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숲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이방인의 방문과 함께 다시 한 번 시작된 숲의 악몽,
대지의 틈,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맞닥뜨린
인간의 두려움의 실체를 좇는 편혜영 신작 장편소설
2011년 동인문학상, 2010년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2009년 이효석문학상, 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으로 빛나는 한국문학의 중추, 작가 편혜영이 자신의 다섯번째 책이자 두번째 장편소설인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 2012)를 발표했다. 이 소설은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그들이 전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숲이 복잡하고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막막한 곳임을 점차 깨달아가면서 전개된다. 숨 가쁘게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작가의 그 어떤 전작들보다 개성 강한 인물들과 그들이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에 매료될 것이고, 결국 ‘복잡하고 막막한 곳은 숲뿐이 아니라는 걸, 의심과 불안이 잠식하는 한 우리가 사는 곳은 그게 어디이든 애당초 다 그렇다’는 삶의 진실과 맞닥뜨릴 것이다.
“편혜영의 소설은, 군더더기 없는 플로베르적 절제로
지금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소설적 경제에 다다랐다.” (2011년 동인문학상 심사평)
전작 『저녁의 구애』(2011)로 도시 문명 속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황폐한 내면을 꿰뚫으면서, 편리하고 안온한 일상이 끝 모를 공포로 탈바꿈해가는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 편혜영이다. “군더더기 없는 플로베르적 절제로 최대의 소설적 경제를 이끌어냈다”는 찬사와 함께 그해 동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던 편혜영이 이번에 발표한 신작 장편 『서쪽 숲에 갔다』의 무대는 서울에서 400여 킬로미터, 차로 달려 네 시간 거리쯤에 위치한 숲이다. 이번 이야기는 이 숲에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다시 한 번 염두에 두자. 이 책은 ‘편혜영의 소설’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섣불리, 일상에 지친 도시민을 위무하는 쉼터이자 안식처로, 때로 녹색성장 운운하는 정책 입안자들의 공문서에 조림 수치와 함께 등장하는 그런 ‘푸르른 숲’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과 공기와 대지를 잠식하고 어둠과 일체를 이룬 숲. 복수이자 한 덩어리의 전체로 존재하는 숲. 차고 거친 정적과 짙은 그늘 속에 교교한 바람 소리, 모호한 짐승 소리, 사방을 살피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숲이다. 이 숲에 실패한 자제력과 반복되는 결심, 실재 없는 감각의 환영에 시달리는 한 사내가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기지시적 알레고리가 품은 그들의 비밀과
스트레칭 서스펜스가 압도적인 소설의 백미
『서쪽 숲에 갔다』는 실종된 형 이경인을 찾아 외딴 마을을 찾은 변호사 이하인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형의 행적을 추적하다 의문의 죽음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을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또 관여하는 듯한 진 선생과 은퇴한 벌목꾼들로 마을 상점가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안남, 최창기, 한성수 모두가 거대한 숲을 둘러싼 범죄를 은닉한 공모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만을 낳은 채로 1부가 닫힌다. 그리고 다시 열린 2부와 3부에서 현재 이 숲의 관리사무실에 붙박여 주인 모를 스도쿠 책을 뒤적이거나 바람 소리와 짐승 소리 외엔 적막한 숲으로 나 있는 창틀을 배회하거나 간단한 일지를 정리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는 박인수의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뒤엉키면서 마을에 짙게 드리운 불안과 폭력의 실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작품에는 분명한 사건의 전조와 등장인물 개개별 성격, 그들 관계의 형성을 낳고 엮는 데 앞서 우리가 접했던 그 어떤 편혜영의 소설들보다 대화문이 풍부하게 실렸다. 대화를 이어가는 한 단락 안에서 인물 화자가 교차하면서 심리 변화의 추이가 미묘하게 얽히고, 고조되는 갈등과 불안의 진폭은 읽는 이를 숨 가쁘게 한다. 갈등이 고조되고 종국에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버린 폭력으로 치닿는 과정 역시 이러한 대화의 과정에서 벌어진다. 현재의 모순과 패배를 이미 예고했던 과거의 불행과 습관은 인물들을 옮겨가며 그 어떤 외부의 폭압보다 거세게 작동한다. 짙고 거대한 숲과 그 속에서 퍼져 나오는 듯한 음습한 기운과 소음은 어쩌면 극도의 자기모순과 자아 분열, 순간적인 격분과 반복된 자기의혹에 매몰되는 우리 안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 해설
“작은 범죄가 거대한 심연을 감추고, 결정적인 것은 끝까지 말해지지 않는다. […] 모호한 소리에 몸체를 찾아주려 했으나 어느 샌가 입을 벌린 대지의 틈,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하는 주체의 모험담. 이 틈과 폐허를 텅 비어 있는 상태로 보전하기 위해서 자기 지시적 알레고리와 스트레칭 서스펜스가 동원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박인수가 모호한 소리를 현실적인 몸체로 환원하려들지 않는 한에서만 주체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과 동시에, 박인수가 주체의 자리를 고수하는 한에서만 소리를 쫓는 모험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서쪽 숲에 갔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절망적인 메아리와 부엉이 울음소리는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_권희철(문학평론가), 해설 「세계의 일식이 지나고」에서
■ 작품 속으로
“만약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재빨리 거대한 빛 무리를 피해 길을 마저 건너가자 아예 뒤로 물러섰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난데없이 술을 마시고 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형을 제사 지내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마을 사내들의 조용한 흥취에 홀려 과하게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아예 마을 사내들과 어울려 늦게 술집에서 나왔다면, 달라졌을까.
그가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들어온 말 중에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게 있었다. 어머니는 형의 편을 들기 위해 그 말을 편의적으로 사용했지만, 그는 어떤 일이 그렇게 되기까지는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일들의 연쇄가 전제되어 있다는 걸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상황을 하나만 바꾸는 식의 가정은 도대체가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이하인은 자신이 바닥에 나뒹군다고 생각한 짧은 순간, 그 길고도 가망 없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1부 pp.121~22)
“숲은 그가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하게 큰 덩어리로 뭉쳐진 채, 대낮인데도 검은 그림자를 깊숙이 내밀고 있었다. 그 거대한 숲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그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은 없는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저 숲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발짝만 들어서도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릴 정도로 깊은 미로가 된다는 저 숲 말이다.” (2부 pp.170~80)
“숲에 부엉이가 산다.
그 당연한 문장을 여러 번 되풀이해 읽어나가는 동안 박인수는 참을 수 없이 외로워졌다. 자신이 검은 나무숲에 숨죽여 앉은 부엉이같이 느껴졌다. 바람이 불면 무거운 날개를 쳐올려야 하는 부엉이가 된 것 같았다. 사방을 감시하며 머리통을 돌려 눈을 굴리는 부엉이 같았다. 가까운 곳에는 없는, 먼 곳에 있어 간혹 눈에 띄는 먹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부엉이 같았다.”
(2부 pp.184~84)
“취기는 그에게 모든 일은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며 삶의 여러 갈피 속에 고스란히 묻혀 누구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dl라고 생각하게 했고, 인생을 통째로 긍정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가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버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순간들이 인생의 다른 순간과 마찬가지로 곧 지나가버릴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2부 p.245)
“진은 벌목 일을 완전히 끝내고 숲에서 내려온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찾아주었다. 적어도 최창기는 그것이 새로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차가운 도끼를 버리고 뜨거운 다리미를 들게 되었으니까. 나무로 빼곡한 숲에 가는 대신 옷이 빼곡이 걸린 세탁소에서 지내게 되었으니까. 나무, 풀, 잡목, 썩어가는 토양 냄새 대신 드라이클리닝 용제 냄새와 고열의 다라미가 뿜어내는 열기를 맡게 되었으니까.
모든 것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 당시는 새로운 인생이라는 게 집을 찾은 직장을 찾듯 새로운 옷을 고르듯 찾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날 그들이 잃은 것이 길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걸 몰랐다.” (3부 pp.267~68)
“세 사람은 처음부터 친구였으나, 그 무렵 일을 하면서야 진정으로 친구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숲 한가운데 고립된 채 맨손으로 도끼질을 하면서 우정이 생성되는 육체적인 경로를 목격하고 우정의 질감과 공기 같은 걸 체득했다. 세 사람에게는 몸을 써 고된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결속력과 비밀을 도모했다는 공모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3부 p.278)
“이안남은 맞지 않기 위해 몸을 구부려 버둥거리는 이경인의 다리를 펴서 꽉 잡는 것으로 합류했다. 술에 취한 한성수가 홀린 듯 계속해서 주먹질을 해댔다. 몸이 뜨거웠고 열기가 발바닥부터 끓어올랐다. 이경인은 얻어맞으면서도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거나 눈동자를 떨지 않았다. 그는 이경인을 그저 묵직한 나무통을 두들겨 패는 것 같은 느낌으로 때렸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경인이 정신을 잃은 후였다.” (3부 p.290)
“박인수 씨는 사고를 선입견이나 불확실한 의심으로 합니까? 내가 어떤 증거를 대도 자기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나요?”
“믿지 못해서 안 믿는 것뿐입니다.”
“이해해요. 나도 그럴 때가 있으니까요. 장이 아플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내 생각은 구불구불 꼬인 장에서 나오는 것 같았어요. 모든 게 꼬이고 또 꼬이기만 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삶에서 아주 많은 것들이 내가 보는 게 다른 사람에게도 보이는지 하는 것에 달려 있어요. 그 가장 기본적인 생각이 적절한 균형 감각을 만들어주죠. 나만 보고 나머지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반대로 세상은 다 봤는데 나만 못 보는 건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모두 알 수는 없어요.” (3부 p.318)
“타자가 언제 공을 칠 것 같아요?”
진 선생이 대답을 알려주기 싫다는 듯 시간을 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공이 들어오기 전에 쳐요. 공이 들어오기 전. 나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가오는 공을 완전히 보기도 전에 뭔가를 결정하는 거지요.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해요, 아주 짧은 순간에. 그런 게 인간의 판단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 대령과 나는 말하자면 박인수 씨라는 공을 잘못 쳤죠. 홈런이 될 줄 알았는데 기껏 파울이 된 거죠. 아, 홈런이라는 말은 과장된 거고요. 최소한 안타 정도는 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파울이라고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아무리 타율 높은 선수들도 5할이 채 안 되니까요. 최선을 다해도 두 번 중에 한 번은 언제나 헛스윙이라는 거죠.” (3부 p.322)
“숲을 헤매다 보니 숲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감지하는 거리감을 믿을 수 없었다. 아주 가까이 있을 때 멀게 느껴졌고, 크고 길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멀리 있을 때도 있었다. 시야를 믿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길을 헤맨다는 두려움이 더해졌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까. 알 수 없었다. 무엇인가 알려줄 거라 믿었던 소리마저 어느 순간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3부 pp.335~36)
“그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웠고 시험에 떨어질까 두려웠고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할까 두려웠고 아내가 떠날까 두려웠고 일이 실패할까 두려웠다. 두려움이 혈관을 타고 흘러 두려움과 분리된 자신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두려워 화를 내고 억울해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과 착각과 오해와 혼돈의 격차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동안 만난 사람은 누구일까. 그가 끝내 다다른 이곳은 어디일까. 무엇보다 자신은 누구일까. 박인수는 이런 상태가 난감하기만 했다. 생전 처음으로 괴한을 마주친 느낌이었다. 복면도 없고 형태도 없고 그를 겨냥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어 방어조차 할 수 없는 괴한을.” (3부 p.337)
1부
2부
3부
에필로그
해설 세계의 일식이 지나가고_권희철(문학평론가)
[연합뉴스] 장편 ‘서쪽 숲에 갔다’ 낸 소설가 편혜영
[매일경제] 저자와의 대화 서쪽 숲에 갔다 펴낸 편혜영
[한국일보] “하나의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일상에 똬리 튼 불안·공포 형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