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최전선, 그 뜨거운 에너지를 만난다!
한국 소설의 젊은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열한 편의 목소리
한국문학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호흡과 언어를 발굴하고 이를 문학 독자와 온라인상에서 나누고자 한 <웹진문지>(http://webzine.moonji.com). 1년 동안의 그 소중한 첫 결실이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이라는 이름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제1회 수상작인 이장욱의 「곡란」을 비롯해 총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본 작품집은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문학의 전통과 전위 및 인문지성의 요람으로 튼실히 역할해온 문학과지성사가 <웹진문지>를 통해 일구어낸 빛나는 성과다.
“매달 첫 주를 기준으로, 지난 3개월 내에 발표된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이달의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게재하고 그중에서 매년 2월 최종 수상작을 가려 뽑는 방식으로, 1년 내내 웹진을 통해 심사의 과정과 내용이 중계되는 초유의 문학상”인 동시에 “등단 7년차 이하의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각종 신인문학상을 제외한다면 현재 활동 중인 작가들 가운데 가장 젊은 세대에게 주어지는 작품상”이기도 한 <웹진문지문학상>의 그 첫번째 수상작품집을 통해, 바로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한국문학의 가장 뜨거운 젊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11편의 <이달의 소설> 선정작은 등단 7년차 이하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었다. 힘 있는 신인의 등장을 알린 <이달의 소설> 첫번째 선정작인 정용준의 작품에서 시작하여 신인답지 않은 소설적 완성도와 서사적 이미지를 보여준 김성중, 최은미, 이유의 작품, 그리고 독창적인 문체 미학과 소설적 개성을 보여준 김유진, 김선재의 작품, 빼어난 단편 구성력과 주제의식의 수준을 보여준 이홍, 정소현의 작품과 한국소설의 현재의 흐름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주도하고 있는 이장욱, 황정은, 최제훈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심사위원들에게는 웹진에 떠 있는 이 11개의 별자리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가슴 벅찬 일이었다. _「심사 경위」중에서
■ 작품 속으로
그런데 주인공이 죽음에 가까이 가면서 고희성은 약간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에게는 죽음만이 관심이 있는 게 아닐까. 죽음은 삶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건 아닐까. 죽음은 죽음 자체를 밀고 나가는 힘으로만 충만한 것은 아닐까. 이상하게도 이 의문은 고희성의 머리에 접착제처럼 달라붙어 떠나지 않았다. 고희성은 중얼거렸다. 죽음에게만 관심이 있는 죽음이라니. 죽음으로만 충만한 죽음이라니.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 쓴다는 건 허망한 일이 아닌가. 삶으로 회귀하지 않는 죽음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고희성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집요하게 달라붙는 생각에 시달리다가 텅 빈 방에서 비명을 지르곤 했다. 어느 날 밤에는 소설 속의 노인이 꿈에 나타나 고희성의 목에 노끈을 감기까지 했다. 여든이 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완력이었다. 고희성은 목이 졸려 컥컥대다가 퍼뜩 깨어났다. 이부자리를 걷고 일어나 거울을 보면, 정말 노끈 자국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고희성은 제 목을 어루만지면서 컴퓨터를 켰지만 단 한 글자도 써내려갈 수 없었다. 고희성은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_이장욱,「곡란」
하비바, 나는 당신이 좋아했던 노래가 되었다. 나는 지금 당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바람보다 가벼워졌다. 나는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다. 국경을 넘어 마을로 향한다. 가나가 만지고 있을 초원의 풀 위로, 새 떼가 뒤덮는 하늘 위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당신의 머리 위로, 그리고 당신의 말라버린 성대 속으로.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좋겠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_정용준,「가나」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빅터 형은 생명을 창조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늘어놓으면서 그 동기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얼버무렸어요. 이상하지 않던가요? 구체적인 설명도 없고 그럴듯한 이상이나 야망도 안 보이고. 단지 ‘행복하고 뛰어난 수많은 생명체들이 나로 인해 탄생하게 될 것이다’라는 두루뭉술한 선언이 전부였죠. 뭐였을까요? 빅터 형은 막연히 신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에요. 형님은 말이죠, 신을 거부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던 겁니다.” _최제훈, 「괴물을 위한 변명」
나는 메일함에 저장해놓은 B의 편지를 모두 지웠다. 나는 B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이 내가 아님을 후회했다. 이곳에서 너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노라, 말해주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더불어, 돌아간 고국에서도 너를 받아줄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나에게 하듯, 그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가 고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나는 끝까지 진심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침묵할 때라고 생각했다. 내가 B에게 보냈던 편지 중 그가 수신확인을 하지 않은 몇 통의 편지들을 찾아 지워버렸다. 그가 편지를 읽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_김유진, 「희미한 빛」
당당하고 천진한 딸아이의 두 눈동자를 보는 순간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역시 내 딸이다. 나는 죽어도 터득 못할 재미를 딸아이는 이미 알아버렸다. 어금니 사이에 단단하게 물려 있던 살얼음이 녹자 가득 고였던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유 없이 흘러내린 맑은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잠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뿜어낸다. 목구멍에 단단하게 엉켜 있던 뭉텅이가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주변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만 내 눈엔 완전 달라 보인다. _이유, 「커트」
이 모든 것이 그간 얻어먹은 밥과 할머니와의 우정이 빚어낸 강요된 공명심 때문이었다. 알량한 양심에 시달리는 나날이 이어지자 개입을 요구하는 상황에 새삼 짜증이 밀려왔다. 얹혀사는 주제에 폭력까지 휘두른 노인이 기가 막혔고 온갖 추문을 퍼뜨리는 이모가 입을 닫고 있는 것도 혐오스러웠다. 나는 이 골목에서 단 한 명, 할머니만 빛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성녀의 저토록 무지하고 어리석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답답했다. 그들은 제자리에 붙박인 채 돌던 궤도를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움직여야 하는 건 나였다. _김성중, 「게발선인장」
남자는 삽을 바닥에서 뽑아내 그걸 끌며 천천히 내 주변을 돌았다.
어쨌든 옹기는 맡기고 꼬맹인 가라. 우리가 묻어주마. 우린 이 일을 어제도 했고 오늘도 했으니 내일도 할 거다. 전문가들이란 말이다. 지금이라면 아직 묻을 수 있다. 자리가 있다. 언제나 있다. 어떻게 있느냐. 지반이 가라앉는다. 옹기란 무겁잖아. 반년쯤 지나면 이전에 묻은 옹기가 가라앉아 자리가 난다. 덕분에 우린 계속 묻는다. 어제도 묻고 오늘도 묻고 내일도 묻고. 그렇게 묻어서 뭐 난리난 적 있냐. 이렇게 묻고도 세상은 멀쩡하다. 당장 어떻게 되는 일 없다. _황정은, 「甕器傳」
우와! 아이와 동생이 탄성을 질렀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아시안게임도 하고 올림픽도 한다는데, 좀팽이처럼 구닥다리 차를 타고 다닐 순 없어서, 이 아빠가 너희를 위해 근사한 차를 쫙 뽑아왔다. 어때, 마음에 들지? 차안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울렸다. 아이와 동생이 깔깔대며 박수를 치는 동안 아빠의 새 차는 잠실 메인스타디움 앞의 드넓고 황량한 8차선 도로를 질주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이, 아이의 작고 여린 어깨 옆으로 빠르게, 너무나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_이홍, 「나의 메인스타디움」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자신을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정 기사는 나오지 않았고, 용의자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짤막한 기사가 추가로 검색되었다. 하룻밤에도 그의 마음은 여러 번 바뀌었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니니 경찰서에 떳떳하게 가야겠다는 생각과 지금처럼 여인숙에 숨어 살아가면 아무도 자신을 못 찾아낼 거라는 생각이 계속 교차했다. 혼자 남아 자신이 엄마를 살해했다고 오해하고 있을 여동생을 생각하면 무고함을 증명해야 하겠지만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_정소현, 「실수하는 인간」
문밖에서 들려오는 할머니 목소리였다. 머리맡 언저리에서 엄마의 기척이 느껴졌다. 한 번도 포근하게 감긴 적 없이 매몰차게 미끄러져가던 엄마의 냄새였다. 이마의 반창고에서는 자꾸만 피가 배어나왔고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불 속에서 살이 상하는 것 같은 들척지근한 비린내가 났다. 나는 이불 밑에서, 눈을 감고, 오래오래 기다렸다. 엄마가 그 방을 나갈 때까지. _최은미, 「눈을 감고 기다리렴」
비현실적인 공간과 상황이었다. 꿈속에서 꾸는 꿈처럼 아득했다. 안나는 전생에 나를 지나간 인연처럼 멀었다. 물론 나와 안나는 그런 사정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이였다. 우리가 하나가 아닌 둘이 되는 순간은 매번 찾아왔지만, 나가 생각하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딱 한 번 안나는 그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사정에 따라 변하는 사랑은 사정을 가장한 다른 사정일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비록 지켜야 할 규칙과 질서를 거스를 힘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진심을 다하는 나로서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는 안나에게 섭섭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가 안나를 사랑하는 건 진심이었다. 나는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사정이 사랑과는 상관없음을 안나가 이해하리라 믿었다. 진심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_김선재, 「독서의 취향」
■ 책머리에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문학의 전통과 전위 및 인문지성의 요람으로 튼실히 역할해온 문학과지성사가 온라인 공간에서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변화된 문화 환경에서 문지의 스펙트럼을 좀더 넓은 공간으로 개방하기 위해 기획된 문화웹진 <웹진문지>. 2010년 초봄에 선보인 <웹진문지>가 지난 1년의 성취 가운데 가장 빛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년간 매달 이어지는 열띤 지상 중계를 통해 한국문학의 젊은 목소리를 응원했던 <웹진문지―이달의 소설>이 드디어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웹진문지>는 문지의 정체성과 인문학적 성취를 보다 많은 대중독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문지의 가장 실험적이고 열린 공간이자 새 얼굴이고 힘 있는 실천이며 소설을 중심으로 한 특정 문학 장르의 발표 지면으로서의 제한된 역할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 매체의 언어들과 인문 담론들이 서로에게 길을 트고 서로의 언어들을 안으로부터 변화시키는 융합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이 융합의 자리에서 전위의 언어들이 대중의 감각과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며, 성찰적 지성이 생활세계의 실감들과 접속하는 장면을 만날 것이다. 이 공간에서 장르와 매체의 위계와 경계는 사라지고, 인간과 문화에 대한 모든 언어들은 자기 내부로 향하는 말이 아니라, 웹 공간에서의 익명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또 다른 생성의 언어들이 될 것이다. 문학과 인문학의 창의적인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이 공간은 지금 여기의 웹 사용자들을 향해 무한대로 열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한국문학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호흡과 언어를 발굴하고 이를 웹진의 문학 독자와 나누기 위해 <웹진문지문학상>―이달의 소설―을 예심과 결심을 거쳐 심사하고 선정하여 매달 1일에 <웹진문지>의 새 창에 소개해오고 있다. <웹진문지>의 편집위원과 신진 비평가들로 구성되는 선정위원들이 등단 7년차 이하의 젊은 작가의 중단편 중에서 그 계절의 개성적이고 문제적인 작품을 선정하여 인터뷰와 선정의 말 등을 통해 소개하는 공간으로, 매달 선정된 작품 가운데 매년 초 단 한 편의 최종 수상작을 선정하여 <웹진문지문학상>을 시상한다. 한국문학의 최전선의 에너지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뜨거운 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그 첫 영광의 얼굴은 작가 이장욱의 「곡란」이다.
■ 심사 경위
<웹진문지문학상>은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웹진이라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1년 동안 심사의 과정이 중계되고 결과가 발표되는 문학상이다. 매달 첫 주를 기준으로, 지난 3개월 내에 발표된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이달의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게재하고 그중에서 매년 2월 최종 수상작을 가려 뽑는 방식으로, 1년 내내 웹진을 통해 심사의 과정과 내용이 중계되는 초유의 문학상이다.
이 상은 등단 7년차 이하의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각종 신인문학상을 제외한다면 현재 활동 중인 작가들 가운데 가장 젊은 세대에게 주어지는 작품상이다. 또한 <이달의 소설>에서는 신진 비평가들(강동호, 김나영, 김남혁, 백지은, 송종원, 양윤의, 조연정, 조효원)이 매달 2명씩 작품 선정에 참여하여, 심사위원의 구성에서도 최신의 문학적 흐름을 주도하는 비평적 감각을 수용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독자적인 서버와 도메인으로 한국문학과 인터넷 공간의 접속을 시도하는 <웹진문지> 자체의 성격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의 최종 수상작 심사는 2010년 ‘3월의 소설(정용준-「가나」)’에서 2011년 ‘1월의 소설(김선재-「독서의 취향」)’에 이르기까지 모두 11편의 <이달의 소설>을 대상으로 <웹진문지> 편집위원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참여하여 지난 1월 27일~28일, 이틀에 걸쳐 1차 심사가 진행되었다. 11편의 소설들은 이미 <이달의 소설> 심사를 통해 선정되고 검증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한국문학의 최전선의 에너지와 성취도를 보여주는 것들이고, 따라서 그 안에서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웹진문지문학상>의 미래와 정체성을 고려하면서, 어려운 문학적 선택을 해야만 했고, 2월 초로 이어지는 치열한 토론의 과정 끝에 이제 수상작을 선정하게 되었다.
11편의 <이달의 소설> 선정작은 등단 7년차 이하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에고 불구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었다. 힘 있는 신인의 등장을 알린 <이달의 소설> 첫번째 선정작인 정용준의 작품에서 시작하여 신인답지 않은 소설적 완성도와 서사적 이미지를 보여준 김성중, 최은미, 이유의 작품, 그리고 독창적인 문체 미학과 소설적 개성을 보여준 김유진, 김선재의 작품, 빼어난 단편 구성력과 주제의식의 수준을 보여준 이홍, 정소현의 작품과 한국소설의 현재의 흐름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주도하고 있는 이장욱, 황정은, 최제훈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심사위원들에게는 웹진에 떠있는 이 11개의 별자리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가슴 벅찬 일이었다.
6명의 심사위원이 각각 3~4편의 추천작을 선택하고, 다시 그중에서 심도 있는 토론으로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 수상작으로 이장욱의 「곡란」[『한국문학』 2009년 겨울호 발표, 『고백의 제왕』(창비, 2010) 수록]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웹진문지문학상>의 정체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었고, 심사위원들은 등단 7년차 이하라는 규정과 웹진을 통한 중계라는 성격에 이미 이 상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고, 철저히 ‘작품상’의 성격에 충실하고자 했다. 이장욱의 「곡란」은 생의 끝에서 만나는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독창적인 플롯과 문제의식의 복합성, 흥미로운 위트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지금 이곳의 한국문학이 원하는 요소들을 모두 갖춘 폭발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작품이다. 최종 수상작과 <이달의 소설> 선정작 작가들 모두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다음 시즌의 이 풍요로운 문학적 축제를 다시 기다린다.
_<웹진문지> 편집위원 및 <웹진문지문학상> 심사위원 일동
■ 수상 소감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두 번 잃는다. 한 번은 에우리디케의 죽음으로, 다른 한 번은 하데스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오다가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이 유명한 이야기는 나에게 글 쓰는 밤을 생각하게 만든다. 저 첫번째 상실은 글이 시작되는 곳이 아닌가. 어떤 상실과 결핍, 그리고 그리움의 시간이 시작되는 곳.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을 환하고 명백하고 안전한 지상에서 빼내어 어둠 속으로 몰아넣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두번째 죽음은 글이 끝나는 곳일 터이다. 나는 지상으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뒤돌아본다. 하지만 뒤를 따라오던 그것은 아직 어둠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이다. 우매한 나는, 그것을 잃는다. 뒤돌아보았기 때문에, 그것은 내 눈앞에서 처연히 모래처럼 흩어져버린다. 이미 잃었던 사랑을, 인간의 진실을, 세계의 본모습을, 다시 잃는다.
나는 밤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나는 무엇을 한 것인가? 무엇을 쓴 것인가? 희끗 그 얼굴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내가 본 것은 정말 무엇인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그것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다음 글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허망한 기분에 빠지는 건 그 무렵이다.
나는 가만히 중얼거린다. 응, 자신을 믿어볼 수밖에. 기다릴 수밖에. 다시 걸어갈 수밖에. 그 어둠 속으로. 두 번의 상실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이번에도 유혹을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겠지. 모래처럼 흩어지는 것의 얼굴을 온전히 기억해낼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내 앞에서 사라져가는 그 캄캄한 진실들은 나를 매혹시킬 것이다. 차갑고 냉정한, 밤의 대기 속에서.
*
고맙습니다. “사물들은 어둠 속에서는 빛깔을 갖지 않는다”는 고대의 문장을 떠올립니다. 글쓰기도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빛과 말과 조명 속에서야, 사물도 글도 사랑도 자신의 빛깔과 화사함을 얻습니다. 오늘 이 상은 제게 분에 넘치는 화사한 빛깔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첫 회라니요. 저는 잠시 그 신선한 느낌에 젖어듭니다.
하지만 다시, 빛깔을 갖기 이전의 어둠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캄캄한 존재로서, 무엇도 아닌 존재로서,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선후배 작가들께, 독자들께, 친구들에게, 자못 명랑한 표정으로 인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장욱
책머리에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2010년 4월 이달의 소설) 이장욱 「곡란」
이달의 소설
2010년
3월 정용준 「가나」
5월 최제훈 「괴물을 위한 변명」
6월 김유진 「희미한 빛」
7월 이 유 「커트」
8월 김성중 「게발선인장」
9월 황정은 「甕器傳」
10월 이 홍 「나의 메인스타디움」
11월 정소현 「실수하는 인간」
12월 최은미 「눈을 감고 기다리렴」
2011년
1월 김선재 「독서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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