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유연한 시스템을 지닌 랑가주는
그에 적합한 분석 틀을 통해 유연한 체계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영화’에 적용한 최초의 책!
‘영화 기호학’의 창시자이자 권위자인 크리스티앙 메츠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손꼽히는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 1, 2권(이수진 옮김)이 나란히 문학과지성사의 ‘파라디그마’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같은 시리즈로 먼저 출간된 『상상적 기표―영화․정신분석․기호학』이 정신분석학을 영화에 적용한 최초의 시도였다면, 이 책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는 메츠가 영화 기호학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로로 발표된 논문들을 모아 재구성한 저작이자 그의 저작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주저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기호학자 크리스티앙 메츠는 1970년대 기호학을 영화에 적용하면서 프랑스 영화비평 이론 분야에 중요하게 자리매김했다. 그는 구체적인 작품이나 작가 중심이 아닌 추상적인 개념을 담론에 끌어들인 인물, 영화 연구를 정의하고 정립하는 데 크게 공헌을 한 인물로서, 그의 제자이자 유명한 영화학자인 자크 오몽에 따르면 “메츠는 기존의 연구 방식이 진정한 영화 연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고, 영화를 하나의 의미 체계로서 연구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피력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대단히 독창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생산하고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메츠는 이미 탄탄한 방법론을 보유하고 있었던 구조주의 언어학에 기반을 두고 영화가 의미를 구축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영화 기호학’을 창시하기에 이르렀다. (문학과지성사 刊, 2011)
‘영화 기호학’의 눈으로 영화의 본질을 새롭게 꿰뚫다!
메츠 사유의 가장 중요한 첫번째 단계의 이론을 집대성하고 있는 이 책은, 무엇보다 저자의 엄격하고도 주도면밀한 학자로서의 면모와 ‘영화 연구’라는 독자적인 분야를 개척하면서 내보인 창조적 모험성이 돋보인다. 옮긴이 이수진(이화여자대학교 HK 연구교수)의 꼼꼼한 번역과 전문성도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크리스티앙 메츠는 “개념을 만들어낸 학자, 사유 방식을 만들어낸 학자, 그 사유 과정을 체계화하여 영화 기호학이라는 이론을 만들어낸 학자”이다. 또한 그는 “영화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던 당시 젊은이들의 목마름에 샘물로 답한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했으며, “68혁명의 정신을 공감한 시대의 지식인”이기도 했다. 이 책은 ‘영화 기호학’이라는 이론을 정립한 메츠 사유의 정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뛰어난 연구서이기도 하지만, 글 곳곳에 학문적 ‘혁신’과 ‘쇄신’을 감행한 학자로서의 내면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를테면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이 연구자에게는 필요합니다. 똑바로 걸으려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비뚤거리며 걸을 수도 있다고 포용하는 마음이요”와 같은 표현은 메츠의 인간적․학문적 면모를 동시에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메츠는 영화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업적을 내며, 1970년대에 영화 기호학의 개념 정립, 용어 정의 등을 통해 학문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1980년대에는 정신분석학을 접목한 정신분석학적 영화 기호학을, 1990년대에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끌어들인 담론에 근거하여 발화 상황과 발화 작용을 고려한 영화 기호학을 발전시켰다. 영화 기호학에서 메츠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며, 메츠의 이론을 공부하는 것은 곧 영화 기호학, 나아가 기호학의 발전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와 같이 메츠는 현대 영화 이론의 발전 흐름에서 3단계에 걸쳐 총 여섯 권의 영향력 있는 저서를 집필했는데, 이 책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 제1권(1968)과 제2권(1973)은 영화 기호학을 정립하는 시기인 첫번째 단계에 씌어진 글들을 모은 논문집이다. 대략 5년에 걸쳐 출간된 이 두 권의 책은 메츠 사유의 정수를 담은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인정받는다. 초기 메츠 이론의 독창성은 영화 미학, 영화 역사, 영화 비평 등에서 논의되는 담론과 확연히 차별되는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관찰하는 데 있었고, 그 시각이 기호학적 접근이라는 데 있었다. 메츠는 “영화처럼 유연한 시스템을 지닌 랑가주는 그에 적합한 분석 틀을 통해 유연한 체계로서 인식되어야 한다”(1968)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영화의 각 숏은 그 자체로 이미 여러 요소가 결합된 한 문장이자 언표이며 담화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영화에 걸맞은 기호학, 즉 ‘영화 기호학’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 제1권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영화에 관한 현상학적인 접근」은 영화의 특성들 중 이웃한 다른 매체와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특성’에 천착하고 있다. 1장은 영화가 다른 매체보다 더 대중적으로 친근한 매체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로 ‘현실 효과’를 설명한다. 2장에서는 영화가 탄생부터 이야기 매체로 발전하게 된 이유를 추적하며, ‘서사’에 대해 사유한다. 서사성은 메츠 이론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이후 제2부와 제4부를 걸쳐 점진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제2부 「영화에 관한 기호학적인 문제」에서는, 영화 기호학이 태동했을 당시 세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던 세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3장에서는 메츠의 영원한 테제라고 할 수 있는 ‘영화는 랑그가 아니라 랑가주이다’에 관한 상세한 주장이 펼쳐져 있다. 이 글이야말로 영화 기호학의 기틀을 다졌던 논문이며, 언어학을 적용하지만 언어학을 넘어선 영화 기호학을 천명한 글이기도 하다. 4장은 영화 기호학의 쟁점에 관해서 언급한다. 특히 서사성, 내포와 외연의 문제, 계열체와 통합체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제3부 「이미지의 통합체 분석」은 5장과 관련이 깊다. 영화는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랑가주’이며, 따라서 이미지 배열 법칙과 같은 일련의 통사 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실제 적용한 것이 바로 6장과 7장이다. 제4부 「‘현대’ 영화에 관한 몇몇 이론 문제」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유럽에서 등장한 누벨바그 영화들의 현대성을 지지한 글이다.
이어서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 제2권 또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영화의 전통적 이론에 관하여」는 1963년부터 1966년까지 메츠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 학자 장 미트리의 이론을 통해 선행 연구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제2부 「다양한 기호학적 문제에 관하여」에서는 영화 매체의 주요 특성에 관해 사유하고 있다. 3장은 편집의 문제를, 4장은 내용과 형식, 기표와 기의의 문제, 5장은 영화에서 편집 지점을 표시하는 경계의 문제를 다룬다. 제3부 「유사성의 전과 후」에서는 이미지의 1차 특성으로 주저 없이 언급되는 ‘닮음’ ‘도상성’ ‘유사성’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마지막 제4부는 크리스티앙 메츠와 레몽 벨루르 간의 영화 기호학에 대한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메츠 자신이 직접 이야기하는 영화 기호학에 대한 내용이 진솔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 책 속으로
영화 전에 사진이 있었다. 모든 종류의 이미지 중에서, 사진은 현실을 상기시키는 데 가장 풍부한 무엇이었다. 앙드레 바쟁이 언급했던 것처럼 그래픽적인 윤곽을 충실하게 존중하면서 도덕적으로 결코 나무랄 데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진이 재현하는 것은 복제를 위한 기계적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고, 깨끗한 필름 위에 인화된 대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나 현실과 흡사한 사진의 재료만으로는 아직 충분치가 못했다. 시간이 부재했고,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어딘가가 부족했고, 일반적으로 삶의 동의어처럼 생각되는 움직임의 느낌이 부재했다. 영화는 이 모든 부족함을 한 번에 메워버렸다. 게다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을 더했다. 즉 관객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움직임을 볼 때, 이는 단순히 그럴듯한 재현의 일종이 아니라 온전히 현실성을 확보한 움직임 그 자체였다. 최고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특성은, 영화의 이미지가 사진의 이미지와 동일한 이미지였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움직임이 거기에 그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힘을 부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상상계는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영화에서의 현실 효과 문제를 밝히는 한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이제 비로소 영화의 ‘비밀’을 한 가지 더 밝혀낼 수 있을 듯하다. 이미지의 비현실성에 움직임의 현실성을 주입했다는 점, 그리하여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지점까지 우리의 상상계를 실현시킬 수 있었다는 점 말이다. (제1권 제1장 영화의 현실 효과에 관하여, 26~27쪽)
영화 기호학을 엄밀한 의미의 언어학과 구별하는 중요한 차이점 중에서 이제 중요한 몇몇 사안만 상기해보자. 영화는 제2분절, 순수하게 변별적 단위들에 해당하는 단위가 전혀 없다. (페이드인․아웃, 와이프 등과 같은 아주 단순한 단위들일지라도) 영화의 모든 단위는 직접적으로 의미를 나타낸다. 게다가 이미 언급한 바대로 활성화된 상태로만 나타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기호학이 주목하는 치환과 다른 조작들은 거대 의미 단위들과 연관된 것이다. 영화 랑가주의 ‘법칙’은 언표를 서사 내부에 배열하는 것이지, 언표 내부에 형태소를 배열하거나 형태소 내부에 배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무성영화 이론가들이 ‘시네-랑그’ 혹은 ‘시각적 에스페란토’와 같은 테마로 주장했던 바와 달리, 영화는 분명 ‘랑그’가 아니다. 영화는 ‘랑가주’로서 고려되어야만 한다. 영화는 우리 음성언어에서 사용하는 낱말의 배열과는 다른 다양한 법칙 배열로 의미 요소들을 배치한다. 이 요소들은 현실에서 지각할 수 있는 전체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도 아니다(현실에서 사건들은 일련의 이야기로 구성되지 않는다). 영화 조작은 현실의 시각적 모방으로서만 그칠 것들을 담화로 변형시킨다. 활동사진 시테마토그래프에서 추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긴 지속적인 의미작용 부분을 이미 뛰어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의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영화는 고유한 기호학적 요소들을 만들게 된다. 이 요소들은 단순한 시각적 복제라는 비정형의 층 가운데에 파편적이고 분산적인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제1권 제4장 영화 기호학의 주요 쟁점들, 130~31쪽)
‘영화 문법’이란 개념은 오늘날에는 매우 비난받고 있는 데다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을 제대로 찾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항상 (영화 이론가의 모국어 같은) 특정 언어의 규범 문법을 간접적으로 참조하면서 연구를 지속해왔다. 사실 언어학적이고 문법적인 현상은 무한대로 넓고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근본적인 대단위 형태를 포함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규범 문법이 아닌 단순히 분석적인 이론에 해당하는) 일반 언어학과 일반 기호학만이 유일하게 영화 랑가주 연구에 적합한 방법론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전혀 보편적이지도 않고 필수불가결한 현상도 아닌 프랑스의 관계절이나 라틴어 형용사에 해당하는 것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하는 작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영화 이론가와 기호학자 간의 대화는 어휘의 특정 현상 혹은 언어에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원칙 등을 훨씬 초월하는 지점에 있어야 한다. 이해되고 연구되어야 하는 대상은 영화가 이해되는 사실이다. 도상적인 유사성에만 근거해서 관객이 영화 담화에 공존하는 많은 요소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찾아내는 작업이 바로 거대 통합체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제1권 제5장 픽션영화에서 외연의 문제, 177쪽)
서사성을 넘어섰거나 혹은 약하게 만들었다는 생각과 혼동된 맥락에서 많은 비평가가 영화의 ‘문법’ 혹은 ‘통사 규칙’을 넘어선다고 단언하곤 한다. 이 글의 입장은 영화가 결코 언어학에서 이 용어들이 사용되는 맥락과 같은 의미로 통사 규칙이나 문법을 포함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모든 정보를 전달하는 기호학적 법칙을 언제나 따랐고, 오늘에도 여전히 따르고 있다. 이 기호학적 법칙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요소들이기에, 그 규칙은 특정 언어의 규범 수사학이나 문법 분야가 아닌 일반 언어학이나 일반 기호학의 측면에서 찾아져야 하는 것이다. 모든 오해는 사람들이 단어의 발현 과정에서 ‘랑가주’를 찾기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이 분야가 이미 매우 특정적이고 파생된 범주이며 (영화적 현실과 매우 멀어지면서) 영화 법칙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하는 지점에서 상당히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화 법칙은 훨씬 더 심층적인 차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음성 랑가주와 다른 모든 기호학 분야와의 차이점을 선행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제1권 제8장 현대 영화와 서사성, 246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다움’을 공통된 의견에서 봤을 때 ‘가능한 것의 전체 집합’으로서 정의했다. 그리하여 진실다운 것은 알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가능한 것의 집합과 상반된다. 재현 예술은 모든 가능성을 재현하지 못하는 대신 진실다운 가능성들을 재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전통 담론에서 진실다움에 다른 차원을 부가하면서 처음의 개념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이때 부가된 개념이란 그리스 철학에서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고, 따라서 처음과 매우 다른 부분이었다. 다시 말해 일정 정도 구축된 장르의 법칙에 부합하는 진실다움이란 측면이다. 〔……〕 장르 법칙은 이 장르에 속한 그 이전 작품들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일련의 담화에서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보편적 의견은 수많은 분산된 담화일 뿐인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말한 것을 통해 최종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실다움은 애초부터 가능한 것의 축소였으며, 현실적인 가능성들 중에서 문화적이고 임의적인 제한을 표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진실다움은 처음부터 검열이다. (제1권 제10장 영화에서 말하기와 말해진 것―‘진실다움’의 쇠락, 279쪽)
서문
일러두기
제1부 영화에 관한 현상학적인 접근
제1장 영화의 현실 효과에 관하여
제2장 서사의 현상학을 위한 몇 가지 단상
제2부 영화에 관한 기호학적인 문제
제3장 영화―랑그인가 랑가주인가?
제4장 영화 기호학의 주요 쟁점들
제5장 픽션영화에서 외연의 문제
제3부 이미지의 통합체 분석
제6장 자크 로지에의 영화 「아듀 필리핀」의 자율 분절체 구분
제7장 자크 로지에의 영화 「아듀 필리핀」의 통합체 연구
제4부 ‘현대’ 영화에 관한 몇몇 이론 문제
제8장 현대 영화와 서사성
제9장 펠리니의 「8과 1/2」에 나타난 액자 구조
제10장 영화에서 말하기와 말해진 것―‘진실다움’의 쇠락
옮긴이의 말
미주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