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이자 시인 성기완
그가 들려주는 이토록 황홀한 이탈과 합체의 세계
[모듈이란 무엇인가]
모듈module은 전체이면서 일부인 신체를 가리킨다. 그것은 독립적인 것이지만, 맥락 안에서는 부분으로 기능을 하기도 한다. 부분이 되는 모듈을 모듈러modular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듈(러)+모듈(러)=모듈이란 공식이 성립된다. 이때, 모듈(러)와 모듈(러)의 결합을 플러그인plug in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은 특정한 계기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연발생적이고 필연적인 동시에 인위적이며 우연적이다. 플러그인은 의미를 발생시키지만 그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광활하거나 일반적이고, 한편으론 너무 특별한 까닭이다. 모듈러가 모듈로부터 이탈한다고 해서 모듈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모듈러는 그자체로 모듈이며, 모듈러와 모듈러의 플러그인은 개개별로 독자적이다. 모듈의 이러한 정의는 복잡해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아니 복잡한 것이 맞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모듈은, 그러니까 바로 이 세계의 작동 원리이기 때문이다.
[성기완, 『모듈』, 2012, 문학과지성사]
시집 『당신의 텍스트』 이후 4년만이다. 물론 책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그사이 성기완은 게릴라처럼(아니 실제로 게릴라일지도 모른다), 사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음악 다방의 DJ로, 가수로, 인디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로, 대학 교수로, 시집 해설가로, 사운드 디자이너로, 음악평론가로. ‘성기완’은 문득,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이름이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그래왔다. 그런 그가 새로운 그리고 놀라운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시집이라고 할 수도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음악이론서라 부를 수도 없다. 산문집은 더구나 아닌, 신기(新奇)의 책 『모듈』(문학과지성사, 2012)이다. 그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책에 모인 글들은 모두 우발적으로 끼워진 모듈들이다. 설명문, 편지글, 산문, 시, 소설 등 여러 방식의 글쓰기가 다양한 레이어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 글쓰기 방식들 사이의 대화를 시도한 책이다. 이 텍스트의 글자들이 서로 부딪치거나 혼자 울면서 내는 소리들을 상상하시길. 그것이 올바른 읽기일 수도 있다. 소리는 글의 목소리이자 글 너머에 존재하는 그림자로서, 최소한 나의 경우 글은 발성기관이다. ─「책머리에」 부분
앞선 모듈의 정의를 여기에 대입시켜보자. 성기완의 모듈 내의 편지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고, 시이기도 한 각각의 글들은 하나의 글(모듈)로 작동한다. 동시에 이들은 책의 일부(모듈러)로서 기능한다. 글은 각각의 글과 충돌하고 조응하고 결합하고 해체된다.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은 울림으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의미는 문화적 충격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고, 정치적 뉘앙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규정지을 수 없다. ‘모듈’은 세계의 모든 책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자 보통명사이다. 하지만 ‘성기완식의 모듈’이라는 의미에서라면 이 책은 고유명사로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모듈’이자 『모듈』이다. 그것이 성기완의 『모듈』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이해라고? 아니, 울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정정해서 말하자면, 성기완의 『모듈』이라는 이 울림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 세 곳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난 이상향들이다.
[……]
주인공이 세 지방을 순례하는 이야기.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순으로
달리아는 죽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은 이 세 곳은 같은 곳이다.
이 뻔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1」 부분
『모듈』은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라는 “갑자기 생각난” 그러나 실은 같은 곳인 세 지방에 대한 정의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책의 중간과 끝에서도 동일한 제목(「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2, 3」)의 글로 변주되며 등장한다. 같은 곳을 다른 방식으로 떠도는 순례의 기록. 그저 감각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을 그곳‘들’의 기록을 『모듈』은 시작점-중간점-끝점으로 두고, 본격적인 ‘믹싱’을 시작한다. 재료는 텍스트, 그리고 소리이다. 『모듈』의 텍스트들은 음악의 외적인 부분으로부터 음악의 내부로 들어가고(「I beat I dot」 「미완성」), 음악 그자체이기도 하며(「ㄹ」 「음악이 하늘에 구멍을 뚫는다」), 믹싱의 대상인 동시에(「두 개의 턴테이블」) 발성기관의 원초적 흔적이고(「대마초」 「녹취 1, 2」), 그것의 이론적 근거(「모듈」 「오작동하는 단테들」) 제시·제안이기도 하다. 그 형태 역시 단순하지 않다. 글자의 형태나, 발음, 문단 형식의 파격적 실험을 통해 문자의 안팎으로 시각적 비트를 형성해나간다. 필자 스스로도 하나의 비트가 되어 텍스트의 내부를 반복적으로 탐색한다. 이제 독자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도취되는 사람들처럼, 이 텍스트의 반복적인 비트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세계에는 결정된 것도 완성된 것도 없다. 그것들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상식은 파괴되기 마련이다.
세상이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알려주면 된다.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3」 부분
한 권의 『모듈』이자 ‘모듈’은 하나의 세계인 동시에 세계의 일부다. 그것은 역으로 작동하여, 전체가 될 수도 있다. 무에서 유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라면 유에서 무로 나아가는 것은 예술의 본질이다. 가장 격렬하고 가장 충동적인 이 작업을 성기완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완수해간다. 혹시, 이 작업이 오류로 느껴진다고 해도 성기완의 의도 바깥으로 나간 것은 아니다. 『모듈』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하나의 비트로 반복되는 동시에 그것으로 어긋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는 글쓰기. 글쓰기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나아가는 행위. 반발이자, 창조. 결국 완벽한 노이즈이다. 이들은 ‘모듈’을 이루어 읽는 이들을 몽홀의 세계로 데려갈 것이다. 텍스트로서의 음악적 도취, 그것이 성기완의 책 『모듈』의 정체이다.
그러나 이토록 황홀한 몽홀 역시 곧 끝이 날 것이다. 앞서 밝혔든 이것은 여행이므로. 그리고 모든 여행은 반드시 어떠한 도착이 있으니까, 반면 이 책 속 ‘K’처럼 우리는 도착 즉시 떠나야 하는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완전한 종점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이 독서는 책을 읽는 당신을 안내하여 끝(죽음 혹은 달리아)을 지향하는 지(知)와 감각(感覺)의 무한한 여행기이다. 자 이제 시적인, 너무나 시적인 흥미로우면서도 아득한 여행으로 당신을 인도한다.
[내용 소개]
I beat I dot부터 달리아까지
책의 첫머리를 여는 「I beat I dot」에서 저자는 ‘비트’가 되고자 한다. 비트는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의미다. 하나의 조각이며 전체다. 이 글의 주인공은 K는 연극음악을 디자인하는 중이다. 한 점이 무한으로 수렵되는 지점에서 그는 자신이 하나의 모듈로 작동하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어떤 특정 대상이 아닌, 관계의 지향 이것이 모듈의 근본적 의미다. 설명서 형식을 빌린 유머러스한 글 「아방가르드 매뉴얼」은 의미라는 것은 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그것은 대단히 자의적이고 자생적임을 밝힌다. 이어지는 「카프카」는 무크지 『이다』에 수록했었던 것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카프카의 미완의 대작 『성』의 분실되었던 원고 일부가 재발견되었다는 허구로부터 출발하는 이 글은 성의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주인공 K의 움직임을 ‘의미’의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저자의 심리적 정황에 대입시켜낸 수작이다. 또 하나의 모듈러인 「몽홀경」은 성기완이 느끼는 몽홀에 대한 정의이다. 어떤 것들이 ‘그’를 음악적, 감각적 도취로 이끄는지 엿볼 수 있다. 「녹취 1」은 필자가 몸담아온 인디에 대한 회고이자 새로운 성찰이다. 한국 인디 음악의 처음과 현재를 엿볼 수 있는 이 글은 ‘노이즈’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의내리고 이로써 인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필자의 이론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두 대의 턴테이블」은 텍스트로서의 음악적 실험이라 할 수 있는 글이다. 디제잉의 역사와 롤랑바르트의 『모드의 체계』의 해석을 병렬 배치함으로서, 두 개의 전혀 달라 보이는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결합시켜낸다. 『대마초』는 역사라는 모듈의 작동원리를 짤막한 기사들의 무수한 발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문화 통제라는 억압을 자행했던 과거의 시대 모듈을 통해 현재 문화 모듈을 보여주는 이 놀라운 산문은 미술의 콜라주 기법과 음악의 피처링 방식을 문자를 통해 구현해낸다. 「눈아 그걸 부정하라」는 윤사비 김영은 씨와 함께한 퍼포먼스에 쓰인 즉흥텍스트의 일부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명한 대사를 기반으로 한 이 글은 “강한 리듬”을 텍스트를 통해 구현한다.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2」는 성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하고 싶어 하는 K의 탈출기 그 이후를 보여준다. 신비로운 여인을 통해 무한궤도 속 탈주를 꿈꾸는 K의 기록이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미완성」은 미완으로 끝난 영화음악의 제작 과정을 통해 완성된 텍스트(작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저자는 창조자가 아닌 하나의 모듈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들어주는 글이다. 「지은이 플러그인」은 앞선 글을 좀더 본격적으로 심화한 글이다. ‘인드라의 그물’을 예시로 과연 창작자는 존재하는가, 창작자는 온전한 의미에서의 창작자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이를 통해 책이란 사실 이름을 지워가는 과정임을 확인한다. 「ㄹ」은 기호의 음악성을 잘 보여주는 산문이다. ‘ㄹ’의 매혹을 고백하며,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에 차례차례 주목한다. 「오작동하는 단테들」은 미래파 시에 대한 단상이다. 음악인으로서,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바꿔가며 사는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다. 「녹취2」는 성기완의 엄마(의 일기장) 이야기이다. 자신의 근원적 기억을 건드려 작동시키는 이 글은 기억을 더듬어가는 글쓰기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과 동명의 산문인 「모듈」은 모듈이란 개념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음악을 중심으로 세계 음악에 아프로 모듈이 어떤 식으로 응용되고 탑재했는지를 보여주면서, 모듈의 개념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또 광범위하게 이 세계에 적용되는지 보여준다. 보들레르의 시 구절이 제목이 된 「음악이 하늘에 구멍을 뚫는다」는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책의 마지막은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3」이다. 그림자만 남은 작별의 양식으로 진행되는 이 글은, 다시금, 이 책의 의미를 되짚는다. “세상이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알려주면 된다.”
[책머리에]
모듈module은 전체의 일부분이면서 독자적으로도 기능하고 다른 모듈과 호환되며 탈접속이 용이한 독립적인 신체를 말한다. 모듈들의 접속으로 이루어진 보다 큰 단위를 ‘모듈러modular’라 한다. 모듈러에서 하나의 모듈을 빼더라도 돌아가는 데는 이상이 없다. 전체와의 접속이 끊긴 모듈은 스스로 기능하는 독자적인 모듈러가 된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흔히 신디사이저에서 마스터 건반을 뺀 핵심부분을 모듈이라고 부른다. 모듈들은 대개 미디 케이블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요즘의 이른바 소프트-신디, 다시 말해 플러그-인 형태로 컴퓨터 프로그램에 직접 끼워지는 악기 프로그램들 역시 ‘모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서로 링크되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나’라는 단위는 하나의 신시사이저처럼 스스로 소리를 낸다. 나의 목소리 역시 하나의 모듈이다. 목소리들끼리 연결되기도 한다. 전체 목소리, 다성 화음의 코러스는 그 개별 목소리의 다발로 존재한다. 나는 세상과 다양한 방식으로 탈접속한다.
단어들을 끼워 문장을 구성한다. 한 단어는 하나의 레이어layer다. 레이어들의 결합관계가 문법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낱말들은 낱알들처럼 흩어져서 구호가 되기도 하고 모여서 밥이 되기도 한다. 문장이 모여 글이 된다. 하나의 글은 다른 글들과 하이퍼 링크된다. cut & mix되어 새로운 맥락 속으로 들어간다. 대화의 장 속에 놓인 담론은 언제라도 서로 끼워질 가능성이 있는 모듈로 존재한다.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1
카프카
아방가르드 매뉴얼
녹취 1두 대의 턴테이블
대마초
눈아 그걸 부정하라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2
미완성
지은이 플러그-인
ㄹ
오작동하는 단테들
녹취 2
왓칭미토킹
모듈
음악이 하늘에 구멍을 뚫는다
몽홀경
라마냐, 피오스크, 달리아 3
에필로그
[한국일보] DJ처럼… 이질적 텍스트를 리믹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