빠의 얘기를 꼭 그릴 겁니다.” ─같은 기사
이번에 출간된 『비빔툰 9』의 부제는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제목 그대로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코드는 ‘사춘기’ 그리고 ‘사추기’이다. 다운이와 겨운이가 어느덧 사춘기를 겪을 나이가 되었다. 말수는 점점 줄고, 부모님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은 점점 늘어간다. 그러면 사추기는 무엇일까. 작가는 마흔이 되어 이리저리 흔들거려야 하는 자신의 세대를 그렇게 표현한다. 그야말로 ‘불’면 ‘혹’하는 나이 ‘불혹’(pp. 182~83)에 작가는 점점 멀어져가는 듯 보이는 가족의 모습과 함께, 열의도, 목적도 잃어가는 자신을 들여다본다. 이는 곧 정보통의 일이고, 다시 말해 같은 세대 모두의 일이다. 이때 작가는 부싯돌을 찾아낸다(p. 5). 그것이 뭐냐고? 글쎄, 9권 6, 7쪽의 그림이 답일 것이다. 무엇이든, 가슴에 불을 낼 수 있는 것, 다시 가족이란 이름의 가치를 찾아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와 시간을 이겨내는 것. 그 힘은 가족에게서 올 수도 있고, 새롭게 찾아낸 자신만의 꿈에서 가져올 수도 있겠다. 정답은 없다. 아니 정답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혼란과 방황은 나이와 상관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작가는 작심을 한 것처럼 책 구석구석에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술과 가치관의 급변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비틀거리면서도 방향을 잡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금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비빔툰』의 연재가 끝났다. 그리고 9권을 통해 <비빔툰 시리즈>도 ‘완결’이 되었다. 물론 앞선 인터뷰와 같이 이 완결은 ‘완결’이 아니다. 정보통 가족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우리는 일상의 즐거움, 슬픔, 괴로움 등등을 한데 모아 비벼내었던 『비빔툰』을 보내주어야 한다. 이는 다시 새로운 만남을 위한 안녕,이므로 그저 슬프고 아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언제나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러한 일을 겪어왔다. 이 작별의 순간에 적어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당부가 있다. 언젠가 홍승우 작가가 “이 만화 속처럼 우리의 삶이 정말 그리 따뜻하기만 한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했던 대답이다.
“행복이라는 거 단순한 일상 속에서 그런 순간들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 행복은 단순한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비빔툰』의 1권부터 9권까지의 14년의 시간은 아마도 이렇게 정리될 것이다.
한편 이번 9권의 출시와 더불어 완간되는 『비빔툰』을 기념하기 위해 9권 리뉴얼 세트가 제작되었다. 애독자들을 위한 예쁜 노트와 더불어 특별히 제작된 ‘비빔툰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새 차림의 비빔툰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