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진실과 운명을 향한 도저한 사유, 그 쉼 없는 열정
소설가 이청준이 일궈놓은 40년 문학의 총체 『이청준 전집』
지난 2008년 7월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문학을 보전하고 재조명하고자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로운 구성과 장정으로 준비한 『이청준 전집』 시리즈 가운데 4권 중단편집 『소문의 벽』(2011)이 출간되었다.
진술의 불가능성을 꿰뚫고 가로지르는 소설 언어의 가능성
중단편집 『소문의 벽』은 이청준 문학 세계에 두텁게 드리운 상징성으로 말해지는 저 유명한 ‘전짓불의 공포’라는 강력한 이미지를 알린 중편 「소문의 벽」을 비롯하여 총 9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이 작품집에서 우리는, 작가 이청준의 고향 혹은 유년의 근원적 이미지를 둘러싼 소설 쓰기의 가능성을 엿봄과 동시에, 이청준 초기 문학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각 작품들을 통해, 이청준 문학의 필생의 질문들이 날카롭고도 집요한 방식으로 드러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청준 문학의 넓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깊이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 이청준 문학이 다양성과 다원성을 확보하는 이유는 그것의 양적인 집적 때문이 아니다. 이청준은 자기 시대와 자기 세대의 가장 뜨거운 질문법을 만들어낸 작가이고, 그 질문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그 질문의 내부와 배후를 탐문한 작가이다.
이청준의 소설에서 현대적 내면성의 원리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자신의 원체험과 상처의 근원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질문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청준의 인물들의 내적 의식은 그 상처에 대한 피해자 의식이 아니라, ‘피의자의 의식’을 함께 갖고 있다. 이 점이 이청준 소설의 자기 성찰의 치열성을 확보하는 것이며, 여기서 이청준 소설의 자기의식은 현대적 주체성의 원리를 보존하는 수준을 넘어서 시대에 대한 비판과 소설 쓰기의 밑자리에 대한 반성적 의식이라는 중층적인 겹을 가지게 된다.
4․19 이후의 작가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자기의식’은 이청준에게는 자기 탐구와 그것을 언어화하는 문제라는 두 겹의 층위를 갖게 되었다. 문학 언어의 틀 자체에 대한 질문이라는 측면에서, 개인 주체의 자율성과 문학의 자율성은 동시에 반성적 질문의 대상이 된다. 이청준은 4.19 세대의 대표 작가로, 그의 문학은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둘러싼 지향성과 그 반성적 성찰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광호·문학평론가)
[수록 작품 소개]
「소문의 벽」은 근대적 주체의 형성을 둘러싼 지향성과 그 반성적 성찰을 동시에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소설은 ‘박준’이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관찰자적 시점으로 진행된다. ‘나’는 잡지사 일을 하고 있다. ‘나’와 박준은 모두 ‘언어’에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 즉 ‘자기진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 모종의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박준’에 대한 나의 관심도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소설은 시종일관 ‘광인’처럼 행동하는 박준을 그렇게 만든 상황에 관한 질문법을 던지고 있다. 그 탐색의 과정에서 박준이 쓴 세 편의 이야기 즉, ‘죽은 사람 시늉을 하는 남자 이야기’ ‘사장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그에 따른 신경과민 증세와 주의력 결핍으로 회사에서 퇴출당하는 자의 이야기’ ‘말할 수 없는 것을 둘러싼 시대의 요구’로 요약되는 세 편의 소설이 액자소설의 구성을 띠며 주요하게 언급된다. 말하자면 이 소설들은 박준의 정신적 억압의 기원을 밝힐 수 있는 일종의 정신분석 텍스트라고 할 수 있으며, 작가 이청준의 입장에서 펼치는 소설 쓰기의 근원적 성격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편 「소문의 벽」은은, 진술의 공포와 소설 쓰기의 불가능성을 동시에 껴안은 소설 쓰기의 가능성을 메타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되겠다.
「가학성 훈련」은 자가용 운전수로 일하는 ‘현수’는 셋집의 주인집 계집아이가 자신의 딸의 머리끄덩이를 꺼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상한 놀이를 묵인한다. ‘굴레’를 둘러싼 가학성과 피학성의 내적 윤리를 질문하고 있는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작품 「퇴원」 이후 초기작에서 보여주던 자아회복, 자기 얼굴, 자기 정체성 찾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쟁과 악기」는 이전 작품 「마기의 죽음」처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용인되지 않던 시대에 대한 작가의식의 투영으로 알레고리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후 발표될 장편 『조율사』의 핵심 단초가 되는 이 작품은, 슬픈 노래에 대한 배타적 선호와 즐거운 노래에 대한 금기시 현상처럼 너무도 뻔한 이분법적 선악관과 그에 따른 사물 인식의 획일적 단면성을 꼬집는 한편, 글다운 글을 써내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자조감이 짙게 밴 소설이기도 하다.
「그림자」는 1966년 5월 『산업경제신문』에 발표된 「복사와 똥개」를 다시 쓴 작품이다. 원제 ‘복사와 똥개’가 말해주듯, 힘과 권력을 지닌 복서종 개와 그 그늘에서 억압받는 존재로 그려지는 똥개를 통해 삶의 대면 관계, 즉 삶과 죽음, 앞뒤 얼굴, 삶의 연장에 같은 무게로 얹히는 피곤과 외로움, 도시와 시골(고향)이 대비되고 있다.
「미친 사과나무」는 「전쟁과 악기」처럼 이청준의 우화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다. 진짜 배와 가짜 배, 진짜 사과와 가짜 사과처럼, 진짜와 가짜는 이 작품에서 실명과 가명, 생화와 조화, 맨얼굴과 가면, 나와 분신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는 것, 이름과 실체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름이 무엇이든 실체가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언어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야기는 연결된다.
「소문과 두려움」의 원제는 1975년 일지사에서 발행된 『가면의 꿈』에 수록될 당시 「발아」였다. 제목 그대로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끝없이 움직이며 큰 세력을 갖는 소문의 속성을 축약하고 있다. 소문의 확장은, 소문과 갈등을 먹고 자라는 두려움의 증가를 가져오듯, 이 작품에서 소문이 키운 두려움의 실체는 거인들로 나타난다.
「목포행」은 「소매치기올시다」와 「문단속 좀 해주세요」와 함께 ‘소매치기, 글쟁이, 다시 소매치기’ 연작의 하나에 해당한다. 목포행 기차를 타고 가는 1인칭 화자의 고백적 담화 자체가 소설의 본문이 되는 비소설적 구조를 띤다. 작가 이청준은 수필 「상황과 문학」에서, 탈출구가 없는 닫힌 상황이 바로 현대문학의 특징이자 운명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화자가 몸을 실은 목포행 기차는 상상 혹은 실제로 탈출구를 가진 열린 도시, 목포를 향해 있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은 일종의 진술의 방법으로 배신을 택하고, 그 ‘권력이란는 것의 속성과 그것의 파국’에 관한 글이다.
[표4]
이청준 소설의 탁월함은 현대적 주체성과 자율성의 원리가 자기 정당화의 요구에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적 주체성과 현실과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일부로서의 자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다른 층위의 미적 주체를 재구성한다. 시대에 대한 비판과 자기비판이 조우하는 지점에서 소설 쓰기 자체에 대해 질문하는 심미적 주체가 탄생한다. 문학 언어의 한계와 무기력과 정직하게 대면함으로써, 오히려 소설 쓰기의 다른 가능성을 열게 된다. 자유로운 진술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단지 현실의 권력이 아니라 이미 그것의 일부인 자신의 문제이다. 그것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끈질기게 탐구해나갈 때, 그 진술의 불가능성을 소설 쓰기의 가능성으로 만드는 이청준 소설의 기적이 일어난다. 그것이 이청준만의 문학사가 이룩되었던 이유이다.
_이광호(문학평론가)
이청준전집
(괄호 안은 해당 작품 최초 발표 지면)
가학성 훈련 (『신동아』 1970년 4월호 발표)
전쟁과 악기 (『월간 중앙』 1970년 5월호 발표)
그림자 (『월간 문학』 1970년 11월호 발표)
미친 사과나무 (『한국일보』 1970년 발표)
소문과 두려움 (『월간 문학』 1971년 4월호 발표)
소문의 벽 (『문학과지성』 1970년 여름호 발표)
목포행 (『월간 중앙』 1971년 8월호 발표)
문단속 좀 해주세요 (『현대문학』 1971년 8월호 발표)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월간 중앙』 1972년 3월호 발표)
해설 | 진술의 불가능성과 소설의 가능성 (이광호. 문학평론가)
자료 | 텍스트의 변모와 상호 관계 (이윤옥.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