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웃을 수 없어서 웃기는 사람이 된 것뿐이야. 우스운 얘기지?”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가볍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무겁게…
개성적인 상상력과 스타일을 지닌 작가 김성중의 삶과 세계를 향한 새로운 시선!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졸업한 후에도 한동안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다 서른두 살이 된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구립도서관을 찾아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2년 후인 2008년, 그의 말을 빌리자면 “도서관 생활을 수기처럼 옮긴” 첫 소설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로 그는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데뷔 3년 만인 올해, 첫 소설집 『개그맨』을 낸 김성중의 이야기이다.
그가 작가가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문인은 그의 등단 소식을 전하며, “갖지는 못해도 잊지는 말자”는 영화 「동사서독」의 대사를 인용하였다. 김성중은 그 이야기처럼 살았고, 결국 등단할 줄 알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성중은 “작가는 특수한 다른 종족이라고만 생각했다”면서 자신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신기한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그의 첫 소설집 『개그맨』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소설을 늘 생각하는, 천생 소설가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림자」 「개그맨」 「게발선인장」 「간」 「순환선」 등 일상적인 단어로 된 작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소설의 모티프를 삶의 도처에서 얻는 듯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등단작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도 “도서관 생활을 수기처럼 옮”겼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어느 날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의자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도서관의 의자’라는 사물을 서사에 대한 작가의 사유 안에 녹인 활발한 상상력으로 경쾌하게 풀어냈다. 의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진솔한 대화에 응하는 주인공은 그들의 “타자수”를 자임하는데,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 것들과의 감각적인 대화와 상상적인 소통을 이루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등단작 이후 김성중은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양한 스타일로 표현하며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이 세계에 대한 그의 사유의 도저함을 반영하며, 진정한 소통에의 욕망을 향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사를 나타낸다. 그리고 여기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는 것은, 이를 표현하는 김성중만의 새롭고 다양한 시선과 그 속에 담고 있는 질문들이다.
『개그맨』의 첫 문을 여는 「허공의 아이들」은 서서히 땅이 무너지면서 허공으로 떠오르며 사라져가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희망이 봉인되다 못해 세계 파국의 불안이 가중되는 반성장 시대의 성장통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집과 땅 사이의 틈이 점점 벌어지면서 허공에 계단이 생기고, 그 안에서 살아남은 소녀가 점차 투명해지다가 결국 그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증발해버리고 만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다. 작가는 이 안에서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현실의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이어지는 작품 「그림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그림자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왜곡되고 전도된 그림자들로 인해 혼돈의 도가니가 된 초현실적인 섬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사건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방치한 채 살아가기 일쑤인 현대인들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희화하하고 있다. 그림자의 제 주인을 찾아주는 “기적의 소녀”를 통해 작가는 분열된 세계를 치유하고 통합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소녀는 오히려 불신의 대상이 되고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는 고조된다. 표제작인 「개그맨」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해 고통 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심연으로 내려가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 개그맨과 사랑했지만 다른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한 후 14년간 무탈하게 산 여자가 옛 애인인 개그맨의 부고를 듣고 자신과 헤어진 이후 그 개그맨의 삶을 더듬어보는 이 작품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밀한 상처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때로는 무탈함이 더 큰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전언은 「버디」에서 더욱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평균 수명이 140세로 늘어난 미래에 여든이 넘은 우울한 나와 한쪽 눈이 불구인 아나키스트 버디, 그리고 평균 수명의 절반 수준에서 곧 생을 마치게 될 여인 R의 기이한 동거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사건을 그린 이 작품은, 죽음을 대비할 시간이 지루할 정도로 길어진 시대의 역설적 악몽을 환기한다.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인해 늘어난 삶의 시간이 정녕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버디」에서의 질문은 「게발선인장」으로 이어진다. 파란만장하고 고단한 삶을 살다 노년을 맞은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그 주인공으로 하여, 말씀이 토대를 구축하는 사이비 종교의 흥행과 토대가 말씀을 구축하는 그 교주의 사기 행각을 복합 렌즈로 포착한 이 작품은 현실을 잊고자 만든 자신의 환상에 결국 더 큰 상처를 입은 힘없는 노년의 더없이 절망적인 삶을 깊이 있게 그리고 있다.
이 외에도 모든 시민들이 탈모가 된 후 그 머리에 갖가지 꽃이 피어나고, 그 꽃의 아름다움에 따라 사람의 우열이 결정되는 한 도시에서 발생하는 의문의 연쇄살인과 임신을 하지도, 머리에 꽃을 피우지도 못하는 상처받은 여인 수하일라의 이야기를 담은 「머리에 꽃을」, 옛이야기 「토끼전」을 김성중만의 스타일로 패러디하여 상처와 치유에 관해 우화적으로 접근한 「간」 등은 작가 김성중만의 색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순환선」에 이르러, 희망은 봉인되고 출구가 막힌 악몽이 끝없이 순환될 것임을 독자들은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김성중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의 첫 소설집의 제목이 왜 『개그맨』인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그 깊은 곳에 슬픔을 알아야 타인을 웃길 수 있듯이, 경쾌한 상상력을 리드미컬하게 전개하는 김성중 소설의 재미에 빠져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존재의 심연으로 내려가는 상상의 깊이와 마주쳐 돌연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가볍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무겁게 조망하는 작가 김성중의 힘이고, 이 신예 작가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 작가의 말
수요일 오후, 텅 빈 카페에 앉아 전에 써놓은 <작가의 말>을 다 지웠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을 만큼 비장한 글이었기 때문이다. 새 노트를 펼치고 있으려니 문득 기이하고 아득하다. 그리고 비현실적이다. 세상에, 내가 첫 소설집에 들어갈 <작가의 말>을 쓰고 있다니!
내 인생에서 가장 신기한 일은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한 번도 글재주로 주목받아본 적이 없는 나였다. 항상 오만한 독자였지만, 작가는 특수한 다른 종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서른두 살부터 다시 소설을 썼다. 구립도서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공상에 잠기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습작은 별로 진전이 없었고 노트북을 켜놓은 채 남의 글만 잔뜩 읽다 돌아오곤 했다. 어쩌다 쓴 글 중에는 책 뒤에 들어갈 <작가의 말> 즉, 지금 이 글을 당겨 쓴 것도 있는데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낯부끄러운 글이다.
비슷한 것으로 편지들이 있다. 몇 개의 습작을 부러뜨리고 나서 실의에 빠진 채, 내 첫 소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언젠가 올 너를 기다리고 있어……’ 연서에나 들어갈 문구로 빼곡한 글이었다. 소설을 써야 할 시간에 소설에게 편지나 쓰고 있으니, 도무지 진도가 나갈 리 없었다.
그때는 전혀 글을 쓸 줄 몰랐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은 더더구나 몰랐기 때문에 낙서밖에 할 수 없었다. 격한 감정이 밀려올 때, 어떤 ‘원석’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충전되어 있을 때, 그 감정의 정체를 몰라 ‘뮤즈’ 운운할 때, 나는 늘 근사한 첫 문장을 고대했다. 뭔가로 가득 차 있지만 어떻게 터뜨려야 할지 몰라 내버려두는 고름처럼, 그렇게 끙끙거리며 날마다 문장 타령만 했다. 2년 후에야 겨우 마침표를 찍은 첫 소설(도서관 생활을 수기처럼 옮긴 터라 부끄러움이 컸다)로 등단을 했다.
힘겹게 첫 소설을 끝냈더니 그다음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신호등 앞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야기의 입자가 저절로 달라붙었다. 느닷없이 소설과 나 사이에 회로가 생겨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첫번째 소설이 내게 행한 마법이었다.
그다음부터 진정한 문제가 발생했다. 근사한 얘기들이 밀려들었는데, 그걸 제대로 받아 적을 필력이 한참이나 모자랐다. 등단할 때 당선 소감에 ‘물러설 수 없는 사각의 링’ 운운했는데, 막상 링에 올라와보니 정신없이 쏟아지는 펀치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부족함이었다. 두번째, 세번째, 작품이 쌓일 때마다 곤죽이 되도록 나에게 얻어맞았다. 독자인 내가 작가인 내게 분통을 터뜨렸는데, 비난의 요체는 멋진 이야기를 왜 이렇게밖에 못 쓰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내 원단이 순면이나 순모가 아닌 폴리에스테르나 아크릴 따위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문재(文才)가 없으니 정전기라도 일으켜보겠다는 게 내 씩씩한 낙관의 근거였다. 그러나 이런 유의 괴로움―소재도 있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알고, 강렬한 문장이 어느 순간에 폭발해야 하는지도 훤히 꿰고 있는데 막상 써놓고 보면 머릿속의 소설과 멀어도 한참이나 먼―이 반복되자 다시금 소설에게 편지를 써대기 시작했다. 이 글의 몸통이 될 내용은 사실 내 소설들에게 보내는 미안함과 반성문이다.
현재까지 내가 처한 곤란은 이렇다. 흥미로운 이야기라면 열 개든 스무 개든 만들어내겠는데, 그걸 잘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거칠고 조악한 글에 이야기들이 얹혀 있는 모습은…… 무지막지한 벽돌로 성급하게 쌓아 이야기를 가둬놓은 것 같았다.
그렇다. 매일매일 벽돌을 구웠지만 예쁜 장밋빛 벽돌은 얻지 못했다. 모처럼 내게 온 이야기들, 세상 곳곳에 빛처럼 바람처럼 떠다니다 운 나쁘게 나에게 수신된 이야기들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허둥지둥 쌓은 아홉 개의 감옥, 그것이 내 첫번째 창작집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곤란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두 해 죽자고 덤벼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머릿속의 소설이 종이 위의 소설보다 완벽한 것은 당연하다. 아직 언어의 터널을 통과하기 전이니까. 그러나 굴착기의 시간이 도래하면 사건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면서 딱 내 수준만큼의 모습만 드러냈다.
이제 나는 세상 어디에나 멋진 이야기들이 떠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단한 작가일수록 이야기를 가둔 벽돌의 색이 옅어진다는 것을, 옅어지다 못해 투명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사막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홀연히 독자 앞에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문학의 영웅들이 투명한 벽돌을 얻을 때까지 걸었을 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득하다.
(역시나 소설이 아닌 글을 쓰면 대책 없이 솔직해진다. 이 글도 앞선 글과 마찬가지로 파기해버리고 4줄짜리 작가의 말이나 짤막한 콩트를 쓸까 하다가 너무 태연한 척하는 것 같아 관뒀다.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글을 정리해야겠다.)
엄마에게 드리는 감사 인사만은 생략할 수 없다. 어릴 때는 세상 엄마들이 다 우리 엄마 같은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 아니었다. 서른이 넘도록 자리 잡지 못한 딸에게 심지어 잔소리도 별로 안 한 우리 엄마. 변함없이 다정한 엄마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렇듯 열렬히 절망하고, 또 씩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엄마를 엄마로 만나서, 나는 겨우 작가가 됐다.
그리고 내 노트북에 등을 대준 무수한 탁자들 중에서도 특히 연희창작촌 203호 책상에게 고맙다. 그곳에서 세 편이나 만지작거렸으니 이 책의 3분의 1은 녀석에게 빚진 셈이다.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식구들, 해설을 써주신 우찬제 선생님과 유약한 작가를 잘 끌어준 편집자 필균, 근사한 표지를 만들어주신 김현우 씨에게도 감사드린다. 인생의 첫번째 책에 연루된 사람들이니 평생 동안(무섭죠?) 잊지 않을 테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내 글에 나 외에 다른 독자가 생기는 건 여전히 어색하지만,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솔직히 ‘독자’라는 존재는 좀 두렵지만…… 이제 막 내 언어로 된 세계의 지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한 풋내기 작가니까, 다음 소설에서 신대륙을 발견할지 누가 아는가? 그러니까 첫 책의 독자가 되어준 분들은 계속 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하하.
여기까지다. 수수하고 솔직한 글을 쓰려던 것이, 수다하고 장황한 글이 되고 말았다. 온도가 뜨거운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내려놓고 이 글을 마친다.
2011년 가을
김성중
허공의 아이들
그림자
개그맨
버디
게발선인장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
머리에 꽃을
간
순환선
해설|허공의 만돌라 _우찬제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