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학의 지평을 여는 역동적인 탈주,
그것을 좇는 날카로운 비평의 시선
■ 책 소개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과사회』 편집위원으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문학평론가 우찬제의 새 비평집 『프로테우스의 탈주-접속 시대의 상상력』이 출간되었다. 2005년에 출간된 『텍스트의 수사학』 이후 5년 만에 펴낸 이번 비평집에는 저자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발표한 글 24편이 총 5부에 걸쳐 실렸다. 1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쓴 글들을 묶었지만, 그 안에는 2000년대 젊은 문학에 관한 저자의 날카롭고 일관된 비평적 관점이 녹아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그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전에 두 권의 비평집 출간하는 동안에도 몇 편의 글들이 당시의 책들에 묶이지 않고 가만히 때를 기다린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서 드러난 프로테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딸림 신이다. 이 프로테우스에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는 모습이다. 특히 경계 없이 무엇으로든 변신하는 프로테우스의 거세고 도도한 탈주는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한편 프로테우스의 변신, 혹은 이러한 탈주는 현대에 들어와서 신화와는 다른 맥락으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원인을 분명하게 밝힐 수 없지만 세포의 일부분에만 영양이 공급되어 기형적인 몸의 변형을 유발하는, 퇴행적이고 일방향에 갇힌 변신이라 할 수 있는 현대의 희귀 질환으로서의 ‘프로테우스 증후군’이 그것이다. 이렇듯 일련의 프로테우스 현상들을 아우르며 저자는 이러한 현상들이 2000년대의 젊은 문학의 모습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조명한 ‘접속 시대’의 사회 현상을 바탕으로 접속 시대의 문학적 상상력과 스타일을 프로테우스 현상과 관련하여 비평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역동적인 프로테우스의 탈주를 보이는 우리 시대의 작가들이 몸의 직접 체험보다는 접속을 통한 간접 체험에서 문학의 생소재를 찾으며, 그 공간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다양한 모습을 우리는 『프로테우스의 탈주-접속 시대의 상상력』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궤적을 좆다 보면 2000년대 문학의 표정과 그 안의 새로운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중심으로 접속 시대의 새로운 특성에 대해 주목한 「접속하는 프로테우스의 경험과 상상력」과 그런 특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김경욱, 이기호, 김중혁의 작품을 살펴본 「접속 시대의 사회와 탈(脫)사회」,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서사를 담아내며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 한유주, 김애란, 김미월의 작품을 분석한 「접속 시대의 최소주의 서사」가 수록된 제1부를 시작으로, 제2부에서는 접속 시대의 다양하게 변주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젊은 작가들 김영하, 김경욱, 정이현, 김도언, 박민규, 윤이형 등을 다룬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비단 젊은 작가들에 그치지 않고, 제4부에 이르러 최인훈, 허윤석, 최인호, 이창동 등의 다시 읽어야 할 작가들에게도 그 비평의 시선을 던진다. 그리고 다시, 이 시대의 우리 문학이 처한 문제와 새로운 문학의 경향을 짚어보며 신춘문예의 경향을 통해 조심스레 우리 문학의 미래를 내다보는 것으로 총 5부가 모두 끝이 난다.
이 책의 「책머리에」에서 저자는 프로테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오디세우스와 얽힌 신화 하나를 소개한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자 프로테우스의 딸 에이도테아가 자신의 아버지를 붙잡고 늘어져 지혜를 얻으라는 권유를 하고, 그에 따라 잠자는 프로테우스에게 접근하여 꽉 묶은 오디세우스는 변화무쌍하게 몸을 바꾸며 자신을 위협하는 프로테우스를 놓칠 뻔하기도 하지만 결국 필요한 지혜를 얻게 된다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에 관한 이야기. 바로 이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역동적인 탈주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프로테우스를 붙잡고 늘어져 한국 문학의 방향을 찾으려는 저자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귀환하는 오디세우스가 아니다. 이 시대의 프로테우스들에게 “접속의 그물에 갇히지 말고 부단히 탈주하자”고 외치는 그는 탈주하는 프로테우스를 따라 그들이 열어가는 새로운 미학의 지평을 찾아내어 길을 만드는 자이다. 그리고 그의 길을 따라 걷는 일은, 전통적인 문학에서 너무 빨리 몸을 바꾸어버려서 조금은 다가가기 어려웠던 2000년대의 문학을 더욱 가까이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제1부 접속하는 프로테우스
접속하는 프로테우스의 경험과 상상력
접속 시대의 사회와 탈(脫사)회
접속 시대의 최소주의 서사
제2부 접속 프리즘
접속 시대의 그물과 유령의 존재론-김영하의 『빛의 제국』
한없이 미끄러지는 접속-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
소비사회의 접속과 천의 목소리-정이현론
접속의 상상력과 단속의 수사학-김도언의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 풍경』
탄탈로스의 기갈과 프로테우스의 탈주-박민규의 『핑퐁』
눈의 작란(作亂), 그 고통의 탈주-윤이형 소설 읽기
제3부 존재의 숨결과 서사의 리듬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분열증적 탈주, 혹은 무위(無爲)의 시학
식물성의 상상력, 혹은 신성한 숲
숨결, 존재의 리듬
서사도단(敍事道斷)의 서사-조하형 최제훈 소설의 경우
제4부 불안의 둥지에서 꿈꾸기
소문의 불안, 불안의 소문
모나드의 창과 불안의 철학시(哲學詩)-최인훈의 『회색인』 다시 읽기
백일몽, 그 결여의 존재론-허윤석의 『구관조』 다시 읽기
불안의 둥지에서 꿈꾸기-최인호의 『처세술개론』
‘나쁜 피’의 불안과 고통의 뿌리-이창동의 『소지』 다시 읽기
제5부 ‘로테크 문학’의 역설
하이테크 시대와 로테크 문학의 역설-문학 위기론을 넘어선 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인식과 스타일의 전위, 혹은 혼돈의 미학을 위하여
철의 새장을 넘어서-소설의 예술성과 상업성
‘이태백 세대’의 윤리 감각과 상상력
‘작은 인간’의 문학, 혹은 수인의 딜레마-2008년 신춘문예 소설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