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조선에서 마주한 모더니티의 얼굴
몰락에 대한 공포, 과거에의 회한……
주변부 모더니즘 소설, 그 충돌과 분열의 기록들을 다시 읽다
식민지 시대와 해방 직후의 문학 연구를 활발하게 수행해온 국문학자 신형기의 『분열의 기록─주변부 모더니즘 소설을 다시 읽다』(문학과지성사, 2010)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문학 논의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로 학문 활동을 시작한 이래, 북한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민족 이야기Nation Narrative’의 고찰에 주력해왔다. 이번 책에서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씌어진 이른바 모더니즘 소설을 읽음으로써 근대성의 문제를 다시 조명하고자 하였다.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주변부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이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제껏 ‘식민지 모더니즘’ ‘이식된 근대’ 등으로 명명되며 그 위상에 대한 오랜 논의가 있어왔던 지점을 ‘주변부’라는 위치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저자는 “식민지에서 씌어진 모더니즘 소설들은 모더니티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 중심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방식으로 주변부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주변부’라는 위치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이 시기의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대란 모더니티의 시간이란 당대성이 지구적 수준으로 통합을 달성하는 과정이었다. 1930년대 조선 또한 이러한 당대성에 대한 합류 욕망이 커짐과 동시에, 자본화가 일상의 세부에 미치면서 새롭게 군림한 권력에 대한 공포, 그리고 지역적 과거로부터의 단절됨으로 인해 발생한 향수 등이 섞인 분열의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저자는 주변부 모더니즘이 주변부의 분열적 위치에 섬으로써 모더니티와 대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중심과 주변부의 역학이 모더니티가 관철되는 방식이었고 모더니티의 얼굴은 이를 통해서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심과 주변의 위계적 격절과 더불어 주변부에서의 불균등성은 중심에 의한 모더니티가 관철되는 상황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농촌과 도시, 도심과 도시 변두리의 세궁민 등 무수한 조난자들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어떤 전통적 가치나 특별한 문화자원을 동원하더라도 이 비극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주변부의 모더니즘은 정치를 통해 새로운 당대성을 창출하려는 전망이 불가능해진 와중에서 모더니티가 당대성을 갱신해가는 국면을 목도한다. 특히 모더니티의 시간이 지역적 과거의 폐허 위에 겹쳐지며 나타나는 불균등한 무질서는 주변부의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위치를 새삼 확인시켰다. 저자는 이 시기 소설이 전망이 부재한 상황 자체를 증언함으로써 모더니티, 그리고 중심과 주변부의 역학을 문제시했다는 점에 주목, 그 마땅한 평가의 정당성을 힘주어 말한다.
『분열의 기록』은 작가 이상, 박태원, 최명익, 허준, 유항림, 현덕에 대한 개별 논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서로 관련된 논의를 하고 있는 만큼 구성적 독서가 가능하게 한다. 저자는 이상의 처녀작 『12월 12일』에서 모더니티의 시간이 다다를 파국을 예감한 공포를 읽는다. 공포는 분열을 통해 감지되고 부각될 수 있었다. 한편, 「박태원, 주변부의 만보객」은 만보객의 운명을 다룬 글이다. 저자는 구보에게 만보가 무엇이었으며 왜 그의 만보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분석한다.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드는 모더니티의 파괴성은 최명익의 소설이 떨칠 수 없었던 주제였다. 결국 최명익의 소설들은 어떤 희망의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해방 후 분열을 ‘극복’하는 쇄신의 길을 선택하지만 그 또한 실패의 길에 이른다. 허준의 소설 「잔등」은 해방 후 만주로부터의 귀환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윤리적 고뇌가 가닿은 경지를 보여준다. 과연 해방 후의 귀환이 무엇으로의 귀환이어야 했던가는 이 소설에서 거듭 던져지고 있는 물음이다. 유항림의 소설로부터는 절망의 존재론을 읽어낸다. 저자는 절망 안에 자신이 되려는 의지가 잠복해 있다면 절망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해석한다. 끝으로 현덕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스타일의 효과를 살펴 봄으로써 장면화와 같은 극적 효과의 의미가 교조적인 리얼리즘의 규정에 의해 재단되어서는 안 됨을 저자는 당부한다.
탈경계, 탈중심,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국내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모더니티에 대한 고찰, 특히 한국문학에서의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는 더 충분한 정리가 필요한 단계다. 그간 중심에 대한 대항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가 문학에서 발현되는 양상에 관심을 쏟아온 저자 신형기는, 이번 『분열의 기록』을 통해 이 모더니티의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당대성이 관철되는 상황 속에서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이 겪는 분열의 기억을 더듬어 근대성의 발아점을 찾아가는 치열한 과정을 추적해간다. 이를 통해 저자는 주변부 모더니즘의 의의를 정당하게 되돌려줌으로써 모더니티를 성찰하는 하나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다.
■ 책머리에
모더니티의 ‘이후post’가 거론된 지 오래지만 ‘이후’의 전망이란 번번이 모더니티의 작용과 효과의 성찰을 요구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 책에서 나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쓰인 이른바 모더니즘 소설을 읽음으로써 근대성의 문제를 다시 조명하려 했다. 모더니즘 소설이 모더니티를 반영하거나 부각했다면 과연 모더니즘 소설에서 근대성이란 무엇이었으며, 그 의미는 어떻게 해독되어야 할 터인가가 나의 관심사였다.
나는 식민지 시대 모더니즘 소설을 분열schizophrenia의 기록으로 읽었다. 두루 알다시피 제도로서의 근대성은 동질적이고 단일한 체계화를 추구한 것이었다. 근대성에 의한 통합은 또 그것이 계몽주의적 보편성을 장악하고 행사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통합의 과정은 ‘중심’이 ‘주변부’를 확대해간 양상으로 나타났다. 주변부로 관철된 모더니티가 보편적인 것이 됨으로써 주변부를 중심에 종속시켰던 것이다. 식민지에서 쓰인 일단의 모더니즘 소설들은 모더니티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 중심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방식으로 주변부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이것이 내가 식민지의 모더니즘을 주변부 모더니즘으로 명명한 이유이다. 주변부는 중심이 아닌 곳이었다. 그렇지만 모더니티가 관철된 주변부는 중심과 이어진 곳이 되었다(주변부와 이어져 있지 않은 중심은 중심일 수 없다). 나는 주변부 모더니즘이 확인한 주변부라는 위치가 위계적 격절과 연속의 모순된 이중성을 갖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분열은 주변부라는 모순된 위치가 작용하고 드러나는 양상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중심의(에 의한) 동일성을 부정하는 상태이자 증거였다.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모더니티가 동질적이고 단일한 체계화를 추구한 시간은 또 내면적 분열이 진행된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근대란 모더니티의 시간으로서의 당대성contemporaneity이 지구적 수준으로 통합을 달성하는 과정이었다. 모더니티가 관철된 주변부에서는 지역적 과거local past의 절단된 단면 위에 모든 것을 바꾸어가는 모더니티의 시간으로서의 당대성이 엇갈려 놓이는, 다른 시간과 공간이 불균등하게 공존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주변부 모더니즘은 지구적인 당대성의 실현을 목도해야 했다. 그런데 주변부라는 위치에서 당대성이란 역설적이게도 잔존하는 지역적 과거를 또한 드러내는 것이었다. 당대성이 흔히 지역적 과거에 부착되어 불균등한 공존의 양상을 빚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부 모더니즘에서 읽게 되는 분열이 지구적으로 확산된 당대성과 파열된 지역적 과거의 불균등한 공존이 일으키는 소란을 기록하는 방식이었다고 보았다. 주변부로 관철된 모더니티가 불균등성을 초래하기 마련이었다면 불균등성이야말로 근대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구적 당대성에 민감하였기에, 또 그런 만큼 불균등성을 외면할 수 없었던 주변부 모더니즘은 그럼으로써 근대의 모순된 입체성을 드러낸 것이다.
식민지 시대 모더니즘 소설은 흔히 프로문학이 퇴조한 이후의 정신적이고 이념적인 혼란을 수동적으로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나에게 주변부 모더니즘에서의 분열은 이념적 정향을 잃은 혼란의 증상으로 비판하기보다 그 내면적인 필연성을 통해 조명해야 할 것이다. 분열이 모더니티가 작동한 방식의 이면, 무엇보다 통합/배제의 그늘을 감지하였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윤리적 고뇌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심이나 제국, 혹은 지구적 헤게모니에 대항한다는 입장에서 시도된 민족적이거나 계급적인 통합론은 궁극적으로 모더니티에 의한 통합의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간을 다시금 성찰하려 한다면 주변부 모더니즘에서 노정된 분열은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화제임에 틀림없다. 분열은 주체에 의해 포섭되지 않는 타자의 존재를 비추며, 그런 방식으로 주체의 오인(誤認)을 넘어서는 윤리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 모더니즘 소설은 이른바 미적 근대성을 구현한 텍스트로 설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분열의 변증법적 효과는 미적 근대성이라는 범주로 해독되거나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 제목으로 굳이 ‘다시’ 읽는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이 책이 주변부 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변호apology’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주변부 모더니즘의 의의를 정당하게 되돌아주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모더니티를 성찰하는 하나의 거점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기대다.
2010년 겨울
신형기
서론
주변부 모더니즘과 분열적 위치의 기억
이상, 공포의 증인
박태원, 주변부의 만보객
최명익과 쇄신의 꿈
허준과 윤리의 문제: 「잔등」을 중심으로
유항림과 절망의 존재론
현덕과 스타일의 효과
보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주변부 도시의 만보객
- [연합뉴스] 식민지 모더니즘 소설에 대한 ‘변호’
- [서울신문] 일제시대 한국의 모더니즘 리얼리즘과 어떻게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