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그리자, 진정한 내 모습을 그리자, 사랑을 그리자”
살아 있음의 원류를 찾아, 사랑을 찾아
윤후명이 글 고행의 길에서 탐문하는 존재의 극점(極點)!
‘의미의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글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 소설가 윤후명(66)이 소설집 『꽃의 말을 듣다』(문학과지성사)를 들고 돌아왔다. 무려 5년 만의 새 소설집으로, 그동안 ‘윤후명’을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문인 인생 45년 동안 한국일보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의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며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해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표제작 「꽃의 말을 듣다」를 포함해 총 아홉 편의 소설을 통해 한층 깊어진 ‘글 수행’을 보여준다.
왜 ‘꽃’이어야만 하는가
작가에게 김동리문학상을 안겨준 『새의 말을 듣다』(2007)에 이어지는 이번 소설집의 제목은 ‘꽃의 말을 듣다’이다. 새와 꽃, 지금껏 이 둘을 말한 예술가는 많다. 그렇다면 그렇고 그런 ‘화조도(花鳥圖)’ 하나가 더 보태진 셈일까? 작가는 이 질문을 염두에 둔 듯 ‘꽃’이 아니면 안 되는 필연에 대해 귀띔한다. 잘 알려진 대로 작가는 오랫동안 식물의 생명력과 생산성에 대해 써오면서도 늘 그것과는 다른 무엇을 찾아 헤맸다. 그 ‘무엇’이란, 작가가 오랜 작품 활동을 통해 궁구해온 ‘살아 있음의 원류’를 말한다. 세상 어느 잊혀진 귀퉁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그것을, 작가는 ‘꽃’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꽃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예쁜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극점(極點)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말한다, ‘나는 긴장하고 있어요’
윤후명은 소설집 어디에서도 그 흔한 꽃말 한 번 언급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붙여놓은 꽃말은 진짜 꽃의 말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원추리의 한자인 훤초(萱草)가 근심을 없애준다는 뜻”(「희망」)인 것처럼 꽃 이름의 뜻풀이가 이따금 보이긴 해도 그 역시 작가가 듣고자 하는 ‘꽃의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꽃의 말’을 얘기한다. 작가가 소설집을 통틀어 딱 한 번 ‘받아쓴’ 꽃의 말을 보자.
꽃들은 말한다, 나는 긴장하고 있어요. (「보랏빛 소묘(素描)」 p. 199)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줄 알았던 꽃이 긴장하고 있단다. 작고한 시인 오규원이 꽃을 두고 ‘고통의 섬광’이라며 꽃의 상투성을 뒤엎은 사례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꽃이 긴장하고 있다는 윤후명의 발언을 더더욱 가볍게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윤후명이 본 꽃은 ‘더 이상’일 수 없는 ‘바로 지금’의 상태다. 더 이상 아름다울 수도, 더 이상 향기로울 수도 없다. 윤후명은 바로 그것을 존재의 극점(極點)이라 표현했다. 꽃들은 극점에 닿기 위해 무언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일까. ‘긴장’은 그야말로 더 이상일 수 없는 ‘꽃의 말’이겠다. 그의 소설들을 따라가며 이제부터 우리는 한 송이 꽃에서 백척간두 꼭대기에서의 위태로움을 보게 될 것이다.
상실로 인한 절박함에 송곳으로 새기듯 쓴 소설
그러나 대부분의 꽃들은 그저 ‘이름 모를 꽃/풀’로 살다가 시든다. 이 대목에서 김춘수의 시 「꽃」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윤후명은 시에서처럼 한낱 몸짓으로만 외로이 존재하다가 소멸해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이름을, ‘존재’를 부여하고자 한다. 특히 삼국유사의 ‘거타지’ 전설에 등장하는 어느 꽃을 찾아 남쪽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인 「꽃의 변신(變身)」에서는, “그 꽃을 찾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부르짖는다. 여행이라고 했지만 불가능한 목적을 들고 있기에 방황에 가깝다. 약혼자의 유골 가루를 뿌리러 온 여자와의 찰나와 같은 만남은 주인공이 겪고 있는 방황에 절박함을 더한다.
‘몸짓’들을 찾아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크나큰 상실감이 엿보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강릉/모래의 시(詩)」), 은사가 작고했고(「패엽(貝葉) 속의 하루」), 시인 이상이 일본에서 ‘거동 수상자’로 잡혔다가 27세의 나이에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오감도」로 가는 길」). 육신의 삶과 마음의 삶 속에서 가까이했던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포클레인이나 삽에 의해 훼손되고 망실되는 옛 풍경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것)들을 마음속에서 놓아주고자 부단히 애쓰지만 여의치 않다. 그리하여 지금 있는 것들만이라도 ‘자국’을 남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작업은 윤후명이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씀으로써 닿고자 하는 지점을 향하고 있다.
삶을 그리자. 진정한 내 모습을 그리자. 사랑을 그리자. 송곳으로 글자를 새기고 먹물 대신 피를, 피를 묻히자. 컴퓨터 같은 놀이 기구가 못 할 작업으로 나의 하루, 인류의 하루를 남기자. 피의 향기를 내 지나온 삶 속 가장 암송할 만한 값어치의 향기로 남기자. 한 획 한 획 깊게 금 그어, 응고된 피가 핏빛 호박(琥珀)의 핏줄이 되도록 선혈 자국을 남기자. (「패엽(貝葉) 속의 하루」 p. 87)
화가로서의 첫 개인전과 함께 출간
잘 알려진 대로 윤후명은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하다. 아홉 편의 작품에 종종 그의 시가 삽입되고 그림에 얽힌 일화가 어우러질 뿐만 아니라 음악, 조소, 영화 이야기도 등장한다. 윤후명의 예술적 관심과 천착이 형식과 장르를 불문하고 넓게 뻗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집 출간이 그의 첫 개인전 오픈일에 맞춰져 독자들은 윤후명의 예술세계를 다채롭게 향유할 기회를 얻게 됐다. 소설집과 같은 제목 “꽃의 말을 듣다”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일주일 동안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1층 본전시장에 마련된다. 전시장에서는 「엉겅퀴」 연작 및 「자화상」을 비롯한 100여 점의 그림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이 중 「어머니와 나」 「염전에서」 등은 이번 소설집에도 등장하는데, 활자로 만난 그림의 사연을 실제 작품에서 다시 확인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본문 속으로
그것은 허공을 향한, 죽음을 향한 말이었다. 마지막은 아픔이나 혼수상태 속에 맞이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생생한 정신으로 죽음에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안 떠나려야 안 떠날 수가 없게 된 막다른 골목의 마지막 말. 어떤 위안도 소용이 안 닿는 말. 꽃 한 송이를 바치는 따위의 어설픈 짓거리로는 범접할 수 없는 말.
“어떡허니……”
「강릉/모래의 시(詩)」 p. 32~33
카페에서도 포클레인이 내다보였다. 모든 길은 포클레인의 길이었다. 바다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둑길도 사라졌고, 바닷물이 찰랑대던 집도 사라졌다. 나는 내 집 앞의 골목길도 잃어버렸다. 그 이름 ‘끝’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강릉/너울」 p. 59
그동안 많은 이들을 보냈다. 어른도, 선배도, 친구도, 하물며 후배도 있었다. 죽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나와 맺어지지 않은 그 여자는 다른 남자와의 결혼에 실패하고 신도시 어딘가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들었었다. 만약 나와 맺어졌다면 죽지 않았을까, 속절없는 소리를 떠올리는 순간, 그뿐이었다. 그뿐, 하고 넘어가려는 순간,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북받쳐 올랐다. 까닭 모를 슬픔이었다.
「패엽(貝葉) 속의 하루」 p. 85
서울은 몰(沒)문화의 대표적인 날림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체인점과 같은 이 도시, 이 자리에 누군들 지쳐서 숨막히지 않으랴.
「회로(回路) 찾기」 p. 101
“이상을 살려내라니까!”
나는 더욱 목청을 높였다. 어느 틈에 사람들 몇 명이 나를 에워쌌다. 그들은 무슨 사태인가 알지 못해 어정쩡한 몸짓을 하고 있었다. 사태를 알지 못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상을, 이상을 살려내라니까!”
「「오감도」로 가는 길」 p. 142
여자를 찾아야 했다. 귀찮게 따라붙을까 봐 꺼려졌던 여자를 내가 따라붙고 있는 꼴이었다. 그러나 따라붙으려야 따라붙을 상대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낭패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찾아야 한다고 나는 기를 썼다. 어시장을 지나고, 다른 사람들이 몇 명씩 무리지어 나타나는데도 여자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희망」 p. 164
세상에 이토록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까. 품속에 넣은 그 꽃은 무슨 꽃이었을까. 그 꽃은 얼마나 아름다웠고, 그녀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도무지 황당했던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 영롱하게 어린다. 딸을 꽃가지로 만든 노인, 그 꽃가지를 품속에 넣어 온 남자, 꽃가지에서 다시 태어난 여인.
「꽃의 변신(變身)」 p. 225
또 만나자는 그 말만큼 간절한 말은 없었다. 헤어진 뒤에 또 볼 수 없는 수많은 만남이 있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또 만날 기약이란 없는 수많은 아픈 이별이 있었다. 그 만남들에게 만사 제쳐놓고 가장 절실한 것이 다시 만날 약속인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가는 인사가 아니었다. 이승에서 진정 할 말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꽃의 말을 듣다」 p. 270
광장에는 티베트 바라가 부딪치고 고둥피리가 울리는데 밀전병 한 장과 야크 버터 차 한 잔. 이국인을 외롭고 깊게 한다. 무릎을 접고 쉬는 야크는 코를 킁킁거려 먼 얼음 냄새를 맡고 옥수수밭을 돌아오는 그녀의 눈망울에 비치는 투명한 별빛. 그녀의 고향이 그토록 멂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녀의 말을 돌이켜서, ‘별을 보고 꿈꾸’는 나.
「꽃의 말을 듣다」 p. 290
강릉/모래의 시(詩)
강릉/너울
패엽(貝葉) 속의 하루
회로(回路) 찾기
「오감도」로 가는 길
희망
보랏빛 소묘(素描)
꽃의 변신(變身)
꽃의 말을 듣다
해설_소설, 또는 ‘의미의 완성’에 이르는 고행_황광수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