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시와 문학의 혁명

오생근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0년 12월 23일 | ISBN 9788932021805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81쪽 | 가격 15,000원

수상/추천: 대한민국학술원상

책소개

인간의 상상에 자유를 부여하라!
열정의 외침으로 생성된 문학 혁명, 초현실주의
그 흐름과 쟁점을 정리·성찰한 문학 연구서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불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서 열정적으로 프랑스 문학 사상을 연구하고 깊은 통찰이 돋보이는 글을 써온 오생근(서울대 불문과 교수)가 초현실주의 문학 연구서 『초현실주의 시와 문학의 혁명』(문학과지성사, 2010)을 출간했다. 이 책은 1983년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소설 3부작의 형태와 의미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래 그가 오랜 시간 연구해온 결과를 한데 묶은 것으로, 프랑스 초현실주의 문학 전반을 다룬 국내 연구자의 책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생근은 초현실주의 시에 대해 “초현실주의는 환상과 꿈으로 달아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복판으로, 생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있다. 초현실주의는 인상과는 달리 낭만적 초월과 고공비행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시적인 것이 실현되기를 요구하는 어떤 혁명적인 삶의 태도이다”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초현실주의 문학, 특히 자동기술법으로 씌어진 시를 중심으로 초현실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문학의 혁명’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깊은 탐색을 시도한다.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초현실주의자들이 대중의 주체적인 문화 혁명을 도모한다는 점과 계급투쟁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혁명관과 맞닿아 있는 동시에, 이성적 사고의 상상력 억압을 비판하고 자유로운 정신의 표현을 옹호했다는 지점에서 참여문학론 등의 다른 문학 운동과 결을 달리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초현실주의의 발생 과정을 짚으며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의 과도기적 단계로만 치부되었던 다다 운동이 초현실주의와 동등하게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지적한다. 그 이후에도 초현실주의 운동 진영 내부에서 문학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다른 문학 운동관과 어떻게 충돌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초현실주의 시와 문학의 혁명』은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아직 소개된 바 없는 프랑스 초현실주의 문학에 대해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논의들을 정리·성찰해낸 연구서이기에 프랑스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진 독자들뿐만 아니라 낯설고 어렵게 느끼는 이들에게도 매우 반가운 책이 될 것이다. 더불어 문학이 재능 있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표현이어야 한다는 초현실주의의 기본 입장은 문학과 문화 권력에 대한 성찰이 집중적으로 수행되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물음들을 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 본문 소개

오생근 문학연구서 『초현실주의 시와 문학의 혁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에서는 앙드레 브르통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초현실주의에서의 ‘혁명’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해설한다. 자동기술 작법으로 씌어진 초현실주의 작품들이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으나, 1부를 따라가다 보면 초현실주의 문학에 담긴 상상력과 해방 의지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초현실주의가 결국 현실세계에서의 실망으로 유토피아적 흐름에 빠져버린 점을 지적하며 삶의 문제를 떠나버렸다는 점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놓치지 않는다.

제2부 「초현실주의 시와 소설의 다양성」에서는 앙드레 브르통 이후 초현실주의 운동 진영 내부의 각 작가들이 가졌던 경향과 입장에 대해 검토한다. 초현실주의의 취지와 미학적 가치에는 동의하나 현실과의 단절을 우려했던 엘뤼아르, 도시를 낯선 이미지로 신화화한 아라공, 도시인의 어두운 내면세계를 보여준 데스노스, 극단의 초현실주의적 글쓰기를 시도했던 루셀,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과 입장차는 있었으나 그 관심이 초현실주의적 기조와 유사했던 그라크까지의 흐름과 초현실주의 내부에서 진행된 논의의 맥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제3부 「초현실주의, 수용과 비판」에서는 초현실주의가 시대적 외연을 어떻게 넓혀갔고, 다른 문학 운동 진영과 어떠한 논의를 이끌어왔는가에 대해 기술한다. 회화와 영화 등 장르를 막론하고 수용된 초현실주의가 달리, 마그리트, 에롤드 등의 회화 기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히는 한편, 브르통과의 논쟁에서 바타유가 ‘하류 유물론’을 주장하며 추함과 허위, 악의 논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던 그 쟁점들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참여문학론을 주장하였던 사르트르가 “초현실주의 문학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의식을 공유하지 못한 문학”이라고 비판했던 점을 검토한다. 저자는 사르트르의 작품에 나타나는 초현실주의성을 분석하며 사르트르의 비판을 성찰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책머리에

초현실주의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대학 4학년 1학기 때, 사회학을 전공한 젊은 프랑스인 교수의 강의를 듣던 때였다. 그는 교재 없이 매 시간 프랑스 문화와 사회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다가 어느 날 문득 자기가 좋아하는 시라고 하면서 엘뤼아르의 「자유」를 읽어주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학과에서는 20세기 불시를 전공한 교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강의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나, 보들레르에서 시작하여 발레리로 끝나는 상징주의 시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자유」를 처음 알게 된 느낌은 나에게 거의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그 시를 들으면서였는지 읽으면서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라는 구절이 스무 번쯤 반복되는 그 시에서 ‘너’가 누구인지가 제일 궁금했는데, 마지막 연의 “한 마디 말의 힘으로/나는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나는 너를 알기 위해서/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태어났다/자유여”라는 구절에 이르러 ‘너’가 바로 자유라는 것을 알고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한 마디 말의 힘으로’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구절은 내가 좋아하던 발레리의 ‘바다여!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여’(「해변의 묘지」)와 비슷하여 친숙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안다connaitre’라는 동사를 ‘함께 태어난다’는 의미로 해석한 클로델의 재담으로 말한다면, 엘뤼아르의 「자유」를 알게 된 순간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젊은 날의 나는 후회스런 행동도 많이 하고, 뉘우치는 일도 잦으면서 늘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은 꿈을 가졌고, 그래서 과거를 ‘후회하는 나’가 아닌 미래를 준비하며 ‘공부하는 나’를, ‘감성적인 나’가 아닌 ‘이성적인 나’를 만들려고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결심이 흔들릴 때면 나도 모르게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변화의 삶을 다짐하곤 했다. 이런 착잡한 내면 속에서 엘뤼아르의 「자유」는 잠시 머물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대학원 첫 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원주에서 근무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최전방 방책선 앞에서 보초를 서는 병사가 되어 오전에 잠을 자고, 오후에는 훈련 받다가, 밤이 되면 거의 밤새도록 어둠을 응시하며 보초를 서는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새도록 비가 쏟아지는 때, 기적처럼 엘뤼아르의 「자유」가 떠올랐다. 「자유」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 기억된 것은 마지막 구절이 아니라 “욕망 없는 부재 위에/벌거벗은 고독 위에/죽음의 계단 위에/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당시의 힘든 상황에서 ‘벌거벗은 고독’의 극단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자유」의 몇 구절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들 속에서 늘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무거운 배낭과 무기를 들고 행군할 때, 백암산 줄기의 어느 산봉우리에서 막사 건축 작업에 동원되어 하루에도 수십 번 건축자재를 등에 지고 높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했을 때, 폐결핵 진단을 받고 우울한 마음으로 후송 갔을 때, 힘든 순간마다 떠오른 「자유」의 시 구절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군대 생활을 마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때의 절실한 느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제대 후에 대학원 학생으로 돌아가면, 엘뤼아르의 시를 대상으로 논문 쓸 것을 나와 약속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엘뤼아르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된 것은 이런 사연 때문이었다. 엘뤼아르를 공부하면서 초현실주의라는 거대한 산맥을 알게 되었고, 그 산맥의 중심에 브르통이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게 되기도 했다. 나중에 프랑스에 유학 가서 브르통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할 때, 언젠가 귀국하면 학위논문과는 상관없이 초현실주의를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여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초현실주의의 중요한 주제들인 시와 사랑, 자유와 혁명의 구호가 매력적인 이유도 있지만,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랭보의 명제와 “세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열정이야말로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종합하려는 모순되면서도 이상적인 그들의 계획은 여러 가지로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귀국한 다음에 처음 쓴 논문이, 박사 논문 안에서도 검토한 바 있는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혁명의 의미」였는데, 그 후 27년쯤 지나서 가장 최근에 쓴 논문은 사드의 혁명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쟁점이 된 「브르통과 바타유의 논쟁과 쟁점」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초현실주의 혁명으로부터 사드의 혁명으로 끝나는 긴 모험의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여정의 한 고비였던 지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는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광기의 작가, 레이몽 루셀’ 그리고 ‘엘뤼아르의 초현실주의 시’를 주제로 한 세 편의 논문을 연이어서 썼다. 이 무렵 엘뤼아르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20대의 관점과 현재의 관점이 많이 달라진 것을 알았다. 그만큼 내가 변화했음을 의식하면서 새로운 감회에 젖기도 했다. 누군가 청춘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초현실주의의 자유와 혁명이라는 말만 들어도 벅찬 열정이 차오르는 것 같다. 이러한 감회 속에서 또한 알게 된 것이 공부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이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며, 또한 공부를 해야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을 갖게 된 것만으로 더위를 잊을 수 있었고 잠시 행복감에 젖기도 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서 이제 다시 길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2010년 12월, 관악산 연구실에서
오생근

목차

책머리에

 

1부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1장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혁명의 의미

2장 자동기술과 초현실주의적 이미지

3장 브르통과 다다

4장 『나자』와 초현실주의적 글쓰기의 전략

5장 『열애』와 자동기술의 시 그리고 객관적 우연

2부 초현실주의 시와 소설의 다양성

6장 엘뤼아르와 초현실주의 시의 변모

7장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 현실성과 초현실주의

8장 데스노스의 『자유 아니면 사랑을!』과 도시의 환상성

9장 레이몽 루셀의 『아프리카에 관한 인상들』, 글쓰기와 신화

10장 줄리앙 그라크의 『아르골의 성(城)에서』와 새로운 초현실주의 소설

 

3부 초현실주의, 수용과 비판

11장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자크 에롤드와 초현실주의

12장 브르통과 바타유의 논쟁과 쟁점

13장 사르트르의 초현실주의 비판

작가 소개

오생근 지음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1983년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소설 3부작의 형태와 의미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불문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명예교수이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동물의 이미지를 통해 본 이상의 상상세계」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으로 『삶을 위한 비평』(1978), 『현실의 논리와 비평』(1994), 『그리움으로 짓는 문학의 집』(2000), 『문학의 숲에서 느리게 걷기』(2003), 『위기와 희망』(2011) 등이, 연구서로 『프랑스어 문학과 현대성의 인식』(2007), 『초현실주의 시와 문학의 혁명』(2010), 『미셸 푸코와 현대성』(2013)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프레베르 시집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2017), 프랑스 현대 시를 모은 『시의 힘으로 나는 다시 시작한다』(2020), 앙드레 브르통의 소설 『나자』(2008), 그리고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1994), 『육체의 고백』(2019)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우호학술상, 대한민국학술원상, 수당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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