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와 홍당무를 뛰어넘는
귀여운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 은호가 왔다!
영리하고 예민한 소년 은호가 들려주는
플루트 연주처럼 아름답고 청신한 성장기
볼수록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도 안/못 하면서, 똑똑한 척 잘난 척은 세계 최고다. 걱정도 많고 겁도 많으면서 꿈이 테러리스트란다. 정 많은 착한 녀석이면서 무정한 척 모르는 척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올겨울,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장편소설 『십자매 기르기』(문학과지성사, 2011)의 주인공 은호 이야기이다. 『나는 할머니와 산다』로 2008년 세계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민경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이 책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좇아가는 소년 은호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생생한 캐릭터들과 그들의 입심, 때론 포복절도할 만큼 웃기고, 어쩔 땐 코끝 시리도록 슬픈 이야기’는 기본. 맑고 푸른 눈으로 읽어낸 세계에 대한 기발하고도 깊은 사유가 읽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어디 그뿐인가. 기존 질서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수용이라는 기존의 문법을 뒤엎고, 이를 자신에 맞게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은호와 친구들의 성장 방식은 어른의 시각에 맞춰 아이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우를 범하지 않고, 진정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것이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끝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가게 될 장편소설 『십자매 기르기』가 이번 겨울 유독 눈에 띄는 까닭이다. 영리하고 예민한 소년 은호가 들려주는 음표들의 환상적인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십자매: 납부리새과, 몸길이 12~13cm가량의 작은 새.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하여 십자매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새를 광부들은 탄광에 데리고 간다. 산소가 희박해지면, 목청껏 노래를 하는 까닭이다. 그야말로 모두를 위해 부르는 그 노래를 광부들은 사랑했고, 하여 십자매는 ‘광부들의 새’라고도 불린다.
『십자매 기르기』의 첫 문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독일의 파견 광산 노동자였던 할아버지. 이국에서 벌어온 돈을 사기로 잃은 할아버지는 폐지 수집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한다. 두 말썽쟁이 손자와 함께, 고될 만도 한 현실이지만, 그는 독일에서 배워온 플루트를 은호에게 가르친다. 할아버지는 은호에게 영웅이었고 보호자였다.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주인공 은호의 성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른 이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태어남의 다른 끝은 죽음이라는 의식의 발생)은 소년기의 마감이자 청년기의 처음인 ‘푸른 계절’의 태동을 의미한다. 누구나 죽음을 통해 자라난다. 이것은 성장통이다. 행복한 무지에서 고통스런 앎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은호는 이제 막 허물을 벗으며, 눈멀 듯 환한 세계로 나가려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시절은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 보통이다. 은호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의심한다. 보호해주었던 울타리가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아직 주무시고 계신 건지도 모르잖아.”
“이 멍청아, 이틀씩이나 잠만 자는 사람이 어딨냐? 틀림없이 돌아가셨다니까.”
“그래두……”
“좋아, 정 그렇다면 확인해보는 수밖에.”
말을 끝내기도 전에 형은 할아버지 옆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할아버지의 코끝에 대고 무려 5초 동안이나 있었다. 형은 또 뭔가 미심쩍다는 얼굴로 할아버지의 가슴팍을 흔들어보았다.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할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나 호통을 치실 것만 같았다.
이제 은호는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 열세 살. 아직 혼자서 살아가기에 어린 나이이지만, 선택권은 없다. 은호에게도 물론, 아빠와 엄마가 있다. 같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제 은호에게는 남은 가족은 형뿐이다. 이제 그들(은호와 형)은 자유로워진다. 울타리는 비호인 동시에 가두리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결정은 그들에게 달렸지만, 은호는 스스로를 망치지 않는다. 할아버지 그리고 플루트와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은호는 플루트가 좋고, 플루트를 가르쳐준 할아버지는 은호가 사람들을 위한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 은호는 자유롭게, 마치 십자매처럼 노래를 해야 한다.
나는 형의 손에서 플루트를 빼앗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 순간 형이 길거리로 나 있는 창을 향해 그걸 던져버렸다. 나는 냉큼 창문에 매달려서 골목길을 내다봤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 택시 한 대가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는 게 보였고 나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플루트는 관이 세 조각으로 분리되었고 헤드 부분이 휘어져버렸다. 그걸 고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나는 조심스레 그걸 주워 들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왔다.
형의 손에 의해 던져지고 망가진 건 플루트인 동시에, 은호의 희망이기도 하다. 몹시 절망스런 순간에 놓인 은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은호의 희망 찾기, 다시 말해 통과의례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하나하나 은호는 자신 앞에 놓인 어려움을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유머 넘치는 태도로 극복한다. 조금씩 자라는 은호를 독자들은 감춰진 시선으로 바라본다.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힘은 음악이다. 꿈이다. 그 꿈이 꺾이기 직전에 언제나 조력자들(할아버지의 목소리, 사서 선생님, 아빠, 플루트 연주자 그리고 소희)이 그를 돕는다. 물론 은호의 의지에 의해서이다. 도움은 스스로 돕는 자에게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의 은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진정한 가치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누가 알려줘서가 아니다. 도움이 있을지언정,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은호를 흉내 내어 말하자면, 가치는 그럴 때 생기는 법이다.
얘야,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단다.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삶이지.
더 이상 무엇이 있을 수 있겠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아무것도……
내 말을 기억하렴.
우리가 전 생애를 걸고 해볼 만한 일이 있다는 건
신의 은총이란다, 얘야.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리고 “전 생애를 걸고 해볼 만한 일”을 찾아가는 은호의 좌충우돌 맹랑 성장기인 소설 『십자매 기르기』는 행복과 슬픔, 행운과 불운은 다른 몸이 아님을 보여준다. 진정한 가치는 기실 눈앞에 있음을, 의지를 갖고 손을 뻗으면 되는 것임을 알려준다. 이제 남은 것은 은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와 함께 성장하는 일이다. 이야기에 빠져 정신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은호에게 들려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 줄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은성과 은호 형제는 졸지에 ‘부모 있는’ 고아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가출을 한 상태, 아빠는 새장가를 들어 따로 살고 있는 까닭이다. 아빠에게 연락을 해보려 하지만, 아빠의 전화번호는 바뀌어 있는 상태. 형제는 아빠에게 연락이 닿을 때까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은 비밀로 하기로 한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은성은 이 기회에 멋대로 살기로 작정했나 보다.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약속이 있는 은호는 그럴 수 없다. 은호에게는 친구가 있다. 은빛 악기 플루트다. 플루트를 불 때가 제일 좋다. 플루트를 가르쳐주고 선물해준 사람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독일에서 광부 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 이 악기를 배웠다고 했다.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진다. 싸우다가 고칠 수 없게 플루트가 망가지고, 형은 못된 짓을 하며 경찰서를 들락거린다. 돈은 하나도 없고, 그러니 밥도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일이 풀리기 시작한다. 소식이 없어 궁금했던 아빠가 찾아오고, 우연한 계기에 플루트를 선물 받기도 한다.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들에 벙벙해진 은호는 심지어, 콩쿠르에서 입상하기까지 한다. 좋은 일의 반복이 불안한 은호에게 결국 사고가 터진다. 은성이 자신의 오토바이로 사고를 낸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빠도, 사서 선생님도 더는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 그때 은호 앞에 누군가 나타나는데…… 과연 은호는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가,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을까. 좌충우돌, 뒤죽박죽, 글썽거리는 앙큼하고 사랑스런 아이 은호의 희망 찾기!
◆ 작가의 말
키가 좀더 자랐으면 좋겠다.
내 몸의 성장판이 아직 닫히지 않았으면.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고 잠든 날은 키가 크려는지 몹시도 무릎이 아팠다.
아직은 덜 자란 나와 같은 어른들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
안색이 노란 아이들, 딱히 갈 곳이 없어 찬바람 부는 거리를 걷고 있을 아이들도 생각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알고 있다.
나이기도 하고 내 동생이기도 하고 내 먼 친척이기도 한 그런 아이들.
그들이 자기만이 아는 생(生)의 일기를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절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난 시절의 통증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만 있다면
겨울밤에 키가 자라는 꿈을 꾸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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