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원제 掌の小說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유숙자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0년 2월 26일 | ISBN 9788932020358

사양 양장 · · 301쪽 | 가격 10,000원

분야 외국소설

책소개

풍부한 서정, 섬세한 감각, 비정한 인생관

손바닥만 한 길이의 소설에 담긴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정수

 

“짧다, 그러나 여운은 길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짧은 소설 68편을 모은 작품집. 책의 제목인 ‘손바닥소설’이란 일본에서는 흔한 소설의 형태인 ‘장편소설(掌篇小說)’을 번역한 말로, ‘손바닥에 써질 정도로 짧은 이야기’를 가리킨다. 이번에 출간된 『손바닥소설』에 실린 작품들도 그 이름에 걸맞게 대부분 200자 원고지 15매 안팎의 분량이며, 짧은 건 심지어 2매, 길어봤자 30매 정도 되는 짧은 이야기들이다.

 

이 짧은 이야기들에, 문학평론가들은 ‘가와바타 문학의 고향’ 혹은 ‘가와바타 문학을 여는 열쇠’라는 표현으로 큰 의의를 부여한다. 그 이유는 가와바타 문학의 권위 있는 연구자인 마쓰자가 도시오(松坂俊夫)가 지적한 대로 가와바타의 ‘손바닥소설’이 질적인 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 수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20대 때부터 40여 년의 세월 동안 대략 175편에 이르는 ‘손바닥소설’을 지을 만큼 남다른 애착과 열정을 기울였다.

 

그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손바닥소설’ 하면 자연스레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떠올린다. 풍부한 시정(詩情), 섬세한 감각, 비정한 인생관을 통해 ‘손바닥소설’에 세운 가와바타 고유의 작풍(作風)은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다. 가와바타의 ‘손바닥소설’은 종종 한 줄짜리 시에 우주를 담아낸다는 일본의 전통시 하이쿠(俳句)에 비견되곤 한다. 뛰어난 하이쿠 한 편이 장편 시에 필적하는 울림과 내용을 지닐 수 있듯이 ‘손바닥소설’은 일반 소설의 규모와 무게와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도시로 팔려가는 딸이 어머니의 도움으로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운전사와 하룻밤을 보내는 「고맙습니다」, 한 남자가 동네에 유료 화장실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자신의 화장실을 쓰도록 공중 화장실을 차지하고 나오지 않아 사망하는 「변소 성불」, 수많은 남자를 애타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여인이 죽자 그녀의 얼굴에 석고를 덮어씌워 데스마스크를 만드는 「죽은 자의 얼굴」 등 책에 수록된 이야기를 읽으며 웃고 울다 보면, 짧은 이야기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자신의 개인사를 담은 소설을 찾아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첫사랑 소녀의 이야기를 정리한 작품 「양지」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집을 잃고 남의 집 신세를 져야 했을 때 사람들의 안색을 읽는 데 열중해야 했던 탓에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봐서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드는 버릇을 가지게 된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어머니」에서는 부모의 죽음에 대해서 처연하게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일본의 유명 문학출판사인 신초사(新潮社)에서 1971년 출간된 『掌の小說』을 번역한 것이다. 신초문고에 실려 있는 122편 가운데, 옮긴이가 그중 68편을 선별하여 번역, 수록했다.

 

 

『손바닥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와 소재, 발상, 문체 등의 특징은 바로 가와바타 문학의 원점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남녀 간의 미묘한 심리, 부부간의 애정 표현, 복잡한 인간 심리, 풍속적인 내용, 새와 짐승을 소재로 삼은 작품, 소년 소녀의 사랑, 자전적인 작품, 윤회사상, 일상과 이탈, 야성적 미에 대한 동경, 등 다채로운 내용들이 그 어느 소설보다 실험적인 기법으로 때로는 기괴하게, 때로는 환상적, 몽환적인 분위기를 띠며 곳곳에 매복되어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사랑과 이별, 꿈, 고독, 죽음, 젊음과 늙음 등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한 갈피씩을 냉혹하고 적나라하게, 동시에 따스하고 유머러스하게 펼쳐 보이기도 한다, 고작 손바닥만 한 길이에.

_「옮긴이의 말」에서

 

 

이 소설의 작품 대부분은 이십대에 썼다.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에 시를 쓰지만, 나는 시 대신 손바닥소설을 썼다. 무리하게 설정된 작품도 있으나, 또한 절로 물 흐르듯 씌어진 좋은 작품도 적지 않다. 이제 와서 보건대, 이 책을 ‘나의 표본실’이라 하기에 부족함은 있지만, 젊은 날의 시정신은 꽤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_가와바타 야스나리

 

본문 속으로

 

“고맙습니다.”

그는 백오십 리 도로의 마차, 짐수레, 말들에게 가장 평판이 좋은 운전사다.

정류장 광장의 저녁 어스름 속에 내려서자, 처녀는 몸이 흔들리고 발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으로 휘청거리는데 어머니가 붙잡는다.

“기다려라.” 말을 내뱉고 어머니는 운전사에게 매달린다.

“이보게, 이 아이가 자넬 좋아한다는구먼. 내 소원일세. 두 손 모아 빌겠네. 어차피 내일부턴 생판 모르는 사람의 노리개가 될 거네. 참말이여. 어느 마을의 아가씨라도 자네 자동차에 백 리나 타본다면야.”

다음 날 새벽녘, 운전사는 여인숙을 나와 병사처럼 광장을 가로질러 간다. 그 뒤를 어머니와 처녀가 종종걸음을 치며 따라간다. 차고에서 나온 빨간색 대형 정기 승합자동차가 자줏빛 깃발을 세우고 첫번째 기차를 기다린다.

_「고맙습니다」에서

 

아내는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신앙 없는 시대에 태어나 우린 불행해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시대에 태어나.”

“글쎄, 지금은 죽은 자가 가장 불행한 시대지. 죽은 자도 행복해지는 시대가, 지혜로운 시대가 머잖아 분명 올 거야.”

“그러겠죠.”

아내는 남편과 멀리 여행 떠났을 적의 추억이 가득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저런 아름다운 착각을 끊임없이 느끼고 있다가, 잠에서 깨어난 듯 남편의 손을 잡고,

“전……” 하고 조용히 말했다.

“당신과 결혼한 거 행복이라 생각해요. 병이 옮은 걸 절대 원망하고 있지 않아요, 믿어주시는 거죠?”

“믿어.”

“그러니까, 저 애도 나중에 크면 결혼시키도록 해요.”

“그러지.”

_「어머니」에서

 

어차피 남편은 아내에게 매여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가느다란 끈 같은 걸로 남편이 아내에게 손이나 발을, 말 그대로 매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세상에는 더러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아내가 병들어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남편이 간호를 한다. 잠든 남편을 깨우기에 충분한 목소리를 내자면, 환자는 지친다. 또한 환자만 침대에서 잠을 자고 남편 침상과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아내는 어떻게 한밤중에 남편을 깨울까. 부부의 팔을 끈으로 묶어두고, 아내가 그걸 잡아당기는 게 제일 낫다.

병든 아내란 원래 외로움을 많이 탄다. 바람이 나뭇잎을 떨어뜨렸다는 둥, 나쁜 꿈을 꾸었다는 둥, 쥐가 소란스럽다는 둥, 온갖 구실을 지어내고는 남편을 깨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잠 못 드는 그녀 곁에서 그가 잠들어 있는 것부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_「매여 있는 남편」에서

 

그가 그녀의 몇 번째 애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튼, 마지막 애인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이미 죽음이 가까웠으니까.

“이렇게 빨리 죽을 거면, 그때 죽임을 당하는 게 나았어” 하고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서도, 많은 남자를 떠올리는 눈길로 환하게 미소 지으려 했다.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와선 그게 오히려 그녀를 아프게 보여줄 뿐이라는 것도 모른 채.

“남자들은 모두 나를 죽이고 싶어 했어요. 이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아도, 마음속으로.”

그녀의 마음을 붙잡아 두려면 그녀를 죽이는 외에는 방도가 없다고 고민한 애인들에 비해 그녀 스스로 그의 품 안에서 죽으려 하는 지금의 그는, 그녀를 잃게 될 불안감이 없는 만큼 어쩌면 행복한 애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그녀를 안는 데에 다소 지쳐 있었다.

_「죽은 자의 얼굴」에서

목차

양지

약한 그릇

불을 향해 가는 그녀

톱과 출산

반지

머리카락

카나리아

항구

사진

죽은 아내의 얼굴

지붕 아래의 정조

인간의 발소리

오신 지장보살

고맙습니다

수유나무 도둑

여름 구두

어머니

참새의 중매

자식의 입장

동반자살

용궁의 공주

처녀의 기도

머지않은 겨울

한 사람의 행복

신은 있다

모자 사건

옥상의 금붕어

아침 발톱

여자

무시무시한 사랑

마미인

백합

신의 뼈

장님과 소녀

고향

엄마의 눈

가을 천둥

가정

가난뱅이의 애인

웃지 않는 남자

전당포에서

변소 성불

이혼 부부의 아이

닭과 무희

매여 있는 남편

잠버릇

우산

싸움

얼굴

화장

여동생의 기모노

죽은 자의 얼굴

눈썹

등꽃과 딸기

친정 나들이

산다화

버선

언치새

여름과 겨울

댓잎 배

가을비

이웃

승마복

불사

하얀 말

 

옮긴이의 말·짧다, 그러나 여운은 길다

작가 소개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189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함께 살던 조부마저 세상을 떠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로 인해 생겨난 허무와 고독, 죽음에 대한 집착은 평생 그의 작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1920년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지만 곧 국문학과로 전과하여 1924년 졸업했다. 이후 『문예시대』를 창간, 요코미쓰 리이치 등과 감각적이고 주관적으로 재창조된 새로운 현실 묘사를 시도하는 ‘신감각파’ 운동을 일으켰다. 1926년 서정적인 필체가 빛나는 첫 소설 「이즈의 무희」를 발표한 이래 『설국』 『천우학』 『산소리』 『잠자는 미녀』 『고도古都』 등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면서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펼쳤다. 1938년에 실제로 치러진 슈사이 명인의 역사적인 대국을 소재로 삼은 『명인』(1954)에서도 가와바타의 탁월한 문학적 역량이 발휘되었다. 『손바닥 소설』은 가와바타 문학 세계가 품은 시혼詩魂의 전형인 동시에 정수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72년 4월 16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숙자 옮김

번역가. 지은 책으로 『재일한국인 문학연구』(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재일한인문학』(공저), 옮긴 책으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명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만년』 『옛이야기』 『디 에센셜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대산문화재단 번역 지원), 『유리문 안에서』,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쓰시마 유코의 『「나」』, 김시종 시선집 『경계의 시』, 데이비드 조페티의 『처음 온 손님』, 사토 하루오의 『전원의 우울』, 가와무라 미나토의 『전후문학을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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