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최인훈 전집 5 0

최인훈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9년 5월 7일 | ISBN 9788932019192

사양 · 520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상상과 실제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시공간 속에 펼쳐지는 준엄한 자기정신의 검열

-일제 강점기하 지식인 청년의 운명과 비판적 사유

 

 

『태풍』(1973)은, 작가 최인훈이 20여 년이라는 긴 침묵을 깨고 발표했던 대작 『화두』(1994) 이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작가 스스로 “『광장』―『회색인』―『서유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태풍』이 결과적으로 5부작으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듯이, 중간의 세 소설의 사색적 탐구와 다르게 『광장』과 『태풍』은 역사적 모진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 던져진 지식인 청년을 ‘사생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함께, 그리고 비반성적으로 되풀이되어 읽을 만한 문제작이다. 더군다나 시공간의 다이내믹한 변모와 주인공의 상상 속을 종횡무진하는 장편 『태풍』은 최인훈의 전작 가운데 가장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한 서사의 양태를 띠고 있다.

 

『태풍』은 일본으로 읽히는 가상 제국 나파유와 그 적대국 니브리타(영국) 사이에 벌어진 대전에 끼어든 애로크 민족(한국) 출신의 젊은 육군 중위 오토메나크의 파란 많은 청년기를 문제화하여 일제 강점기하 삶의 한 운명적 궤적을 그려낸 작품이다.

오토메나크는 친나파유인 가정에서 자라나, 철저한 나파유 교육을 받고 바로 나파유군의 장교가 되어, 니브리타 식민지인 아이세노딘에 진주하고, 정보장교로서 니브리타군의 포로수용소에 근무하게 된다. 오토메나크 중위는 자신이 나파유의 자랑스러운 군인으로서 손색이 없음을 자부하며, 나아가서 나파유국 출신인 다른 장교들보다 더 충실한 근무 태도를 지닌 채로 생활한다. 작가는 이렇게 본인의 자의가 아닌 무자각 상태의 선택을 좇는 주인공 청년에게 자신의 꿈과 정치적 해석을 주입한다. 작가 최인훈이 창조한 허구의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동남아의 한 지역이며 이야기의 종반부에 작가의 독자적 해석이 축조한 계획된 이상향이 서 있다.

 

 

‘자발적 무지, 억압된 것의 귀환, 부활의 길’


나파유 사령부의 호출 명령을 받은 오토메나크 중위는 나파유군의 아카나트 소령의 지시를 받고, 아이세노딘의 거물 정치 지도자인 독립투사 카르노스를 가둔 호화주택의 감시 책임자로 근무하게 된다. 바로 이 근무지에서 젊은 오토메나크 중위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놀라운 변모와 번민을 겪게 된다. 아카나트 소령은 동부의 독립 운동자들이 쫓겨난 니브리타와 내통하여 새로운 침략자 나파유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있으므로 나파유군 사령부는 포로로 갇힌 정치 지도자 카르노스를 동부의 독립 운동자들에게 넘겨주고 또 니브리타의 여자 포로도 같이 넘겨줌으로써 동부와의 화해를 노린다는 것을 오토메나크에게 알린다. 화평 회의가 이루어지면 오토메나크 중위는 카르노스 일행을 안전하게 송환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사령부로부터 위임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메나크는 고국에서 온 친나파유의 언론인 마야카를 만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소식을 듣는 한편, 나파유는 패전할 것이니 어떻게 하든지 목숨을 보전하라는 하버지의 전언을 듣게 된다. 자신의 상상을 초월한 세계정세에 직면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것이다. 오토메나크는 독립 투사 카르노스를 감금한 저택에서 비밀 창고를 발견하고, 전 니브리타 총독 측의 비밀문서를 접하고는 전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아이세노딘의 비밀 문건과 리스트를 알게 되며, 여기서 자신의 조국 애로크 반도의 상황도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때부터 오코메나크는 자신이 살아온 스물 몇 해가 완전히 허무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자각함과 동시에 번민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이처럼 무지의 청년에서 성년의 세계로 진입해가는 주인공 오토메나크의 성장기에 작가 최인훈은 열강의 세력 다툼과 그들에 대한 정치사회적 비판의식을 곧추세우는 것이다. 때를 같이하여 오토메나크는 카르노스의 시중을 드는 아이세노딘의 아름다운 처녀 아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나파유의 극렬분자들에 의해 아이세노딘 대량학살이 자행되고 그 속에서 정치적 중도파와 극단적 제국주의자들의 대립과 잔학성이 폭로된다. 드디어 포로 수송의 날이 다가오고, 오토메나크는 카르노스와 니브리타의 여자 포로들을 승선시켜 탈출을 도운다. 그런데 동부로 가던 배가 진로를 바꾸어 다시 로파그니스 쪽으로 항로를 변경하자 여자 포로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키고, 때마침 폭풍이 일어 일행은 절해고도에 갇히게 된다. 섬에 갇힌 채로 오토메나크는 무선으로 흘러드는 나파유의 패전 소식을 접한다. 이쯤에서 오토메나크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죽음을 택하려고 하지만 카르노스의 만류로 이후 아이세노딘의 독립투사로 재탄생의 길을 걷게 된다.

지극히 상징적이고 한편 정직한 암시성을 띤 소설 『태풍』은 한 개인의 테두리를 초월하는 거대 정치적 역학이 개인의 운명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키는지를 지적으로 통찰하고 있는 셈이다.

 

 

최인훈의 장편소설 『태풍』은 한 젊은 식민지 지식인이 시대적 운명과 더불어 살아야 했던 삶과 정신의 궤적을 그린 일대 로망이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전쟁과 살육을 목격하고 복잡한 정치극에 휘말리며 정결한 사랑을 체험하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역사와 개인, 현실과 정신, 의지와 사랑 간의 날카로운 대결을 읽게 된다. 이 대결이 우리 자신의 것인 한, 이 소설은 작가의 대표작 『광장』의 연장선 위에서 읽혀야 할 깊은 문제성을 띠고 있다. _신동욱(문학평론가)

 

『태풍』은 소설 공간을 무서운 바람 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온갖 종류의 태풍들을 헤치고 나아가 살아남은 사람들의 여로를 추적하고 있다.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사로서 살던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타국의 독립 운동을 돕는다. 죄의식을 안고 고행의 생각 길을 떠돌다 마침내 자신을 처벌하는 데 이르는 이 준엄한 정신들로 인해 『태풍』은 사건의 더미로 구성된 역사소설이 아니라, 정신의 자기 확인을 문제 삼는 역사소설이 될 수 있었다. _정호웅(문학평론가)

 

『태풍』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진실은 ‘자발적 무지의 생존술’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언젠가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것을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데, 그 귀환은 ‘태풍’처럼 닥친다는 게 『태풍』의 관점이다. ‘태풍’처럼 닥친다는 건 느닷없이, 즉 준비를 할 새가 없이, 그리고 광포하게, 즉 대처할 힘을 다 소진해도 모자랄 힘으로 닥친다는 것이다. 이 어쩔 수 없는 진실과의 직면 앞에서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주체됨을 포기할 것인가? 사랑으로 도피할 것인가? 아니면 자살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태풍』은 하나의 대답을 보여준다. 바로 부활의 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 부활은 그런데 애로크인이 죽어서 다시 애로크인으로 부활하는 게 아니라, 애로크인이 태풍에 난파함으로써 아이세노딘인으로 부활하는 길이다. 다시 말해 타자로 변신함으로써 자기를 구하는 방법론을 찾아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변신의 형태학이 어떻게 되어야 부활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아마도 관념적으로 그것은 애로크인도 아니고 아이세노딘인도 아닌 ‘세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형식을 찾는 것이리라. _정과리(문학평론가)

 

 

작가 컷 하영식

표지 그림 유근택, 무제, 목판화, 2005

작가 소개

최인훈 지음

1934년 4월 13일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법대에서 수학했다(2017년 명예졸업). 1959년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 집필과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광장/구운몽』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하늘의 다리/두만강』 『우상의 집』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을 출간했다.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수상했다. 『광장』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으로, 『회색인』이 영어로,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가 영어와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간행되었다. 2018년 7월 23일 별세했다.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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